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을 읽다 - 마르크스와 자본을 공부하는 이유 유유 고전강의 2
양자오 지음, 김태성 옮김 / 유유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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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장 형식과 내용이 완전하게 일치하는 '진실'을 추구하다


"자본, 특히 19세기 유럽에서 마르크스가 본 발달된 산업 자본주의는 일단 형성된 다음에는 너무나 쉽게 국경을 넘어 국가와 정부 권력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되었다. 진정으로 근본적인 현상은 '자본에는 조국이 없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자본가에게는 조국이 없다' 혹은 나중에 좀 더 통속적인 화법으로 나온 '상인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말과도 다르다." "마르크스가 말하고자 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자체적인 작동 논리를 갖추고 있으며, 그 움직임은 자본을 쥐고 있는 자본가마저도 주관적인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본가가 자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자본가를 통제한다. 자본은 인위적인 것이고 자본가가 투자를 통해 창출한 것이지만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오히려 자본가의 행위를 결정하고 자본가를 조종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헤겔로부터 물려받아 더욱 확장하고 변화시킨 '소외'의 개념이다."(40-1)


"100여 년 전, 마르크스는 관찰과 사유를 통해 이런 현상을 예견했다. 이 때문에 그는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운동 구호를 '졸렌' 차원의 해결책 혹은 대항 방법으로 삼았다. 노동자가 자주성을 확보하려면 자본가에게 '잉여 가치'를 창출해 주는 도구로 전락하지 말고 '자본에는 조국이 없다'라는 본질에 맞서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국경을 초월해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국경 개념에 입각한 시각으로 자본을 대하면 하나의 국가에 있는 자본과 자본가만을 볼 수 있을 뿐이며, 이러한 노동 운동은 영원히 성공할 수 없다고 보았다. 자본은 국경을 초월하고 자본가는 자본의 본질에 기초한 연맹을 형성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가에게 대항하려면 노동자와 노동 운동도 반드시 국경을 초월하는 연합 전선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즉,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말은 현실 묘사가 아니라 당위 명제이다."(44-5)


# 자인(Sein)은 사실을 대표하고 졸렌(Sollen)은 당위성을 나타낸다. 자인은 실재의 상황이 어떤지를 나타내고 졸렌은 상황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타낸다.


"헤겔 철학의 시작점은 '초월적 정신'이다. 먼저 '초월적 정신'이 있어야 타락이 있고 현실 세계가 있을 수 있다. 세계는 '초월적 정신'의 물화, 객관화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기원 관계를 전도시켜 '초월적 정신'과 '신'이 인간 이상理想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헤겔은 세계가 '정신'의 물화라고 말하는 반면 마르크스는 '정신' 혹은 '신'이 인간의 이상화라고 말하는 셈이다. 마르크스는 헤겔 이론의 시작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먼저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정신'이 있다고 할 때, 이 '정신'은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 현실로 전개되며 이로 인해 모든 변화가 시작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것이 신화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순수한 인간의 시각에서 역사의 변화란 추상적이고 논리로만 가정할 수 있을 뿐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정신'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얻은 진실성의 충동이 전개된 시험이자 투쟁이라고 간주했다."(67-8)


"'신'과 '정신'은 모두 인간의 창조물이다. 이것이 헤겔 철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극적인 전도다. 인간은 자신이 마땅히 갖고 있어야 하는데도 현실에서는 갖지 못한 가장 아름다운 성질을 '신'에게 투영했다. 이 때문에 '신'의 진정한 모습은 '가장 진실한 인간'이 된다. '신'은 인간 삶의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이며 진실한 상태를 체현한다. '신'은 원래 인간과 인간의 이상과 인간의 추구를 대표한다. 다시 말해 '신'이 존재하는 목적은 인간을 '신'으로 만드는 것, 인간을 '신'처럼 순수하고 진실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경험 속에서 '신'은 '소외'되고 말았다. 인간은 진실한 인간을 나타내는 '신'을 창조하여 이를 숭배 대상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철저하고 절대적으로 인간과 분리시켰다." "'신'을 창조한 이상 본질적으로 인간이 '신'의 주인이 되어야 했지만, '소외'를 통해 위치가 완전히 뒤바뀌었고, 인간은 자발적으로 '신'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70-1)


"마르크스의 기본 신념이란 인간의 진실성에 대한 변함없는 관심이며, 이는 그의 사회 분석 및 역사 해석의 판단 기준이었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사람이 '소외'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 '진실한' 삶을 추구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일 것이다. 역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각 역사 단계에서 인간이 얼마나 '진실'했는지, 얼마나 '소외'의 역량에 견제당했는지 유익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관찰하고 판단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관심을 갖는 것은 군중이 조직한 사회가 어떻게 사람들을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느냐 하는 문제다. 이 때문에 그는 어떤 사회 요소 혹은 힘이 사람의 '진실한' 삶을 저해하는지를 가장 열심히 분석했다. 그는 왜 자본주의를 죽도록 미워했던 것일까? 왜 그토록 비판적인 필치로 그 두꺼운 『자본론』을 썼던 것일까? 그의 철학적 시각에서는 자본과 자본주의가 인간과 '진실' 사이에 가로놓인 가장 커다란 장애였기 때문이다."(72-6)


2장 '실낙원'의 속죄의 길을 다시 걷다


"『자본론』 제1권은 대부분 '노동 가치'에 대한 탐색과 평론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마르크스의 경제학 이론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그의 '노동 가치설'을 겨냥한다. 비판자들은 상품의 가치가 완전히 '노동 가치'에서 오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생산에는 노동 가치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섞여 있는데 마르크스는 이런 다양한 요소를 무시하고 원료 가치와 상품 가치의 차이가 전부 노동 가치에서 온다고 주장하는 탓에 그의 경제 분석은 정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이처럼 집중 비판의 대상이 된 '노동 가치설'이 마르크스의 이론에서는 하나의 전략적 가설로서 상품의 성질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제3권에 이르면 마르크스는 이 가설에서 벗어난 노동과 가치 관계에 대한 논의를 확대한다. 다만 애석하게도 당시에는 인내심을 갖고 『자본론』을 제3권까지 읽어 내는 사람은 무척이나 드물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랬다."(89-90)


"마르크스의 논리적 방법은 알튀세르의 표현으로 하자면 '중층 결정'이다. 〈휴대전화가 생활에서 맡은 역할을 사람들 사이의 정보 전달〉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휴대전화와 생활 사이에서 맺는 다른 형태의 관계를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우리가 휴대전화와 생활 사이에 사람들 사이의 정보 전달 이외의 다른 기능과 관계가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이러한 방식이 휴대전화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고 그 기능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휴대전화가 갖고 있는 모든 성질 가운데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다른 요소들과는 차원이 다른 결정적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중층 결정 요소'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는 설명과 평가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어 양자를 분리할 수가 없다. 한 가지 요소로 설명한다는 것은 우리가 비교적 높은 단계의 결정 요소를 찾아 이 일을 평가한다는 의미다."(91)


"『자본론』 같은 마르크스의 후기 저작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경제학과 경제사, 정치경제 이론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러한 정치경제의 논술을 꿰뚫고 있는 것 그리고 마르크스로 하여금 이러한 방식으로 인류의 정치경제 활동을 귀납하게 한 것은 결국 '청년 마르크스' 시기의 철학 정신이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자본론』이 경제학서이자 정치경제학서인 동시에 정치경제학 비판서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론』이 현대 경제학자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다. 현대 경제학자는 경제학에서 자랑스럽게 도덕과 윤리의 문제를 배제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정치경제를 분석하기 전부터 먼저 이상적이고 완벽하며 반드시 있어야 할 인간의 상태를 가정했다. 그리고 이를 모든 목표의 종점으로 설정하는 한편 분석과 토론의 기준으로 삼아 인류가 어떻게 이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일관성 있게 사유했다."(98-101)


"현대 서양 경제학은 수요 공급과 가격이 상호 작용한다는 개념 위에서 성립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가격은 검증과 비판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가격이 반영하는 것은 상품의 사회 관계이지 그 내재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상품의 내재 가치인데 가격은 가치를 왜곡하는 부정적인 힘이다." "서양 경제학의 시작점은 가치를 방치하고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가치는 주관적이고 유동적이다. 존재하지만 객관적인 측량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경제학 연구의 범주에 속하지 못한다. 오로지 가격만이 연구되고 논의되며 인류 행위의 변수로서 예측된다. 서양 경제학에서 가치는 칸트 철학에서 가정하는 '물자체'와 같아서 확실히 존재하긴 하지만 결코 직접적이고 실제적으로 만지거나 파악할 수 없다. 교환 관계에 끌어들여 계량이 가능한 가격으로바꿔야만 가치를 파악하고 연구할 수 있다."(105-6)


"가격은 교환으로부터 나오고 사물 사이의 교환 관계에서만 존재할 뿐, '사용 가치'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물물 교환 관계에서 만들어진 가격은 필연적으로 이성적 강제성을 띠게 된다."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단 물건이 교환을 통해 '상품'으로 변하면 이 '상품'은 필연적으로 그 교환 네트워크를 끝없이 확장하여 방대한 체계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관점에서 '상품'을 말한다. 『자본론』의 출발점은 자본주의 경제학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름 아닌 사람과 물건 사이의 원시적이고 직접적인 관계인 '사용 가치'의 관계다. 우리에게 주전자 하나의 용도와 의의는 우리와 주전자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다. 교환은 이런 관계를 파괴하고 변형시켜 원래의 계량화가 불가능한 가치를 억지로 가격 계량화 체계 안에 편입시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물건의 교환 가치가 그 '사용 가치'와 같다고 착각하게 만든다."(114-6)


"『자본론』의 내용은 인간이 원초적 진실에서 점차 멀어지는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사용 가치'의 추락에서 '교환 가치'로 상품을 정의하고, 자신의 욕망을 '물신 숭배' 충동에 양도하며 돈으로 모든 가치를 포괄하는 추락을 거친 후 한 걸음 더 나아가 돈이 교환 계산의 도구에서 모든 사물의 주재자로 승화하는, 곧 '자본'의 등장으로 추락한다. 돈은 원래 사람들이 물품을 구매할 때 사용하는 도구였지만 '자본'이 된 뒤에는 거꾸로 돈이 사람을 사고 사람이 '자본'에 복무하는 노예가 된다. 이는 『실낙원』의 이야기와 궤를 같이 한다." "『실낙원』은 종교적인 이야기지만 마르크스는 이런 구도를 빌려 인간이 끊임없이 타락해 가는 과정을 밝힐 뿐 아니라 모두가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으라고 격려하면서 모두를 속죄의 길로 인도한다. 이것이 바로 세계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소외' 이전의 원초적 상태로 되돌리려는 마르크스의 위대한 계획이다."(123-4)


3장 왜곡과 소외를 지적한 '과학적 유물론'


"초기부터 후기까지 마르크스의 사상 전체를 살펴보면 특별히 토론의 대상으로 삼을 만한 중요한 관념이 한 가지 발견된다. 바로 프락시스Praxis다." "프락시스의 '실천'은 왕양명이 말한 〈지행합일〉知行合一, 즉 이론과 실천의 합일에 가깝다. 혹은 프락시스를 '지식의 실천'으로 보고, 세계를 해석하는 동시에 변화시킨다는 개념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옳고 좋은 지식은 단순히 객관적인 분석에 그치지 않고 변화의 힘을 갖춘 비판이 되어, 사람들이 변증적이고 전복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인식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결심과 힘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경제학 분석은 단순한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이다. 경제 요소를 분석하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어떤 정치적 조치로 기존 경제 구조를 바꿔야 할지 함께 탐색한다. 이는 마르크스 철학의 또 다른 특수한 관점이다."(138-41)


"마르크스는 경제 활동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정상적인 W-G-W(상품-화폐-상품)가 아니라 뒤집힌 G-W-G, 즉 화폐-상품-화폐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G-W-G가 가리키는 것은 돈으로 물건을 사서 이 물건을 다시 파는 것을 말한다. 즉 매매의 거래는 이 물건을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중간에 '사용 가치'가 개입하지 않는다. 가장 전형적인 G-W-G 활동의 예로 부동산 투자자를 들 수 있다. 그들은 거주를 위해 집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산 집에 거주하는 일이 없다. 순전히 전매를 통해 돈을 벌려는 것이 그들이 집을 사는 목적이다. 그들은 그 집이 자신에게 '사용 가치'가 있는지의 여부는 따지지 않고 전매할 수 있는 '교환 가치'에만 주목한다. 절대 다수의 투자자가 투자로 사는 집은 자신들이 직접 거주하는 집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이들은 자신이 애당초 거주할 생각이 없는 집들을 투자 표적으로 삼아 구매한다."(160-1)


"G-W-G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마르크스가 발견한 것은 경제 활동이 애덤 스미스나 리카도의 생각처럼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경제 활동으로 사회 전체의 사용 이익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다. 일부분, 심지어 대부분의 경제 활동은 사실 본말이 전도되어 화폐 가치를 높이고자 이루어진다. G-W-G의 교환 과정에서 교환 성립을 위해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사들인 가격보다 파는 가격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고, 상품 자체의 '사용 가치'는 고려 대상 밖으로 완전히 버려진다." "G-W-G는 우리를 교환의 근본 이치에서 떨어져 나오게 하고 교환을 또 다른 일, 즉 화폐를 축적하기 위한 교환으로 변화시킨다. 이때부터 교환의 평가 기준은 더 이상 사람마다 서로 다른 '사용 가치'가 아니라 통일된 화폐의 수치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은 추상적인 숫자를 위해 교환하게 되고 경제생활도 추상적인 숫자를 위한 활동이 된다."(161-3)


"화폐는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왔지만 '자본'은 새로운 사회 현상이다. 새로운 사회관계 속에서 전통적인 금전은 '자본'으로 변했다. G-W-G의 과정에서 자본가는 돈을 내고 노동력을 사고 다시 노동력의 성과를 팔아 그 속에 담긴 '잉여 가치'를 취한다. 그러나 노동력이 창출하는 상품 가치는 결국 노동력을 제공한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돈을 낸 사람이 가져간다. 이리하여 이 돈은 '자본'이 된다. 이는 여전히 금전을 통한 매매 교환이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관계에서는 매매에 새로운 이익의 원천이 생겼다. 원료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임대한 토지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공장의 기계 설비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이익은 오로지 노동력의 가격 차이에서 온다. 노동력은 상품 가치를 창출하지만 노동자가 창출한 상품 가치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것은 노동자 자신이 아니라 돈을 낸 자본가다." "'자본'으로 명명된 이 시대는 사실 노동자와 노동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174-5)


4장 계급 의식의 확립과 착취로부터의 탈피


"마르크스는 수많은 문제를 제기했지만 제때 완성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가 제기한 문제들이 전부 온전한 해답을 얻었다면 마르크스의 사상은 아마도 후세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는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길을 따라 논의하고 논쟁하도록 자극했다. 또한 자기 생전에는 사상의 지도에 간단한 그림만 그리고 직접 탐색할 여유가 없었던 여러 영역을 후대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와 그의 이론을 계승한 '마르크스주의자'를 구분하는 일은 극도로 어렵다. 마르크스 자신이 설계한 방대한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에는 '마르크스주의자'의 보충이 필요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미 생전에 마르크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도 유감스럽다는 듯이 자조 섞인 어투로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191)


"마르크스 저작의 핵심개념 중 첫 번째는 '착취'로서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물건을 점유하는 것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이런 개념을 사용하면서 더 깊은 함의를 부여했다. 피착취자의 각도에서 '착취'를 해석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받아야 하는 것보다 더 적게 받았다면 여기에는 필시 '착취'가 존재할 것이며, 그에게 귀속되어야 할 것을 다른 사람이 부당하게 가져갔음을 의미한다. 마르크스가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은 노동의 결과다. 노동자가 생산한 노동의 결과 가운데 일부 또는 전부가 그에게 귀속되지 않는다면 이는 '착취'다.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착취'를 고려 대상에 두고 노동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보수를 산출하여 이 응당한 보수와 실제 소득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따진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 경제학과 시장 경제학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다. 시장 경제학에서는 노동력을 시장에 두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 가격만 있지 '착취'는 있을 수 없다."(193)


또 한 가지 중요한 검증 개념은 '조작'이다.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가 말하는 시장은 일종의 신화라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가 제시한 경제 논리를 부정하거나 이에 도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이들의 이론은 현실이 아니라 상상에 기초하여 세워진 경제 논리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는 이처럼 이상화된 시장이 존재하지 않고 항상 각양각색의 힘이 끼어들어 시장의 조작에 개입한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는 시장이 실제로는 이성적이지도 못하고 평등하지도 않다는 사실뿐 아니라, 실제로는 시장이 거짓된 가치 시스템일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장에는 갖가지 유혹과 사기가 가득해 사람들이 모든 것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없다. 우리가 애덤 스미스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시장이 항상 '보이지 않는 손'의 공평한 관리 아래 있다고 믿어야 한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쉽게 속임을 당할 것이다."(200-1)


"다음은 '노동이 모든 가치의 근원'이라는 기본 원리다. 노동하는 인간, 생산하는 인간이 없다면 어떤 영역에서든 가치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이는 깨뜨릴 수 없는 진리이고, 이 진리는 온갖 귀신의 유혹으로 가득한 어두운 밤중에 마음 놓고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는 횃불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이처럼 간단한 원리로 가치를 평가하고, 이에 의지하여 시장 가격 및 '교환 가치'가 조성하는 혼란으로부터 벗어나는 동시에 타인의 조작을 피할 수 있도록 교육하려 했다. '노동이 모든 가치의 근원'이라는 원칙은 순진할 정도로 간단하다. 마르크스도 이처럼 간단한 원리로는 모든 것을 해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그의 목적은 복잡한 조작 아래서 자신의 노동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심지어 자신에게 노동력의 가치를 이해하고 주장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노동자에게 자기 평가의 기회를 주는 데 있었다."(203)


