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생존자들
리처드 포티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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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래된 투구게


"투구게는 사실 게가 아니다. 두 종류 모두 가느다란 절지로 바다 밑을 걸어다니는 종류라는 점에서 게의 아주 먼 친척일 뿐이다. 이런 몸마디가 있는 유용한 부속지(附屬肢)를 가진 동물을 절지동물(arthropod : 몸마디로 이어진 다리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이라고 한다. 절지동물은 절지동물문(Arthropoda)으로 분류된다. 절지동물문은 살아 있는 모든 곤충뿐 아니라 거미류, 노래기류, 온갖 종류의 해양 '벌레들'을 포함하는 대단히 큰 동물집단이다. 게는 바닷가재, 새우, 쥐며느리와 함께 갑각류에 속한다. 투구게는 나비와 마찬가지로, 결코 갑각류가 아니다. 투구게에게는 갑각류와 곤충의 공통 특징인 환경을 감지하는 데에 적응된 유연한 더듬이가 없다. 더듬이는 예민한 촉각기관인 동시에 후각기관이다. 투구게는 더듬이 대신에 머리 부속지의 끝이 한 쌍의 유용한 협각(chelicera)으로 변형되어 있으며, 뒤집힌 채 누워 있던 길 잃은 투구게에서도 협각을 볼 수 있었다."(22-3)


"삼엽충은 2억 6,000만 년 전, 세계가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때 멸종했다. 투구게처럼, 삼엽충도 절지동물이다. 즉 마디로 연결된 다리가 있고, 근육과 힘줄이 모두 겉뼈대 속에 들어 있는 동물이다. 그러나 투구게와 달리, 삼엽충은 우리 행성의 생물학적 면모를 일신한 대량멸종 때 살아남지 못했다. 놀랍게도 화석 증거는 리물루스속의 친척들이 삼엽충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고 말한다. 델라웨어 해안에서 밤에 벌어지는 집단 짝짓기 의식의 난장(亂場)은 수백만 년 전에도 일어났을 것이다. 내 귀에는 고생대 때에도 그들이 같은 의식을 벌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곤충과 거미 등 다른 절지동물들이 육지로 올라가는 모험을 감행하기 오래 전에, 혹은 새우와 게와 바닷가재 같은 갑각류가 지금처럼 해양 생태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기 전에, 바다에는 투구게의 친척들이 살았다. 그러니 델라웨어 만에 우글거리는 이 동물들을 원시적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24-5)


"투구게는 피가 잘 엉겨서 다친 부위를 '차단하기' 때문에 출혈로 죽지 않는다. 그리고 피가 파란색이다." "우리의 피의 산소운반 색소는 철 원소를 필수 성분으로 하는 헤모글로빈인 반면, 투구게의 산소운반 색소는 헤모시아닌이라는 구리를 토대로 한 분자이기 때문이다." "후속연구 결과, 투구게의 피가 그람 음성균에 놀라울 만큼 민감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바닷물 1세제곱센티미터에는 이 미생물이 수십만 마리가 들어 있기도 하다." "투구게의 몸의 방어는 변형세포(amoebocyte)라는 한 종류의 보호세포가 맡는다. 이 세포에는 응고를 촉진할 수 있는 과립이 많이 들어 있다. 그람 음성균이 가까이에 있으면 변형세포가 터지면서 과립이 방출된다. 그러면 피가 응고되어 감염이 차단된다. 이제 우리는 투구게가 파이고 구멍이 났음에도 어떻게 비틀거리며 기어다닐 수 있는지를 안다. 투구게는 가장 위험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적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수억 년 동안 간직해왔다."(28-9)


