자본주의와 경제적 이성의 광기
데이비드 하비 지음, 김성호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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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장 운동하는 가치로서의 자본의 시각화


"맑스는 가치를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으로 정의한다. 내가 타인이 사서 사용할 재화를 만드는 데 쓰는 노동시간은 사회적 관계다. 그래서 그것은 중력이 그렇듯이 비물질적이면서도 객관적인 힘이다. 이 관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맑스에 따르면 〈물질적 요소들이 자본을 자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자본이 또다른 측면에서는 가치이기도 하다는 점, 즉 비물질적인 어떤 것, 그 물질적 일관성과는 무관한 어떤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가치의 본질에 대한 모종의 물질적 표상, 우리가 만지고 잡고 측정할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절실한 요구가 생겨난다. 이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가치의 한 표현 또는 표상으로서의 화폐의 존재다. 모든 사회적 관계는 직접적인 물질적 탐구를 비켜 간다. 화폐는 이런 사회적 관계의 물질적 표상이고 표현이다."(24-7)


"생산수단은 다양한 형태로 주어지는 상품들로, 자연에서 무상으로 직접 채취된 원료, 자동차 부품이나 실리콘칩 같은  공장과 도로, 하수도, 상수도 같은 주변 물리적 기반시설의 사용권 등이다. 그중 일부는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이 상품들 대부분은 시장에서, 그 가치를 표상하는 가격에 구매해야 한다. 그러므로 화폐제도와 노동시장이 이미 존재해야 할 뿐 아니라 자본이 이용할 정교한 상품교환체계와 적절한 물리적 기반시설이 있어야 한다. 자본은 이미 확립된 화폐·상품·임금노동의 순환체계 내에서만 생겨날 수 있다고 맑스가 역설한 이유다. 순환과정의 이 지점에서 가치는 변신(metamorphosis)을 한다. 애초에 자본은 화폐 형태를 지녔다. 이제 화폐는 사라졌고, 가치는 상품의 외양, 즉 배치를 기다리는 노동력과, 조합을 이루어 언제라도 생산에 이용될 수 있는 생산수단의 외양을 하고 나타난다."(28-9)


"가치와 잉여가치는 생산된 물질적 상품의 형태로 응결되어 있다." "여기서 (맑스가 즐겨 부른 대로) '돈주머니 씨'(Mr.Moneybags)를 따라 시장에 가기 전에, 생산의 숨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거기서 생산되는 것은 새로운 물질적 상품만이 아니다. 노동력을 착취하는 사회적 관계도 거기서 생산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사용될 물질적 상품의 생산뿐 아니라 자본가의 이익을 위한 잉여가치의 생산도 수반한다. 결국 자본가들은 화폐적 이윤으로 실현될 잉여가치에만 신경을 쓴다. 자기가 생산한 특정 상품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자본순환의 이 계기는 상품의 생산뿐 아니라 잉여가치 형태를 띤, 자본과 노동 간의 계급관계의 생산과 재생산도 포함한다." "생산은 맑스가 자본의 '가치증식'(valorisation)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어나는 마술적 순간이다."(32-3)


"상품은 판매를 위해 시장으로 보내진다. 성공적인 시장거래의 과정을 통해 가치는 화폐 형태로 되돌아간다.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지불능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상품의 사용가치에 대한 욕구나 필요나 욕망(유효수요)이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아래서의 욕구·필요·욕망 창출의 길고 복잡한 역사가 있다. 게다가 유효수요는 곧 다루어질 화폐분배의 실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맑스는 가치 형태의 이 핵심적 전이를 '가치실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가치가 상품에서 화폐 형태로 전화되는 변신은 부드럽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가령 특정 상품을 아무도 원하거나 필요로 하거나 욕망하지 않는다면 그 상품의 생산에 아무리 많은 노동시간이 투입되었더라도 그것은 가치가 없다. 그리하여 맑스는 가치의 흐름이 유지되려면 생산과 실현 사이에 반드시 성립해야 할 '모순적 통일'에 대해 말한다."(34)


"임금 형태로 노동자에게 흘러가는 화폐는 임금재 형태로 생산되는 상품들에 대한 유효수요의 형태로 자본의 전반적 순환으로 되돌아간다. 이 유효수요의 힘은 임금의 수준과 임금노동 인구의 크기에 달려 있다. 하지만 화폐가 순환으로 되돌아갈 때 노동자는 일하는 자가 아니라 구매자의 역할을 떠맡고 자본가는 판매자가 된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에게서 나오는 유효수요가 표현되는 방식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소비자 선택권이 작동한다. 여기서 문화적 표현의 여지, 노동인구 내에 사회적으로 계발된 선호사항─자본은 이에 반응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고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이 추구될 여지는 상당하다." "임금재(노동자가 생존과 재생산을 위해 필요로 하는 재화)가 (값싼 수입품과 기술변화 등을 통해) 점점 더 저렴해지면서 가치 중의 몫은 줄면서도 물질적 생활수준은 높아질 수 있다. 이것이 최근 자본주의 역사의 핵심적 특징이었다."(37-6)


"분배는 잉여가치 생산의 수동적인 최종 산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맑스의 설명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금융과 은행업은 화폐 형태로 생산된 잉여가치 지분의 수동적 수령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자 낳는 자본의 순환을 통해 화폐가 잉여가치 생산에 재투입되는 화폐순환의 능동적 중재자이자 행위자이다. 중앙은행을 정점으로 하는 은행제도는 생산을 통한 가치 창출에는 무관심한 화폐 창출의 용광로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업자와 은행가는 과거 잉여가치 생산의 수혜자인 만큼이나 추가적인 가치순환의 추동자다. 소유에 따른 재산권에 기초해 수익을 요구하는 이자 낳는 자본의 순환으로 인해, 이제까지 운동하는 가치의 단일한 흐름으로 개념화된 것이 이중성을 띠게 된다. 산업자본가는 이 이중의 역할을 내재화한다." "이 사태의 모순적 측면은 금융제도 내부로부터의 부채 창출이 추가적 축적의 집요한 추동력이 된다는 것이다."(43-5)


