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하학 연구 - 중국 고대의 사상적 자유와 백가쟁명
바이시 지음, 이임찬 옮김 / 소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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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에는 철제 농기구와 우경牛耕 기술의 보급, 시비법施肥法과 수리 기술의 발전水利으로 농업 생산력이 급속히 증대했다. "농업의 발전이 가져온 직접적인 결과는 토지의 사유화와 토지 경영 방식의 변화였다."(28) 천자가 쇠락하고, 제후가 발흥하면서 자작농에게 조세를 수납하는 사전私田이 혈연 귀족들의 세습적 점유로 유지되던 공전公田을 대체했다. 이와 맞물려 관료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곡록제穀祿制(봉록제俸祿制)의 도입은 '사인士人'계층의 출현을 촉진하였다. "각 제후국들은 자신의 처지에 적합한 치국 방안을 찾고, 지식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 매우 절실"(33)해지면서, 인재를 예우하는 "예현하사禮賢下士의 기풍이 형성되었다."(42)


이렇듯 사인士人계층은 태생부터 통치 계급의 필요에 종속되어 있었다. "사인들은 정치에 봉사하는 과정을 통하여 학술과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켰으며, 제자백가의 학술은 바로 그들이 정치에 참여한 정신적 산물이었다."(56) 제환공과 관중의 긴밀한 협력 관계가 정착되어 있던 제나라는 여타 제후국에 비해 개명된 사회였다. "군주는 신하와 백성의 의견을 듣고 즉시 자신의 잘못을 고칠 수 있을 정도였으며, 신하와 백성이 대담하게 면전에서 군주의 잘못을 지적해도 군주의 노여움을 사지 않았다."(70) 제나라 도성 임치의 직문稷門 아래 천하의 인재를 불러모아 저술과 이론 활동을 권장하고, 정치적 의견을 제시하게 한 '직하학궁稷下學宮'은 이런 배경 아래 탄생하였다.


"전국 중후기 학술과 문화의 중심이었던 직하학궁은 동서남북의 각종 문화적 요소들이 교류하고 합쳐지는 곳이 되었다."(143) 한 자리에 모여 활발한 교류와 논쟁을 벌인 제자백가의 학설은 "본질적으로 모두 동일한 사회 현실에 대한 반영으로서, 같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여 같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것들 사이에서는 대립 이외에 일치하는 측면도 반드시 존재하였다." 즉, 직하학궁은 전국 시대 사상의 조류가 "'상멸상생相滅相生', '상반상성相反相成'하는 대립통일의 관계 속에서 병존하며 발전"하도록 장려했다.(181-2)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가의 학술과 주장에 근거하면서도, 세상에 참여하여 치국책을 탐구한 '황로학黃老學'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나라의 전田씨 정권은 강姜씨 정권을 찬탈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이 염제炎帝를 물리치고 천하를 소유한 황제黃帝의 후손이라고 공언했다. "전씨 정권의 이러한 조치는 춘추시대부터 전해지던 "황제의 말"이 제나라에서 널리 퍼지고 발전하도록 크게 자극하였으며, 황제의 말과 노자 학설의 결합을 촉진하였다."(193) 황로학의 핵심사상은 "도법결합(道法結合, 도와 법을 결합)·이도론법(以道論法, 도를 근거로 법을 논함)·겸채백가(兼采百家, 제자백가의 학설을 두루 채용)"로서, "노장을 대표로 하는 전통 도가 학설을 크게 수정했으며 통치 집단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태도를 취했다."(190-1)


황로학의 대표 저작으로는 <황제사경黃帝四經>과 <관자管子>가 있다. <황제사경>은 "노자와 마찬가지로 음양이 우주에서 가장 기본적인 모순이며, 우주의 운동은 음양의 대립과 통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231) 그러나 <황제사경>은 도가의 무위사상을 마냥 추종하지 않고, 인간의 능동적인 역할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이끈다. 인간은 비록 천도天道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지만, "인간이 일단 천도를 파악하고 난 뒤 자신을 위해 주동적으로 자연법칙을 이용한다면, 이때는 인간이 주主가 되고 하늘은 반대로 객客이 되는데, 이를 '천도가 순환하여 인간에 대해 도리어 객이 된다'라고 한다."(238)  