"시장 경제학은 스스로 자연과학을 모범으로 하는 과학 체계를 구축하여 자연과학에서 자연 현상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예측하는 방법을 인간 행위에 그대로 적용한다." "반면 마르크스는 생산이라는 경제 활동을 사회 활동이자 인간관계 행위로 간주한다. 모든 사회관계와 마찬가지로 생산관계에서의 역할과 입장은 상대적이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계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시장 경제학에서는 자신들이 신분과 개인적 차이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경제 원칙이라고 말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누구의 입장에 서서 그런 분석을 한 것이냐고 집요하게 따져 묻는다. 이런 문제에서만 출발해도 시장 경제학이 더 이상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경제 법칙이 아니라 자산 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입장에 서서 자산 계급의 '조작'과 '착취'를 합리화하는 이론임을 알 수 있다."(210-1)


5장 '상부 구조'의 구속을 부수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가 '임금 노동'과 '노동 일수', '노동 시간' 등에 대해 논한 것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의 참담과 우울, 심지어 비분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일은 사람과 생활에서 분리되었지만 사람과 일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리하여 실제로 사람은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임금 노동자'로서의 부분이 커질수록 자유롭고 진실한 생활의 부분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임금 노동'의 부분이 어느 정도까지 확대되면 우리는 '임금 노동' 후의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 자신은 존재하지만 생활이 없어지고 그저 '임금 노동자'로서의 존재만 남는다. 이런 상태는 공장과 자본가에게 가장 유리하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 역시 우리 자신이 내일 아침까지 살아 있도록 하기만 하면 되는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 재생산 원가'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수없이 많은 곳에서 이런 인생이 마땅하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229-30)


"마르크스가 제시한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상대적 잉여가치'다." "가령 노동자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2,000원의 비용이 들었고 그가 하루 열 시간 일해서 창출할 수 있는 가치 총액이 1만 원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노동자가 착취당할 수 있는 '잉여 가치'가 8,000원이라는 의미다. 그는 자신을 위해 매일 두 시간만 일하면 되므로 나머지 여덟 시간의 노동은 자본가가 임금 형식을 통해 착취할 수 있는 범위가 된다. (그런데 산업화로 인해) 생활에 필요한 비용이 더 줄어들어 이 노동자의 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1,000원으로 떨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하루에 10시간씩 일해서 1만 원의 가치 총액을 창출한다. 이리하여 착취당하는 '잉여 가치'는 반대로 더 늘어난다. 새로운 상황 아래서 그는 하루에 한 시간만 일해도 '노동 재생산'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을 얻을 수 있다. 나머지 아홉 시간의 노동은 전부 자본가에게 착취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업화로 인한 물가 하락은 자본가에게 여전히 유리하다."(230-1)


"마르크스는 인류 활동에 대한 전면적인 해석을 수립하고자 했다. 이 부분에서 그의 야심은 헤겔과 일치했다. 마르크스가 경제 분야를 논의의 중심으로 선택한 것은 경제 영역에 익숙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그 전면적인 이론에서 경제 활동과 경제 행위가 가장 근본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떤 경제 생산 방식이 있으면 그에 따라 어떤 예의와 습관, 풍속, 제도, 사회 조직 내지 문학, 철학, 예술이 출현한다. 이로써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결정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부 구조'에서는 특히 생산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생산관계에서 이익을 얻는 쪽의 가치관으로 물든 ‘상부구조’인 예의와 습관, 풍속, 제도, 사회 조직 그리고 문학, 철학, 예술은 모든 사회 성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이리하여 '상부 구조'는 '하부 구조'를 위해 복무하는 기능을 발휘하고 기존의 생산관계를 보호하고 강화하게 된다."(259-60)


"마르크스는 '상부 구조'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극도로 불평등한 생산관계에서 자본가가 노동자와는 전혀 대칭되지 않는 이익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일깨워 준다. 그 권력이 경제 영역에 한정되어 다른 영역으로는 번져 갈 리 없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자본가는 생산 수단을 통제함으로써 신속하게 노동자의 '잉여 가치'를 빨아들여 자신의 부를 축적하고, 생산관계에서 점한 우세를 이용하여 '상부 구조'의 다른 비非경제 영역에도 자신의 이익을 반영시킨다. 그리하여 전체 사회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조작'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개조된다. '노동력 가치'의 판매자로 전락한 노동자는 지불하는 노동력에 상응하지 않는 빈약한 임금을 받을 뿐 아니라 자본 가치가 조성하는 사회 환경에서 살면서 이런 생활이 합리적이라고, 적어도 필연적이어서 이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착각하게 된다."(260-1)


"마르크스 같은 철학자나 지식인의 임무는 허위를 비판하고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들의 방식은 세계의 변화라는 사명을 실천하는 것이지, 비판 이외에 다른 실천적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자나 지식인은 조사와 사유로 진상을 찾아냄으로써 착취당하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조작'된 공범 시스템에서 깨어나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신분을 회복하고 적극적으로 '정확한' 사회를 창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노선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현실이 마르크스를 이러한 노선에서 이탈시켜 버렸다. 나중에 그는 노동자 혁명을 이끄는 자리를 맡게 되어 더 이상 마음껏 사유에 전념할 수 없었다. 이 노선은 레닌에게 전달된 뒤로 '볼셰비키'의 개념이 더해지면서 '당'이 노동자 혁명의 대리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원래 마르스크의 사유 방향에서 빗나간 논리가 반대로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노선으로 자리 잡았다."(284-5)


"철학자 마르크스와 혁명가 마르크스는 완전히 별개의 인물이지만 불행하게도 너무나 빨리 혁명가 마르크스가 철학자 마르크스를 덮어 버리고 수많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유일한 마르크스가 되고 말았다. 마르크스가 노동자에게 부여한 역사적 사명은 엉뚱하게 '당'으로 옮겨 가 훗날 무수한 논쟁과 비극을 불렀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철학자 신분을 회복시켜야만 그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전면적일 수 있고, 보다 깊어질 수 있다." "마르크스가 묘사한 '소외' 이전의 인류 상태는 역사의 환상이 아니라 철학적 전제였다. 그것은 현실을 재료로 하여 거슬러 올라간 철학적 사유로서, 연역해 낸 논리 명제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나오는 이상적이고 전면적인 '이데아'에 근접해 있다. 이 이상적인 상태에 대한 추론은 중요한 좌표축이자 우리에게 현실을 검증할 수 있는 기준점으로서 우리가 이를 근거로 현실을 비판할 수 있게 해 주고, 노동자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을 변화시킨다."(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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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이후 사이언스 클래식 14
스티븐 J. 굴드 지음, 홍욱희.홍동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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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자연 선택 이론

1. 생물들은 서로 다르고(vary), 이러한 변이(variation)는(적어도 그 일부는) 자손들에게로 유전된다.

2. 생물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낳는다.

3. 평균적으로 환경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가장 강하게 변화한 자손이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린다. 따라서 자연선택은 환경이 선호하는 변이를 각 개체군(population)에 축적한다.

4. 변이는 임의적이며, 적어도 적응에 대한 지향성이 없다. 즉, 사전에 어느 한 방향으로 설정된 목표란 없다.

5. 변이는 새로운 종(種)의 기초를 세우는 데 필요한 진화적 변화보다 규모가 작아야 한다. 변이를 겪은 새로운 종이 일시에 출현하지는 않는다.


1부 다윈주의


"진화론은 이미 19세기 전반에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이단이었다. 다윈은 자신의 이론과 다른 일체의 진화론에 관한 주장들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타협을 모르는 철학적 유물론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다른 진화론자들은 생명력, 진화의 방향성, 유기체의 노력, 그리고 정신의 본질적인 불가분성 등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이 창조가 아닌 진화를 통해서 역사하셨다고 주장하면서 전통적인 기독교와 타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다윈은 오로지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만을 거론했다. 다윈은 자신의 노트에서, 그가 명명했던 이른바 '요새 그 자체(the citadel itself)'─인간 정신─을 비롯한 모든 생명 현상에 자신의 유물론적 진화론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만약 정신이 인간 두뇌의 산물 그 이상이 아니라면, 하느님이란 두뇌의 환상이 빚어 낸 또 하나의 환상 이외에 도대체 무엇일 수 있겠는가?"(27)


"다윈이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면서 진화라는 용어를 피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먼저, 그 시기에는 진화라는 용어가 생물학에서 이미 발생학적으로 전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1744년 스위스의 생물학자 알브레히트 폰 할러는, 난자 또는 정자 안에 담긴 채로 미리 형태를 갖추고 있는 이른바 전성(前成)의 축소형 개체로부터 배(embryo)가 자라난다는 이론을 설명하는 데 진화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둘째, 당시 일상어로서의 진화는 진보 개념과 확고하게 묶여 있었다." "다윈은 중력과 같은 물리 법칙의 불변성과─〈이 지구는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회전을 계속하는 동안 지극히 단순한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경이로운 형태로 끝없이 진화해 왔으며,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생물 발달의 변이성을 대비시켰다. 여기서 다윈은 우리가 지금 진화라고 부르는 것과 진보의 관념을 등식화하려는 일반적인 견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42-4)


"나는 다윈이 자연 선택과 동물 육종을 비유한 것이 정당했다고 주장한다. 인위 선택에서는 한 육종가의 바람이 어느 생물 집단의 '환경 변화'를 의미한다. 이 새로운 환경에서는 일정한 형질들이 선천적으로 우월하다. 자연에서의 다윈적 진화도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생물의 반응을 뜻한다." "내가 알고 있는 비다윈적 이론들에는 예외 없이 자연 선택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자연 선택은 그 이론들 속에서 부적자들에 대한 사형 집행인 또는 망나니로서의 부정적인 배역을 맡고 있다(반면에 그들은 획득 형질의 유전이나 환경에 의한 유리한 변이의 직접적 유도 등 비다윈적인 메커니즘에 의해서 적자가 출현한다고 주장한다). 다윈주의의 본질은 자연 선택이 적자를 창조한다는 주장에 담겨 있다. 변이는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그 방향은 임의적이다. 그것은 소재를 공급해 줄 뿐이다. 자연 선택은 진화라는 변화의 방향을 지시한다. 그것은 선호되는 변이 종들을 보전하고 점진적으로 적응도를 쌓아 올린다."(54-7)


"다윈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업적을 남겼다. 그는 진화가 실제로 일어났음을 과학계에 확신시켰고, 그 메커니즘으로 자연 선택 이론을 제시했다.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진화를 진보와 동일시했으므로 다윈의 첫 번째 주장이 동시대인들이 구미에 훨씬 잘 맞았다는 사실을 나는 기꺼이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다윈은 자신의 생전에 두 번째 주장을 인정받는 데에는 실패했다. 자연 선택 이론은 1940년대에 와서야 승리를 거뒀다. 내가 보기에 그 이론이 빅토리아 시대에 인기를 얻지 못했던 이유는 진화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 전반적인 진보가 내재되어 있다는 관점을 부정했던 데에 있다. 자연 선택은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국지적 적응(local adaptation) 이론이다. 거기에는 완성의 원리가 없으며, 전반적인 개선의 보장도 없다. 요컨대 자연에 내재하는 진보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당시의 정치 풍토에서 그의 이론은 전반적인 찬성을 얻을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58)


2부 인류의 진화


"어떤 두 동물 종이 형태학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지만 자연 상태에서 각기 독립적으로 생활하며 그들 사이에 교배의 가능성이 없을 때 진화 생물학자들은 그들을 '자매 종(sibling species)'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자매 종들은, 분명한 형태학적 차이가 있지만 동일한 속(屬)에 속하는 두 종, 즉 동속 종(congeneric species)들보다는 유전적인 차이가 훨씬 적다. 그런데 침팬지와 인간은 자매 종이 아닌 것이 명백하다. 또 종래의 분류학적인 관행을 따르자면 인간과 침팬지는 동속 종도 아니다. 하지만 킹과 윌슨은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서 나타나는 전반적인 유전적 차이가 자매 종들 간의 평균적인 차이보다 작고 또 지금까지 연구된 어떤 동속 종들 간의 차이보다도 훨씬 더 작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전반적인 유전자 차이가 그렇게도 작다면 형태와 행동에 있어서 그처럼 큰 차이가 나는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69-70)


"여기서 우리는 어떤 종류의 유전자들은 다른 유전자들보다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단 하나의 형질이 아니라 생물 전체에 두루 영향을 준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간 세포와 뇌 세포는 모두 동일한 염색체와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다. 그것들 사이의 현격한 구조적 기능적 차이는 유전자 구성의 차이가 아닌 발생 과정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면서도 각각의 세포가 서로 다른 형질을 나타낼 수 있으려면 세포 분화 과정에서 여러 다른 유전자들이 제각기 다른 시간에 발현되고 또 정지되어야 한다." "유전 시스템의 상당 부분은, 어떤 특정한 형질을 결정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형질이 제때에 발현되도록 하는 프로그램의 조정과 통제를 담당하고 있다. 지금 여기서는 발생 과정에서의 시간 조절을 담당하는 유전자들을 조절 시스템이라 부르고 있다. 조절 유전자 단 하나의 변화라도 생물체 전반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분명하다."(70-1)


"종 분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것은 진화론에서 끊임없이 다루어지는 뜨거운 논쟁거리로, 대다수 생물학자들은 '이소성 이론(allopatric theory)'에 기우는 경향이 있다. '이소(異所)'는 '다른 장소'라는 뜻이다. 에른스트 마이어가 대중화한 이소성 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종은 그들의 모집단으로부터 격리되어 조상 영역의 주변에 위치하는 지극히 작은 개체군에서 나타난다. 그처럼 소규모 고립 개체군에서의 종 분화는 진화의 기준에 따르면 아주 빨리 진행된다. 지질학적으로 100만분의 1초라고 할 수 있을 몇백 년 또는 몇천 년의 기간이 소요될 뿐이다. 중대한 진화는 그처럼 작고 고립된 개체군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유리한 유전적 변이는 재빨리 그들 속으로 퍼져 들어갈 수 있다." "그와는 반대로 중앙에 자리잡은 대규모 개체군에서는 유리한 변이가 아주 느리게 퍼져 나가고 대부분의 변화는 잘 적응하고 있는 개체군으로부터 집요한 저항을 받는다."(83)


"진화가 거의 매번, 중앙에 있는 대규모 개체군에서 일어나는 느린 변화보다 오히려 주변부의 고립된 작은 개체군에서 일어나는 급속한 종 분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화석 기록은 어떤 형태를 보여 주어야 할까? 화석 기록에서 종 분화 현상 그 자체를 탐지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것은 주류 조상들의 영역에서 멀리 떨어진 지극히 작고 고립된 집단에서 나타나며 그것도 순간적으로 진행된다.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생물 종은 기존 조상들의 영역을 다시 침범해서 독자적으로 중앙의 대규모 개체군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와 만나게 된다. 그것들이 화석 기록으로 남겨지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에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화석 기록으로는 단지 새로운 종으로서 성공을 거둔 중앙 집단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종 자체는 화석 기록에서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하고 거의 아무런 특별한 변화가 없는 상태를 유지하다가 이후 똑같이 빠른 속도로 멸종된다."(84)


3부 생명의 진화


"다윈의 자연 선택은, 진화적인 변화는 적응적이라는 데에 전제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런 변화는 생물에게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반다윈주의자들이 동물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는 진화 사례에 해당하는 화석 기록을 찾아 나선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정향 진화론은 즉각 반다윈주의 고생물학자들을 위한 시금석이 되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진화는 자연 선택이 규제하지 못하는 어느 한 방향으로만 진행된다. 어떤 경향이든 일단 시작되면 설사 멸종에 이른다 할지라도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향 진화론의 유명한 사례로 단연 독보적인 경우가 바로 아일랜드엘크였다. 아일랜드엘크는 몸집이 그보다 작고 뿔도 훨씬 더 작은 동물로부터 진화했다." "그들은 두개골에서 자라나는 외부 돌출물의 무게에 눌려 고개도 들지 못하고 마침내 나무에 걸리거나 웅덩이에 빠져서 목숨을 잃었다."(114-5)


"19세기의 다윈주의자들은 자연계를 무자비한 곳으로 간주했다. 진화적 성공은 전장에서의 승리와 그로써 멸망시킨 적군의 숫자로 가늠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들은 뿔이 포식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고 다른 수컷과 경쟁하는 데에 쓰이는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했다." "뿔이 무기라면 정향 진화의 논리가 호소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만일 뿔의 일차적인 기능이 무기가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현대에 들어서 학자들은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여 진화 생물학에 대단히 중요하고 흥미로운 개념들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전에는 실질적인 무기라든가 암컷에 대한 과시 장치로 판단되었던 많은 구조물들이 수컷끼리의 의식적인 싸움(ritualized combat)에 사용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한 구조물들은 수컷들이 쉽게 알아차리고 복종하도록 만드는 지배의 위계질서를 확립해서 실제적인 싸움(그에 따르는 부상과 생명의 손실)을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119-20)


"그 뿔이 적응에 유리했다고 한다면 아일랜드엘크가 (적어도 아일랜드에서는) 멸종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일랜드 엘크는 약 1,000년간 지속된 알레뢰드 아간빙기에 풀이 많고 나무가 적은 개활지에는 잘 적응했지만, 그 다음으로 찾아왔던 혹한기의 아북극성 툰드라(subarctic tundra)와 마지막 빙하가 물러간 이후 나타났던 울창한 삼림에는 제대로 적응할 수 없었다. 멸종이란 거의 모든 생물 종들이 맞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대체로 그 원인은 그들이 변화하는 기후 조건이나 경쟁의 조건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그 어떤 동물도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구조를 발달시키지는 않지만, 어느 한 시점에는 유용했던 구조가 이후의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항상 유용할 것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고 선언한다. 아일랜드엘크 역시 앞서 이룩했던 성공의 희생자였을 것이다. 무릇 세상의 모든 영광이 그러하듯이(Sic transit gloria mundi)."(121-2)