# 자본의 전반적인 순환과정

1. 자본이 생산에서 잉여가치 형태로 생산되는 가치증식의 과정

2. 가치가 상품의 시장교환을 통해 화폐 형태로 다시 전화되는 실현의 과정

3. 다양한 청구자들 사이의 가치와 잉여가치 분배의 과정

4. 청구자들 사이에 유통되는 화폐 일부를 포획하여, 이후 가치증식을 통과하는 자신의 길을 계속 가도록 그것을 화폐자본으로 다시 전화시키는 과정


2장 『자본』이라는 책


제1권


〈생산의 발전을 위한 위한 모든 수단은 변증법적으로 전화되어 생산자에 대한 지배와 착취의 수단이 되며, 노동자를 파편화된 인간으로 기형화하고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며, 그의 노동을 고통으로 바꿔놓아 노동의 실제 내용을 파괴하며, 과학이 독립된 힘으로서 노동에 결합되는 것에 비례하여 노동과정의 지적 잠재력을 노동자에게서 소외시키며, 그의 노동조건을 왜곡하고, 비열해서 더욱 가증스러운 전제(專制)에 그를 종속시키며, 그의 일생을 노동시간으로 전화시키며, 그의 처자식을 자본이라는 거대한 수레의 바퀴 밑에 밀어넣는다. 그러나 잉여가치의 생산을 위한 모든 방법은 동시에 축적의 방법이며, 역으로 축적의 모든 확대는 잉여가치 생산의 방법을 발전시키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자본이 축적되는 데 비례하여 노동자의 상황은 급여가 많건 적건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 그것은 부의 축적에 상응하는 곤궁의 축적을 필연적인 상황으로 만든다.〉 57)


제2권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모순 : 노동자들은 상품의 구매자로서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자기 상품─노동력─의 판매자인 노동자들을 자본주의 사회는 최저 가격에 묶어두는 경향이 있다. 또다른 모순 : 자본주의적 생산이 자신의 모든 힘을 발휘하는 시기는 어김없이 과잉생산의 시기로 나타난다. 생산력의 사용은 가치의 생산만이 아니라 가치의 실현에 의해서도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품이 판매, 상품자본의 실현, 따라서 또한 잉여가치의 실현은 사회 일반의 소비요구에 의해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가 언제나 빈곤한, 그리고 언제나 빈곤 상태에 있어야만 하는 사회의 소비요구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노동계급이 보상적 소비주의 속에서 길을 잃을 운명에 처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본이 자기 시장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1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잠정적인 결론은 그 가정들에 의존한다."(64-5)


제3권


# 잉여가치의 분배 양상

1. 개별 자본가들 사이의 가치분배 : 완전경쟁 하에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별 자본가는 자본가 계급의 재생산을 위협하는데, 그 이유는 개별 자본가들이 잉여가치 생산의 극대화보다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도록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추동되기 때문이다.

2. 계급 분파로서의 산업자본가 : 산업자본가는 가치와 잉여가치의 일부를 상인에게는 이윤 형태로, 부동산 소유주에게는 지대 형태로, 그리고 은행가와 금융업자에게는 이자 형태로 건네주어야 한다.

3. 상업자본가 : 생산물을 시장에서 판매하는 데 드는 시간은 상실되는 시간이며 시간은 돈이다. 따라서 산업자본가는 온전한 가치에서 할인된 가격에라도 상품을 상업자본가에게 인도하고자 하며, 이 할인이 상업이윤의 원천이다.

4. 지주와 지대 : 자본은 인클로저와 사유화를 통해 토지에 대한 노동자의 접근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면서 임금노동을 재생산한다. 또한 자본은 토지와 건물 개량으로 완전 경쟁 시장으로 가는 길을 매끄럽게 닦아준 지주에게 지대를 지급한다.

5. 은행과 금융기관 : 산업자본가들은 상품을 생산할 때 투입물과 산출물 사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회전시간들을 조율하기 위해 은행과 금융기관에 신세를 진다. 이때 신용제도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일상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시간성들을 취하여, 시간에 따른 금리로 환원한다.

6. 이자 낳는 자본의 순환 : 순환하면서 이자를 낳는 자본은 생산에 능동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재산권에 의거해서 잉여가치 중의 자기 몫을 청구한다. 즉, '상품으로서의 화폐'는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데 사용가치가 있다.


"자본순환 과정 내부의 그 상이한 계기들은 기능적으로 서로를 끌어안으면서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기보다는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관련을 맺고 있다. 〈총체로서의 이 유기적 체제 자체는 자신의 전제들을 가지고 있으며, 총체로의 그것의 발전은 바로 사회의 모든 요소를 자신에게 종속시키는 데, 또는 자신에게 아직까지 결여된 기관들을 사회로부터 창조해내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그것은 이런 방식으로 총체가 된다. 이러한 총체가 되는 과정은 그것의 과정, 그것의 발전의 한 계기를 이룬다.〉" "여기서 말하는 총체는 인간 신체 같은 단일한 유기체의 총체가 아니다. 그것은 생태계적 총체로서, 거기에는 경쟁하거나 협력하는 다수의 활동 종(species of activity)이 있으며, 진화의 역사는 침공에, 새로운 분업과 새로운 기술에 대해 열려 있다. 그것은 어떤 종과 하위체계가 멸종되는 사이에 다른 것들이 형성되고 번성하며, 동시에 에너지의 흐름이 온갖 방식의 진화 가능성을 가리키는 역동적 변화를 창조하는 체제다."(82-3)


3장 가치의 표상으로서의 화폐


"가치는 사회적 관계다. 그러므로 그것은 '비물질적이면서도 객관적'이다. 가치의 〈유령 같은 객체성〉이 생겨나는 것은 〈가치로서의 상품의 객체성에 단 한조각의 물질도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치로서의 상품의 지위는 〈물리적 객체로서의 상품이 지닌 거칠고 감각적인 객체성〉과 대조된다. 〈하나의 상품을 아무리 돌리고 뒤집어보아도 그것을 가치를 지닌 사물로 파악하기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상품의 가치는 사회적 삶의 다른 많은 특징들─권력, 명성, 지위, 영향력이나 카리스마 같은─처럼 물질적 표현을 갈망하는 비물질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사회적 관계다. 가치의 경우 이 필요는 맑스가 '눈부신'(dazzling) 화폐 형태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충족된다. 맑스는 화폐를 거의 전적으로 가치의 '표현 형태' 또는 '표상'이라고 지칭한다." "화폐와 가치는 자율적이고 상호독립적이지만 변증법적으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94)