군주 역시 도道를 벗어나 통치할 수는 없다. 법法은 도道라는 우주 최고의 법칙이 사회와 정치 생활 속에 구체화된 것이기 때문에, "군주가 입법자이기는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할 수는 없고, 반드시 도의 원칙을 근거로 법을 제정해야만 비로소 법의 공정성과 권위를 보장할 수 있다."(240) 이것은 "형벌은 대부까지 올라가지 않고, 예는 평민까지 미치지 않는다(刑不上大夫, 禮不下庶人)" <禮記·曲禮上>는 유가의 주장과 뚜렷하게 대조되는 것이다."(242) 다만, 사회는 천지음양天地陰陽을 본받아 존비귀천尊卑貴賤의 등급이 있으므로, "자신의 명분에 근거하여 자기의 권리 범위를 확정하여 분에 맞지 않는 생각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한다.(245) 


<관자>의 법가 사상은 주류 법가였던 삼진법가三晋法家와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첫째, 그것은 제나라에서 이미 오랫동안 유행하고 있었던 도가 사상을 수용하여 도가 이론을 가지고 법가 정치를 논하였으며, 이를 통해 법치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따라서 그것의 비교적 강한 이론적 성격은 냉혹하기만 한 삼진법가와 구별되는 점이다. 둘째, 그것은 인근 추로鄒魯 지역에서 들어온 유가나 묵가 등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고, 그것들의 장점을 수용하였으며, 또한 예와 법을 함께 사용해야 하는 필요성을 논증하였다."(418-9) 이것은 "도를 체體로 하고, 법을 용用으로 삼은 것"으로서, <황제사경>의 '도생법道生法'이란 명제를 발전시키고 구체화했다.(431)


황로학자들은 인간은 모두 이로움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싫어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법가法家의 학설에 동의하면서, "사람들의 물질 욕망에 대해 상당히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 주었으며, 일정 정도 '욕망欲'의 합리성을 인정하고 또 도덕적으로도 긍정했다. 다만 어느 정도 절제할 것을 주장했을 따름이다."(207) <관자>는 "이로움을 가지고 이끈다", "해로움을 가지고 단속한다"는 한비자의 "상과 벌 '이병二柄'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도법결합道法結合' 사상을 발전시켰으니, 이는 인간 본성을 "자연에 따르고 맡긴다"는 도가의 기본 원칙을 실제 정치에 구현하면서도, 강제성을 가진 법령을 행사하는 법가의 방법론을 조화시키는 논리였다.(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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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 논쟁자들 - 중국 고대 철학논쟁, 개정판 China Library 차이나 라이브러리 2
앤거스 그레이엄 지음, 나성 옮김 / 새물결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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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덕德 개념을 '도덕화'한다. 그는 전통적으로 "물리적 힘에 호소하지 않고 남을 움직일 수 있는 선악을 초월한 '위력'을 의미"하는 덕을, "도道에 따라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으로 재정의한다.(36) 국가는 덕을 실천함으로써 백성들의 존경을 얻는데, 그 수단은 무력이 아니라 의례儀禮이다. 공자는 "정치가 의례로 환원될 수 있다는 신념"(37) 아래 "인은 (형식성을 극복한) 의례로 회귀復禮하는 순간 성취된다"고 말한다.(52) 또한 "자신과 타인을 동일시"하는 서恕의 원리에 충실할 때 자아는 관습과 조화를 이룬다. 공자가 지향하는 원리들의 원천은 현상으로부터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섬기는 인간적, 사회적 접촉 속에 존재한다."(67)


묵가의 이론 체계에서 "하늘과 귀신의 기능은 신상필벌에 의해 진정한 도덕을 실시하고, 세상의 불의를 교정하고 보상하기 위한" 원리에 불과하다. 이들에게는 공자나 장자처럼 사유의 간극이 뚜렷한 사상가들마저 공통적으로 느꼈던 "천명에 대한 경외심과 복종"을 찾아볼 수 없다.(98) 겸애兼愛는 오늘날 평등주의적 함의를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묵가는 "위로부터의 정치"를 주장했다. 묵가는 "국가의 중앙집권화와 관료제도화를 환영"(92)했으며, 이익과 배분을 중시하는 공리주의 경향을 보여준다. "모든 행동을 이해利害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묵가에게 결과와 유리된 도덕은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한다."(101)