"인간은 하느님을 자기 형상에 따라 창조했다. 이후로 특수 창조설(the doctrine of special creation)은 우리 인간이 직관적으로 이해한 그 어떤 적응이라도 그것을 설명해 내는 데 실패한 적이 없다." "만약 모든 생물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도록 그렇게 명백하고도 탁월한 기법으로 설계되었다면 자연 선택론은 결코 특수 창조설을 대체하지 못했을 것이다. 찰스 다윈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에 완벽한 지혜로 만들어진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형태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원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리로 남아 있다. 진화에 의한 적응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예들은 인간의 직관으로는 특이하거나 기괴해 보인다. 과학은 '조직화된 상식(organized common sense)'이 아니다. 과학이 우리를 열광하게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직관이라고 부르는 오랜 역사를 지닌 인간 중심적 편견에 대항하여 막강한 이론들을 적용함으로써 우리의 세계관을 재구성한다는 점이다."(123-4)


"예를 들어, 처녀 생식을 하는 애벌레형 혹파리는 전형적인 r환경에 살고 있다. 버섯은 수가 적고 제각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자그마한 파리로서는 일단 찾아내기만 하면 먹이는 넘치도록 풍부해진다. 그러므로 혹파리들이 새로 발견한 버섯을 이용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개체군을 번식시킨다면 선택적인 이점을 갖게 된다. 번식 개시 연령을 10퍼센트 앞당기면 출산력은 100퍼센트 증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혹파리들은 조기 번식과 지극히 짧은 수명이라는 놀라운 적응성을 가지도록 진화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혹파리들은 먹이 자원이 일시적으로 과잉되는 전형적인 r환경 속에서 최고의 r전략가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애벌레 상태에서 번식을 시작하고, 부화하자마자 그들의 몸 안에서 다음 세대를 키워 내기 시작한다. 그러한 예로 버섯혹파리의 처녀 생식형 r전략가들은 단 한번의 탈피로 완전한 애벌레가 되어 번식을 하며, 단 5일 동안에 많게는 38세대를 거친다."(128-9)


# 두 가지 생존 전략

1 r선택 : 식량 공급원이 불안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물 종이 모든 힘을 번식에 투입하도록 진화한 방식

2 K선택 : 비교적 안정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 종이 정밀하게 조율된 소수의 자손을 낳아서 기르는 방식


"대체로 자연의 역사는 생물들이 다른 생물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각기 다르게 적응해 가는 이야기가 큰 줄거리를 이룬다. 어떤 개체들은 숨기를 잘하게, 어떤 종들은 맛이 없게, 또 어떤 종들은 바늘이 있거나 두꺼운 껍질을 둘러쓰고 있도록, 심지어 어떤 종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근친 종과 눈에 띄게 비슷한 모양이 되도록 진화하기도 한다. 그 목록을 만들자면 끝이 없으므로 우리는 자연의 다양성에 놀라워하며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15년 또는 20년 주기로 집단 개화하는) 대나무 씨앗과 (땅속에서 애벌레로 지내다 13년 혹은 17년을 주기로 동시에 출현하는) 매미들 역시 그런 비상한 전략을 구사한다. 그들은 두드러지게 드러나서 쉽게 잡아먹힐 수 있지만, 너무 띄엄띄엄, 또 일시에 엄청난 수가 나타나기 때문에 포식자는 그들을 한꺼번에 먹어 치울 수가 없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이런 방어 수법을 가리켜 '포식자 포만(predator satiation)'이라고 이름 붙였다."(138-9)


"우리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구조와 행동을 진화의 관점에서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혹파리를 인용했다. 그렇지만 그런 예와는 전혀 궤를 달리 해서 '지극히 완전한 기관들'은 그 고유한 가치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것들은 오히려 어떻게 해서 그것이 발달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더 어려울 지경이다. 다윈의 이론에 의하면 복잡한 적응은 단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 선택은, 보다 적응력이 뛰어난 생물이 갑자기 나타날 때마다 부적자를 제거하는 순전히 파괴적인 작업만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자연 선택은 다윈의 이론 체계 안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자연 선택은 최종 산물의 한 부분으로서만 의미를 지니는 요소들을 연속적으로 결집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 중간 단계들이 점진적으로 축적됨으로써 적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련의 합리적인 중간 형태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144-5)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대 진화학자들은 '전(前)적응(preadaptation)'이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가령 물고기의 지느러미는 어떻게 해서 땅 위를 걷는 사지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 대부분의 물고기들이 가지고 있던 지느러미는 가느다란 가시들이 나란히 배열해 있는 구조여서 땅 위에서는 동물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강바닥에 살았던 민물고기의 특별한 한 무리─인간의 먼 조상들─가 강력한 중심축에 방사상 돌기 몇 개가 부착된 지느러미를 진화시켰다. 놀랍게도 그것은 땅 위의 발이 될 수 있도록 전적응되어 있었지만 당시에는 오로지 물속의 목적에 적합하도록 진화된 기관에 불과했다. 아마 그것은 지느러미의 중심축을 민첩하게 회전시켜 물밑을 기어다니는 데 그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간단히 다시 정리하자면 전적응의 원리는 어떤 구조물이 형태를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그 기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150-1)


4부 생명의 역사


"식물 아니면 동물. 생물의 다양성을 바라보는 인간의 기본적인 시각은 이 이분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땅 위에 사는 큰 동물로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지위가 낳은 편견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이제 생물의 가장 근본적인 구분은 '고등' 식물과 '고등' 동물 사이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구분의 커다란 획은 단세포 생물들 사이에 그어진다는 것이다." "박테리아와 남조류(blue-green algae)에는 고등 세포의 내부 구조물, 즉 '세포 기관(organelle)'이 없다. 그들은 세포핵, 염색체, 엽록체, 미토콘드리아(고등 세포의 '에너지 공장') 등을 갖지 않는다. 그러한 단순한 세포들을 원핵생물(prokaryotes, '알맹이' 또는 '중핵'이라는 뜻의 그리스 어 'karyon'에서 비롯된 단어로 대략 '핵 이전before nuclei'이라는 의미를 갖는다)이라 부른다. 세포 기관들이 있는 세포는 '진핵생물(eukaryotes, 진실로 핵이 있는)'이라고 한다."(158-60)


"본질적으로 단세포 생물인 원핵 세포와 단세포 생물이지만 핵을 갖는 진핵 세포를 갈라놓기 위해서는 가장 윗단계의 분류학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단세포 생물들 사이에 2개의 생물계가 확립되었다. 우리는 이제 원핵생물(박테리아와 남조류)을 모네라(Monera)라고 하고, 진핵생물들을 원생생물(Protista)이라고 해서 두 생물군을 구분한다." "휘태커가 주장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다세포 생물을 구성하는 3개 생물계는 형태학적인 분류로서뿐만 아니라 생태학적 분류로서도 합당하다. 이러한 분류는 지구상에서 행해지는 생존의 세 가지 주요한 방식을 식물(생산), 균류(환원), 동물(소비)로써 잘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 인간의 약점인 자만심의 관(棺)에 또 하나의 못을 박아 두고자 하는데, 주요한 생명 순환은 생산과 환원으로 충분히 운영될 수 있다는 점을 서둘러 밝히는 바이다. 이 세상은 소비자들 없이도 얼마든지 잘 유지될 수있다."(162-3)


# 5개의 생물계

1 단세포 생물 : 원핵생물 - 진핵생물

2 다세포 생물 : 식물 - 균류 - 동물


5부 지구의 역사


"18세기 초의 지질학은 격변론자들(catastrophists)─지질학적 기록을 성서 연대기의 엄격한 틀 속에 압축해 놓으려 했던 신학적 변증론자들─의 독점적 무대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변화 양식 사이에는 심각한 불일치가 있다고 상상했다. 그들은 현대의 역사는 마치 물결이나 강물의 작용과 마찬가지로 느리고도 점진적으로 진행된다고 보았다. 그와는 달리 과거의 사건들은 돌발적이고 대규모적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고서야 어떻게 그 수많은 사건들이 불과 몇 천 년 속에 포함될 수 있겠는가? 하룻밤 사이에 산맥이 솟아올랐고 일시에 깊은 계곡들이 입을 벌렸다." "1830년 자신의 혁명적인 저서 『지질학 원론』을 출간한 라이엘은, 시간에는 경계가 없다고 대담하게 선언했다. 이 근본적인 제약을 내버림으로써 그는 (자연법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균일론(uniformitarianism)'─지질학을 과학으로 가다듬은 학설─의 철학을 옹호했다."(210-1)


"라이엘은 자신이 타도해야 하는 대상으로 가공의 허수아비를 내세웠다. 1830년에 이르자 과학계의 진지한 격변론자들 중 어느 누구도 지구의 대격변이 초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라거나 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라는 주장을 믿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러한 관념을 옹호하는 비전문인들은 많았고 과학을 흉내 내던 일부 신학자들 역시 변호하고 나섰다. 과학으로서의 지질학이 그들을 물리쳐야만 하는 상황에서 라이엘의 허수아비는 누가 타도의 대상인지를 분명히 해주었다." "지구의 나이가 6,000년에 불과하다면 지질학적인 기록을 그처럼 짧은 기간에 압축해 넣기 위해서 격변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 반대가 반드시 진실인 것도 아니다. 격변설에 대한 믿음이 반드시 지구의 나이를 6,000년으로 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는 나이가 45억 년 또는 1,000억 년이라 해도 여전히 급격한 속도로 산맥을 형성하고 평야를 만들 수 있다."(212-3)


"사실 격변론자들은 경험주의적 사고에 있어서는 라이엘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지질학적 기록들은 대격변의 흔적을 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암석들은 일순간에 파열되고 일그러졌으며 모든 동물상이 일시에 멸종되기도 했다. 이처럼 뚜렷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라이엘은 상상력을 동원했다. 그는 지질학적 기록들은 지극히 불완전하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는 잇으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논리를 삽입하여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격변론자들은 맹목적인 신학적 변증론자들이 아니라 그 시대의 콧대 센 경험주의자들이었다." "대다수의 지질학자들은 자신들이 전공하는 과학에서 라이엘의 균일론이 비과학적인 격변론을 꺾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노라고 말하고 싶어 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 지질학은 사실상 2개 학파─라이엘의 독창적이고 엄격한 균일론과 퀴비에 및 아가시의 과학적 대격변론─의 균등한 혼합체라고 할 수 있다."(213-6)


6부 자연에 대한 오만과 편견


"모양은 그대로인 채로 단순히 커지기만 한다면 어떤 물체든 상대적으로 표면적이 계속 줄어들게 된다. 부피는 길이의 세제곱(길이X길이X길이)으로 늘어나는 반면에 표면적은 제곱(길이X길이)으로만 증가하기 때문에 이런 감소 현상이 일어난다. 바꿔 말하면 부피는 면적보다 더 빨리 늘어난다. 이런 점이 동물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에 따라 결정되는 많은 기능들이 몸 전체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줄어드는 표면적을 해결하는 한 가지 방안이 크고 복잡한 생물의 점진적인 진화에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바로 내부 기관의 발달이다. 근본적으로 허파는 기체 교환을 위하여 표면적이 무척 복잡하게 만들어진 주머니이며, 순환계는 대형 동물의 경우 체표면에서의 직접적인 확산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내부 공간에 물질을 전달하기 위한 기관이다. 인간의 소장에 있는 융모(villus)는 음식물을 흡수하는 표면적을 넓히기 위한 것이다(작은 포유류는 융모가 없고 또 필요하지도 않다)."(244-5)


"작은 동물들은 그들의 작은 몸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제약을 받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크기 감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작은 동물들에게는 세상이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 인식하기 어렵다. 몸체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표면적이 아주 작기 때문에 우리는 몸무게에 작용하는 중력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러나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이 아주 높은 소형 동물들은 중력의 영향을 사실상 무시한다. 그들은 표면력(surface force)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의 경험과는 전혀 무관한 방식으로 그들의 환경이 주는 쾌감과 위험을 판단한다. 곤충이 자유자재로 벽을 기어오르거나 연못 위를 걸어다니는 것은 기적이 아니다. 그들을 아래로 끌어당기는 미약한 중력의 힘은 표면 접착력에 의해 쉽사리 상쇄된다. 벌레 한 마리를 지붕에서 내던지면 표면에 작용하는 마찰력이 중력을 충분히 능가하기 때문에 두둥실 떠서 사뿐히 내려앉는다."(246)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큰 극소수의 동물에게만 관심을 집중해 왔기 때문에 인간의 크기에 대해 왜곡된 관념을 갖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호모 사피엔스는 그다지 크지 않은 동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들 중 하나이며 지상에 사는 99퍼센트 이상의 동물 종이 인간보다 작다. 인간이 소속되어 있는 영장목에는 190종의 동물이 있는데 인간보다 몸집이 큰 종은 고릴라밖에 없다. 지구의 지배자로 자처하면서 인간은, 스스로를 고귀한 지위에 도달할 수 있게 한 특징들을 목록으로 작성하는 일에 커다란 관심을 보여 왔다. 나는 사람들이 인간의 두뇌, 직립 자세, 언어 발달과 집단 수렵을 곧잘 그 예로 들면서도 진화의 지배 요인으로 인간의 큰 몸집을 거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사실에 늘 충격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인간의 큰 몸집은 (수십억 개의 뉴런이 들어있는 두뇌에서) 자기의식이 가능한 지능을 발달시킬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253-5)


"인간의 기술과 행동은 자신의 크기에 꼭 맞게 조율되어 있다. 인간의 키가 지금의 2배로 커진다면 공중에서 떨어질 때의 운동 에너지는 16배 내지 32배로 증가하고 원래의 다리로는 늘어난 몸무게(8배나 된다)를 도저히 지탱할 수 없게 된다. 2미터를 훨씬 넘는 키였던 거인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에 죽거나 관절과 골격 이상으로 일찍 불구가 되었다. 인간의 키가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몽둥이를 휘둘러 큰 짐승을 잡을 만한 힘을 낼 수가 없다(운동 에너지는 16배 내지 32배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과 화살에 그것을 움직일 만큼의 운동량을 가할 수 없고 원시적인 도구로 나무를 베거나 쪼갤 수도 없으며 곡괭이와 끌을 사용해서 광물을 캐낼 수도 없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가 그 모든 일을 행할 수 있는 그런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는 인간의 크기가 인간의 활동을 제한했고 크게 보아서 인간의 진화를 규정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을 따름이다."(256)


7부 사회 속의 과학


"우리는 과학의 진보가 미신과 편견을 몰아낸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1890년에 브린튼은 흑인들이 유아기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열등하다고 말했다. 브린튼은 자신의 인종 차별주의를 반복설과 관련지었다. 반복설이란 개체가 태아기와 유아기의 성장 과정에서 조상들의 성인 단계를 되풀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각 개체는 발달 과정에서 그 계통수(family tree)를 소급해 올라간다는 신념을 가리킨다(반복설의 지지자들은 인간 태아에게서 나타나는 새열(gill slit, 한 줄로 배열된 작은 구멍들로 아가미가 형성되기 전(前) 단계의 구조물)이 인류의 먼 조상이 되는 물고기의 성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종 차별주의적인 해석에 의하면 백인 어린이들은 '하등' 인종들의 성인에 해당하는 지적 단계를 통과해서 그 이상의 단계로 나아간다). 반복설은 19세기 말엽 인종 차별주의의 무기고 속에 자리잡은 대표적인 두세 가지 '과학적' 논리들 중 하나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302)


"다윈의 이론을 대중화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헤켈은 진화론이 사회적인 무기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진화(evolution)와 진보(progress)는 같은 편에 속하며 그것들은 과학의 찬란한 깃발 아래 도열해 있다. 그와는 달리 계급 제도의 검은 깃발 아래에는 영적인 예속과 허위, 이성의 결핍과 야만성, 미신과 퇴화가 모여 있다······. 진화론은 진리를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포병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마치 대포의 연속 사격 앞에서 그러하듯이, 모든 등급의 이원론적인 궤변은 모조리 다······ 그 앞에서 쓰러지고 만다.〉 반복설은 헤켈이 크게 애용한 논리였다(그는 이 논리에 '생물 발생 법칙(biogenetic law)'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라는 명제를 새로이 만들어 냈다). 그는 이 명제로 특별한 신분을 주장하는 귀족을 공격하고 영혼 불멸을 비웃곤 했다. 그러나 헤켈과 동료들은 북유럽 백인들의 인종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데에도 역시 반복설을 끌어들였다."(305-6)


"반세기 동안 반복설 주장자들은 인종 차별의 '증거들'을 꾸준히 수집했다. 그 모든 증거들이 '하등(lower)' 인종의 성인은 백인의 어린아이와 같다고 하는 논리를 지지했다. 그런데 반복설이 일거에 무너지자 인간 유형 성숙설 지지자들이 똑같은 자료를 들고 나왔다. 그들이 객관적으로 자료를 재해석했다면 '하등' 인종들이 우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유형 성숙설의 초창기 지지자였던 해블록 엘리스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인류의 진보는 청춘의 진보였다.〉 이 새로운 기준은 실제로 받아들여졌고, 이후 어린아이에 보다 가까운 민족이 우월성의 휘장을 달게 되었다. 그때까지 쓰였던 오래된 증거들은 완전히 폐기되었으며 볼크는 백인 어른이 흑인의 어린아이와 유사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반대 증거들을 찾아다녔다.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이 그는 그런 증거들을 발견했다(무엇이든지 기를 쓰고 찾으면 나오게 마련이다)."(308-9)


# 유형 성숙(幼形成熟, neoteny) :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진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이론


"생물학적 범죄 이론은 별로 새롭다고 할 것이 없지만 이탈리아 법의학자 체사레 롬브로소(1835~1909)는 그 논리에 허구의 진화론적 조작을 추가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선천성 범죄자들은 단순히 미쳤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이전의 진화 단계로 퇴보한 존재이다. 우리의 조상인 원시 유인원들의 유전적 형질들은 오늘날 우리의 유전자 목록에 그대로 남아 있다. 불운한 사람들은 이러한 조상의 형질들을 이례적으로 많이 지니고 태어난다. 그들의 행동은 과거의 미개 사회에서라면 적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범죄라고 낙인찍는다. 범죄자 자신들도 때로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저지르는 까닭에 우리는 선천성 범죄자들을 동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용인할 수는 없다(롬브로소는 범죄자의 약 40퍼센트가 이 선천성 생물학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은 탐욕, 시기, 극단적인 분노 등으로 비행을 저질렀으므로 우발적인 범죄자들이다)."(315)


