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 한국사회를 움직인 대법원 10대 논쟁 김영란 판결 시리즈
김영란 지음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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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과 실질은 대립하는가? 법法이라는 형식은 현실이라는 개별 사태를 최대한 포괄하려는 누적적 시도이지만, 언제나 현실에 후행한다. 그런 측면에서 새로운 사태를 기존의 형식으로 재단하는 일은 한계가 뚜렷하며, 둘을 화해시키려는 노력은 손에 닿으면 흩어지고 마는 신기루를 붙잡는 것처럼 지난한 과정이다. 새로운 사태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진단과 해석이라는 설명을 넘어 그 의의를 담아낼 수 있는 설명모형을 수립하고자 노력하는 일이며, 형식과 실질간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 부단히 미지의 영역으로 전진하는 일이다. 이는 형식과 실질이 균형 잡힌 속도와 크기로 함께 자라도록 돌보는 일이며, 기존의 판단 근거에 매몰된 정신을 깨우는 일이다. 


형식과 실질 사이는 선 하나로 그은 경계선처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생존 최우선주의부터 공존 최우선주의까지 제각기 삶의 본능과 가치관이 살아 숨쉬며, 때로는 투쟁으로, 때로는 화합으로 생태계를 조성하는 너른 회색지대가 펼쳐져 있다. 저자가 정리한 10가지 쟁점 역시 두 개의 강고한 입장이 맞부딪힌다기보다는 각자의 의견 아래 별개의견과 보충의견이 달리고, 반박과 재반박이 허용되는 살아 있는 논쟁의 표본들이다. 숙고로 판결에 참여하고, 성찰로 쟁점을 되짚어보며, 집필로 노정을 공유하는 저자의 노력은 독자들 자신이야말로 민주사회의 일원으로 이 작업에 참여할 의무와 권리를 갖고 있다고 나직하게, 그러나 힘주어 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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