인간을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존재로 인식"한 여타 사상가들과 달리, 양가는 "출사出仕와 관련한 압력을 거부할 권리"를 최초로 주장했다. 양가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에게 이로운 것은 무엇인가?"이며, 더 나아가 "진정으로 나에게 이로운 것은 무엇인가?"이다. "자신의 본성性과 참된 자신眞에 충실하는 것, 그리고 소유에 구속되지 않는" 양가의 사유는 이후 도가에 전해지며, "서력 기원 초기부터는 불교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묵자는 "정의를 생명보다 높이 평가"했고, 양주는 "생명을 소유보다 높이 평가"했다.(116) 양주의 '위아爲我'를 'selfishness'가 아니라 'egoism'으로 번역하면, 두 논변은 배치되지 않는다.(121,5)


기원전 4세기에는 "논쟁의 기술에 매료되어 역설을 좋아하며, 용인할 수 없는 것을 용인하도록 만드는" 궤변론자들이 등장한다.(146) 혜시惠施와 공손룡公孫龍은 "이성에 대한 순수한 기쁨이라는 원천에 거의 근접"했지만, 중국 사상의 주류는 "유용한 목적을 상실한 문제 해결은 무의미한 경박함"(24)일 뿐이라는 말로 이들을 배척한다. 기원전 4세기 후반, 맹자와 장자에게서 발견되는 '내면에 대한 고찰'의 선구자가 송견이다. "공자와 묵자는 '행위行'를 사회적 행동"으로 국한했지만, "송견은 '마음의 행위心之行'에 주의를 환기시킨다."(182) 송견은 "개인의 자기 평가가 타자의 인정과 부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고 또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186) 


이때의 마음心은 신체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기氣를 다스려 몸이 순수한 우주의 기운, 곧 정精으로 가득 차도록 조절하는 "사유의 기관"이다. 마음은 "내면에서 덕을 성숙시켜 자동적으로 도道와 일치하게 만든다."(192-3) 기원전 4세기의 일상 어법에서 '성性'은 "충분히 보양되고, 방해받거나 외부로부터 손상을 입지 않을 경우 그 발전을 완수하는 삶의 과정을 의미했다." 인간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하는 맹자의 말은 "다른 성향들보다 도덕적 성향을 선호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우며" 이러한 선호가 "모든 사람들에게 적어도 맹아로 내재한다"는 의미이다.(245) 순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성性'이 "태어나면서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로 쓰인다.(234)


기원전 4세기 말부터 각 학파의 문제의식이 심화된다. '의례'에 천착하던 유가는 이제 "인성이 선한가, 선악의 혼재인가, 도덕적인 중립인가"라는 문제에 매달린다. 도덕과 정치를 공리주의의 잣대로 재단하던 묵가는 "논리적으로 난공불락인 공리주의적 윤리체계를 정립하기 위하여 궤변론자들의 도구를 사용한다." 생명 보호라는 양가의 입장을 받아들인 장자는 "인간을 죽음과 화해시킬, 우주 내 인간의 위상이라는 관점을 추구한다." 세 입장 모두 여전히 "하늘과 인간의 이분법"을 고수하지만, "하늘이 인간의 도덕성을 지지하는가라는 형이상학적 회의"를 품기 시작한 것이다.(203-4) 하늘과 인간의 결별은 무無도덕적 치국책을 제시한 법가에 이르러 완결된다. 


법가로 분류되는 이들의 공통점은, "좋은 정치라는 것이 유가와 묵가가 생각하듯이 개인들의 도덕적 탁월성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제도의 기능에 근거한다는 데 확신을 가진 점이다."(499) 법가는 "인구가 적은 사회에서는 정부가 없어서 도덕적 유대에 의한 결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탄없이 인정"한다.(506) 문제는 인구 증가에 따른 공동체 규모의 확대이다. 법가의 기준들은 완전히 형성되면, 자동적으로 작용한다. "군주가 해야 할 것은 단순히 인간의 행위와 기준의 표현을 비교하여, 거기에 맞는 보상과 처벌로써 대응하는 일일 뿐, 박애나 이기적인 고려들에 좌우될 필요가 없다."(510) 


이처럼 기원전 3세기에는 시대가 변했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도가와 법가는 "성왕들에 대한 호소를 관습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했고, 후기 묵가와 순자는 "시간의 흐름에 종속되지 않는 항구적인 원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401) 천명天命을 떠난 인간은 자신에 관한 사유로 복귀하여, 하늘과 땅을 잇는 삼재三材의 요소로 자신을 자리매김한다. 순자와 한비자에 이르면, 현실은 인간의 호오와 관계없이 주어진 것으로, "인간의 독자적인 목적을 위해 조작 가능한 것"으로 인식된다.(399) 그러나, 서구와 달리 하늘과 인간이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어서, 음양오행론을 바탕으로 "인간 도덕이 우주적 질서 속으로 통합되는 것을 보장하는 감응 체계"가 구축되기도 한다.


