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지음 / 지식플러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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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철학, 진리와 이성(의 관계)에 대한 다원화된 질문들의 향연. 과학으로 시작해서 인간으로 끝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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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학의 형성과 전개
고지마 쓰요시 지음, 신현승 옮김 / 논형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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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인사人事'에 의해 '천재天災'가 발생한다는 논리를 '천견론天譴論'이라고 칭한다. 저자에 따르면 천견론은 과학이나 신앙이 아니라, 정치 공간에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동원된 정책 수단이다. 정치의 득실과 재이災異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은 순자荀子나 왕충王充 같은 송대宋代 이전의 사상가들이 이미 주장한 바이지만, 송대에도 천견론은 소멸되기는커녕 군주가 "이치[理]에 의거하여 일을 처리"하도록 이끄는 방편이었다. 신종대를 보면, 재해와 이변은 신법에 반대하는 대신들이 왕안석의 전횡을 타도할 때 뿐만 아니라, 왕안석에 의해 "일어나야 할 이변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그것을 경하"하는 대응 수단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30)


왕안석은 그저 재이와 연관된 사태를 소멸시키려는 사고방식에서 한걸음 나아가 "군주는 재이를 계기로 자신의 행동이 '천하의 올바른 이치[天下之正理]'에 맞는지를 반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군주된 자의 근심은 이치를 궁구하지 않는 것"에 있으며, "궁리窮理야말로 정치의 요체"인 것이다.(56) "재이가 구체적인 사상에 대한 '응보[應]'가 아니며 군주의 수덕修德에 의한 궁리가 중심 과제"가 되면서, "리理의 권위를 보증"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여기서 변함없이 '천天'이 등장한다. 단, 이때의 천天은 "리理의 근본으로서만 기능하는 것이고 군주의 시책에 일일이 끼어들어 쓸데없이 참견을 하는 유의지자有意志者"의 의미를 상실한다.(57)


이로써 재이는 "어떤 개별적 현상에 의해 기계적으로 발생"하는 사태가 아니라 "군주의 마음의 준비에 대한 감시와 억제 기능을 가진 현상으로서 파악"되었다.(71) 주희가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일신一身의 사욕私慾을 이겨 천리天理의 절문節文으로 돌아간다"고 주석을 달았을 때, '예禮'의 치환이 '천리의 절문'인 것은 그러한 이유이다. 주희는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의 이로움과 해로움을 우선시하는 욕망이 기질氣質로서 갖추어져"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여 "'천리의 절문', 즉 규범으로서의 예禮에 합치한 말과 행동을 해 나가는 것이 당연히 사람으로서의 올바르고 본래적인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80)


"북송北宋에서 맹자를 세상에 널리 알린 제일인자는 왕안석이다."(98) 왕안석은 "당대唐代 이래로 중시되어 오던 시부詩賦를 시험과목에서 제외하고, 그 대신에 책策(시사문제에 관한 대책)과 논論(역사비평)을 중시하였다." 또한 "'겸경兼經'이라는 명칭 하에 <논어>와 <맹자>를 모두 과거의 필수과목으로 삼았다. 결국 <맹자>는 이러한 계기를 시작으로 하여 경서로서의 취급을 받게 되었다."(101) 왕안석은 "본성[性]은 서로 가까운 것이지만, 습관[習]이 서로를 멀어지게 한다"(<論語> 陽貨)는 공자의 말을 빌어, 성性에 선험적인 시비是非나 선천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性이 원인이 되어 구체적인 형태로서 발현한 상태가 문제"라고 말하였다.(99)


주희는 "본성 그 자체에는 선악의 구별이 없다"는 왕안석과 호남학파의 주장을 배척하고, 인의예지仁義禮知를 본성으로 인정한 한유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는 "장재張載의 '심心은 성性과 정情을 통합한 것'이라는 규정"을 기본으로 삼아, 사람은 본래 선한 본성을 갖추고 있으며, 다만 "기질의 소위所爲에 의해 악행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이 세상에서 악을 없애기 위해서는 기질을 선으로서의 본성으로 되돌리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인의예지를 "사람의 마음에 미리 부여된 리理로 간주하는 것"이 주희의'성즉리설性卽理說'이다. 아울러 이러한 리理는 그 "본래적인 올바름과 선함"의 근본 원리인 천天에 기대고 있기에, 성性은 리理를 통하여 우주와 연결된다.(110-2)