"『1844년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이미 맑스는 자본주의하에서 가치란 생산에서 자본에 의해 착취되고 가격 결정 시장에서 사유재산과 상품교환에 의해 확보되는 소외된 노동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외적 계급권력에 지배되는 소외된 노동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맑스가 볼 때 화폐는 (소외된) 노동가치를 표상했다. 그러므로 〈생산관계는 그대로 두고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가격 형성의 불합리성을 제거하려는 것은 본질상 실패를 자초하는 일인데, 그것은 가격 형성의 불합리성이 그 표현인 가치생산의 불합리성 자체를 마치 없는 것처럼 가정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의 토대가 되는 사회적 관계를 비판하지 않고 (시간 전표 같은) 소외된 노동에 대한 더 나은 방식의 표상을 구하는 것은 그저 그 소외가 계속되도록 놓아두는 것이었다. 맑스의 생각에 수많은 리카도주의 사회주의자들과 더불어 프루동과 그 추종자들이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던 일은 그것이다."(99-100)


"프루동이 자기 범주들을 이끌어낸 매뉴팩처(공장제 수공업)의 세계는 1840년대 파리의 작업장들이었다. 대체로 이것들은 자기 자신의 노동과정을 통제하는 장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사업체로서 뒤쪽에는 작업장이, 앞쪽에는 가게가 있었다. 주로 마주치는 자본 형태는 상업자본으로, 상인들은 작업장에서 물건을 사서 (1850년대에 생겨난 백화점의 전신인) 자신들의 포목점에서 통합 판매하곤 했다. 장인들은 자신들의 노동과정을 통제했으므로 노동과정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생산 시점에 노동은 소외되지 않았다. 그들의 주된 불평거리는 상인이 제시하는 낮은 가격과 선대제도(a putting out system)를 통한 상인 지배의 강화였다." "그들의 노동의 가치는 시장에서 강탈(소외)되고 있었다. 화폐와 시장에 관한 프루도의 주장은 이 청중들에게 직관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 이치에 맞는 것으로 여겨졌다."(101)


4장 반(反)가치: 가치저하 이론


"『자본』 제1권 1장 1절을 끝맺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어떤 것도 사용의 대상이 되지 않고는 가치가 될 수 없다. 만일 그것이 쓸모가 없다면 그것에 내포된 노동 역시 그러하다. 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고, 따라서 어떤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 한번의 예리한 발언으로 맑스는 우리를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인도한다. 즉, 자본의 순환은 취약하고, 갑자기 멈춰 설 수 있으며, 그 순환의 과정 중에 가치저하의 위협, 가치상실의 위협이 언제나 그 위를 맴돈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품에 내포된 생산수단의 가치는 노동에 의해 부가된 가치가 상실되면서 같이 상실된다. 상품 형태에서 가치의 화폐적 표상으로의 이행은 위험이 수반된 이행이다." "맑스는 〈살아 있는 노동이 가치를 창조하는 반면 자본의 순환은 가치를 실현한다〉는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생산과 실현 사이에 필연적으로 성립하는 통일성은 (헤겔의 '부정의 부정'의 사유가 녹아들어 있는) 〈모순적 통일성〉이다."(123-4)


"맑스에게 반가치 개념은 자본의 핵심에 속하는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특징이다." "자본은 운동하는 가치이며, 어떤 이유로든 이 운동이 잠시 멈추거나 심지어 속도를 늦추는 것은 가치의 상실을 의미하고, 자본의 운동이 재개되는 때에만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가치를 되살릴 수 있다. 자본이 특정한 형태─생산과정, 판매되기를 기다리는 생산물, 상업자본가의 손에서 유통되는 상품, 이체되거나 재투자되기를 기다리는 화폐 등의 형태─를 취할 때 자본은 〈잠재적으로 가치저하된다.〉 이들 중 어느 하나의 상태에서 〈쉬고 있는〉 자본은 '부정된'(negated), '유휴'(fallow), '휴면'(dormant), '고정된'(fixated) 자본 등 여러가지로 일컬어진다. 〈자본이 완성된 생산물의 형태로 동결되어 있는 한 그것은 자본으로서 활동적일 수 없다. 그것은 부정된 자본이다.〉 이 '잠재적 가치저하'는 자본이 자신의 운동을 다시 시작하자마자 극복되거나 '중지된다'."(125-6)


"실현된 가치는 생산으로 돌아가서, 생산을 위한 노동의 추가적 사용을 통해 '가치 증식됨'으로써만 자본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자본이 소외되고 반항적인 노동자의 형상을 한, 능동적 부정의 또다른, 더 집요한 위협을 마주하는 것은──화폐가 노동과정에서 다시 자금을 대기 위해 돌아가는─가치증식의 지점에서다. 노동계급(이것이 어떻게 정의되든)은 반가치의 화신이다. 이런 소외된 노동의 개념에 기초해서 트론티와 네그리, 그 밖의 이탈리아 자율주의자들은 생산의 지점에서 나타나는 노동자의 저항과 계급투쟁에 관한 자신들의 이론을 구축한다. 노동 거부 행위는 인격화된 반가치다. 이 계급투쟁은 생산의 숨은 공간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실현의 계기에 지배적인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정치와는 아주 다른 정치를 수반한다. 잉여가치를 생산함으로써 노동자는 자본을 생산하고 자본가를 재생산한다. 노동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둘 다를 거부하는 것이다."(130)