2 발톱벌레 찾기


"발톱벌레(velvet worm)의 학명은 '페리파투스 노바이-제알란디아이'이다. 페리파투스는 썩어가는 소나무 속에서 흰개미와 함께 사는 것이 틀림없다. 사실 그들은 흰개미 방을 뒤지면서 그 작은 곤충을 먹는다. 예민한 '더듬이'로 찾아내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특수한 샘에서 만들어진 끈끈한 점액을 이용하여 먹이를 잡는다. 자연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먹이를 잡는 동물은 없다." "어쨌거나 점액은 단백질이며, 만드는 데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경제성을 고려해야 한다. 나는 어떤 느낌인지 만져본다. 아주 끈끈하다. 흰개미에게는 접착제나 다름없을 것이 분명하다. 발톱벌레와 흰개미 둘 다 햇빛을 피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얇은 '피부'를 통해서 금세 수분을 잃는다. 발톱벌레는 막으로 둘러싸인 액체 주머니에 다름 아니다. 밝은 태양 아래서는 금방 바짝 말라붙을 것이다. 빛이 없고 밀폐된 세계인 썩은 소나무는 상대습도가 거의 언제나 100퍼센트에 달하므로 완벽하게 안전하다."(58)


"미얀마에서 발견된 백악기의 호박(琥珀)에 약 1억 년 전 공룡이 살던 시대의 유조동물이 한 점 보존되어 있다. 이 화석 종은 현생 페라파투스와 매우 흡사하며 그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살았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보다 2억 년 전인, 헬레노도라(Helenodora)라는 놀라울 만큼 잘 보존된 석탄기 화석은 유조동물의 먼 친척이 석탄 늪의 축축한 숲 바닥을 조심스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말해준다. 생명진화의 이 시기에 함께 살던 동물로는 볼품없는 양서류와 아주 초기의 파충류, 최초의 날아다니는 곤충도 있었다. 유조둥물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육지에서 살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다. 다시 2억 년을 더 올라가서 캄브리아기로, 즉 복잡한 동물이 출현한 '폭발적인' 진화가 일어나는 시대로 들어가도 우리는 유조동물의 먼 친척들을 볼 수 있다. 다른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생명의 요람인 바다 밑에서 역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생존자임을 증명했다."(63)


3 끈적거리는 매트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미세한 생물들이 긴 세월에 걸쳐 서서히 층층이 쌓은 둔덕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생태계이다.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덮은 끈적거리는 피부는 살아 있다. 이 매우 얇은 층은 주로 남세균(cyanobacteria)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에는 남세균을 뜯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생물들이 많다. 해변의 축축한 바위 위에 미세하게 삐뚤삐뚤 난 자국을 생각해보라. 그것은 바위 표면을 덮은 영양가 있는 얇은 세균층을 고둥의 섭식기구가 긁어대면서 남긴 자국이다." "그러나 해멀린 풀(pool)이라는 특수하고 따뜻한 세게에서는 뜯어 먹는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스트로마톨라이트의 끈적거리는 표면을 훼손할 고둥이 없다. 남세균을 저녁거리로 뜯어 먹을 물고기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선캄브리아대의 세계를 재구성한다. 생명이 시작된 이래로 수중환경의 상당 부분을 뒤덮었던 고대의 생물학적 건축물을 물어뜯고 긁어대는 해양동물들이 등장하기 이전의 생명이 어땠는지를 보여준다."(92-3)


"생물학 전문용어로 남세균은 원핵생물(prokaryote)이다. 이들은 가장 작을 뿐만 아니라 가장 단순해 보이는 세포를 가지고 있지만─공이나 소시지와 다를 바 없다고 할 만한 것도 있다─자그만치 수백 종에 달한다. 원핵생물은 진핵생물(eukaryote)과 달리 세포 안에 막으로 둘러싸인 세포핵이라는 구조물이 없다. 남세균을 빼고 지금까지 이 책에 언급된 생물은 (필자를 포함하여) 모두 진핵생물이다. 그것은 우리 이야기가 이제 생명체를 조직하는 더 단순한 방식을 다루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원핵생물은 진핵생물보다 먼저 출현했으며, 그것은 그들이 생명의 나무의 줄기에 더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진핵생물이 출현하기 이전에, 남세균이 신참이었고, 샤크 만의 한쪽 구석의 얕은 바다에서 우리의 눈앞에 펼쳐졌던 스트로마톨라이트가 특별한 생존자가 아니라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전형적인 경관을 이루었던 시대가 있었다."(94)