주희는 자신을 비롯한 도학자들이 맹자를 마지막으로 끊어진 도통道統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했다. 주희와 그 문류門流가 보기에 당대는 공자와 맹자가 통치자에게 도道를 가르치던 상황과 유사한, 그들 나름의 '르네상스'였다. 주희에 따르면 "요순에서부터 공자·맹자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그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도道'는 그 후 천사백 년에 걸쳐서 단절"되었는데, "그것을 다시 부흥시킨 이가 바로 주돈이이고, 그러한 성과가 <태극도설>이다."(157) 주희가 '성性과 정精'을 분리한 것처럼, "리理에는 형상이 없으며 기氣에 붙어 있는 것"이라는 자신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창할 때 "<태극도설>의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는 구절은 아주 적당한 재료"였다.(168-9)


이제 "도道의 담당자는 군주의 지위를 얻은 자에게만 한정될 수는 없다. 오히려 공자 이후는 '왕王'이 아니라, '사師'라고 하는 것이 도통 계승자의 성격이 되었다."(199) 주자학이 '수기치인修己治人'하는 "독서인讀書人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던 이유의 하나로서 그들에게 살아 있는 목표를 제시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때의 독서란 "성인이나 현인들이 글로 써서 남긴 텍스트 등을 통하여 마땅히 그러해야 할 세상의 올바른 모습에 관하여 배우는 작업이었다."(202) 사서학四書學을 학습하여, 오경五經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 "<주례>는 국제國制, <의례>는 가례家禮로 삼고, 여기에 <예기>를 더한 삼례의 학을 부흥시키는 것"이 주희의 실천적 목표였다.(221)


<주례>를 중핵으로 삼아, "치민治民을 위해서는 확고한 (국가) 조직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고 방식"은 왕안석의 신학에서 유래한다. 이에 대항하여 등장한 "정이의 도학道學·리학理學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사고방식에 입각하여 위정자 자신의 인격 도야와 민중에 대한 풍속 교화를 중시하였다." 그러나 "통치 제도를 중시하는 주례형周禮型과 수양 교화를 중시하는 대학형大學型"은 서로를 배제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수레의 양쪽 바퀴와 같은 관계로 청말淸末에까지 이르렀다. 다만 주자학에서는 이념으로서의 수기치인이 압도적인 무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형大學型으로 그 무게 중심이 기울어지게 되었다."(243-4)


비록 왕수인이 주창한 명대의 양명학이 각자에게 '천리로서의 양지良知'가 갖추어져 있다는 취지에서, '심心·성性·리理'를 구별하는 주희의 사고방식에 반대했지만, 이들의 관점이 본질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하늘로부터 받은 바로서의 리理에 대하여 존경의 염念을 가지고 경건하게 유지하는" '존덕성尊德性'과 "학문에 의해 견문을 넓히고 리理에 대한 인식을 깊게 해가는" '도문학道問學'을 이항 개념으로 구분 짓고, 주자학과 양명학을 대비시킨 것은 어디까지나 "후세에 만들어진 이미지에 근거한 이야기이다."(131-3) 제3자의 입장에 서 있는 자들에게, 주자학이나 양명학이나 모두 '송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의 집단이었다.