한제국기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유가의 감응론은 "하늘과 인간 사이의 위협적인 심연을 메웠다."(578) 이러한 우주론은 "'원형과학proto-science'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 말은 근대 과학의 엄격한 검증 가능성을 결여했다는 부정적인 의미와 함께 관찰 가능한 현상을 초월적인 존재들이 아닌 현상들끼리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종교와는 대조적인 과학이라는 적극적인 의미도 갖는다." 중국의 선택은 "세계 속에서 인간의 위상을 결정하는 문제와 인간의 목적들을 위해 세계를 조작하는 문제 모두에 대한 통합적인 해결책"이었다.(580) 법가의 엄격한 제도화마저 인간학으로 품은 중국의 사유 앞에는 인간을 탈피한 인과적 사유를 향한 노정을 가로막는 깊은 협곡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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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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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도전을 받게 되었을 때, 그 전에 전혀 도전받은 적이 없었다면, 훨씬 지나치게 앙갚음을 하는 법입니다. 비록 그 상대가 검은 보닛을 쓴 몇 명의 여자라 하더라도 말이지요. p.150

당신은 이런 일을 할 능력이 없고, 저런 일은 해서는 안 됩니다! 대학 연구원과 학자들만이 잔디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인들은 소개장 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열망을 품은 우아한 여류 소설가들은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처럼 그들은 경마장의 울타리에 몰려든 관중들처럼 그녀에게 계속 소리를 질렀고, 그녀가 치를 시험은 오른쪽이나 왼쪽을 돌아보지 않고 울타리를 넘는 것이었지요. 만약 당신이 욕설을 퍼붓기 위해 멈춰 선다면 당신은 파멸이라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지요. 비웃기 위해 멈추어도 마찬가지라고 말입니다. 망설이거나 더듬거린다면 당신은 끝장이다. 오로지 뛰어넘는 것만을 생각하라. 나는 그녀의 등에 내 온 재산을 건 것처럼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새처럼 그것을 가볍게 넘었습니다. 그러나 그 너머에도 울타리가 있고 또 그 너머에도 있었지요. 박수 소리, 고함 소리가 신경을 마모시키고 있었으므로 그녀가 지구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최선을 다했지요. pp.142-3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요. 그리고 여성은 그저 이백 년 동안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성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일말의 기회도 없었던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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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사상의 세계 살림 클래식 1
벤자민 슈월츠 지음 / 살림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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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을 살펴보면, 고대 중국에는 조상숭배와 자연 만물의 정령에 대한 관심이 널리 퍼져 있었다. 산 자가 숭배하는 조상들은 "생사의 장벽을 초월하는 가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식되었고, "공동체에서 가족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했다."(36) 선조들은 산 자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존재였기에, 후손들은 "그들이 속하는 계보의 적절한 제의 행위"를 중요하게 여겼다. 신성한 것과 인간적인 것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이 지점에서 우리는 종교적 의식은 물론 "사회적 행위, 에티켓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정들을 포괄하는 후대의 범주, 예禮의 맹아를 발견"할 수 있다.(39)


누구나 혈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상숭배는 일종의 "만인평등의 종교"였으며, 따라서 정치 지배를 합법화하는 궁극의 원천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왕족 계보의 지도자들이 혈통 정당성의 원천을 "자연의 신명한 위력에서 찾아야 하는" 당연한 이유가 존재했던 것이다. 평화와 조화의 정신, 제례의 예절 등을 앞세우는 공동체의 중심 가치는 "질서"이며, 이 우주적 가족 질서는 "명확하게 정의된 역할과 신분, 신성한 의례와 체계로 결속된" 사회, 정치적 모델로 작동했다.(53) 왕은 지배 영역 전체를 순수巡狩하면서, 지역 신들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고, 통치 권력의 정당성을 자신의 조상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통치하는 제帝의 권력"에서 이끌어낸다.(57)