"진핵세포의 핵심 소기관─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 같은 것들─은 원래 자유생활을 하는 세균들이 더 큰 후손세포라는 보쌈 보따리 안에 들어간 결과였다. 그러나 인간의 납치와 달리, 여기서는 모든 참여자들이 혜택을 입었다. 이것을 과학적 용어로 공생(symbiosis)이라고 한다. 이전에 '자유생활'을 하던 세균들이 안전한 새로운 서식지에서 번성했다. 납치로 새롭게 보강된 세포들은 삽입된 새로운 핵심 기능을 이용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식물에서는 포획된 엽록체가 진핵세포라는 안전한 곳에서 광합성을 전담했다. 이제 식물은 태양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번성할 수 있었다. 대조적으로 미토콘드리아는 생명에 화학 에너지를 제공하는 '아궁이'가 되었다. 그것은 생물이 먹고 자라는 데에 핵심적인 기관이다. 복잡한 세포의 기원을 설명하는 그런 이론을 〈내생공생 이론(endosymbiont theory)〉이라고 한다. 여기서 'endo'는 '몸속'의 공생을 뜻한다."(108)


"스트로마톨라이트로 덮인 얕은 바다와 석호가 있는 세계를 상상해보자. 원시 햇빛에 자극을 받아서 매일 수십조 개의 작은 방울로 산소를 내뿜는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수십만 개 늘어서 있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실로 뒤덮인 끈적거리는 표면은 해로운 자외선의 효과를 어느 정도 완화하는 역할도 했다. 우리 모두는 점액질에 감사해야 한다. 이제 이 과정이 수십억 년 동안 계속된다고 상상해보자. 유조동물의 역사보다 6배나 더 긴 세월이다. 그 결과 대기는 바뀌었다. 산소 방울들을 통해서 말이다. 초기 지구에는 산소가 거의 또는 전혀 없었다. 그 공기 자체를 남세균이 바꾸었다. 생명활동을 유지하려면 동물들은 산소를 호흡해야 한다. 그들은 생명의 나무에서 더 아래쪽에 붙어 있는 생물들이 천천히 꾸준히 대기를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 아가미도, 폐도, 파란 피도, 빨간 피도 없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그 끈끈한 둔덕의 자손이다."(110-1)


4 뜨거운 물속의 생명


"알맞은 온천이라면, 단지 몇 종류의 고세균이나 세균만이 무수히 들어 있는 수프가 나올 것이다. 옐로스톤의 황 가마솥(Sulphur Cauldron)에서 사람들은 역겨운 노란 수프처럼 부글거리며 끓는 진흙 웅덩이를 내려다볼 수 있다. 강렬한 황 냄새는 공기를 유독하게 한다. 생명이라고는 전혀 없을 듯한 환경처럼 보인다. 끊임없이 휘저어지는 뜨거운 황 도가니이다. 그러나 이곳은 술폴로부스(Sulfolobus)라는 유명한 고세균의 집이다. 이들은 황화수소라는 유독가스를 먹으며, 그 황은 산화되어 치명적인 황산이 된다. 이 과정에서 고세균은 성장하고 번창하며 분열할 에너지를 얻는다. 고세균 수십억 마리가 저 아래 섭씨 80도인 곳에서 번성하고 있다. 저 수프는 이윽고 ph가 2 이하로 떨어져서 극도로 산성을 띠게 된다. 쇠까지 녹일 정도이다. 동물은 저 수프에서 2초 이상 살지 못하겠지만, 고세균에게는 저곳이 천국이다. 따라서 이 미생물들은 산과 열을 좋아하는, 즉 호산성(好酸性) 호열성(好熱性) 고세균들이다."(137-8)


"생명은 모든 수준에서 화학반응을 토대로 하는데, 이때 세포 내에서 에너지를 운반하는 수단은 아데노신 삼인산(Adenosine triphosphate, ATP)이라는 화학물질이다. 우리 인간의 세포에서 물질대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ATP 덕분이다. 이 사실은 모든 생명이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하나로 엮는 실들은 그밖에도 많다. 신장 인자(Elongation Factor)라는 이름의 유전자도 기나긴 생명의 역사 내내 쓰인 공통의 언어이다. 즉 모든 생물은 그 유전자를 가진다. 거의 끓는 물에서 번성하며,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오래 지구 어딘가에 숨어서 살아온 생물들과 우리가 이런저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질 때마다 놀랍기 그지없지만, 우리 모두는 번성하려면 단백질을 만들어야 하며, 신장 인자는 바로 그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모든 생물이 삶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개입한다."(140-1)