"롬브로소 학파가 사회에 던진 또 다른 충격 하나를 소개해야겠다. 선천성 범죄자들과 같이 야만인들이 유인원의 형질을 보유하고 있다면, 원시 부족들─'무법적인 하등 종족들'─은 본질적으로 범죄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범죄 인류학은 유럽의 식민지 확장 절정기에 인종 차별주의와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논리를 제공했다." "롬브로소와 그의 동료들이 열성 나치의 원형(原形)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의도적인 책략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과학을 악용하는 이데올로기의 광신자들을 경계하자는 호소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범죄 인류학의 대표들은 '계몽적' 사회주의자이자 사회 민주주의자들로서,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회를 향한 선봉이라고 생각했다." "되돌아보면 이들의 시도는 범죄자의 유전성에 모든 책임을 돌림으로써 사회 개혁을 가로막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319-21)


8부 인간 본성의 과학


"분류학(taxonomy)은 종의 분류(classification)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는 다른 생물들을 나눌 때에는 분류학의 규칙을 제대로 적용하지만,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어야 할 종에 이르면 특별한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종(race)으로 구분한다. 분류학의 규칙에 따라 종을 정식으로 다시 구분하면 이것은 예외 없이 아종(subspecies)으로 불러야 한다. 즉 인종은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들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극히 분화된 종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부색의 차이가 이 변이성의 가장 두드러진 외적 징표라는 관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변이가 사실이라고 해서 반드시 인종을 명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계통 분류학과 종의 기원』에서 에른스트 마이어는 아종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아종 또는 지리적 품종은 종을 지리적으로 나누어서 분류한 것이며 그렇게 분류된 아종들은 저마다 유전자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327-9)


"간단히 요약하자면 통속적 행태학(pop ethology)의 주류파들은 플라이스토세에 사람과(科)의 두 계통이 아프리카에서 생존했다고 주장한다. 그중 하나는 몸집이 작고 텃세를 부리는 육식 동물들로서 나중에 인간으로 진화했다. 다른 하나는 그보다 몸집이 크고 유순한 초식 동물들로 추정되며 후에 멸종되고 말았다. 어떤 사람들은 카인과 아벨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빗대서 우리 조상들에게 동족 살해(fratricide)의 죄명을 씌우기도 한다. 사냥을 선호하게 된 포식적 성향(predatory transition)이 선천적 폭력성의 틀을 확립하고 인간의 텃세 성향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이 다시 유행하면서 전쟁과 폭력의 책임을 이른바 우리의 육식성 조상들에게 떠넘길 수 있다면 얼마나 속 편한 일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회가 모든 인간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데에 철저하게 실패한 책임을 우리 사회의 경제 체제나 정부에 물어야 할 필요가 없게 된다."(339)


"일반인들에게 '유전적'이란 '고정된 것', '어찌할 수 없는 것' 또는 '불변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유전학자에게 '유전적'이란 공통적인 유전자를 바탕으로 친족 관계에 있는 개체들 사이에 나타나는 유사성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환경의 영향이 해결할 수 없는 필연성이나 불변성을 가리키는 의미는 포함되지 않는다. 안경은 시력상의 다양한 유전적 문제를 개선한다. 인슐린은 당뇨병을 억제할 수 있다." "어떤 형질이 나타나는 것은 유전과 환경 사이의 복잡한 상호 작용의 결과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중대한 정치적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다음과 같이 반대파의 표어가 됨 직한 글을 남겼다. 〈인간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사회적 도덕적 효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행해지는 몇 가지 천박한 방법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천박한 짓은 개개인의 행위와 성격의 다양성을 선천적이고 자연적인 차이에 돌려 버리고자 하는 일이다.〉"(348-51)


"칼 폰 린네는 크기와 형태, 손가락과 발가락의 숫자 등 실제 특징들에 따라 인간의 근친 동물들을 정의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에 대해서만은 소크라테스의 경구 〈너 자신을 알라(nosce to ipsum)〉 한마디로 서술을 끝마쳤다." "불행히도 그가 그처럼 고도의 분별력을 발휘하여 제시했던 해결 방안은 심각한 파벌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훗날 대다수 해설자들에 의해서 극도로 왜곡되어 버렸다. 특별한 존재인지 특별한 존재가 아닌지에 관한 논의는 결국 생물적인지 비생물적인지, 또는 양육(nurture)인지 천성(nature)인지에 관한 논쟁으로 변질되었다." "인간은 결국 동물이며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은 인간의 생물학적 잠재력의 범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인간이 동물이라고 해서 우리의 특수한 행동 패턴과 사회 구성 양식이 전적으로 우리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잠재성(potentiality)과 결정론(determination)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355-6)


"나는 생물학적 결정론이 계속해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현상 유지로 인해 가장 커다란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편견을 호도할 목적으로 그것을 이용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되풀이해서 강조하고자 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비슷한 동시에 다른 점이 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 보면 이런 기본적인 진실의 어느 한쪽 편 또는 그 반대쪽 편을 번갈아 가면서 강조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유용하다. 다윈의 시대에는 동물과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나타나 수세기에 걸쳐 해독을 끼쳤던 미신을 타파했다. 이제는, 방대한 잠재적 행동 가능 영역을 보유하는 유일한 동물로서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구분된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이 사회 개혁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본질이 없음을 본질로 하는 존재〉인 것이다."(366-8)


맺음말


"사회 생물학자들은 보편적인 적응성에 대해서 더할 수 없이 확신을 가지고 궁극적으로는 원자론(atomism)을 지지하고 있다. 다윈의 이론에서 본다면 외형상 분할이 불가능한 개체 수준 이하로 환원시키고자 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회 생물학자들은 개체란 유전자들이 그들과 똑같은 유전자들을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서 이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나는 유전자들이 서로 독립되어 있고 분할 가능한 입자들이며 자신들의 개별적인 유전을 목적으로 생물체를 이루고 있는 형질들을 이용한다는, 그런 그릇된 생각에 곤란을 겪었다. 생물 개체는 유전 암호의 독립된 조각으로 분해될 수 없다. 이 조각들은 개체라는 환경 밖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몸체의 어느 한 부분을 구획 짓거나 어느 구체적인 행동 하나하나를 직접 암호화하지는 않는다. 외형과 행동은 서로 투쟁하는 유전자들에 의해 엄격하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또 그것들은 모든 경우에 적응력을 지니고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382-3)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가장 중대한 논쟁은 황금률(aurea mediocritas), 다시 말하면 중용의 원칙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은 경이롭도록 복잡하고 다양하여 가능한 거의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일어난다." "생물의 문제에 대해 깔끔하고 결정적이며 보편적인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연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사실 나는, 정직한 연구라면 어느 곳에서나 그러한 해답을 찾아낼 것이라는 말이 오히려 더 의심스럽다. 우리는 작은 문제에 한해서라면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나는 이 세상에는 왜 길이 25피트(약 7.62미터)의 개미가 존재할 수 없는지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중간 정도의 문제라면 웬만큼은 다룰 수 있다(나는 라마르크설이 설득력 있는 진화 이론으로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참으로 큰 문제들은 풍요로운 자연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변화는 일방향적이거나 무방향적이며 점진적인가 하면 돌발적이고 선택적인가 하면 중립적인 것이다."(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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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존자들
리처드 포티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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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래된 투구게


"투구게는 사실 게가 아니다. 두 종류 모두 가느다란 절지로 바다 밑을 걸어다니는 종류라는 점에서 게의 아주 먼 친척일 뿐이다. 이런 몸마디가 있는 유용한 부속지(附屬肢)를 가진 동물을 절지동물(arthropod : 몸마디로 이어진 다리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이라고 한다. 절지동물은 절지동물문(Arthropoda)으로 분류된다. 절지동물문은 살아 있는 모든 곤충뿐 아니라 거미류, 노래기류, 온갖 종류의 해양 '벌레들'을 포함하는 대단히 큰 동물집단이다. 게는 바닷가재, 새우, 쥐며느리와 함께 갑각류에 속한다. 투구게는 나비와 마찬가지로, 결코 갑각류가 아니다. 투구게에게는 갑각류와 곤충의 공통 특징인 환경을 감지하는 데에 적응된 유연한 더듬이가 없다. 더듬이는 예민한 촉각기관인 동시에 후각기관이다. 투구게는 더듬이 대신에 머리 부속지의 끝이 한 쌍의 유용한 협각(chelicera)으로 변형되어 있으며, 뒤집힌 채 누워 있던 길 잃은 투구게에서도 협각을 볼 수 있었다."(22-3)


"삼엽충은 2억 6,000만 년 전, 세계가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때 멸종했다. 투구게처럼, 삼엽충도 절지동물이다. 즉 마디로 연결된 다리가 있고, 근육과 힘줄이 모두 겉뼈대 속에 들어 있는 동물이다. 그러나 투구게와 달리, 삼엽충은 우리 행성의 생물학적 면모를 일신한 대량멸종 때 살아남지 못했다. 놀랍게도 화석 증거는 리물루스속의 친척들이 삼엽충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고 말한다. 델라웨어 해안에서 밤에 벌어지는 집단 짝짓기 의식의 난장(亂場)은 수백만 년 전에도 일어났을 것이다. 내 귀에는 고생대 때에도 그들이 같은 의식을 벌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곤충과 거미 등 다른 절지동물들이 육지로 올라가는 모험을 감행하기 오래 전에, 혹은 새우와 게와 바닷가재 같은 갑각류가 지금처럼 해양 생태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기 전에, 바다에는 투구게의 친척들이 살았다. 그러니 델라웨어 만에 우글거리는 이 동물들을 원시적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24-5)


"투구게는 피가 잘 엉겨서 다친 부위를 '차단하기' 때문에 출혈로 죽지 않는다. 그리고 피가 파란색이다." "우리의 피의 산소운반 색소는 철 원소를 필수 성분으로 하는 헤모글로빈인 반면, 투구게의 산소운반 색소는 헤모시아닌이라는 구리를 토대로 한 분자이기 때문이다." "후속연구 결과, 투구게의 피가 그람 음성균에 놀라울 만큼 민감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바닷물 1세제곱센티미터에는 이 미생물이 수십만 마리가 들어 있기도 하다." "투구게의 몸의 방어는 변형세포(amoebocyte)라는 한 종류의 보호세포가 맡는다. 이 세포에는 응고를 촉진할 수 있는 과립이 많이 들어 있다. 그람 음성균이 가까이에 있으면 변형세포가 터지면서 과립이 방출된다. 그러면 피가 응고되어 감염이 차단된다. 이제 우리는 투구게가 파이고 구멍이 났음에도 어떻게 비틀거리며 기어다닐 수 있는지를 안다. 투구게는 가장 위험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적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수억 년 동안 간직해왔다."(28-9)


2 발톱벌레 찾기


"발톱벌레(velvet worm)의 학명은 '페리파투스 노바이-제알란디아이'이다. 페리파투스는 썩어가는 소나무 속에서 흰개미와 함께 사는 것이 틀림없다. 사실 그들은 흰개미 방을 뒤지면서 그 작은 곤충을 먹는다. 예민한 '더듬이'로 찾아내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특수한 샘에서 만들어진 끈끈한 점액을 이용하여 먹이를 잡는다. 자연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먹이를 잡는 동물은 없다." "어쨌거나 점액은 단백질이며, 만드는 데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경제성을 고려해야 한다. 나는 어떤 느낌인지 만져본다. 아주 끈끈하다. 흰개미에게는 접착제나 다름없을 것이 분명하다. 발톱벌레와 흰개미 둘 다 햇빛을 피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얇은 '피부'를 통해서 금세 수분을 잃는다. 발톱벌레는 막으로 둘러싸인 액체 주머니에 다름 아니다. 밝은 태양 아래서는 금방 바짝 말라붙을 것이다. 빛이 없고 밀폐된 세계인 썩은 소나무는 상대습도가 거의 언제나 100퍼센트에 달하므로 완벽하게 안전하다."(58)


"미얀마에서 발견된 백악기의 호박(琥珀)에 약 1억 년 전 공룡이 살던 시대의 유조동물이 한 점 보존되어 있다. 이 화석 종은 현생 페라파투스와 매우 흡사하며 그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살았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보다 2억 년 전인, 헬레노도라(Helenodora)라는 놀라울 만큼 잘 보존된 석탄기 화석은 유조동물의 먼 친척이 석탄 늪의 축축한 숲 바닥을 조심스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말해준다. 생명진화의 이 시기에 함께 살던 동물로는 볼품없는 양서류와 아주 초기의 파충류, 최초의 날아다니는 곤충도 있었다. 유조둥물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육지에서 살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다. 다시 2억 년을 더 올라가서 캄브리아기로, 즉 복잡한 동물이 출현한 '폭발적인' 진화가 일어나는 시대로 들어가도 우리는 유조동물의 먼 친척들을 볼 수 있다. 다른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생명의 요람인 바다 밑에서 역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생존자임을 증명했다."(63)


3 끈적거리는 매트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미세한 생물들이 긴 세월에 걸쳐 서서히 층층이 쌓은 둔덕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생태계이다.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덮은 끈적거리는 피부는 살아 있다. 이 매우 얇은 층은 주로 남세균(cyanobacteria)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에는 남세균을 뜯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생물들이 많다. 해변의 축축한 바위 위에 미세하게 삐뚤삐뚤 난 자국을 생각해보라. 그것은 바위 표면을 덮은 영양가 있는 얇은 세균층을 고둥의 섭식기구가 긁어대면서 남긴 자국이다." "그러나 해멀린 풀(pool)이라는 특수하고 따뜻한 세게에서는 뜯어 먹는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스트로마톨라이트의 끈적거리는 표면을 훼손할 고둥이 없다. 남세균을 저녁거리로 뜯어 먹을 물고기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선캄브리아대의 세계를 재구성한다. 생명이 시작된 이래로 수중환경의 상당 부분을 뒤덮었던 고대의 생물학적 건축물을 물어뜯고 긁어대는 해양동물들이 등장하기 이전의 생명이 어땠는지를 보여준다."(92-3)


"생물학 전문용어로 남세균은 원핵생물(prokaryote)이다. 이들은 가장 작을 뿐만 아니라 가장 단순해 보이는 세포를 가지고 있지만─공이나 소시지와 다를 바 없다고 할 만한 것도 있다─자그만치 수백 종에 달한다. 원핵생물은 진핵생물(eukaryote)과 달리 세포 안에 막으로 둘러싸인 세포핵이라는 구조물이 없다. 남세균을 빼고 지금까지 이 책에 언급된 생물은 (필자를 포함하여) 모두 진핵생물이다. 그것은 우리 이야기가 이제 생명체를 조직하는 더 단순한 방식을 다루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원핵생물은 진핵생물보다 먼저 출현했으며, 그것은 그들이 생명의 나무의 줄기에 더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진핵생물이 출현하기 이전에, 남세균이 신참이었고, 샤크 만의 한쪽 구석의 얕은 바다에서 우리의 눈앞에 펼쳐졌던 스트로마톨라이트가 특별한 생존자가 아니라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전형적인 경관을 이루었던 시대가 있었다."(94)


"진핵세포의 핵심 소기관─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 같은 것들─은 원래 자유생활을 하는 세균들이 더 큰 후손세포라는 보쌈 보따리 안에 들어간 결과였다. 그러나 인간의 납치와 달리, 여기서는 모든 참여자들이 혜택을 입었다. 이것을 과학적 용어로 공생(symbiosis)이라고 한다. 이전에 '자유생활'을 하던 세균들이 안전한 새로운 서식지에서 번성했다. 납치로 새롭게 보강된 세포들은 삽입된 새로운 핵심 기능을 이용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식물에서는 포획된 엽록체가 진핵세포라는 안전한 곳에서 광합성을 전담했다. 이제 식물은 태양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번성할 수 있었다. 대조적으로 미토콘드리아는 생명에 화학 에너지를 제공하는 '아궁이'가 되었다. 그것은 생물이 먹고 자라는 데에 핵심적인 기관이다. 복잡한 세포의 기원을 설명하는 그런 이론을 〈내생공생 이론(endosymbiont theory)〉이라고 한다. 여기서 'endo'는 '몸속'의 공생을 뜻한다."(108)


"스트로마톨라이트로 덮인 얕은 바다와 석호가 있는 세계를 상상해보자. 원시 햇빛에 자극을 받아서 매일 수십조 개의 작은 방울로 산소를 내뿜는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수십만 개 늘어서 있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실로 뒤덮인 끈적거리는 표면은 해로운 자외선의 효과를 어느 정도 완화하는 역할도 했다. 우리 모두는 점액질에 감사해야 한다. 이제 이 과정이 수십억 년 동안 계속된다고 상상해보자. 유조동물의 역사보다 6배나 더 긴 세월이다. 그 결과 대기는 바뀌었다. 산소 방울들을 통해서 말이다. 초기 지구에는 산소가 거의 또는 전혀 없었다. 그 공기 자체를 남세균이 바꾸었다. 생명활동을 유지하려면 동물들은 산소를 호흡해야 한다. 그들은 생명의 나무에서 더 아래쪽에 붙어 있는 생물들이 천천히 꾸준히 대기를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 아가미도, 폐도, 파란 피도, 빨간 피도 없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그 끈끈한 둔덕의 자손이다."(110-1)


4 뜨거운 물속의 생명


"알맞은 온천이라면, 단지 몇 종류의 고세균이나 세균만이 무수히 들어 있는 수프가 나올 것이다. 옐로스톤의 황 가마솥(Sulphur Cauldron)에서 사람들은 역겨운 노란 수프처럼 부글거리며 끓는 진흙 웅덩이를 내려다볼 수 있다. 강렬한 황 냄새는 공기를 유독하게 한다. 생명이라고는 전혀 없을 듯한 환경처럼 보인다. 끊임없이 휘저어지는 뜨거운 황 도가니이다. 그러나 이곳은 술폴로부스(Sulfolobus)라는 유명한 고세균의 집이다. 이들은 황화수소라는 유독가스를 먹으며, 그 황은 산화되어 치명적인 황산이 된다. 이 과정에서 고세균은 성장하고 번창하며 분열할 에너지를 얻는다. 고세균 수십억 마리가 저 아래 섭씨 80도인 곳에서 번성하고 있다. 저 수프는 이윽고 ph가 2 이하로 떨어져서 극도로 산성을 띠게 된다. 쇠까지 녹일 정도이다. 동물은 저 수프에서 2초 이상 살지 못하겠지만, 고세균에게는 저곳이 천국이다. 따라서 이 미생물들은 산과 열을 좋아하는, 즉 호산성(好酸性) 호열성(好熱性) 고세균들이다."(137-8)