"어느 경우든 대출된 화폐─발생된 부채─는 이자 낳는 자본으로 신용제도 내부를 순환하는 일종의 반가치가 된다. 부채의 거래는 금융제도 내의 한 능동적 요소가 된다. 이는 더 많은 유동성을 창조하며, 회전시간이 서로 크게 다른 자본들이 만들어내는 연속적 순환의 방해물을 우회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신용 개입의 즉각적인 역할은 비축된, 따라서 '죽은' 화폐자본을 되살려 다시 운동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채는 미래의 가치생산에 대한 청구로서, 이는 가치생산을 통해서만 상환될 수 있다. 미래의 가치생산이 부채가 상환되기에 불충분할 경우 위기가 온다. 가치와 반가치의 충돌은 주기적으로 화폐·금융 위기를 촉발한다. 결국 자본은 부채 경제와 신용제도 내부에 쌓여가는 반가치를 상환하기 위해 미래의 가치에 대한 갈수록 불어나는 청구와 마주해야 한다. 자본이 초래하는 것은 가치와 부의 축적이 아니라 상환되어야 할 부채의 축적이다. 가치생산의 미래는 압류된다."(133-4)


"부채라는 반가치는 가치와 잉여가치의 추가적인 생산을 보장하는 주요 유인이자 수단 중 하나가 된다. 자본순환을 추동하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한 전통적·관습적 시각의 답은 언제나 개별 자본가의 이윤추구(탐욕)였다." "그러나 이윤 극대화의 추구가 잉여가치 생산의 극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윤의 신호는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를 오도한다. 그런 신호를 쫓아가는 것은 이윤의 저하와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맑스는 보여준다. 그렇다면 두 가지 해결책이 떠오른다─경쟁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대기업으로의 자본집중, 그리고/또는 유효수요의 창출과 실현 조건의 조작을 통해 축적의 유인을 제공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 국가와 민간의 부채금융(debt-financing)은 가치생산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자본주의 세계의 대부분에 걸쳐 1945년부터 1980년까지의 기간이 그런 경우였다."(134-5)


"맑스는 위기에 대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환기한다. (1) 사용가치의 물리적 파괴(destruction)와 하락(degradation), (2) 교환가치의 강제적인 화폐적 평가절하(depreciation), (3) 과잉축적의 불합리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하게 '합리적인' 방법으로서, 앞의 가능성들에 수반하는 가치의 가치저하(devaluation). 여기서 나오는 용어에 주목하자. 연관된 각각의 형태─사용가치, 교환가치, 가치─는 특정 형태의 부정에 종속되는데, 한 형태가 자동적으로 다른 형태를 함축하지 않는다. 가치저하와 교환가치의 평가절하가 반드시 사용가치의 물리적 파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용가치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부활에 쓰일 무상 재화─가령, 가치가 평가절하된 주택의 사용가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가령 부동산 시장에서) 교환가치의 급격한 절상(appreciation)이 반드시 가치의 그 어떤 증가를 함축하지는 않으며, 또 그것은 사용가치의 그 어떤 실질적 향상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143-4)


"가치의 계산에 지식과 과학, 무급 가사노동, 자연의 '무상 증여물' 등을 포함시키는 것이 최근 비판적 평론의 크나큰 관심사였다. 그런 것들은 결국 가치의 원천이 아닌가? 맑스의 답변은 그것들이 기계의 경우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즉, 그것들은 노동력의 생산성에 기여하는 한에서 자본가계급을 위한 상대적 잉여가치의 원천이지만 자본이 규정하는 가치의 원천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사태를 완전히 오도한다. 그것은 대항정치에서 비가치나 반가치가 (그리고 소외되지 않은 노동과 처분 가능한 시간이) 행하는 변증법적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그 비가치와 소외되지 않은 노동의 공간으로부터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그 고유의 가치 형태 및 그 소외들에 대한 심오하고 광범위한 대중적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 내에서 가치 및 잉여가치의 생산자가 되는 것은 맑스의 말에 따르면 축복이 아니라 '불행'이다."(150-1)


"반가치는 자본순환의 연속성이 깨질 가능성을 예고한다. 그것은 어떻게 자본의 위기 경향이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고 하나의 계기(가령 생산)에서 또다른 계기(가령 실현)로 옮겨다닐 수 있는지를 예시(豫示)한다. 위기는 반드시 자본주의의 종말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갱신의 장을 마련한다고 맑스는 (많은 통념에 반하여) 말한다. 자본의 재생산에서 반가치가 수행하는 변증법적 역할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이 지점에서다. 〈위기는 기존 모순의 일시적이고 폭력적인 해결책, 흐트러진 균형을 잠시 회복시키는 폭력적인 폭발 그 이상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자본의 재구성은 불안하며, 한계가 있다. 부채(미래의 가치생산에 대한 청구)의 축적은 미래의 가치 및 잉여가치 생산 능력과 실현 능력을 넘어설 수 있다. 부채가 성공적으로 상환된다 해도 그것을 갚아야 할 의무가 대안적 미래를 압류한다. 부채노역은 개인의 미래와 경제 전체의 미래에 족쇄를 채운다."(154)


5장 가치 없는 가격


"가치와 가격 사이의 질적 불일치는 곤혹스러우며, 맑스가 인정한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둘 사이의 모순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첨예해졌을지 모른다. 투자자가 가치와 잉여가치 창출에 투자하는 대신, 가격 결정 시장에서 (예술품이나 통화 선물先物, 탄소배출권 선물 같은) 가치가 없는 자산에 대한 투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 이는 가치가 (가치 전유와 대비되는) 직접적인 가치생산이 이뤄지지 않는 가공의 시장에서 화폐로서 순환되도록 자본의 전반적 순환으로부터 걸러져 나올 수 있는 경로를 나타낸다. 가격신호(price signals)가 그것이 표상하게 되어 있는 가치를 배반할 때 투자자는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만일 부동산시장이나 그밖의 자산투기 형태에서 화폐적 이윤율이 가장 높다면 합리적인 자본가는 생산활동의 영역보다 거기에 자기 화폐를 배치할 것이다. 그 결과는 경제 전체의 장기 침체 경향이 심화되는 것일 수도 있다."(157-8)