# 생명 영역 분류의 변화 : 원핵생물-진핵생물 → 고세균-세균-진핵생물


"님프 크릭의 언저리, 물이 증기를 피워올리면서 주변의 침엽수림으로 흘러가는 얕은 개울의 바닥은 생생한 녹색 매트로 뒤덮여 있다. 선명한 에메랄드 빛깔이라는 점에서 자연의 다른 녹색들과 다르다. 키아니디움(Cyanidium)이라는 산과 열에 가장 잘 견디는 조류가 만든 색깔이다. 이 조류는 섭씨 50도에서도 살 수 있다. 이 조류는 호열성임에도 철저한 진핵생물이다. 선명한 녹색은 피코시아닌(phycocyanin)이라는 광합성 색소에서 나온다. 물은 더 흘러가서 더 차갑지만 산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웅덩이로 흘러든다. 그곳에는 이동능력을 가진 조류인 유글레나(Euglena)가 우글거린다. 유글레나는 채찍을 휘두르며 움직이는 작은 녹색 소시지처럼 보인다. 근처의 덜 산성을 띤 물웅덩이에서는 남세균과 규조류(조류의 일종)가 엉겨서 복잡한 매트를 짠다. 이처럼 옐로스톤은 드넓은 칼데라 안에 생명의 역사 중 상당 기간을 압축해서 담고 있다."(146)


5 무척추동물 무리


"해면동물문(Phylum Porifera)은 우리 이야기에서 다른 무척추동물보다 더 아래쪽에 끼워진다. 이 장에서 다룬 모든 동물들은 몸의 긴 축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룬다. 이 잡다한 수많은 생물들은 좌우대칭 동물에 속한다. 몸의 왼쪽이 오른쪽의 거울상이기 때문이다. 당신과 나도 좌우대칭 동물이며, 우리는 거슬러올가라면 완족동물, 투구게, 유조둥물, 민달팽이와 공통 조상을 가진다. 그들도 모두 좌우대칭 동물이다. 고둥은 상황이 조금 달라 보이지만, 연체동물의 원시적인 형태도 앵무조개와 딱지조개처럼 좌우대칭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해면동물은 그런 제약조건에서 자유롭다. 많은 해면동물은 꽃병이나 찻잔과 비슷한 단순한 모양이지만, 해면동물은 콜리플라워에서 갈라진 촛대, 방석, 빵 껍질에 이르기까지 거의 어떤 형태든 취할 수 있다." "해면동물은 신경계나 위장이 없지만 유성생식을 한다. 몸이 조직과 기관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185-6)


"해면동물을 구성하는 각각의 세포들이 연결되어 먹이를 수확할 수 있는 형태를 이루려면 지탱하는 뼈대가 필요할 것이다. 해면동물은 골편(spicule)이라는 작은 성분으로 이루어진 유달리 아름다운 지탱하는 '뼈대'를 갖추게 되었다." "목욕해면은 미시적인 수준에서 놀라울 만큼 상호연결된 뼈대를 만드는 콜라겐의 일종인 물질로 이루어진다. 그리 놀랍지 않겠지만, 이 물질에는 해면질(spongin)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다른 해면동물들은 덜 유연하다. 많은 무척추동물들이 쓰는 물질인 탄산칼슘으로 골편을 만드는 종류도 있다. 유리로 골편을 만드는 종류도 있다. 진짜 유리는 아니지만, 화학적으로는 똑같은 물질이다. 바로 이산화규소인 실리카로서, 흔히 석영이라고 한다. 해면질 해면 중에서도 뼈대에 실리카 골편을 섞는 종류가 있지만, 그 골편은 유리해면의 골편과 다르다. 유리해면의 '뼈대'는 자연에서 가장 경이로운 구조물에 속한다. 마치 마법 기하학자가 만든 것 같다."(186-7)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해면동물도 바이러스와 세균에 감염된다. 수억 년에 걸쳐 해면동물은 그런 공격에 맞서 내성을 갖추어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껏 번성하면서 우리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을 것이다. 해면동물은 흥미로운 유기 화학물질들이 찰랑거릴 만큼 가득 든 잔과 비슷하다. 그런 화학물질이, 예를 들어 세균 군체의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를 낸다면, '생물학적 활성'을 띤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가 쓰는 항생제는 이른바 슈퍼박테리아(MRSA) 같은 세균에 점점 효력이 없어지고 있으므로, 그런 변화무쌍한 원생생물에 맞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세균의 생장이나 증식을 억제하는 새로운 화학물질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해면동물로부터 의학연구의 대상이 될 만한 물질을 100가지 이상 찾아냈다. 그러니 해면동물은 화학물질 측면에서 잔이라기보다는 풍요의 뿔이라고 할 수 있다."(189-90)