"생명은 모든 수준에서 화학반응을 토대로 하는데, 이때 세포 내에서 에너지를 운반하는 수단은 아데노신 삼인산(Adenosine triphosphate, ATP)이라는 화학물질이다. 우리 인간의 세포에서 물질대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ATP 덕분이다. 이 사실은 모든 생명이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하나로 엮는 실들은 그밖에도 많다. 신장 인자(Elongation Factor)라는 이름의 유전자도 기나긴 생명의 역사 내내 쓰인 공통의 언어이다. 즉 모든 생물은 그 유전자를 가진다. 거의 끓는 물에서 번성하며,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오래 지구 어딘가에 숨어서 살아온 생물들과 우리가 이런저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질 때마다 놀랍기 그지없지만, 우리 모두는 번성하려면 단백질을 만들어야 하며, 신장 인자는 바로 그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모든 생물이 삶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개입한다."(140-1)


# 생명 영역 분류의 변화 : 원핵생물-진핵생물 → 고세균-세균-진핵생물


"님프 크릭의 언저리, 물이 증기를 피워올리면서 주변의 침엽수림으로 흘러가는 얕은 개울의 바닥은 생생한 녹색 매트로 뒤덮여 있다. 선명한 에메랄드 빛깔이라는 점에서 자연의 다른 녹색들과 다르다. 키아니디움(Cyanidium)이라는 산과 열에 가장 잘 견디는 조류가 만든 색깔이다. 이 조류는 섭씨 50도에서도 살 수 있다. 이 조류는 호열성임에도 철저한 진핵생물이다. 선명한 녹색은 피코시아닌(phycocyanin)이라는 광합성 색소에서 나온다. 물은 더 흘러가서 더 차갑지만 산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웅덩이로 흘러든다. 그곳에는 이동능력을 가진 조류인 유글레나(Euglena)가 우글거린다. 유글레나는 채찍을 휘두르며 움직이는 작은 녹색 소시지처럼 보인다. 근처의 덜 산성을 띤 물웅덩이에서는 남세균과 규조류(조류의 일종)가 엉겨서 복잡한 매트를 짠다. 이처럼 옐로스톤은 드넓은 칼데라 안에 생명의 역사 중 상당 기간을 압축해서 담고 있다."(146)


5 무척추동물 무리


"해면동물문(Phylum Porifera)은 우리 이야기에서 다른 무척추동물보다 더 아래쪽에 끼워진다. 이 장에서 다룬 모든 동물들은 몸의 긴 축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룬다. 이 잡다한 수많은 생물들은 좌우대칭 동물에 속한다. 몸의 왼쪽이 오른쪽의 거울상이기 때문이다. 당신과 나도 좌우대칭 동물이며, 우리는 거슬러올가라면 완족동물, 투구게, 유조둥물, 민달팽이와 공통 조상을 가진다. 그들도 모두 좌우대칭 동물이다. 고둥은 상황이 조금 달라 보이지만, 연체동물의 원시적인 형태도 앵무조개와 딱지조개처럼 좌우대칭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해면동물은 그런 제약조건에서 자유롭다. 많은 해면동물은 꽃병이나 찻잔과 비슷한 단순한 모양이지만, 해면동물은 콜리플라워에서 갈라진 촛대, 방석, 빵 껍질에 이르기까지 거의 어떤 형태든 취할 수 있다." "해면동물은 신경계나 위장이 없지만 유성생식을 한다. 몸이 조직과 기관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185-6)


"해면동물을 구성하는 각각의 세포들이 연결되어 먹이를 수확할 수 있는 형태를 이루려면 지탱하는 뼈대가 필요할 것이다. 해면동물은 골편(spicule)이라는 작은 성분으로 이루어진 유달리 아름다운 지탱하는 '뼈대'를 갖추게 되었다." "목욕해면은 미시적인 수준에서 놀라울 만큼 상호연결된 뼈대를 만드는 콜라겐의 일종인 물질로 이루어진다. 그리 놀랍지 않겠지만, 이 물질에는 해면질(spongin)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다른 해면동물들은 덜 유연하다. 많은 무척추동물들이 쓰는 물질인 탄산칼슘으로 골편을 만드는 종류도 있다. 유리로 골편을 만드는 종류도 있다. 진짜 유리는 아니지만, 화학적으로는 똑같은 물질이다. 바로 이산화규소인 실리카로서, 흔히 석영이라고 한다. 해면질 해면 중에서도 뼈대에 실리카 골편을 섞는 종류가 있지만, 그 골편은 유리해면의 골편과 다르다. 유리해면의 '뼈대'는 자연에서 가장 경이로운 구조물에 속한다. 마치 마법 기하학자가 만든 것 같다."(186-7)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해면동물도 바이러스와 세균에 감염된다. 수억 년에 걸쳐 해면동물은 그런 공격에 맞서 내성을 갖추어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껏 번성하면서 우리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을 것이다. 해면동물은 흥미로운 유기 화학물질들이 찰랑거릴 만큼 가득 든 잔과 비슷하다. 그런 화학물질이, 예를 들어 세균 군체의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를 낸다면, '생물학적 활성'을 띤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가 쓰는 항생제는 이른바 슈퍼박테리아(MRSA) 같은 세균에 점점 효력이 없어지고 있으므로, 그런 변화무쌍한 원생생물에 맞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세균의 생장이나 증식을 억제하는 새로운 화학물질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해면동물로부터 의학연구의 대상이 될 만한 물질을 100가지 이상 찾아냈다. 그러니 해면동물은 화학물질 측면에서 잔이라기보다는 풍요의 뿔이라고 할 수 있다."(189-90)


6 녹색의 잎


"후페르지아는 약 3억 년 전 석탄기에 번성한 거대한 나무를 포함한 대규모 식물집단의 후손이다." "후페르지아는 생명의 역사를 더욱 멀리 석탄기까지, 육지녹화가 처음 이루어진 시기로 끌고 간다. 약 4억 2,000만 년 전 실루리아기에 식물은 수십억 년 전에 산소를 내뿜는 광합성이 출현한 이래로 우리 행성의 역사에 가장 주요한 경관의 변화를 일으켰다. 식물은 보호하고 지탱해주는 물속을 떠나서 희박한 공기 속으로 이동했다. 그 이주는 유례없는 결과를 낳았다. 이 전환이 일어나자 동물들이 뒤따라 이주할 수 있었고, 크고 작은 생물들이 무수한 육상생활의 가능성을 탐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가장 중요한 점은 후페르지아가 관속식물이라는 것이다. 줄기 안에 물을 운반하는 빳빳한 관(물관)이 있다는 뜻이다. 물관은 육상식물이라는 지위를 얻는 데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기계공학적 성과물이다. 물관이 없다면 육지에 사는 식물은 말 그대로 풀썩 쓰러질 것이다."(199-200)


"식물의 육지정착은 '되먹임 고리(feedback loop)'라는 다소 과장된 표현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즉 분해되는 유기물이 암석과 상호작용하여 토양을 만들고, 그 토양은 더 왕성하게 식생이 자랄 수 있도록 했다. 식물은 흙을 만들고 흙은 식물을 키웠다. 설령 화석 기록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세균과 균류도 이 과정에 관여했을 것이 분명하다." "셀룰로오스를 분해하고 흙을 만드는 일을 돕는 그들의 능력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육지정착의 초창기에도 반드시 필요했다. 진화에서는 그런 소리 없는 생존자가 계속 버티는 것이 새로운 돌파구 못지않게 중요했다. 균류와 뿌리는 처음부터 얽혀 있었을지 모른다. 균사는 최초의 식물 뿌리를 감싸서 오늘날 우리가 균근(菌根)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었다. 이 결합을 통해서 균류는 자라는 식물에 질소와 인산염을 제공하고 그 보답으로 당분을 얻는다. 그것은 가장 친밀한 형태의 공생을 이룬다."(203)


"개화식물의 다양화는 우리 행성의 생명을 가장 풍요롭게 만드는 출발점이 되었다. 우리는 어떤 창의력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문명이나 문화의 '개화(flowering)'라는 말을 쓰며, 그 비유는 적절하다. 꽃이 기본적으로 꽃가루의 유전정보를 전달하여 교차수분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단순한 기구라면, 그 단순한 주제의 무수한 변주는 끝없는 경이의 원천이 된다. 우리는 꽃이 진화하기 전에도 곤충이 꽃가루를 운반하는 일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지만, 꽃이 출현했을 때 발명의 상호발전이 촉발되었다. 꽃들은 꽃가루 매개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꽃가루 매개자들은 점점 더 헌신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화석 기록은 백악기 말의 대량멸종 이후에 나비와 벌이 폭발적으로 진화했다고 말한다. 이 시기는 더 따뜻한 위도에서 속씨식물이 (대체로 침엽수를 비롯한) 겉씨식물을 대체한 시기이기도 했다."(232-3)


7 어류와 도롱뇽


"오스트레일리아 폐어의 배아발생 과정은 척추동물의 진화의 역사를 알려줄 단서를 제공한다. 폐어는 실러캔스와 더불어 육기어류(Sarcopterygia)라는 어류집단(강[綱])으로 분류된다. 육기어류(육질의 지느러미를 가진 어류)는 내가 미끈거리를 폐어를 들었을 때 알아차린 것처럼 살집이 있는 신기한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다. 육기어류는 경골어류의 한 강이다. 경골어류에는 육기어강 외에 조기어강(Actinopterygii)도 있다. 조기어류는 농어와 청어처럼 빗살무늬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으며, 약 2만 5,000종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지구의 척추동물 다양성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네 발 달린 육지동물(사지류)이 오늘날 훨씬 덜 눈에 띄는 이전 집단의 한 구성원에게서 유래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느러미는 다리가 되어 육지를 걸었다. 따라서 폐어가 어떻게 발달하는지를 연구하면, 우리 자신의 발달과 유연관계를 상세히 알게 될 가능성이 높다."(241)


"일단 육지로 올라오자, 등뼈를 가진 동물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이 무수히 열렸다." "그린란드와 캐나다 북극지방의 몇몇 지역들에서 나온 화석들이 입증하듯이, 약 3억 8,000만 년 전 데본기 시점에 이르러 적당한 '조상' 어류가 최초로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비교적 잘 알려진 육상 사지류를 낳았다." "지금까지 말한 등뼈를 가진 동물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지극히 명백해서 처음에는 혁신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공통 특징이다. 바로 턱이 있다는 것이다. 학술용어로 말하면, 그들은 유악류(gnathostome)이다. 턱은 진화과정에서 낚아채고 물고 씹고 걸러내고 비벼대고 구슬리는 일을 하면서 계속 존재해왔다. 그러나 턱이 없던 시대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턱은 위턱과 아래턱이 관절로 이어져 있고 조화롭게 움직이는 복잡한 기구이다. 물고기의 턱도 마찬가지이다. 턱을 만들려면 진화가 일어나야 한다. 어류의 역사는 그 일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거슬러올라간다."(246-7)


"칠성장어 같은 턱 없는 물고기도 수억 년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다." "뼈는 수산화인회석(calcium hydroxyapatite)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산(물론 인 원소를 함유한다)이 들어 있으며, 척삭동물 특유의 조직이다. 뼈는 모든 척삭동물이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음을 입증하는 독특한 증거이다. 뼈는 우리의 내부 골조를 이룬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를 떠받친다. 최초의 뼈는 캄브리아기 말, 약 5억 년 전에 출현한 듯하며, 따라서 뼈의 발명은 생명의 나무에서 아래쪽 가지에 끼워진다. 뼈가 없었다면, 어떤 폐어도 육지로 첫 걸음을 내딛지 못했을 것이다. 진화의 역사에서 깨물기를 도입한 이빨도 없었을 것이다. 무악어류 화석은 뼈가 더 취약한 머리를 보호하는 외부 덮개로 출발했음을 시사한다. 뼈가 튼튼한 등뼈를 만들고, 우리가 짐승, 가금, 어류와 동족임을 알아볼 수 있는 표지인 뻐대, 즉 피부 밑의 머리뼈를 제공한 것은 더 나중의 일이었다."(254-5)


# 척삭(notochord) : 신경관과 평행하게 몸 전체에 걸쳐 형성되는 중배엽 세포로 몸을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고등한 척추동물도 배아 때 척삭을 갖고 있다. 


8 피 속의 열기


"가시두더지는 포유동물이지만, 특별한 포유동물이다. 우리처럼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것은 맞다. 짧은 만남을 토대로 얼마나 지능이 뛰어난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온형동물이고 자기보호 본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 가시두더지는 알을 낳는 극소수의 포유동물(단공류, 單孔類)에 속한다. 새끼는 발생 초기단계에서 태어나며, 생물임을 겨우 알아볼 수 있는 매우 작고 꿈틀거리는 존재에 불과하다. 유대류도 미완성 상태의 작은 새끼를 낳기는 하지만, 가시두더지는 캥거류, 웜뱃, 주머니쥐처럼 새끼를 키우는 데에 쓰이는 잘 발달한 주머니가 없다. 또 젖을 분비할 때 외에는 젖샘도 아예 없다." "체온은 포유류 중에서 가장 낮은 섭씨 31-33도이다. 가시두더지가 파충류 상태로부터 '데워지고' 있는 과정에서 멈추었다고 주장해도 그리 과장이 아닐 것이다. 대다수의 포유류와 달리, 가시두더지는 헐떡거리지도 땀을 흘리지도 않기 때문에 과열에 취약하다."(277-9)


"가장 영리하다고 여겨지는 동물, 즉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은 어땠을까? 육식동물, 고래와 친척들, 대형 초식동물, 박쥐를 비롯하여 대다수의 포유동물은 공룡과 그들의 파충류 친척들이 백악기 말에 사라진 뒤에 주된 방산진화를 이루었다. 이 과정을 묘사할 때 '생태적 해방(ecological release)'과 같은 다소 과장된 용어가 쓰였지만, 실상은 포유류가 폭발적으로 분출한 진화적 창의성을 발휘하여 세계의 빈자리를 거의 다 메운 것이었다. 창의적인 발명은 그 뒤로 6,000만 년 동안 진행되었다가 멈추었다가 하면서 계속되었다. 판게아가 쪼개져 생긴 각 대륙에서 연달아 새로운 포유류 집단이 출현하면서 이어졌다. 우리의 진화적 친척들과 우리 자신이 속한 집단인 영장류는 이 방산진화가 이루어질 때 처음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 이 집단이 백악기에 뿌리를 둔다는 것을 시사하는 약간의 화석들이 있으므로, 영장류는 결코 가장 최근에 출현한 포유류가 아니다."(286-7)


9 섬과 얼음


"섬은 취약하다. 격리된 채 진화한 종은 고양이나 쥐나 무성한 잡초가 일상적으로 가하는 위협을 접하지 못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몇몇 섬들은 이미 키니네 덤불과 외래종 검은딸기로 뒤덮여서 훼손되었다. 낯선 자들이 자연의 진화실험을 망친 것이다. 아마도 약 2,000년 전일 텐데, 모험심 많은 폴리네시아인들이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 섬의 원초적인 생물 다양성은 영구히 훼손되었다. 토종 꿀새(honey-creeper)의 황금빛 깃털은 곧 대추장의 화려한 겉옷을 만드는 데에 쓰였다. 더 나중에 온 쥐들은 땅에 알을 낳는 날지 못하는 하와이 토종 새들을 모두 전멸시켰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이 잘못된 지식을 토대로 쥐를 잡겠다고 몽구스(mongoos)를 들여왔고, 몽구스는 토착생물들에게 이빨을 들이댔다. 외래종 나무들이 천천히 자라는 토종 나무숲을 대체했다. 격리된 상태에서 진화가 빚어낸 것들 중 상당수는 바깥 세계와 연결되었을 때 자연선택의 작용으로 파괴되었다."(318)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biophilia)' 개념은 우리 존재의 깊은 현실일 수 있는 인류 종과 자연계의 타고난 결속을 상정한다. 나는 〈인류가 다른 살아 있는 생물들보다 훨씬 더 고상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생물들이 생명이라는 개념 자체를 고양시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인류는 숭고하다〉는 그의 말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한 종의 중요성이 우리 인류가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개념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이 이 특정한 호미닌의 관찰을 통해서만 유효하다는 견해에 동조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생물은 자기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으며, 전기(biography)라는 용어가 이미 인간의 전용물이 된 것이 아니라면, 나는 그 용어를 문자 그대로 쓰고 싶다. 우리는 멸종이 다른 생태계에 끼칠 '손상'을 통해서 종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는 30억 년이 넘는 진화의 산물들을 공리주의 목록으로 서열화할 수 없다."(319-20)


"플라이스토세에 북극의 빙모는 2만 년 전 마지막 최대 빙하기(Last Glacial Maximum, LGM) 때 가장 컸다. 당시 미국은 오하이오 강까지 거대한 빙상으로 뒤덮였고, 영국의 거의 전체와 유럽의 북부도 마찬가지로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였다." "얼어붙은 황무지의 아시아 가장자리에서는 드넓고 추운 툰드라 습지와 초원이 그 환경에 적응한 종들이 행복하게 번성할 특별한 조건을 제공했다. 따라서 빙하기는 온대생물들이 편안히 지낼 만한 더 남쪽으로 그들을 내몰았을 뿐 아니라, 일부 생물들에게는 기회를 준 시기였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물이 빙상에 갇혔기 때문에 세계의 해수면은 대폭 낮아졌다. 그 결과, 마지막 최대 빙하기는 인도네시아 군도와 아시아 사이에 육지 다리가 형성되어 인류가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이주할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아마도 키가 약 1미터에 불과한 플로레스 섬의 작은 인류는 이때 처음으로 먹성 좋은 커다란 뇌를 가진 친척들과 맞닥뜨렸을 것이다."(325)