"주자학을 따르든지 아니면 양명학에 영합하든지 간에 명대明代 독서인들이 공통 과제로서 삼았던 것"은, '송학'이 품고 있던 문제인 "수신을 완성한 인물이 지도자가 되어 형성·유지해갈 질서를 어떻게 해서 가능하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자 실천방안이었다. 여기서 "정돈된 질서, 즉 그들의 용어로 '예교禮敎'가 한층 더 전면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것이 거경궁리居敬窮理에 의한 것이든지, 아니면 현성양지現成良知 이든지 간에 궁극적인 목표는 동일하였다. 단지 그 방도가 달랐을 뿐이다."(250) 실천론을 배제하고 심성론心性論으로 축소시킨 '송학'은 한당漢唐의 훈고학을 재평가하는 자신들의 방법론을 '한학漢學'으로 칭한 청대 고증학자들이 창안해낸 개념이다.(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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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
류진운 지음, 김재영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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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는 지진이 나고 홍수가 몰아쳐도 그 자리에 온갖 꽃을 피우지만, 사람심사는 혁명이네 이상이네 하면서 목숨을 갈아엎는데 심취한다. 투쟁 뒤에 합일이, 고통 뒤에 성취가 온다지만, 어느 누가 기껏 노란 꽃(죽음을 의미함)이나 피우려고 땅 속 거름 역할을 반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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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백성 사이의 漢 현대의 고전 4
히하라 도시쿠니 지음, 김동민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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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漢代 사상은 가혹한 권력 집행으로 국가 기반이 급속도로 무너진 진秦의 전철을 피하면서도, 확고한 지배체제를 수립해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여 전개되었다. 동중서董仲舒는 제국의 통치 이념으로 '파출백가罷黜百家, 독존유술獨尊儒術'을 내세워, 유학을 점지하였고, 한무제武帝는 이를 전격적으로 수용하여 제국의 사상이 나아갈 길을 예비하였다. 유가가 이상으로 삼은 봉건제도의 경제적 기반은 농민이었기에, 지식계급의 농민 보호는 "자기 자신을 보존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현실적 요구였으며, "'백성의 부양을 받는食於人' 지배계급을 인정하는 유가의 이론은 정치권력의 입장에서는 매우 적절"한 통치 기제였다.(35) 


한대 유학자들이 통치 이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전으로 삼은 텍스트가 바로 <춘추春秋>이다. "노나라의 역사서에 지나지 않는 <춘추>에 대해 공자가 독자적인 견해와 비판정신을 가지고 필삭을 가했다고 해석한 것은 <맹자>부터이고, 나아가 이러한 해석을 기초로 해서 <춘추>에 경서經書로서의 권위를 부여하는 데 이른 최초의 문헌은 <순자>라고 일컬어진다. 경서로서의 <춘추>를 조술하여 부연 설명한, 넓은 의미에서의 해석서로는 <공양전> <곡량전> <좌씨전> 등 세 가지가 있다."(147) 이들은 성인으로 추앙받은 공자의 권위로 윤색된 <춘추>를 빌어 한漢이 주周를 계승한 후계자라고 주장하면서 왕조의 정당성을 내세웠다.


한나라가 유교를 채용한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명분名分'이다. "포악한 진나라를 토벌하여 멸망시키고" 그것을 대신했던 한나라 입장에서는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없애고" 법치를 부정함으로써 진나라와는 상반된 지배 원리를 표방해야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대의 유교는 이미 법가 이론을 포괄하면서도 위정자의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적은 적절한 타협 대상이었다. 한대 사상가들은 국가의 권위와 유교의 권위를 환치시켜, 백성들을 "국가 의지에 대한 복종이 곧 유교적 당위라고 착각하는 상태"에 빠뜨렸으며, 강고한 권력 집행을 "'유술儒術 또는 유가의 옛 의리'로 치장"하여 국가 운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데 기여하였다.(38-9)


그러나 유가는 법가와 달리 "군주권의 팽창을 무제한적으로 용인하지 않았으며, 군주권의 억제를 위한 이론도 준비했다." 동중서는 '하나로의 통일을 중시한다大一統'는 이념 아래, 군주권이 "천명天命에 의해서 그 권위가 확립"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백성은 아직 선이라고 할 수 없는 성性을 하늘에서 부여받았기 때문에 왕으로부터 성을 완성하는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며, "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의 성을 완성하는 것을 임무로 삼는 자"로 규정된다.(43-4) 여기서 "군주권은 '천天'이라는 관념에 의해 주체성을 상실한다. 천명에 의해 이뤄지는 한 군주권은 하늘의 제약 아래 놓여 있을 수 밖에 없다."(45) 