주周의 창건자들은 물리적 하늘인 "천天과 상제上帝의 결합"을 열망했다. 이제 최고신은 어떠한 왕족의 계보에도 속하지 않으며, 왕을 대하는 하늘의 태도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행동 기준에 근거"(74)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하늘은 왕조의 성쇠를 결정하는 "최고의 도덕 의지"이자 "역사의 신"으로 자리잡았고, 자연과 조상 숭배는 "세심하고 경건한 제사와 의례의 수행을 통해 통치자의 덕을 측정하는 판단 기준"의 하나로 남았다.(77) 천天을 자의적이지 않은 지고의 활동 의지로 보는 관점은, "상商의 멸망에 관한 의지를 드러내고 주를 선택하여 천명을 계승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유신론적 측면"을 드러낸다.(81-2)


공자는 <논어>에서 제의와 의식儀式, 윤리를 포괄하는 객관적 규정들과 도덕을 포괄하는 내면적 삶의 관계를 고찰한다. 공자에게 예는 "가장 구체적 차원의 행위에 관한 모든 객관적 규정"이자, "인간과 영령들을 한데 묶어주는 기능"을 담당한다. 예가 공동체의 접합체 역할을 하는 이유는, 사회 안에서 "역할, 신분, 계급, 지위에 의해 상호 연결된 개인들의 행위"와 관계하기 때문이다.(106-7) 예는 삶을 규정하는 법칙이지만, 모든 상황을 포괄하지는 못한다. 여기서 "'올바름'이나 '적합함'으로 번역"되는 의義가 도입되는데, 의는 예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삶의 광대한 고유 상황들에 적용되는 올바른 행위"를 가리킨다.(124)


인仁은 "사회적 덕성과 예를 본연의 정신에 맞게 수행하는 능력"을 포괄한다.(118) 인은 도덕적 역량일 뿐만 아니라 자기 수양을 철저히 실천하려는 "실존적 목표"이기도 하다. 공자는 누구에게나 인의 성취 방법, 즉 "군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다"고 보았다.(121) 예는 생득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서 내면화하는 덕목이며, 인과 관련된 덕성들을 성취하려는 부단한 의지를 통해서 표출된다. "인은 예에 적절한 정신을 주입하며, 예의 잠재적인 역량에 생명을 불어넣는 능력이다."(126) <논어>에는 학습하지 않는 사람은 "인의 최고 실현을 성취할 수 없다는 점이 암시된다."(129)


"공자의 학습과 지식의 개념이 갖는 뚜렷한 함의는 사회, 정치적 삶에 관한 것이다."(150) 통치자는 마땅히 "참된 지식을 획득"해야 하고, 참된 지식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학습과 지식이 없으면 도는 회복될 수 없다."(151) 이처럼 스스로를 기르는 인간에게 본이 되는 것이 바로 '천天'이다. 하늘은 인간들에게 "과거에 실현된 적이 있는 하늘의 질서에 관한 지식을 부여"하고 "그 질서의 실현에 착수하는 능력"을 부여한다. 또한 하늘은 "군자가 불행과 절망에 처해서도 인을 통해 깊은 평정심과 고요를 성취할 수 있게 해준다."(197-8) 공자에게 하늘은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행하지는 않지만, 모든 길을 예비해 둔 '만물의 주관자'이다.


묵가는 어떠한 의식적 활동도 통제할 수 없는 "비인격적 질서로서의 세계 개념"을 배격하고, "신과 인간의 집요한 의지와 노력으로 성취되는 세계"를 지향한다. 묵자가 보기에 인간 사회의 질서는 "하늘, 귀신,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의도적인 협력을 통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218-9) 이기적인 성향을 지닌 '자연 상태'의 인간들을 치유하는 방법은, "천하의 보편 이익이 이루어진 후에야 개인들의 진정한 이익이 달성"된다는 공리주의적 관점을 주입하는 것이다.(226) 묵자는 예악의 '마술적' 기능을 부정하여, 예의 실천이 실행자의 '정신적 미덕'을 강화하거나 영혼을 고양시키지 못한다고 보았다.