6 녹색의 잎


"후페르지아는 약 3억 년 전 석탄기에 번성한 거대한 나무를 포함한 대규모 식물집단의 후손이다." "후페르지아는 생명의 역사를 더욱 멀리 석탄기까지, 육지녹화가 처음 이루어진 시기로 끌고 간다. 약 4억 2,000만 년 전 실루리아기에 식물은 수십억 년 전에 산소를 내뿜는 광합성이 출현한 이래로 우리 행성의 역사에 가장 주요한 경관의 변화를 일으켰다. 식물은 보호하고 지탱해주는 물속을 떠나서 희박한 공기 속으로 이동했다. 그 이주는 유례없는 결과를 낳았다. 이 전환이 일어나자 동물들이 뒤따라 이주할 수 있었고, 크고 작은 생물들이 무수한 육상생활의 가능성을 탐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가장 중요한 점은 후페르지아가 관속식물이라는 것이다. 줄기 안에 물을 운반하는 빳빳한 관(물관)이 있다는 뜻이다. 물관은 육상식물이라는 지위를 얻는 데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기계공학적 성과물이다. 물관이 없다면 육지에 사는 식물은 말 그대로 풀썩 쓰러질 것이다."(199-200)


"식물의 육지정착은 '되먹임 고리(feedback loop)'라는 다소 과장된 표현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즉 분해되는 유기물이 암석과 상호작용하여 토양을 만들고, 그 토양은 더 왕성하게 식생이 자랄 수 있도록 했다. 식물은 흙을 만들고 흙은 식물을 키웠다. 설령 화석 기록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세균과 균류도 이 과정에 관여했을 것이 분명하다." "셀룰로오스를 분해하고 흙을 만드는 일을 돕는 그들의 능력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육지정착의 초창기에도 반드시 필요했다. 진화에서는 그런 소리 없는 생존자가 계속 버티는 것이 새로운 돌파구 못지않게 중요했다. 균류와 뿌리는 처음부터 얽혀 있었을지 모른다. 균사는 최초의 식물 뿌리를 감싸서 오늘날 우리가 균근(菌根)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었다. 이 결합을 통해서 균류는 자라는 식물에 질소와 인산염을 제공하고 그 보답으로 당분을 얻는다. 그것은 가장 친밀한 형태의 공생을 이룬다."(203)


"개화식물의 다양화는 우리 행성의 생명을 가장 풍요롭게 만드는 출발점이 되었다. 우리는 어떤 창의력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문명이나 문화의 '개화(flowering)'라는 말을 쓰며, 그 비유는 적절하다. 꽃이 기본적으로 꽃가루의 유전정보를 전달하여 교차수분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단순한 기구라면, 그 단순한 주제의 무수한 변주는 끝없는 경이의 원천이 된다. 우리는 꽃이 진화하기 전에도 곤충이 꽃가루를 운반하는 일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지만, 꽃이 출현했을 때 발명의 상호발전이 촉발되었다. 꽃들은 꽃가루 매개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꽃가루 매개자들은 점점 더 헌신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화석 기록은 백악기 말의 대량멸종 이후에 나비와 벌이 폭발적으로 진화했다고 말한다. 이 시기는 더 따뜻한 위도에서 속씨식물이 (대체로 침엽수를 비롯한) 겉씨식물을 대체한 시기이기도 했다."(232-3)