"이를 상쇄할 만한 것은 어떤 사용가치들이 '무상 증여물'로서 자본주의적 생산에 진입한다는 사실이다. 〈금속, 광물, 석탄, 석재 등의 경우처럼 노동의 대상이 (···) 자연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어떤 것〉일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자본은 자연과의 신진대사적 관계에 물질적으로 의존하지만 이는 자연 그 자체가 가치를 지님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연은 자본이 어떤 댓가도 지불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무상 증여물들의 저장소다. 그러나 그런 사용가치가 울타리쳐져 다른 이의 사유재산이 되면 그것은 가격을 지닐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이 가치를 지니지 않더라도 그 소유자는 그 자원으로부터 화폐지대(money rent)를 추출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다. 구축된 환경, 개척·경작지, 먼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가공물도 마찬가지다. 간혹 '제2의 자연'으로 지칭되는 것도 생산에서 사용가치로 기능할 무상 증여물의 보고(寶庫)다."(158)


"맑스는 가치의 한 형태로서의 지식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지식과 정신적 능력─인간 본성의 무상 증여물─이 어떻게 가치를 생산하는 고정자본에 편입되고 그럼으로써 가치생산의 동인인 노동이 쓸모없게 될 정도로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는지(우리 자신의 시대에 나타나는 인공지능으로의 전회轉回가 그 한 예다)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노동가치론을 쓸모없게 만들 것임을 맑스는 암시한다. 맑스의 연구 대상은 고정자본이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생산력의 향상으로 순환에 투입되는 물리적 상품의 양이 급속히 증가함에도 가치와 잉여가치가 감소하거나 심지어 순환에서 사라져버릴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생각하게 된다. 물리적 상품생산 및 가격 책정의 증가와 가치 및 잉여가치의 사회적 생산의 감소 사이의 간격은 파국적으로 벌어지고, 많은 맑스주의자가 보기에 이는 자본주의의 최종적 붕괴를 향한 불가피한 경로를 선명히 제시한다."(162-7)


"자본을 '운동하는 가치'가 아니라 '운동하는 화폐'로 정의하는 것은 오늘날 자본축적이 맞닥뜨린 딜레마를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하긴 해도 중요한 길을 차단하는 것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유럽중앙은행은 양적 완화를 시행할 때 가치가 부재한 상태에서 화폐를 창출한다. 그 화폐가 이자 낳는 자본으로서 유통될 때 그것은 미래의 가치 및 잉여가치 생산에 의해 상환되어야만 하는, 그리고 상환되리라고 추정되는 반가치로 기능한다. 그러나 방출된 화폐가 부동산시장, 주식시장, 미술시장 같은 자산시장으로 유입되면 거부(巨富)는 투기로 더더욱 부유하게 되더라도 그 반가치는 청산되지 않는다. 그럴 경우 앞서 발생한 반가치를 청산하기 위해 더 많은 반가치를 창출해야 할 강한 유인이 존재한다. 그 결과는 가치생산에서의 장기 침체일 뿐 아니라, 근래에 우리가 걸어온 위험한 길, 즉 끝없는 화폐 확대의 길인 폰지 자본주의의 창출이다."(173-4)


6장 기술의 문제


"자본가에게 기계는 그것의 진정한 본질, 즉 초과 잉여가치의 원천으로 보인다. 이로부터 자본가는 기계는 가치의 원천이라고 추론한다. 맑스는 결코 그럴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기계는 죽은 자본 또는 불변자본이며, 따라서 기계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다. 기계 가치의 일부는 상품 가치로 이행하지만 그것은 불변자본(사용을 통해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자본)으로서 그렇게 한다. (과거의 노동이 아니라) 살아 있는 노동이 잉여가치의 유일한 원천이다. 기계는 그저 노동력의 생산성이 향상되도록 도와서, 총가치는 그대로인데 개별 상품의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그 결과는 역설이다. 기계가 노동과 결합하면, 생산된 가치는 불변하더라도 기계는 자본가를 위해 더 많은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대부분의 자본가는 (대중과 마찬가지로) 기계가 가치를 생산한다고 믿으며, 이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181-2)


"많은 혁신은 시장에서나 노동과정에서나 노동자를 무력화하도록 고안된다. 기술은 (여성과 아이들도 수행할 수 있는 종류의) 탈숙련화된 직무구조로써 숙련노동을, 그리고 어떤 기량들(skills)에 따른 독점적 권력을 축출하는 바, 그것은 계급투쟁의 중요한 무기다. 〈그러나 기계는 언제나 노동자를 불필요하게 만들 태세인 우월한 경쟁자로서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기계는 노동자에게 적대적인 힘이며, 자본은 이 사실을 큰 목소리로, 의도적으로 선언하고 또 이용한다. 기계는 파업, 즉 자본의 전제(專制)에 대한 노동계급의 주기적 반란을 억누르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기술로 유발되는 실업을 통한 실업 노동자 산업예비군의 형성은 노동을 절감해주는 기술적 적응(technological adaptations)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능률과 공조를 향상시키는, 또는 생산과 유통 모두에서 회전시간을 가속화하는 혁신은 자본을 위해 더 많은 잉여가치를 산출한다."(183-4)


"기술(technology) 그 자체가 하나의 사업이 되면서, 이제 우리가 다루는 것은 어떻게 특정한 생산시설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발명하고 혁신함으로써 생산성을 향상시킬까 고민하는 개별 기업가가 아니라, 혁신을 전문으로 하며 혁신을 다른 모든 사람(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판매하는 데 몰두하는 거대한 산업 부문이다. 길모퉁이 식료품점이나 철물점은 재고를 관리하고 판매·구매·세금 문제를 챙기기 위해 어떤 정교한 사무기기를 들여놓도록 꼬드겨지고 설득되고 마침내는 (세무 당국에 의해) 강요된다. 그런 기술에 대한 비용 부담은 작은 가게들을 문 닫게 만들고, 슈퍼마켓과 할인매장이 번성하게 하며, 그럼으로써 자본의 점진적 집중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혁신들 중 많은 것의 채택 여부는 그것이 얼마나 노동자를 훈육하고 무력화하며,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생산과 유통에서 자본 회전의 능률과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가에 달렸다."(196-7)