천天 관념을 거부하는 통치자의 횡포와 전단專斷을 저지하기 위해 준비된 사상이 '재이설災異說'이다.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각종 이상 현상 중에서 "작은 것을 '재해災', 큰 것을 '이변異'이라고 칭"하는데, 재이설은 이러한 변괴를 군주의 행위와 결합시켜 해석한다. "정치가 그 마땅함을 잃어버리면 민중의 불평과 원망이 "사악한 기운을 발생시켜서" 인간세계의 음양은 조화를 잃는다. 이것이 곧바로 자연계의 음양에 감응해서 그 정상적인 활동을 방해하여 뒤틀리게 만든다. "음양이 뒤틀리면 요사스러운 기운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재이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다." 따라서 군주는 "하늘에 순응해서 덕을 닦고", 선정을 베풀어 음양의 조화를 도모해야 한다.(48-9)


동중서에게 재이는 군주의 전단을 견책하는 수단이며, 과거의 사실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 "전한 말기에 접어들면서 그것이 갑자기 주술적인 예언으로 기울기 시작했다."(55) "<춘추>는 행위를 평가할 때 외적인 사실과 결과를 무시하고, 내적인 심의心意만을 문제삼는다. 의지의 선악만을 따지는 이러한 '특이한 논단筆法'을 한마디로 말하면 바로 '마음을 따져서 죄를 결정하는 것原心定罪'이다." 즉, "<춘추>는 과거의 행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예측되는 장래의 행위에 대해서도 그 심의의 선악을 살펴서 포폄을 가한다." 나쁜 의지를 품고 있다면 "'아직 그러한 행위가 발생하기 전에未然之前' 예방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예언의 성격이 덧붙여진 것이다.(56)


선악을 미리 판단하는 사유는 필연적으로 형벌 주관주의를 불러온다. <춘추공양전>의 원심정죄론에는 범죄의 환경원인론環境原因論이 깔려 있다. 이는 "환경이 나쁘기 때문에 죄가 발생하며, 특히 생활의 빈곤은 범죄의 온상이 되고, 의식이 풍족해야 예절을 알기 때문에 위정자는 민중을 위해 좀더 좋은 환경을 준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고방식이다."(151) 원심정죄론은 덕치德治를 염두에 둔 사상이지만, '국가 권력의 남용'과 '법적 안정성의 결여'라는 부작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만다. "범죄자의 내부 심리에 개입해서 엄형중벌嚴刑重罰의 방향으로만 일방적으로 유추 해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국가주의자가 주장한 '춘추의 의리'였다."(153)


일찍이 맹자는 "인의의 덕을 통해서 난세를 통일하고, 천하에 평화를 가져오려고 했던 왕도주의를 정치사상의 중핵"으로 삼으면서 "왕도王道와 패도覇道를 확실하게 구별했다."(217) 맹자가 처한 현실이 "패도 그 자체였기 때문에 더욱더 왕도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환담이나 왕충 같은 공양학 학자들은 패자를 왕자의 대립개념이 아니라 왕자의 낮은 단계로 상정하고, 패도를 문장으로는 인정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인정"하는 논리를 수용했다.(241) 이들은 위정자에게 윤리적 의무를 심어 왕도로 이끌고자 노력했지만, "판단은 군주의 의지를, 평가는 국가의 이해를 기준으로 결정"(207)되는 절대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을 군주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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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노인 - 그들은 왜 위험하고 잔인한 폭력노인이 되었을까
후지와라 토모미 지음, 이성현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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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노인의 대다수는 자신을 향한 극단적 폭력, 곧 자살을 선택한다. 상처입은 소수가 외부로 분노를 발산할 때, 훨씬 더 많은 이들이 무관심에 휩싸여 자포자기 당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사회적 살인`을 방조하고 조장하는 현실이야말로 폭주노인의 음울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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