7 어류와 도롱뇽


"오스트레일리아 폐어의 배아발생 과정은 척추동물의 진화의 역사를 알려줄 단서를 제공한다. 폐어는 실러캔스와 더불어 육기어류(Sarcopterygia)라는 어류집단(강[綱])으로 분류된다. 육기어류(육질의 지느러미를 가진 어류)는 내가 미끈거리를 폐어를 들었을 때 알아차린 것처럼 살집이 있는 신기한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다. 육기어류는 경골어류의 한 강이다. 경골어류에는 육기어강 외에 조기어강(Actinopterygii)도 있다. 조기어류는 농어와 청어처럼 빗살무늬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으며, 약 2만 5,000종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지구의 척추동물 다양성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네 발 달린 육지동물(사지류)이 오늘날 훨씬 덜 눈에 띄는 이전 집단의 한 구성원에게서 유래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느러미는 다리가 되어 육지를 걸었다. 따라서 폐어가 어떻게 발달하는지를 연구하면, 우리 자신의 발달과 유연관계를 상세히 알게 될 가능성이 높다."(241)


"일단 육지로 올라오자, 등뼈를 가진 동물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이 무수히 열렸다." "그린란드와 캐나다 북극지방의 몇몇 지역들에서 나온 화석들이 입증하듯이, 약 3억 8,000만 년 전 데본기 시점에 이르러 적당한 '조상' 어류가 최초로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비교적 잘 알려진 육상 사지류를 낳았다." "지금까지 말한 등뼈를 가진 동물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지극히 명백해서 처음에는 혁신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공통 특징이다. 바로 턱이 있다는 것이다. 학술용어로 말하면, 그들은 유악류(gnathostome)이다. 턱은 진화과정에서 낚아채고 물고 씹고 걸러내고 비벼대고 구슬리는 일을 하면서 계속 존재해왔다. 그러나 턱이 없던 시대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턱은 위턱과 아래턱이 관절로 이어져 있고 조화롭게 움직이는 복잡한 기구이다. 물고기의 턱도 마찬가지이다. 턱을 만들려면 진화가 일어나야 한다. 어류의 역사는 그 일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거슬러올라간다."(246-7)


"칠성장어 같은 턱 없는 물고기도 수억 년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다." "뼈는 수산화인회석(calcium hydroxyapatite)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산(물론 인 원소를 함유한다)이 들어 있으며, 척삭동물 특유의 조직이다. 뼈는 모든 척삭동물이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음을 입증하는 독특한 증거이다. 뼈는 우리의 내부 골조를 이룬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를 떠받친다. 최초의 뼈는 캄브리아기 말, 약 5억 년 전에 출현한 듯하며, 따라서 뼈의 발명은 생명의 나무에서 아래쪽 가지에 끼워진다. 뼈가 없었다면, 어떤 폐어도 육지로 첫 걸음을 내딛지 못했을 것이다. 진화의 역사에서 깨물기를 도입한 이빨도 없었을 것이다. 무악어류 화석은 뼈가 더 취약한 머리를 보호하는 외부 덮개로 출발했음을 시사한다. 뼈가 튼튼한 등뼈를 만들고, 우리가 짐승, 가금, 어류와 동족임을 알아볼 수 있는 표지인 뻐대, 즉 피부 밑의 머리뼈를 제공한 것은 더 나중의 일이었다."(254-5)


# 척삭(notochord) : 신경관과 평행하게 몸 전체에 걸쳐 형성되는 중배엽 세포로 몸을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고등한 척추동물도 배아 때 척삭을 갖고 있다. 


8 피 속의 열기


"가시두더지는 포유동물이지만, 특별한 포유동물이다. 우리처럼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것은 맞다. 짧은 만남을 토대로 얼마나 지능이 뛰어난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온형동물이고 자기보호 본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 가시두더지는 알을 낳는 극소수의 포유동물(단공류, 單孔類)에 속한다. 새끼는 발생 초기단계에서 태어나며, 생물임을 겨우 알아볼 수 있는 매우 작고 꿈틀거리는 존재에 불과하다. 유대류도 미완성 상태의 작은 새끼를 낳기는 하지만, 가시두더지는 캥거류, 웜뱃, 주머니쥐처럼 새끼를 키우는 데에 쓰이는 잘 발달한 주머니가 없다. 또 젖을 분비할 때 외에는 젖샘도 아예 없다." "체온은 포유류 중에서 가장 낮은 섭씨 31-33도이다. 가시두더지가 파충류 상태로부터 '데워지고' 있는 과정에서 멈추었다고 주장해도 그리 과장이 아닐 것이다. 대다수의 포유류와 달리, 가시두더지는 헐떡거리지도 땀을 흘리지도 않기 때문에 과열에 취약하다."(277-9)