"그러므로 경제적 불안정성이라는 현재의 딜레마에 대해 어떤 기술적 해결책을 구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그리고 물신주의적인) 것이리라. 거의 확실히 해답은 주어진 사회적 목표에 적합한 기술적·조직적 변화와 더불어 사회·정치적 관계의 변화에서, 또 정신적 관념, 생산체제, 그밖에 진화과정 상의 다른 모든 계기들에서 유발되는 변화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기술적 해결책에 대한 물신주의적 믿음은 기술적 진화는 불가피하고도 유익하며, 우리가 그것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집단적으로 통제하고 그 방향을 바꾸는 것도 결코 가능하지 않고 그렇게 하려고 시도해서도 안 된다는 자연주의적 관점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사회적 행동을 신화적 믿음에 개방하는 것이야말로 물신 구성물이 지니는 성격에 속한다. 이러한 믿음은 물적 토대를 지닐지 모르지만 물질적 제약은 재빨리 벗어나고, 일단 현실에 적용되면 또 뚜렷한 물질적 결과를 지닌다."(198)


7장 가치의 시간과 공간


"가치법칙은 세계시장을 형성하고 자본 자신의 형상대로 생산과 소비의 지형을 바꿔놓으라는 이 요구를 내면화한다." "여기에서 마찰 없는 공간적 세계에서 작동하려는 자본의 유토피아적인 꿈(지금 사이버머니의 이동성과 더불어 대체로 성취된)이 생겨난다. 이것이 지리적 차이의 역할을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 차이의 중요성을 높이는데, 왜냐하면 이제 화폐자본은 초과이윤을 얻을 목적으로 생산조건의 작은 차이라도 활용하기 위해 비용 없이 옮겨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의 노동인구는 서로간의 경쟁에 내몰린다. 화폐자본의 초(超)이동성에 의해 형성된 노동공급 세계시장은 갈수록 더 현저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국제무역에 대한 물리적 장벽의 제거가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장벽의 제거를 동반해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대중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 이데올로기와 정치가 헤게모니를 지니는 이유다."(213-4)


"일단 특정 장소의 토지에 투자자금이 투입되면 자본은 그 자금이 가치저하를 겪지 않도록 그것을 그 장소에서 이용해야 한다. 자본의 운동은 계속해서 더 넓은 공간적 범위로 자본의 유동적 운동을 확장하는 임무를 띤 바로 그 투자에 의해 공간적으로 제한된다. 시간에 의한 공간의 소멸은 세계시장의 상대적 시공간(relative space-times)을 개조하려는 충동 내부의 중요한 현상이다." "그러나 『자본』에서 맑스는 확실히 공간보다 시간의 연구를 우선시한다. 가치는 세계시장에서의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으로, 이는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다수의 구체적인 시계-시간과 대조된다. 잉여가치는 한가지이나, 자본이 작업장 안팎에서 온갖 술수를 동원해 가능한 한 많은 추가 노동시간을 절취함에 따라, 필요노동시간과 과잉노동시간으로의 노동일의 분할(그리고 절대적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노동일의 길이)이 어떻게 이뤄지느냐를 두고 매일같이 싸움이 벌어진다."(215-222)


"자본은 과잉인구(산업예비군)와 과잉생산물(실현의 문제에 직면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그것은 고정자본의 형성을 초래하는 조건을 체계적으로 생산한다. 고정자본의 규모가 클수록 더 많은 과잉노동과 과잉자본이 흡수될 수 있다. 〈그리하여 기계류를 만드는 데보다 철도, 운하, 수로, 전신 등등을 만드는 데 더 많이 [동원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자본이 모여 화폐력의 집중 형태를 구성해야 한다." "어떤 특별한 종류의 고정자본에 대해 생각해보면 이 경향은 한층 더 분명해진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리적 기반시설(그중 일부는 공공재의 성격을 지닌다)은 자본주의 형태의 발전을 위한 사용가치로서 긴요하다. 이 기반시설 중 많은 것(주택, 학교, 병원, 쇼핑몰 등)은 생산보다 소비의 목적에 이용되는 반면 철도와 고속도로 같은 다른 것들은 생산과 소비에 똑같이 잘 이용될 수 있다." "우리 시대 선진자본주의 세계에서는 확실히 후자의 투자가 커다란 중요성을 띤다."(238-9)


"이자 낳는 자본의 순환을 통해 공급되는 반가치의 '암흑 물질'은 미래의 가치생산에 대해 자기 몫을 요구하는데, 미래의 가치생산은 복리이자 지급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증가해야 한다." "자본가가 고정자본을 구매하거나 빌릴 때 그는 그것의 가치가 완전히 상환될 때까지 그것을 사용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가치저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부동 고정자본은 그것의 수명 전 기간에 걸쳐 그 가치가 상환되려면 본래의 위치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 자본 일반의 공간적 이동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어떤 장소에 자리잡는 물리적 기반시설을 제공하도록 계획된 자본 형태는 결국 고정자본이 규정하는 그 공간으로 자본이 흘러들 것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고정자본의 가치가 저하되면서 그것에 자금을 댄 이자 낳는 자본(가령 연금기금)에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이것이 자본의 위기 경향이 첨예화되는 강력한 방식들 가운데 하나다."(240-1)


8장 가치체제의 생산


"1980년대 중반 이후 발생한 기술적·조직적 혁신의 물결은 지역 가치체제를 근본적으로 재편해왔다. 관세와 그밖의 국경 장벽들이 축소되거나 선택적으로 제거됨에 따라 운송비가, 한층 더 중요하게는 조정시간(coordination times)이 점차 줄어들어왔다. 생산과 유통에서의 속도 향상은 시대가 추구하는 물신적 목표였다. 세계적 생산사슬의 창출로 국경을 넘어서는 생산의 조합이 가능하게 되며, 이 경우 가령 미국의 기업은 디자인과 조직 및 마케팅 기술을 제공하고 여기에 멕시코의 저가 노동이 결합되는데, 이는 독일 기업이 폴란드에서 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방식이다. 멕시코와 폴란드로서도 얼마간 수익이 생기지만 가치는 대부분 미국과 독일 기업들 차지가 된다─비록 미국과 독일의 노동자들은 외국 노동자들과 훨씬 더 격렬한 경쟁을 벌이게 되고 그 재조직화로부터 (어쩌면 더 값싼 소비재를 누린다는 점 외에는)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지만 말이다."(262-3)