묵자는 과학 기술적 혁신을 '발전'의 관점보다는 "전쟁, 무절제한 사치, 과시와 같은 문명의 병리 현상"들과 연계해서 보았다. 현존하는 경제적 과학 기술과 생활 공예의 전통만으로도 인류의 적절한 생계를 보장하기에 적합하다. "문제는 '생산력 증가'가 아니라 '분배'의 과제이다."(242) 그러나 인류의 '보편 이익', 곧 겸애兼愛가 경제적, 정치적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묵가의 핵심적인 특징은 '조직화의 충동'으로서, 하늘의 의지와 합일을 이룬 천자를 중심으로 하는 위계 질서이다. "백성들은 반드시 유능한 지도자聖王에 의해 인도"(250)되어야 하며, 성왕은 '이기적이지 않고, 인식하지 않으며, 영원히 밝은' 하늘의 의지를 따라야 한다.


묵자와 공자는 문명적 규범의 성취가 "성인, 군자, 현자들의 의도적이고 부단한 도덕적 노력을 요구한다는 점을 확신한다." 도가의 관점에서 보면, "유가의 군자와 묵가의 현자는 모두 유위有爲를 통해 인간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세계를 떠돌며 자신을 기만하는 호사가好事家들이다."(297) 본래 중국 사상에서 '질서'란 부분으로 환원 가능한 전체가 아니다. "질서는 부분들에서 건립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유기적 패턴이다." 질서는 다수의 개별 요소와 관계들로 구성되지만, 언어적 이해의 차원을 초월하는 "모종의 파악 불가능한 통일 원리가 이 질서의 핵심에 존재한다."(302)


노자는 인위적 규범의 무용함을 역설하지만, 정치 질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는 복희服羲같은 도가 성왕이 "문명의 병리 현상을 되돌릴 수 있다고 암시한다."(327) 성왕은 모든 문명 사업을 최소한으로 축소하여, 백성들을 단순한 삶으로 침잠하게 한다. 이러한 "성왕의 문명 거부 정책은 그 자체로 유위함"(329)이며,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의 모순이다. 장자가 보기에 문명을 지향하는 인간의 병리 현상은 '선천적'인 질병이므로 성왕도 이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 장자의 진인은 노자의 '원시주의적' 해결 방안조차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 세계를 아름다움과 추함으로 구분하는 문명의 시각을 거부하고, 온전히 세계를 그 자체로 긍정하는 신비가이다.


공자 사후, 공자의 이상은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세상에는 이미 "부국강병을 국가의 주요 목적으로 선포한 진秦의 법가 재상 상앙商鞅과 자주적 군사 과학의 수립에 열중해 있던 군사 이론가 손자孫子 및 전기田忌" 같은 이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394) 이런 상황에서도 맹자는 "역사를 주관하는 하늘의 섭리"와 "도덕적 권고를 통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군자의 능력"을 확고하게 믿었다. 맹자의 논점은 "목적 그 자체로서의 인의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 능력이 전제되어야만 선한 사회적 결과가 성취된다는 것"이며, "선한 사회의 달성이 전적으로 선한 인간들의 타고난 도덕 성향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402-3)


맹자는 지식[知]과 사유에 대한 자발적인 노력[學]을 통해 감각적 욕구를 향한 '본성'을 제어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순자는 "인의를 향한 타고난 자연적 경향이 없다고 주장한다."(447) 순자는 자연 상태의 인간들이 분출하는 강렬한 욕망을 통제하는 것은 "교육과 도덕적 설득으로 내재화되는 예의 법칙들"이 아니라 "물리적 강제력에 의존하는 외적인 형법과 제도들"이라고 말한다.(451) 공자와 맹자는 무력의 적극적인 역할을 약화시키려 노력했지만, <시경>과 <서경>의 구절들을 보면 군주의 덕은 "그들의 의로운 형벌에서도 나타난다."(495) 사회 질서에서 무력의 역할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은 상당히 오래된 전통이다.