10 역경에 맞서는 생존자들


"나는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생명의 역사를 드러내는 이 모든 원핵생물, 동물 식물을 〈그저 운이 좋았다〉라고 뭉뚱그려 말하고 넘어가기에는 뭔가 부족하다고 본다. 그들을 전적으로 적응력이 뛰어난 우수한 존재라고 묘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실수일 것이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사실 결코 찰스 다윈의 것이 아니며, 1864년 다윈주의 경제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만든 것이다." "이와 정반대로, 우리는 거의 모든 곳에서 생명의 나무의 낮은 가지에서 살아남은 생물들로부터 과거의 각인을 볼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했듯이, 설령 화석 같은 것이 전혀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진화의 결정적인 증거를 추적할 수 있다. 그것은 유전체에, 그리고 비교해부학과 현생 생물의 발달 과정에 적혀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사실이지만, 한 가지 핵심을 놓치고 있기도 하다. 화석은 언제, 어떻게, 왜 어떤 역사가 일어났는지를 말해주는 증거를 제공한다."(347-9)


"나는 역사의 조류에 따라 이리저리 오가면서 생존자들이 모이게 된 곳을 시간 피난처(time haven)라고 이름 붙이련다. 시간 피난처는 개별 종의 '레퓨지아(refugia)'의 집합이다. 수백만 년이 흐르는 동안 이 종들은 진화적으로 더 젊은 종들과 뒤섞이고 이웃이 되어 함께 살게 되었다. 시간 피난처는 서로 다른 생태계들이 다소 한정된 공간에 꾸려넣어질 수 있는 육지에서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해양세계에서는 플랑크톤 유생을 통해서 새로운 곳으로 퍼지는 종이 많아서 분포영역이 불분명하다." "시간 피난처에 보전된 종들의 역사는 화석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그곳의 종들은 대부분 생명의 나무의 꼭대기에 난 잔가지이다. 시간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에 놓인 시간 피난처에는 옛 사건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줄 종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특히 진정한 영속성에 비추어보면, 인류의 역사가 대단히 짧다는 것을 알려주는 비유로서 말이다."(369-72)


# 레퓨지아(refugia) : 대륙 전체의 기후가 변할 때 비교적 변화가 적어 다른 곳에서는 멸종된 종이 살아 있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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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읽다 - 고전을 원전으로 읽기 위한 첫걸음 유유 고전강의 1
양자오 지음, 류방승 옮김 / 유유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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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전의 의의와 『종의 기원』의 지위


"30쪽짜리 축약본을 읽는 것과 500쪽에 달하는 원서를 읽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보통 축약본에서 접하는 것은 '다윈주의'이지 다윈의 학설이 아니다. '다윈주의'는 단 몇 마디로 요약이 가능하다. 다윈의 복잡한 내용을 단 몇 마디로 설명한다면 '다윈주의'는 얻을 수 있을지언정 다윈의 진정한 사상과 견해는 얻을 수 없다. 여러 가지 축약본을 읽고 종합 정리된 설명을 무수히 축적하더라도 본래의 복잡한 지식을 접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번거로운 일은 이토록 복잡하고 수많은 현상을 축약해 아우르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모든 것이 다 효과적이고 간단한 방법으로 처리되지는 않는다. 결국 우리는 복잡한 것들과 진실하게 대면할 마음의 준비를 갖춰 이 세계에 대한 이해의 기초로 삼는 동시에, 어떤 복잡한 것은 간단한 방법으로 포착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33)


2 종의 변화와 『종의 기원』의 구조


"다윈이 살던 시대까지도 교회나 대다수 사람은 자연은 변화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자연은 하느님의 천지창조 때 창조되었다. 하느님이 이렇게 창조한 자연은 반드시 그분의 섭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자연이 변화한다는 가설을 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아담이 경험하고 기록하고 명명한 자연계는 아담 이래로 기나긴 역사를 거치면서 우리가 오늘날 보는 그것과 반드시 똑같아야 한다." "그러나 '아담이 없어도 에덴 동산은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은 17세기 이후 갖가지 충격을 받으면서 19세기에 끝내 흔들리고 말았다. '자연 불변'의 신념에 충격파를 던진 것은 화석 연구였다. 서양에서는 17~18세기에 화석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는 진지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화석에는 고대 동식물의 생태가 응집되어 있어서 화석을 통해 시간을 보는 것이 가능했다. 5만 년이나 10만 년 전 동식물의 모습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44-5)


"더 큰 충격은 '지리상의 대발견'에서 비롯되었다. 15세기부터 크게 발달한 해상 탐험 및 이와 관련된 지리상의 대발견은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다양한 지역으로 유럽인들을 인도했다. 그 지역에는 모두 유럽에는 없는 새로운 것들이 대단히 많았다."(46) "콜럼버스 같은 항해가를 격려했던 요소로는 모험과 스릴, 부자가 되고 명성을 떨칠 기회 혹은 남들이 가 보지 않은 땅을 밟는다는 기대 외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각 지역 특유의 동식물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이 창조한 세계를 더욱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것이었다. 특히 18세기 이후에는 중요한 원양 항해마다 배에 박물학자가 꼭 함께 탑승했다. 박물학자의 주요 임무는 각지의 표본을 수집하여 새로운 지식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수집한 물건을 유럽으로 가져오면서 18~19세기에 '분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50) 


# 다윈의 네 가지 연구 방법

1. 유추 : 현존하는 생물을 조사하여 과거에 이루어진 종의 변화 상황을 미루어 짐작한다.

2. 배열 : 특정 생물 종을 특수 기관 혹은 신체 기능의 차이별로 분류하여 변화의 양상을 추론한다. 

3. 잡탕 : 각기 취약점을 지닌 여러 종을 한 곳에 모아 이들 사이의 구체적인 연관성을 찾아낸다.

4. 추적 : 현재의 환경에서 쓸모가 없어져 퇴화한 현재 생물 종의 비효율적인 기관을 찾아낸다.


"『종의 기원』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이 두 가지는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서로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다윈은 먼저 독자에게 '종은 변화한다'라는 개념을 설득시키려고 했다. 그는 파급력이 큰 수많은 증거를 나열하여, 독자의 마음 속에 꿈쩍없이 자리잡고 있던 자연관을 흔들어 놓았다. 낡은 자연관에서는 고양이, 개, 호랑이, 토끼 같은 모든 생물 종이 3천 년 전이나 3천만 년 전이나 똑같다. 다윈은 바로 이런 관념을 깨고자 했으며 진화가 사실임을 주장했다." "또한 다윈은 진화의 이치가 무엇이고, 왜 진화하며, 어떻게 진화하는지에 대한 탐구에 나섰다. 그 결과가 '자연선택'이다.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갖가지 변화를 일으킨다. 그 변화는 아무리 미세하더라도 환경과 상호 작용을 거쳐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고착되고 남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생물의 진화를 촉진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다."(61-2)


3 다윈 이전의 진화론


"다윈의 조부인 이래즈머스 다윈은 자신의 저서 『주노미아』에서 종이 변화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해한 종의 변화 방식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用不用說과 비교적 가까웠다. 다윈이 이런 조부의 책을 읽어 보지 않았을 리 만무하고 조부의 영향을 받지 않기란 불가능했다는 점에 주목하자." "오늘날까지도 생물 분류학에서는 '린네의 분류법'을 주로 사용한다. 그런데 린네의 분류법은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다. 라틴어가 그 시대에 학술 공통어였으므로 현재 우리가 쓰는 생물 분류 학명도 모두 라틴어로 되어 있고, 린네의 논문도 처음부터 끝까지 라틴어로 쓰였다. 그렇다면 린네가 분류법 체계를 확립한 가장 중요한 논문은 누가 영어로 번역했을까? 사료를 찾아보니 최초의 영문 번역자는 개인이 아니라 '리치필드 식물학회'라는 단체였다. 리치필드는 다윈의 고향이다. 그리고 '리치필드 식물학회'의 회장은 다름 아닌 이래즈머스 다윈이었다."(86-7)


4 창조론과 생존경쟁: 『종의 기원』 1~3장


"다윈은 물리학과 생물학으로 각각 하느님의 존재를 밝히는 것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창조론자들은 물리학에 근거해, 하느님은 매우 정교한 우주를 창조했고 우주는 법칙에 따라 한 치의 오차 없이 운행하는데 만약 하느님이 부재한다면 우주가 이렇게 정확하게 운행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생물학에도 이를 똑같이 적용하고 이용했다. 생물 사이에 형성된 관계 역시 이처럼 완벽하고 균형을 이루고 있으므로 반드시 하느님이 있어야 이와 같은 생물의 상태를 설계하고 창조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다윈은 이 논증 가운데에서 결정적인 허점을 콕 짚어냈다. 그것은 생태계와 물리계의 가장 큰 차이점이 인간의 역할에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물리계의 질서를 바꿀 능력이 전혀 없다." "반면 다윈이 집비둘기와 사육하는 동물을 먼저 언급한 것은 인력으로 이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102-3)


"멘델의 유전학에서 모든 후대 개체는 전대 개체의 유전 형질을 절반씩 물려받고, 이 절반이 결합되어 하나를 이루게 된다. 멘델의 또다른 중요한 발견은 유전 형질 안에서 '유전형'과 '표현형'의 차이를 명확히 밝혔다는 점이다. 사람의 눈동자 색깔은 다른 신체적 특성처럼 반은 아버지로부터, 나머지 반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는다. 그러나 한쪽 눈은 검고 다른 쪽 눈은 파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전은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유전자 구조는 유전형이 되지만 이 유전형은 오직 한 가지 표현형 인자로 나타날 뿐이다. 다윈은 이런 유전 패턴을 아직 몰랐다. 그는 꼬리가 유달리 긴 비둘기가 다른 비둘기와 교배하면 후대에 태어나는 비둘기는 어떤 것은 꼬리가 길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그러나 다윈은 어지러운 교배 안에서 한 가지 종이 수많은 종으로 번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105-6)


"'종'의 정의는 자연 환경에서 교배를 통해 후대를 생산할 수 있는 생물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 2장에서 〈변종은 종과 구별할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느님이 창조한 것은 동식물의 개체가 아니라 종이다. 다윈은 『성서』와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과 계속 논쟁을 벌이며 분류학 가운데 '종'을 자주 언급했다. 그의 논지는 하느님이 종을 창조했다면 종의 번식은 아담 이래, 혹은 노아 이래로 명명백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곳곳에서 변종을 볼 수 있다. 모든 종에서 변종이 생기고 있으며, 변종이 서로 다른 종 사이에 개입해 어느 한 가지 종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또한 변종은 늘 새로운 종으로 발전하여 언제 그것이 변종이었고 언제 새로운 종이 되었는지를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만약 변종과 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면 이 세계에 얼마나 많은 종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른다."(107-9)


"『종의 기원』 3장에서는 '생존경쟁'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다. 다윈은 생물 개체와 개체 사이 또는 종과 종 사이의 생존경쟁에서 어떤 요소에 특히 주목했을까?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맬서스의 『인구론』의 영향이다." "맬서스가 제기한 개념은 다윈에게 영감을 주었다. 사람과 식량의 관계가 이와 같다면 동물과 그 생존 조건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동물들도 방해 요소가 없다면 기하급수적으로 계속 증가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는 어떤 동물도 이 방식으로 증가하지 않는 것일까? 적어도 부분적인 답은 '경쟁'에 있다. 각 생물 개체의 생존 방법은 맬서스가 말한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생물 개체는 항상 경쟁을 통해서 생존해 간다.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예측한 현상이 자연계에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대다수 개체가 생존경쟁 과정에서 도태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생존경쟁'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힘을 지닌다."(112-4)


5 다윈의 초월과 한계: 『종의 기원』 4~6장


"린네의 분류학이 출현하게 된 이유는 대항해 시대에 신천지가 속속 발견되면서 시간이 갈수록 (라마와 야크 같은) 유럽인들이 전혀 몰랐던 동물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종이 끊임없이 발견되면서 분류 체계는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개별 종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도 쉽지 않았다. 분류해 낸 동물들을 일일이 정의하기란 여간 귀찮은 일 아닌가! 그러자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분류한 동물 배후에 필연적으로 이 종의 본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서서히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기존의 분류 체계로는 점점 더 처리하기 어려워진 데다가 분류하고 기록해야 할 동물이 갈수록 많아지자, 본질과 현상의 '이원론'을 흔드는 이론들이 생겨났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발견되고 기록된 본질 영역의 생물이 1만 종으로 늘어나자 기존의 분류학은 수습할 수 없는 지경까지 팽창하고 말았다."(145-8)


"이전 사람들은 일단 분류를 앞에 두고 생물 개체를 뒤에 두었다. 그러나 다윈은 완전히 새로운 태도를 취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연의 오묘함과 종의 변화 및 이 세계의 유래를 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여겼다. 다윈은 사람들과 정반대 방향으로 생물 세계를 관찰했다. 먼저 개체를 본 다음 그 안에서 종의 집합을 찾아냈다. 철학 용어로 표현하자면 현상학으로 기존의 본질론을 대체한 것이다. 우리는 성급하게 이 동물이 무엇인지 결정하거나 정의할 필요 없이 각각의 단일 개체가 실제로 어떻게 자라는지 관찰하면 그만이다." "본질주의 분류학에서 생물계는 종의 영역이 가장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종마다 저마다의 경계선과 장벽이 있었다. 그러나 다윈의 개념 속에서 생물계는 다윈적인 좌표 체계처럼 각각의 특성을 지닌 개별 생물체가 독립된 위치를 차지했다. 이는 생물계가 무한한 개체로 이루어진 점들로 구성되었음을 뜻한다."(151-2)


"라마르크는 생물이 하등에서 고등으로 진화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라마르크의 도식에서 자연계의 형성은 가장 단순한 생물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서로 다른 환경의 자극을 받고, 일부 기관은 실용성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대대로 유전되어 더욱 복잡하고 고등한 생물이 출현했다. 그러나 라마르크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생물이 정말 가장 하등한 것에서 가장 고등한 것으로 진화했다면 이 세상에는 왜 가장 고등한 생물만이 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물들이 이렇게 많이 존재하는 것일까?" "라마르크는 종이 끊임없이 우수하고 완벽한 쪽으로 변화 발전한다고 여겼지만, 다윈은 동의하지 않았다. 다윈은 종이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기준에서 갈수록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특정한 환경에 점점 더 잘 적응하게 되는 것이고 생존 환경에 맞춰서 완벽해진다고 주장했다. 결코 종이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앞으로만 죽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157-8)


"다윈이 원래 『종의 기원』에서 말한 자연선택은 동일한 종 사이의 경쟁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개념을 라마르크의 진화표 및 라마르크가 주장한 진화 방향과 결합시켜 서로 다른 종 사이의 경쟁으로 바꿔 놓았다. 이는 19세기 후반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의 사회 관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하등 생물일수록 쉽게 도태되고, 고등 생물은 하등 생물을 도태시키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하등 생물을 도태시킬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헉슬리 등이 라마르크의 목적론적 진화표와 다윈의 자연선택을 같이 엮으면서 불변의 진리로 간주되는 새로운 존재론이 탄생했다. 비록 하느님의 의지는 존재하지 않지만 진화론에 따르면 결국 가장 완벽하고 똑똑한 인간이 이 세계를 정복해, 불완전하고 낙후한 모든 종을 없애는 이상적인 상황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에 의하면 불완전하고 낙후한 종은 자연선택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당연했다."(159-61)


6 다윈의 해명: 『종의 기원』 7~9장


# 다윈의 이론에 대한 문제제기들

1. 점진적 진화 이론이 맞다면 초기의 아주 작은 변화가 어떻게 생존에 도움이 되겠는가? 가령, 다른 개체들보다 0.1센티 목이 길어진 사슴이 정말로 생존에 유리한가?

→ 20세기에 이르러 돌연변이설이 점진적 진화를 대체한다.

2. 진화는 우세뿐만 아니라 열세의 측면도 갖고 있지 않은가? 가령, 목이 길어져 물을 마실 때 취약점이 노출되는 기린은 정말로 생존에 유리한가?

→ 생물의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태적인 생태계 안에서 진행되는〉 생물과 생물 사이의 관계이다. 즉, 현재 환경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진화한 것이다.

3. 진화론은 동어반복이 아닌가? 현존하는 생물이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다는 '정해진' 결론에서 생물은 환경에 적응해야 살아남는다는 전제를 끌어오지 않았는가?

→ 근거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 100년간 다양한 실험이 행해졌다.

4. 자기를 희생하는 이타주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 진화는 개체 단위가 아니라 유전자 단위에서 일어난다.