"자연과 인간 본성의 무상 증여물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제공된 잠재적 사용가치들에 대한 자본주의적 가치평가에 의존한다. 천연자원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이용할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한 경제적·기술적(technical)·사회적·문화적 평가물이다. 한동안 수력에 대한 접근이 중요했으나 증기기관의 등장은 그런 위치상의 제약에서 자본을 해방했다. 우라늄은 원자력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무의미한 자원이었다." "1970년대 이전, 산업화된 지역에서 완벽하게 연마된 노동 기량은 그 이후 그 기량을 기계기술과 자동화 속으로 흡수한 기술변화로 인해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문화적 소양은 세계의 어떤 시장들에서 나타내는 구별짓기, 계급, 좋은 취향 등의 표지에 대한 열광적인 추구를 지탱하는 어떤 소비주의의 진화에 중요하다." "그것들은 생산되고 또 계속 변하고 있으며, 자본 자체가 그 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 결과는 세계적 동질성이 아니라 지역적 다양화다."(264-5)


"사회적·물리적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 이점의 지리적 집중을 초래하며, 자본은 여기로 이끌릴 수밖에 없다. 자연 및 인간 본성의 무상 증여물은 먼저 생산되어야만 자본에 선물로 주어질 수 있다. 고유한 지리적 가치체제들의 불균등발전 뒤에서 작동하는 원형적(cicular)·누적적(cumulative) 인과과정을 깨뜨리는 어떤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 한, 빈곤 지역은 더 빈곤하게 되고 부유한 지역은 대개 갈수록 더 부유하게 된다. 장기간 지속되는 이점은 고정자본의 가치나 소비자금이 상환되는 날을 훨씬 넘겨서까지 유지된다. 미국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초기 투자는 1970년대 이후로 제조업에 피해를 입힌 탈산업화에 맞서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등의 인터넷·첨단기술 기업은 재빨리 세계적 독점 기업으로 자리잡았는데, 물론 그 혜택은 늘 그렇듯이 노동이 아닌 자본으로 흘러간다."(268-9)


"우리는 가치의 운동법칙이 관철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 탐색을 상당히 개연성 있는 주장, 즉 세계시장을 정복하고 구축하는 것은 자본 자체의 본성에 속한다는 주장으로 시작했다. 그 법칙이 작동해야 하는 모순적 영역을 가로질러 온 우리는 이제, 집단적 인간 역사를 피로 얼룩지게 하는 인간의 온갖 비이성적 결함들과는 별개로, 세계시장의 통일성, 동질성, 초감각적 합리성을 이질성, 차이, 지리적 불균등발전의 잠재적으로 위험하고 공존 불가능한 수많은 파편들로 산산조각 내는 것 역시 자본의 본성에 속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세계적 차원의 파워블록들 간에 벌어지는 지정학적 투쟁의 문제로 변형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이제까지 자본주의의 지정학적 역사는 상당히 추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변별적 가치체제들의 창조로부터 생겨나는 고려사항들은 그 역사지리학에서 미묘한 역할을 수행한다."(273)


9장 경제적 이성의 광기


"상품생산의 직접적인 목적은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므로, 상품의 관점에서 교환가치는 〈다만 일시적인 관심사〉다. 교환의 세계에서 화폐는 교환을 용이하게 할 뿐이다. 그러나 자본 및 잉여가치 생산의 세계에서 화폐는 아주 다른 성격을 띤다. 여기서  가치는 〈증대를 통해서만 자신을 보존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양적 장벽을 뛰어넘어 돌진함으로써만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다. (···) 그리하여 부유하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목적이다.〉" "바로 이 점이 자본주의하의 화폐를 다채로운 전(前)자본주의적 화폐 형태들 모두로부터 구별시켜준다. 〈어떤 금액으로서의 화폐는 그 양으로 측정된다. 이런 측정됨은 무량한 것(the measureless)을 지향해야 하는 그 성격과 모순된다.〉 화폐는 결코 제어되거나 제약될 수 없다. 바로 이것이 헤겔이 '악무한'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이는 종결이 없는, 그리고 신의 지혜처럼 인간의 모든 이해를 넘어서는 무한의 형태다."(277-8)


"『자본』 제3권에서 맑스는 이 광기의 또다른 차원을 들춰낸다. 이자 낳는 자본이 〈모든 정신 나간 형태의 근원〉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이 경우 화폐는 상품의 역할로 되돌아가지만, 그 상품의 사용가치는 그것이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타인에게 무한한 양으로 대출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 교환가치는 이자다. 가치의 표상인 화폐 자체가 화폐가치를 획득한다. 이자는 〈처음부터 불합리한 표현〉이다. 그 결과는 〈부조리한 모순〉으로서, 여기서 〈자본의 내적 경향은 타인 자본이 그것에 가하는 강제로 현상한다.〉 여기서 반가치가 지배하게 된다. 이자 낳는 자본의 순환(주식 및 채권 소유자의 권력)이 가치를 계속 운동하게 하는 최상의 힘이 되면 〈이로써 자본의 물신적 성격과 이 자본 물신의 표상은 완성된다.〉 경제적 이성의 광기는 화폐가 쉼없이 더 많은 화폐를 만드는 마술적인 힘을 지닌 것으로 나타나는 물신 형태에 의해 은폐된다."(279-80)


"부르주아적인 경제적 이성의 광기는 가치와 그것의 화폐적 표상 사이의 적대성이 커져감에 따라 더욱 확대된다는 점을 맑스는 발견한다. 화폐가 필연적으로 일체의 (금·은 화폐상품과 같은) 물적 기반에서 분리되어 자유로워지면서, 화폐의 관념적 구성물(달러·유로·엔화 등의 숫자)은,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화폐가 점점 더 신용화폐 형태로 현상하는 사태는 인간 판단의 변덕에 취약해지며, 권력의 고삐를 쥔 모든 자의 무절제한 행위와 조직에 노출된다. 〈단순한 유통수단으로서 (···) 종의 역할을 하던 화폐는 갑자기 상품세계의 지배자이자 신으로 변모〉하는데, 이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형태로 특정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있다. 부채가 타인의 미래 노동에 대한 청구인 것과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화폐는 타인의 사회적 노동에 대한 개별화된 청구다. 화폐는 그 소유자에게 〈사회에 군림하는 권력, 만족과 노동 등등을 포괄하는 세계 전체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선사한다."(281-2)