다행히도 하늘은 "선을 향한 본유 성향들을 제공하지 않았지만, 인간 상황을 이해하는 지적 능력인 "천심天心"은 마련해 주었다."(456) 여기서 엄청난 지적 노력으로 예의 정신을 '내면화'하는 데 성공한 군자의 역할이 중요시된다. 군자는 예를 임의적으로 창안하지 않고, 끈기 있는 사유를 통해 예를 '발견'한다. "예는 광대한 우주적 패턴의 일부이며,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공리주의적 장치를 초월한다."(461) 순자는 "예는 인생에서 우리의 기쁨을 장식하는 수단이요, 죽은 이에 대한 장례에서는 우리의 슬픔을 장식하는 수단"(凡禮, 事生, 飾歡也. 送死, 飾哀也)이라고 말하면서 예약을 배척하는 묵가 및 법가와 분명한 선을 긋는다.(459)


법가의 "공리주의적 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전혀 없을지 모르는 국력의 증가이다."(503) 상앙은 패업을 이룩할 수 있는 부강한 국가의 건설이라는 역사적 목표에 집중하여, "형법과 보상에 관한 통합 체계와 함께 백성들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유도하는 장치들을 제공한다." 한비자가 보기에 상앙의 사회 재편성 모델은 "군주에 의해 실행되어야 하고, 군주는 관료제도를 통해서만 이를 실행할 수 있다."(511) 즉, 효과적으로 관료제도를 구성하고 통제하는 술術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한비자는 여기에 군주의 '위세'라는 권력의 신비로운 원리를 추가하여 법가 프로그램을 완성한다. 


"완전히 실현된 법가 이상향에서, 군주는 법과 술의 비인격적 기제들을 통해 사회를 통제한다."(520) 한비자는 '현자'나 '성왕'의 역할을 경멸하여, 제도적으로 이들의 역할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했지만, "오류에 찬 사적 이론들의 수요를 최종적으로 제거해 줄 진정한 행동과학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참된 이론을 소유한 상앙이나 자신과 같은 현명한 개인들"이라고 보았다.(521) 진정한 현자와 개명한 군주에 의해 탄생한 법가의 이상향은 인간적 개성의 변덕이 야기하는 유위有爲가 소거된 채 작동하는 공동체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법가의 이상향은 도와 합일된 진실로 '자연적'인 체계이며, 이는 도가의 무위자연이 성취된 사회와 일맥상통한다.


"공자는 자신에게 기성 군주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대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한비자는 자신의 방법들[術]을 시행할 수만 있다면 완전히 새로운 사회 질서를 창조할 수 있다는 숭고한 자신감을 표명한다. 순자도 선한 군주들과 현자들이 사회 질서를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신념을 가졌다. 심지어 노자조차 성왕의 무위적 영향에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중국의 고대 사유는 "엘리트들의 사회 형성 능력에 대한 높은 신뢰와 사회, 정치적 질서의 관념에 대한 낙관적인 해석"(626)을 내면에 간직한 채, 의미 있고, 창조적이며, 고통스러운 중국 사상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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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 한국사회를 움직인 대법원 10대 논쟁 김영란 판결 시리즈
김영란 지음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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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과 실질은 대립하는가? 법法이라는 형식은 현실이라는 개별 사태를 최대한 포괄하려는 누적적 시도이지만, 언제나 현실에 후행한다. 그런 측면에서 새로운 사태를 기존의 형식으로 재단하는 일은 한계가 뚜렷하며, 둘을 화해시키려는 노력은 손에 닿으면 흩어지고 마는 신기루를 붙잡는 것처럼 지난한 과정이다. 새로운 사태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진단과 해석이라는 설명을 넘어 그 의의를 담아낼 수 있는 설명모형을 수립하고자 노력하는 일이며, 형식과 실질간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 부단히 미지의 영역으로 전진하는 일이다. 이는 형식과 실질이 균형 잡힌 속도와 크기로 함께 자라도록 돌보는 일이며, 기존의 판단 근거에 매몰된 정신을 깨우는 일이다. 


형식과 실질 사이는 선 하나로 그은 경계선처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생존 최우선주의부터 공존 최우선주의까지 제각기 삶의 본능과 가치관이 살아 숨쉬며, 때로는 투쟁으로, 때로는 화합으로 생태계를 조성하는 너른 회색지대가 펼쳐져 있다. 저자가 정리한 10가지 쟁점 역시 두 개의 강고한 입장이 맞부딪힌다기보다는 각자의 의견 아래 별개의견과 보충의견이 달리고, 반박과 재반박이 허용되는 살아 있는 논쟁의 표본들이다. 숙고로 판결에 참여하고, 성찰로 쟁점을 되짚어보며, 집필로 노정을 공유하는 저자의 노력은 독자들 자신이야말로 민주사회의 일원으로 이 작업에 참여할 의무와 권리를 갖고 있다고 나직하게, 그러나 힘주어 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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