7 인류 문화와 종의 진화


8 진화론의 함정과 영향


"전체적으로 봤을 때 다윈의 위대한 공헌 중 하나는 인간과 동물, 심지어 기타 생물과의 경계선을 허물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이르러 다윈주의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 일어나면서 문화인류학이 태동했다. 문화인류학은 종교와 다윈주의가 인간 이해에 대해 전과 다른 길을 가길 바라는 데에서 출발했다. 종교에서는 인간을 하느님의 숭고한 의지가 반영된 창조물이자 산물로 여긴다. 반면 다윈은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동물성을 감추는지 아는 데 불과할 뿐이며 여전히 동물성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고 격하했다. 문화인류학자들은 새로운 문화 개념을 수립해 인긴과 동물의 차이점을 분석하고, 또 인간이 어떻게 다른 동물의 천성이나 본능을 뛰어넘어 새로운 삶을 개척했는지 설명하고자 했다. 따라서 문화인류학이 세운 기본 가설에서는 인간이 비록 동물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문화를 통해 개조할 수 있는 부분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내세웠다."(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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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사상의 정신
로버트 루이스 윌켄 지음, 배덕만 옮김 / 복있는사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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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사상은 성경적이었으며, 교부시대의 지속되는 업적 중 하나는 언어와 영감 면에서 성경적으로 사고방식을 형성한 것이다. 그것은 교회와 서양 문명에게 성경에 대한 통일되고 일관된 해석을 제공했다. 즉, 이것은 성경의 최초 독자들을 무시하는 해석은 교회의 책도 아니고, 서양 문학, 미술, 음악의 상상력이 풍부한 원천도 아닌, 단지 파편들의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토대로, 기독교 예배의 경험으로부터, 그리고 성경(또한 성경에 대한 초기 해석들)으로부터, 곧 역사, 제의, 문헌으로부터 사고한다. 기독교 사상은 교회 생활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시편 암송 같은 경건 활동으로 유지되고 예배, 특히 정기적인 성찬식 참여로 양분을 얻는다. 이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개념과 관념은 그것들이 가리키는 대상물 자체인 그리스도의 신비, 그리고 기독교적 삶의 실천에 더 깊이 침잠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목적은 이해뿐 아니라 사랑이었다."(22-3)


1 기독교 사상의 토대: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세워진


"최초의 기독교 문헌들은 (복음서나 바울의 서신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작성한 것이다. 하지만 2세기 중반에 이르러 그리스도인들은 의식적으로 외부인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책을 쓴 사람들은 변증가들apologists로 불렸고, 이러한 맥락에서 변증apology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삶과 신앙 방식에 대한 방어와 설명을 의미한다." "최초의 변증가들 중에서 가장 명석한 사람은 2세기 초에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순교자 유스티누스였다." "유스티누스는 기독교를 방어하기 위해 로마 사람들을 대상으로 몇 권의 책을 썼다. 하지만 그는 유대인들을 위해서도 방대한 책을 한 권 남겼다. 기독교 사상가들은 두 종류의 비판자들을 동시에 다루어야 했다. 하나는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적 전통을 대표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가 기원했던 사람들이다. 특히 후자의 성경(그리스도인들이 '구약'이라고 부른 것)을 그리스도인들도 자신들의 성경으로 삼았다."(31-2)


"켈수스가 보기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나타났으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한 역사적 인물 속에 나타난 계시의 문제라는 생각은 하나님의 본성과 모순된 것이었다." "켈수스가 신약성경을 읽음으로써 깨달았듯이, 기독교의 독특한 특징은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사렛 예수의 몸을 통해 이 땅에 내려왔고 인간들이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만일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왔다면, 세상의 근본적인 질서와 구조는 돌이킬 수 없이 방해를 받을 것이라고 켈수스는 말했다. W. H. 오든의 기억할 만한 시구(詩句)는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영원한 존재가 일시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무한한 존재가 유한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은 고정되고 불변한다. 영적 실재는 지상의 삶을 지배하는 강제력에 종속될 수 없다. 켈수스는 이렇게 썼다. 〈만일 당신이 지상에서 대단히 의미없는 어떤 것을 바꾼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뒤집고 파괴할 것이다.〉"(37-8)


"교회사에서 가장 용감하고 독창적인 사상가 중 한 명인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가 켈수수의 『참된 교리』에 대응하여 『켈수스에 대항하여』라는 상세한 반박서를 저술했다." "켈수스는 정신의 고양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은 감각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에서 돌이켜, 일련의 정신적 단계를 거쳐 하나님을 향해 상승해야 한다. 또 다른 비판자의 주장처럼 〈지적인 문제는 지적으로 알 수 있고 감각적인 것은 감각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런 주장에 대해 오리게네스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정신의 고양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적 인물 속에서 인간들을 향해 내려오심으로 시작한다는 주장을 한다. 〈나는 켈수스가 인용한 플라톤의 주장이 고귀하고 인상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로고스)이 모든 인간과 접촉하기 위해 육신을 입었다고 성경이 주장할 때, 성경이 인류를 위해 더 많은 애정을 보여주는지 어떤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38-40)


"오리게네스는 두 종류의 보는 방법을 구별한다. 인간이 물리적 대상을 감지하는 일반적 방법과 하나님을 보는, 곧 아는 영적 방법이다. 〈육체적인 것을 보기 위해선 그들이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오직 〈사물에 집중하는 눈〉만 필요하다." "하지만 〈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무엇이 요구된다. 즉, 〈어떤 것이 존재할 때 그것이 보이려고 의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이나 다른 성도들에게 나타났을 때 이 두 가지가 필요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어야 했고, 하나님은 〈자신을 아브라함에게 제시해야〉 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다른 예언자들에게 나타난 것은 바로 은총의 행위에 의한 것이다. 아브라함의 마음의 눈은 그가 하나님을 보는 원인일 뿐 아니라 의로운 사람에게 자유롭게 제공된 하나님의 은총이었기 때문에, 그가 볼 수 있었던 것이다.〉"(47)


"사도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 앞에서 그들에게 〈예수와 부활에 대한 기쁜 소식〉을 이야기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우리에게는 낯설게 들리니, 우리는 그 의미를 알고 싶다.〉 교인들 앞에서 행한 설교뿐 아니라 외부인들에게 쓴 글에서, 가장 초창기의 기독교 사상가들은 〈그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교회의 예배와 관행, 기도와 교리 교육, 성경의 말씀과 이미지와 이야기 속에서 전해진 것이 확고한 지적 토대 위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것이 요점이다. 즉, 기독교의 이야기는 일군의 사상이나 원리로 축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개념체계도 복음주의 역사를 대체하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5세기 로마의 감독이었던 대 레오가 썼듯이, 기독교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신비 위에 세워진 종교〉다. 기독교 사상은 어떤 독창적 사상에서 발원한 것이 아니며, 어떤 중요한 영적 통찰력에 의해 양분을 공급받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의 한 인간의 삶에서 비롯되었다."(51-2)


2 기독교의 예배: 놀랍고 피 없는 희생제물


"유스티누스는 성찬식에서 교인들이 살아 있는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는 것이라고, 그들이 먹는 음식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첫 번째 요점은 기독교 예배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축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에 일어났던 어떤 일을 함께 기억하는 기념 식사가 아니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시편 22편 설교에서 말했듯이 예배는 〈과거에 벌어졌던 일을 현재의 것으로 만들며, 이런 식으로 그것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모습을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요점은 그 예배가 명백히 삼위일체적이라는 것이다. 삼위일체의 교리가 존재하기 전에도, 기독교 기도들은 성삼위일체를 초청했다. 유스티누스는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가 〈우주의 아버지께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찬양과 영광의 기도를 올려 드린다〉고 말한다. 유스티누스가 말하는 것은 초기 예배에서 빵과 포도주에 대한 기도 속에 메아리친다."(60-1)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살아 있는 제물로 제시되었다." "예배에서 이를 반복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의 상상력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그들을 그리스도의 신비와 친밀한 관계로 이끌었다. 역사적 기억이 아니라 경험의 명백한 사실로서 말이다. 5세기 로마의 주교였던 대 레오가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화해를 위해 행하고 가르친 모든 것을 우리는 단지 과거에 대한 역사적 설명으로 알 뿐 아니라 현존하는 사역의 권능 안에서 경험한다.〉 삼위일체에 대한 논문이 집필되기 전, 성경에 대한 학문적 주석이 나오기 전, 은총의 가르침에 대한 논쟁이나 도덕 생활에 대한 저술이 출현하기 전, 교회의 성찬식에 살아서 현존하는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 앞에 바치는 경외와 숭배가 존재했다. 이와 같은 진리는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에 선행했다."(64-5)


"초대교회에서 세례는 사적인 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집단적 행사였다. 감독과 다른 성직자들, 이웃과 친구들, 가족 등 모든 사람이 맡은 역할이 있었다. 매년 늦겨울과 봄에 반복될 때마다 엄격한 심사, 혹독한 금식, 낭랑한 신조 낭독, 축귀의식, 침례는 그 경험을 더욱 고양시켰다. 세례식은 장엄한 기독교 행사였다. 그리고 이웃과 친구들이 한 사람씩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물을 뿌리거나 붓지 않고 물속에 잠겼다. 기독교는 빵과 포도주, 물, 기름처럼 사물과 관계가 깊다. 기독교 신앙은 사물들과 그것들을 사용하는 행위 속에 담겨 있다." "세례식의 물에 대한 테르툴리아누스의 논의에서, 하나님은 보고 만질 수 있는 한 인간을 통해 알려진다는 기독교의 핵심적 확신이 이제 물과 기름, 빵과 포도주, 우유와 꿀, 소금과 성인들의 뼈, 그리스도의 몸이 닿았던 성지(聖地), 그리고 성상처럼 만질 수 있는 다른 물건들로 확장된다."(68-9)


3 성경: 현재를 위한 하나님의 얼굴


"자신의 대표작인 『잡록』Stromateis에서 클레멘스는 독자들에게 하나님과 인간의 유사성에 대한 논의는 현재 알려진 모습의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알려줌으로써, 예기치 못한 주장을 시작한다. 그는 플라톤의 유사함이 형상이라는 성경적 개념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가 읽은 창세기에서 〈형상〉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될 때 인간이 받은 것을 가리키며, 〈모양·유사함〉은 인간의 삶이 열망하는 목적을 가리킨다. 인간의 운명은 하나님 안에서 그것의 기원과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유사함(모양)이 가능하다. 유사함(모양)이라는 주제를 도입함으로써 클레멘스는 자신이 철저히 그리스인임을 보여주고, 최고의 철학자 플라톤에 대한 당대의 철학적 해석에 의존하고 있음도 보여준다. 하지만 창세기의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클레멘스는 논의를 성경의 하나님께로 전환한다."(86-7)


"하나님과 유사함(모양)은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는 변형을 요구한다. 클레멘스는 하나님과 유사함·모양을, 특히 〈그리스도 따르기〉라는 측면에서 해석함으로써, 논의 전체에 독특한 성경적 광택을 부여한다. 그는 사도 바울을 인용한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하나님 같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약속하신 목적, 곧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절은 초기 기독교 사상에 헬레니즘 정신이 얼마나 깊이 스며들었는지에 대한 증거로 여겨져 왔다. 전체 구절을 유효하게 만드는 것은 헬레니즘 도덕 전통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 닮기(모양)란 개념이다. 하지만 그것은 클레멘스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그의 손에서 헬레니즘의 개념이 성경과 기독교 전통에서 빌려온 새롭고 이국적인 맥락 속에 위치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유사함〉은 그리스도처럼 된다는 뜻이다."(87-8)


"성경은 〈우리 신앙의 토대이자 기둥〉이라고 이레나이우스는 말한다. 성경이 기이한 신학 프로그램을 위해 분할되고, 성경 본문이 영지주의자들처럼 자의적으로 사용된다면, 성경은 폐쇄적인 책으로 남을 것이며 〈그것들 안에서 진리를 찾는 것〉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모든 것을 붙들고 있는 뼈대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성경은 마치 설계도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배열된 모자이크처럼, 혹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서 임의로 가져온 구절들을 함께 묶은 후 그것을 호메로스의 작품이라고 상상하면서 재구성한 시처럼 모호하다." "이레나이우스의 개요는 매우 담대하게 설정되어 있다. 성경해석에 대한 그의 접근이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그것은 후대의 모든 해석에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아리우스에 대항하는 아타나시우스, 펠라기우스에 대항하는 아우구스티누스, 혹은 네스토리우에 대항하는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를 읽든, 우리는 각 구절들을 전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95)


4 삼위일체: 항상 그의 얼굴을 구하라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가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성경에서 주어진 언어와 교회의 관행, 특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세례식에 의해 형성된 확신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탐구하면서 힐라리우스는 하나님을 먼저 창조의 아름다움과 질서를 통해 알았지만, 오직 그리스도를 알게 된 후에야 '하나님'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힐라리우스의 다소 수수께끼 같은 언어 배후에 모든 기독교 사상에 스며 있는 하나의 진리가 놓여 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그리스도가 육체를 입고 오신 것, 초대교회가 경륜economy이라고 불렀던 것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질서와 정리를 뜻하는 이 그리스어 단어는 신학적 담론에서 창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달한 성경적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질서 있는 자기노출을 의미했다. 삼위일체에 대한 힐라리우스의 책은 그리스도 안에서 알려진 하나님의 본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115-6)


"〈하나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할 수 없다.〉 힐라리우스는 부활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무언가를, 곧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계시했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 아니라, 부활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는 보다 충격적인 주장도 제기했다. 일단 예수가 부활하자 도마는 〈신앙의 모든 신비를 이해했다.〉 이제 부활의 관점에서, 도마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활 후에 그는 하나님의 단일성oneness을 다른 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쉐마를 계속 암송할 수 있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도마의 고백은 〈제2의 하나님에 대한 인정이나 신적 본성의 통일성에 대한 배반〉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고독한 하나님〉이나 〈외로운 하나님〉이 아니라는 인식이었다.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혼자가 아니라고 힐라리우스는 말한다."(118)


"삼위일체에 대한 책을 집필했던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삶의 특정한 행위들과 성령의 사역을 연결하는 신약성경의 구절들을 인용한다. 〈그리스도는 태어났고, 성령은 그의 선구자다. 그리스도는 세례를 받고, 성령은 증거한다. 그리스도는 시험을 받고, 성령은 그를 인도한다. [그리스도는] 기적을 행하고, 성령은 그와 동행한다. 그리스도는 승천하고, 성령이 그의 자리를 대신한다.〉 그레고리우스의 주장에 따르면,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사역 또한 성자만의 활동으로 소개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가 성령의 현존을 통해 확증되고 중개된다. 그레고리우스는 이렇게 썼다. 〈신적 본성에 관해······우리는 [성경으로부터] 성부께서 아들과 협력하지 않고 혼자서 어떤 일을 행하시거나, 아들이 성령과 별도로 독자적으로 행동한다고 배우지 않는다. 오히려 창조와 관련되고 우리의 상이한 개념에 따라 지칭된 모든 신적 행동은 아버지 안에서 기원하며, 아들을 통과하고, 성령에 의해 완성된다.〉"(128)


"하지만 성령의 개별성을 방어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주장은 성경이 두 가지 〈보냄〉, 곧 아들의 보냄과 성령의 보냄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핵심 본문은 갈라디아서 4:4-6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의 저서 『삼위일체론』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령의 보냄이 아들의 보냄 못지않게 역사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이 본문을 인용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듯이,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보냄을 받거나 오순절 날에 교회 위에 부어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처럼 〈영원부터 감추어진 것이 시간 속에 나타났다.〉 기독교 사상가들에게, 성령은 역사적 자료요 경험적 사실이었다."(128-9)


5 그리스도 인성의 비밀: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범주를 설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계보에서 태어난 인간이었고, 동시에 그가 죽음에서 부활한 것이 증거하듯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이런 주장의 어떤 것을 불쾌하게 여긴 이들 중에서 가현설주의자들Docetists은 그리스도가 오직 인간인 것처럼 보였다고 믿었으며, 그래서 그의 인간적 외모는 단지 겉모양만 그렇게 보였을 뿐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극단에서, 에비온파 같은 집단은 그리스도가 단지 고대의 현인들이나 예언자들처럼 고귀한 인간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그의 신성을 부정했다. 하지만 기독교 사상의 중심 전통은 그리스도가 온전히 신이며 온전히 인간이라고 주장했다. 5세기에 발생한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한 논쟁은 교회의 신앙에 의해 그리스도 안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명확히 하려고 살았던 사상가들의 진정한 노력이었다."(140-1)


"요한복음에 대한 주석을 쓰면서 키릴로스는 힐라리우스와 다른 차원에서 부활을 바라보았다. 부활은 그리스도가 독특한 종류의 인간이라는 증거였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성부 하나님께 인류의 첫 열매로 드렸다.·····그는 우리를 위해 인류가 예전에 알지 못했던 길을 열었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기 전, 〈인간 본성은 죽음을 파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세상의 환란보다 우월하고 죽음보다 〈강하다.〉 따라서 그는 죽음과 부패를 정복할 수 있었던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자신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는 부활의 권능을 우리에게까지 확대한다. 그런 후에, 키릴로스는 다음 문장을 추가한다. 〈예수가 하나님으로서 정복했다면, 그것은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다. 하지만 예수가 인간으로서 정복했다면, 우리도 그 안에서 정복할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그는 하늘에서 우리에게 오신 두 번째 아담이기 때문이다.〉 키릴로스에 따르면, 예수의 인성이 그리스도를 독특하게 만든다."(146-7)


"이전 작가들은 예수께서 탄원하신 말씀, 곧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과 반대로 행동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를 가설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막시무스는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말씀이 진정으로 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리스도 기도의 두 번째 부분,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가 이해되느냐고 묻는다. 동시에, 이 설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리스도가 그 잔을 마셨다는 것이라고 그는 언급한다. 막시무스가 보기에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은 저항이나 공포가 아니라 〈완벽한 동의와 일치〉를 표현한다. 자유롭게 행동하는 인간으로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시킴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복종했고, 이런 식으로 〈신적인 의지에 대한 그의 인간적 의지의 최고 동의〉를 보여주었다."(154)


"막시무스는 복음서에 또 다른 명령, 곧 또 다른 〈내게 이루어지이다〉가 있다고 제안한다. 즉, 인간 그리스도의 고통 말이다. 그 고통 속에서 그리스도는 이러한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인류의 구원을 의도한다." "고통의 잔을 받은 것은 그의 자유로운 행동이었다. 영원한 성자께서 성부와 성령과 연합하여 의도했던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서 의도하신 것이며,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 자신이 새로운 종류의 인간임을 보여주신다. 인간의 의지는 신적인 의지와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덜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더 인간적이다. 키릴로스처럼 막시무스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인간이 되는 전적으로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리스도의 삶은 새롭다고 막시무스는 말한다. 〈지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상하고 놀라우며, 다른 것들과 비교할 때 낯설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살았던 사람의 새로운 에너지를 그 자체 안에 담고 있었기 때문에 말이다.〉"(156-7)


6 천지창조 이야기: 처음에 주어진 끝


"창세기에 대한 기독교 주석가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구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중, 〈태초에〉라는 단어였다." "4세기 후반 카이사레아의 주교 바실리우스는 〈태초에〉라는 단어에 그리스어 arche의 의미를 이용한다. 〈그것은 적절한 시작이다. 세상의 형성에 대해 말하려는 사람은 가시적 사물들의 질서 속에서 지배적 영향을 행사하는 원리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리스어 arche는 단지 〈시작〉, 곧 〈때〉를 의미할 뿐 아니라, 전체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원리〉도 의미한다. 서론도 없이 바실리우스는 청중을 그 원리로 이끈다. 창세기의 설명은 누군가 상상하듯이 세계가 자발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발생했음〉을 보여준다.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 눈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먼저 있어야 한다. 즉, 〈하나님과 친교 및 친밀함을 누릴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볼 수 없다.〉 우주론 연구는 영과 관련된 것으로 시작한다."(164-7)