"『열일곱가지 모순과 자본주의의 종말』에서 나는 현시대에 자본주의의 생존에 분명한 현재적 위험을 초래하는 모순이 세가지 있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그 하나는 자연에 대한 우리 관계의 악화였다(지구온난화에서 서식지와 종의 파괴, 물 부족, 환경 악화에 이르는 모든 것). 두번째는 지수 성장곡선─J자 형태를 그리는 지수함수적(기하급수적) 성장곡선─ 상의 변곡점에 도달한 영구적 복합성장으로, 수익성 있는 투자 기회가 갈수록 부족해지는 마당에 그 성장곡선이 계속 유지되기는 점점 더 어렵다는 사실이 빠르게 드러나고 있었다. 이것은 또한 무한히 늘어날 수 있는 저 한가지 형태의 자본, 특히 통제 불가능하게 되어가는 듯한 신용 형태의 화폐에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세번째는 내가 보편적 소외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맑스에게 가치는 소외된 사회적 필요노동이다. 자본은 운동하는 가치이므로 자본의 순환은 소외된 형태들의 순환을 동반한다."(307-8)


"그러나 이 문제에는 다른 차원들이 있다. 노동자들은 개별적으로 고용되며 일자리를 두고 경쟁한다. 그들은 자기 자질을 홍보하는 한편 자기 경쟁자들의 자질을 축소하고 심지어는 헐뜯음으로써 자신을 노동력의 담지자로서 자본에 팔아야 한다.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협력을 좌절시키고 계급연대의 형성을 방해한다. 그것은 온갖 방식의 분열을 가져온다. 노동자들은 서로 소원해진다. 여기에 노동시장에서 인종차별주의, 젠더차별, 성적이거나 인종적(ethnic)이거나 종교적인 적대성(자본이 열심히 조장해온 역사가 있는 분열들)이 스며들면 그것은 한층 더 흉측하게 된다. (광범위한 실업과 세계 노동인구의 더 긴밀한 공간적 통합이라는 조건하에서) 고조된 경쟁은 도처에서 노동인구 내부의 이 분열과 긴장을 강화하고 있으며, 특히 탈산업화를 통해 과거의 사회적 연대가 해체되어 온 상황 속에서 예측 가능한 결과를 낳고 있다."(310)


"엄청난 경쟁의 압박이 자본순환의 가속화를 부추긴다면 이는 소비속도의 증가를 요구한다." "자본은 소비에서 회전시간을 가속화하기 위해 계획적 노후하에서 광고의 압력과 유행을 설득수단으로 동원하는 데 이르기까지 온갖 전술을 전개한다." "한순간에 소비되는 덧없는 생산물의 일종의 시장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 자본이 '스펙터클의 사회'를 조성한 것도 별로 놀랍지 않다. 이것의 사회적 결과는 광범위하고도 이중적이다. 생활양식, 기술, 사회적 기대 등에서의 빠른 변화는 사회적 불안정성을 배가하며 여러 세대 사이, 다양화하는 사회집단들 사이의 사회적 긴장을 증가시킨다." "문화적 의미의 착근성(rootedness)은 당대의 환상에 따라 임의적으로 재구성되기도 하며, 정체성은 일시적이고 덧없는 애착의 바다에서 떠다닌다. 자본이 끝없는 복합성장의 요구에 부응하려면 그런 상태에 상응하는 사람들과 생산물이 필요하다. 무한한 자본축적의 관점에서 보면 '합리적 소비'는 바로 이렇게 보인다."(312-3)


"기회주의적 형태의 자본은 또한 정당한 몫보다 훨씬 더 많은 가치를 전유하려고 실현의 순간에 개입한다. 헤지펀드가 제약회사를 인수하거나 압류된 주택을 대량으로 사들인 뒤에 방향을 바꿔 그것을 빈궁한 소비자에게 터무니없는 가격에 내놓을 때 실현은 강탈에 의한 축적의 체계적 조직을 위한 순간이 된다." "실현의 순간에 일어나는 부의 추출에 연루된 정치는 생산을 둘러싸고 생성되는 정치와는 다르다. 그런 투쟁은 이론화하거나 조직하기 어렵다." "더구나 자본은 실현으로부터 많은 부를 추출하지만 분배로부터는 더 많은 부를 빨아들인다. 가장 뻔뻔한 형태의 재분배는 세계 여러 나라의 국민생산에서 노동의 몫이 감소하는 점, 특히 근래에 노동이 생산성 향상에서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 대신 노동은 기술변화로 인한 실업과 노동의 질의 빠른 저하로 고통 받아왔다. 국가와 기업 내부의 과도한 관료화가 동반된, 생산적 노동에서 비생산적 노동으로의 이행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314-5)


"온갖 종류의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을 인간의 부가 갈수록 화폐력이라는 단일한 측정기준에 갇힌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편협한 부르주아적 형태가 벗겨지고 나면, 부란 개인의 필요, 능력, 쾌락, 생산력 등등의 보편성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 창조적 잠재력의 절대적 발현, (···) 하나의 특정성 속에서 자신을 재생산하는 대신 자신의 총체성을 생산하는 것, 이미 형성된 어떤 모습을 유지하려 애쓰는 대신 되어감(becoming)의 절대적 운동 속에 있는 것[이 부가 아닌가]?〉 부르주아 경제학에서─그리고 이에 조응하는 생산 시기에─인간적 내용의 이러한 완전한 발현은 완전한 비움(emptying-out)으로, 이 보편적 대상화는 총체적 소외로, 모든 편협한 일면적 목표의 해체는 완전히 외적인 목적에 대한 인간적 목적 자체의 희생으로 나타난다. 이것이야말로 〈온갖 환상을 무색하게 한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정신 나간, 심히 우려되는 세계다."(322-3)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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