"시작은 또한 목적end을 내포한다. 단지 세상이 끝날end 것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세상의 창조가 〈유용한 목적〉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창조는 〈독단적 힘〉이나 우연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 〈예술적 이성〉의 작업이다. 즉, 창조에 목적이 있다는 것보다 더 도전적인 교리는 성경에 없다. 바실리우스도 창조가 하나님의 지속적인 작업이며, 세계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에 따라 섭리적으로 질서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창조는 마지막 순간에 사물들에 영향을 끼친다. 태초에 하나님이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지금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고 바실리우스는 말한다. 창세기는 자체 내에 성장과 발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생명계의 탄생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땅의 흙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적절한 시간 내에 새로운 피조물들이 정상적으로 발전하도록 만들었다〉고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다."(168-9)


"그레고리우스는 신약성경에서 직접 인용한 인간의 세 가지 특성을 소개한다. 첫째는 로고스(말씀) 혹은 이성이다. 이것은 그가 요한복음 1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마음〉이며, 이것은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썼던 사도 바울의 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셋째는 사랑이다. 이것은 그레고리우스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는 요한복음과 〈하나님은 사랑이자 사랑의 원천이시다〉라는 요한1서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는 사랑이 없다면 〈그 형상의 흔적은 뒤틀린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리스도는 인성의 회복뿐 아니라, 인간의 창조에 대한 일체의 온전한 설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끝은 시작 속에서 주어진다〉라는 그의 말에서 완성과 시작이 상보적인 것으로 보이게 된다. 창조는 선물이자 약속이며,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에민 태초에 만들어진 것을 알게 된다."(180-1)


"〈인간의 창조〉에 대한 모든 온전한 설명은 인간의 파괴, 인간의 삶 속에 있는 타락과 악의 완고함을 다루어야 한다. 그의 논문 중간 부분에서 그레고리우스는 인간의 기원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경험에 관심을 보이고, 비록 간략하지만 인간의 비극적 삶을 논한다. 그레고리우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만큼 생생한 언어로 죄의 결과들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즉, 〈우리 안에 불순종이란 잡초의 씨를 뿌린 삶의 교활함 때문에, 우리 본성은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을 보존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죄 때문에 변형되고 흉하게 되었다. 우리 본성은 악한 본성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한다. 이런 이유로 인간 본성은 죄의 아비가 거느리는 악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인간 본성은 악에 의해 〈약해졌고, 무기력해졌다.〉 인간은 〈악으로 돌아서는 것처럼 쉽게 악에서 선으로 돌아서지〉 못한다. 〈인간은 죄를 짓기 쉬우며,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했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에 죄는 우리가 태어날 때 우리 안에 존재한다.〉"(181-2)


7 인식의 길: 믿음의 합리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증인의 정직에 의존하는 역사적 지식과 확실하고 명백한 수학적 지식을 구별한다. 7X7=49는 구구단을 암기한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 발생한 사건에 대한 지식은 우리 시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므로, 항상 간접적이고 다른 사람의 말에 의존한다. '믿는다'라는 단어는 확실한 것이 아니라 개연성 있는 지식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뜻이다." "비록 역사적 지식에 대한 적절한 단어는 〈믿음〉이지만, 그는 일반적으로 수학적 지식뿐 아니라 역사적 지식을 위해서 〈안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인정했다. 동시에 그는 이 단어의 두 가지 의미 간의 차이도 유지하고 싶었다. 역사적 지식의 독특한 특징은 그것이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증인의 증언〉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증인을 뜻하는 그리스어 martyr가 기독교 사전에서 거룩한 단어가 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순교자martyr는 자신의 말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이다."(195-6)


"역사적 지식은 증인을 요구한다. 그리고 증언은 증거하는 사람의 말에서 믿음과 확신을 요청한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에 대한 토론에 '권위'라는 단어를 도입한다. 그는 〈우리는 권위에 우리의 믿음을 빚지고 있다〉고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절에, 권위라는 단어는 우리 시대의 용법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라틴어에서 권위auctorita는 auctor(이 단어는 영어의 author에 해당한다)에서 기원했고, 원래의 의미는 유언장이나 다른 법적 서류의 타당성과 진정성을 보증했던 사람을 가리켰다. 권위는 어떤 사람, 예를 들어 행정관이나 유언장 작성자의 그러한 특성, 곧 어떤 사람이 말한 것에 기초하여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특성을 가리켰다. 이런 의미에서 권위는 인간 삶과 사회에 공통되는, 없어서는 안 될 측면이다. 우리가 참된 것으로 인정하고 행동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성실과 신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196-7)


8 지상과 천상의 나라: 하나님이 주님인 백성은 복이 있도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천상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에 대해 말한 모든 것이 평화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가 이해했듯이, 평화는 이생에서 온전히 실현될 수 없다. 인류가 자신들 안에 건설할 수 있는 평화는 항상 부서지기 쉽고 불안정하며 덧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은 이 땅 위의 평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약속도 제공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평화는 항상 소망의 문제이며, 하나님의 도성이 열망하는 평화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작업일 수밖에 없다. 선지자 하박국에 따르면, 우리가 소망하는 목적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추구할 뿐이다. 우리가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려면, 우리가 추구하는 바로 그 선이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성』에 뛰어난 매력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땅에 평화를 성취하려는 노력(비록 그것이 연약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이 시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223-4)


"하나님의 도성 시민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인간 마음의 갈망이 오직 하나님 안에서 해결될 수 있고, 평화에 대한 희망도 오직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성이 아직 순례 중인 이 삶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온전한 시민이었다. 다른 시민들처럼 그들도 법, 안정, 일치를 존중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이 타락한 세상에서 인간은 특정한 형태의 강제력 없이는 더불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왕의 권력, 판사가 휘두르는 칼의 권력, 집행관의 발톱, 군인의 무기, 주인의 징계, 그리고 선한 아버지의 엄격함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자신들만의 방법과 명분, 이유와 유용함을 지닌다. 사람들이 이것을 두려워하는 동안, 사악한 사람들은 특정한 울타리 안에 갇히고, 선한 사람들은 사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보다 평화롭게 살 수 있다.〉 다만 모든 정치제도는 임시적이며, 그것들 자체를 목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228-9)


"『하나님의 도성』 제2권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키케로의 『국가론』에서 정치 공동체의 본질에 관한 한 문장을 인용했다. 〈시민은 공통된 법 정신과 집단적 이익으로 연합된 다수의 사람들〉로 정의된다. 이 정의에서 법으로 사용된 단어가 jus다. 이 단어에서 라틴어 단어 justitia가, 영어 단어 justice가 각각 유래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키케로가 정의justice없는 정치 공동체, 공화국,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 정의(定義)를 이해했다고 설명한다. 〈진정한 정의가 없는 곳에는 진정한 jus, 곧 어떠한 법, 평등, 권리도 없기〉 때문이다. 공화국은 단지 한 이익공동체일 수 없다. 그래서 공화국은 jus로 함께 묶여야 한다. 단지 공통된 이익에 기초해서 연합된 사회는 기껏해야 폭도나 해적 집단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정의는 없고 오직 도둑질과 무법과 착취만 있다면, 공화국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정의는 인간 상호 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정의와도 관련이 있다."(230)


9 초기 기독교 문학: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행동


"몇몇 기독교 시인들은 성경의 이야기를 전통적 시로 다시 쓰려고 했다. 잘 맞춘 운율과 시적 어휘를 사용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낯익은 표현으로 종교적 시를 제공하고 싶어했다." "가령, 요나 이야기를 토대로 한 초기 기독교 시는 성경의 단어 〈예언자〉 대신, 라틴어 단어 〈점쟁이〉를 사용한다. 증인에 해당하는 성경의 단어인 〈순교자〉 대신, 라틴어 단어 〈목격자〉를 사용한다. 〈천사〉 대신 〈전령〉을 선택했다. 훨씬 더 놀라운 것은, 그 시인은 〈부활〉이라는 단어는 피하고 대신 〈죽음을 목격하는 것에서 벗어났다〉란 표현을 사용했다. 성경의 단어 〈성전〉은 이교적 단어 〈성소〉로 대체되었고, 〈요구하다〉라는 멋진 라틴어 단어가 〈기도하다〉란 성경적 단어를 대체했다. 이런 변화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오늘날 〈이번 주일에 나는 제1침례교회의 컬트에 참석할 예정이다〉라는 표현에서, 기독교 예배를 〈컬트〉라고 지칭할 때처럼 그것은 고대의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꺼림칙한 것이었다."(243)


10 초기 기독교 미술: 이것을 다르게 만들다


"고대 기독교 도시들에서 가장 경멸받던 관행 중 하나는 죽은 자를 예배하는 것, 특히 순교자들과 성인들의 뼈를 숭배하는 것이었다. 교회의 강력한 적이었던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인들이 〈전 세계를 죽은 자들의 무덤과 비석으로 가득 채웠다〉고 불평했다. 4세기 말 로마 세계의 도시들에는 유물들, 곧 거룩한 사람들의 뼈를 보관하는 성소들이 흩어져 있었고,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기 위해 이런 거룩한 장소들을 경건하게 방문했다. 2세기 초에,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와 중보기도를 위해 무덤에 모임으로써 죽은 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시작했다. 로마에 있는 베드로의 무덤에, 〈여기에 베드로가 있다〉라는 비문이 적힌 장식판을 걸기 위해서 벽에 벽감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이런 성소에서 성인들의 고귀한 몸을 담은 석관을 바라보기 위해 신자들이 앉아 있던 의자와 제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뼈들은 무덤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거룩한 사람의 현존을 분명히 보여주었다."(265)


"다마스쿠스의 요하네스의 견해에 따르면 성상금지는,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 역사상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살았던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려진 성육신에 대한 기독교의 근본 신앙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 가능했다. 〈몸도 없고 형태도 없이 그의 본성은 측량할 수 없이 무한하며, 하나님의 형태로 존재하는 그가 자기를 비우고 본질과 본성에서 종의 모양을 취하시고 육신의 몸으로 발견될 때, 당신은 그의 모습을 그리고 그것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의 놀라운 낮아짐, 그의 동정녀 탄생, 그의 요단강 세례, 다볼산에서의 변화, 우리를 고난에서 자유롭게 했던 그의 고통, 죽음, 기적을 묘사하라. 그의 구원의 십자가, 무덤, 부활, 승천을 보여주라.〉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묘사될 수 없다면 하나님이 육신을 입었다고 누가 주장할 수 있겠느냐고 요하네스는 말했다."(271-2)


"성상파괴론자와 성상옹호론자 모두 물질이 다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방식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다. 성상파괴론자들의 경우, 물질이 거룩하게 되는 최고의 예는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다. 성찬식에 사용되는 그 물질들을 사제가 축복함으로써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 된다.〉 하지만 성상은 보다 흔하고, 축성기도를 통해 축성되거나 성화되지 않았다. 성상옹호론자들은 성상이 다른 무언가가 되기 위해 축성기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테오도르는 말한다. 〈그것의 모양만으로도 성화聖化되기에 충분하다.〉 나무와 물감은 나무와 물감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다른 어떤 것이 된다. 그것은 나무 위에 그려진 형상이며, 성상에 의해 묘사된 인격이다. 그것이 그 성상을 귀하게 만든다. 그 형상이 닳거나 지워지면, 그것은 더 이상 성상이 아니고 더 이상 거룩한 물건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 인격의 형상을 담고 있는 한, 그 성상은 거룩하다."(288)


11 윤리의 삶: 하나님 닮기


"기독교가 등장했을 때, 그리스-로마 세계에는 잘 발달된 도덕 형성체계가 확립되어 있었다. 그것의 목적은 사람들을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고대인들이 의미했던 행복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많이 달랐다. 우리에게 행복이란 말은 〈좋은 느낌〉이나 특정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 환경이 변하거나 행운이 개입하면 왔다가 떠나는 일시적인 상태다. 고대인들에게 행복은 영혼의 소유물이었다. 즉, 사람이 획득한 어떤 것, 한번 획득하면 쉽게 빼앗길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행복은 인간 삶의 최고 목적, 고대철학의 언어로 말하면 자연과의 일치 속에서, 인간으로서 우리의 가장 깊은 열망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을 가리켰다. 도덕철학은 약속을 포함하고 있었다. 즉, 가능한 것을 다루었다. 이런 이유로 고대 윤리학은 옳고 그름에 대한 보편적 개념에 따라 사람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보다는, 특정한 방식의 삶을 통해 사람이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303)


"그리스인들에게 도덕 생활의 목적은 〈신 닮기〉이고, 기독교 사상가들은 〈하나님 닮기〉나 〈신화〉(神化)라는 언어를 환영했다." "클레멘스의 동시대인들에게 〈하나님 닮기〉는 덕의 실천을 의미했다. 기독교 작가들도 동의했다. 하지만 그들은 완전을 향한 안내자로서 그리스도와 성령을 언급하지 않고는 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했다. 닮기 위해 주어진 모델은 하나님의 완전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한 인간이자 인간의 육신을 입은 하나님인 예수의 완전한 삶에서 가져온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어떤 것은 모방할 수 있다. 그레고리우스가 선택한 하나의 신적 속성은 팔복 중에서 예수가 언급한 가난이다." "겸손 역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 정말로 그것은 참된 덕의 징표다. 오직 겸손을 통해, 우리는 오만과 자만이라는 독특하게 인간적인 죄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짐으로써 〈하나님을 닮는다〉라고 그레고리우스는 말한다."(306-7)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는 인내에 대한 글을 썼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의인과 죄인 모두에게 빛을 비추신다. 하나님은 땅이 가치 있는 자와 무가치한 자 모두에게 열매를 맺도록 허락하신다. 그는 인간의 죄와 잘못을 참으시고, 죄인들이 하나님을 잊고 살 때도 자신의 진노를 참으신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내의 가장 가시적인 징표는 성육신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한 여인의 자궁 속에 잉태되도록 허락하셨고, 그리스도의 탄생 전까지 인내 속에 여러 달을 기다리셨기 때문이다." "테르툴리아누스에게, 인내의 특이한 징표는 참을성이나 용기가 아니라 희망이다. 테르툴리아누스에 따르면 인내심이 없는 것은 희망 없이 사는 것이다. 인내는 부활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미래를 지향하는 삶이다. 그리고 그것의 징표는 현재의 질병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도래할 선을 기대하는 열망이다. 따라서 인내는 사랑을 포함한 다른 덕들의 열쇠가 된다."(313-5)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기독교적 삶의 출발점(뿐만 아니라 종점)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다른 기독교 사상가들처럼 아우구스티누스도 행복이 〈하나님 닮기〉 안에서 발견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처럼 그도 하나님 닮기가 신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산다는 뜻임을 잘 알았다.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그의 생명과 빛과 성결로 충만해진다. 하지만 펠라기우스의 도전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적 삶의 원천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그의 저작들은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에게로 돌이켜서 선을 꼭 붙들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주목한다. 또한 그는 다른 이들보다 더 그리스도인의 삶의 끈질긴 내적 갈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십계명, 산상수훈, 자유의지는 한 사람을 덕스럽게 만드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 사람은 선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며, 사랑의 밧줄로 하나님께 묶여 있어야 한다."(316-7)


12 영의 삶: 감각적 지성의 지식


"초대교회에서 읽었던 그리스어 역본 아가서에서, 신부가 자신의 연인에게 말한다. 〈나는 당신의 사랑에 상처 받는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이것을 신랑의 〈화살〉이 그녀의 가슴 깊은 곳을 관통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우리의 〈내적 존재〉 안에 박힌 멋진 화살은 바로 그리스도, 예언자 이사야의 〈갈고 닦은 화살〉(선택된 화살)이라고 그는 썼다. 영혼이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날카로운 화살로 상처 입을 때 그것은 불타오르고, 그 행복한 구절에서 〈보답하는 사랑〉을 제공한다. 스페인의 위대한 신비가 아빌라의 테레사는 이런 정서를 수세기 후에 다시 되살렸다. 〈사랑은 보답으로 사랑을 요구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을 하나님께 데려간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선물로, 우리는 불이 붙었고, 위로 상승했다. 우리는 더욱 붉게 타오르며 위로 상승했다. 우리의 마음이 상승한다.〉 『하나님의 도성』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음의 제단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사랑의 타오르는 불〉이라고 말한다."(323)


"『신곡』 '천국편Paradiso'에서 단테가 베아트리체에게 왜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정확히 이런 길〉, 곧 성육신을 의도하셨느냐고 묻는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자신이 지금 그에게 설명하려는 것이 사랑의 불꽃 속에서 지성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가려져 있다〉고 상기시켜 주면서 자신의 답변을 시작한다. 우리가 사랑의 대상에게 자신을 투신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주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받지도 못하고, 관음증 환자나 구경꾼, 호기심 추구자로 남는다. 하니님에게 모순은 신성모독이다. 오직 우리가 자신의 가장 깊은 자아를 하나님께로 향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의 신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사물의 진리를 관통할 수 있다. 사랑이 부재하면 우리 마음은 진리를 단단히 붙잡지 못하고, 오직 한 가지씩만 시도하면서 유치하고 미성숙한 채로 남는다. 단테가 말했다. 인간은 〈지성과 사랑을 가진〉 피조물이라고. 이 마지막 장의 주제는 사랑임에 틀림없다."(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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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jsdirtjdwjs 2022-02-0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나님께 나아가는 다섯 단계
http://www.godnara.co.kr/bbs/board.php?bo_table=03_01&wr_id=119
하나님께 나아가는 다섯단계를 배워야 참 하나님을 알게되는데 천국을 소망하는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배워서 참 하나님께 나아 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섯단계을 모두 깨달으신분들은 참 하나님을 알게되어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 놀라운 비밀들과 구원의 해를 알게 되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