"가장 영리하다고 여겨지는 동물, 즉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은 어땠을까? 육식동물, 고래와 친척들, 대형 초식동물, 박쥐를 비롯하여 대다수의 포유동물은 공룡과 그들의 파충류 친척들이 백악기 말에 사라진 뒤에 주된 방산진화를 이루었다. 이 과정을 묘사할 때 '생태적 해방(ecological release)'과 같은 다소 과장된 용어가 쓰였지만, 실상은 포유류가 폭발적으로 분출한 진화적 창의성을 발휘하여 세계의 빈자리를 거의 다 메운 것이었다. 창의적인 발명은 그 뒤로 6,000만 년 동안 진행되었다가 멈추었다가 하면서 계속되었다. 판게아가 쪼개져 생긴 각 대륙에서 연달아 새로운 포유류 집단이 출현하면서 이어졌다. 우리의 진화적 친척들과 우리 자신이 속한 집단인 영장류는 이 방산진화가 이루어질 때 처음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 이 집단이 백악기에 뿌리를 둔다는 것을 시사하는 약간의 화석들이 있으므로, 영장류는 결코 가장 최근에 출현한 포유류가 아니다."(286-7)


9 섬과 얼음


"섬은 취약하다. 격리된 채 진화한 종은 고양이나 쥐나 무성한 잡초가 일상적으로 가하는 위협을 접하지 못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몇몇 섬들은 이미 키니네 덤불과 외래종 검은딸기로 뒤덮여서 훼손되었다. 낯선 자들이 자연의 진화실험을 망친 것이다. 아마도 약 2,000년 전일 텐데, 모험심 많은 폴리네시아인들이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 섬의 원초적인 생물 다양성은 영구히 훼손되었다. 토종 꿀새(honey-creeper)의 황금빛 깃털은 곧 대추장의 화려한 겉옷을 만드는 데에 쓰였다. 더 나중에 온 쥐들은 땅에 알을 낳는 날지 못하는 하와이 토종 새들을 모두 전멸시켰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이 잘못된 지식을 토대로 쥐를 잡겠다고 몽구스(mongoos)를 들여왔고, 몽구스는 토착생물들에게 이빨을 들이댔다. 외래종 나무들이 천천히 자라는 토종 나무숲을 대체했다. 격리된 상태에서 진화가 빚어낸 것들 중 상당수는 바깥 세계와 연결되었을 때 자연선택의 작용으로 파괴되었다."(318)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biophilia)' 개념은 우리 존재의 깊은 현실일 수 있는 인류 종과 자연계의 타고난 결속을 상정한다. 나는 〈인류가 다른 살아 있는 생물들보다 훨씬 더 고상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생물들이 생명이라는 개념 자체를 고양시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인류는 숭고하다〉는 그의 말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한 종의 중요성이 우리 인류가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개념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이 이 특정한 호미닌의 관찰을 통해서만 유효하다는 견해에 동조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생물은 자기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으며, 전기(biography)라는 용어가 이미 인간의 전용물이 된 것이 아니라면, 나는 그 용어를 문자 그대로 쓰고 싶다. 우리는 멸종이 다른 생태계에 끼칠 '손상'을 통해서 종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는 30억 년이 넘는 진화의 산물들을 공리주의 목록으로 서열화할 수 없다."(319-20)


"플라이스토세에 북극의 빙모는 2만 년 전 마지막 최대 빙하기(Last Glacial Maximum, LGM) 때 가장 컸다. 당시 미국은 오하이오 강까지 거대한 빙상으로 뒤덮였고, 영국의 거의 전체와 유럽의 북부도 마찬가지로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였다." "얼어붙은 황무지의 아시아 가장자리에서는 드넓고 추운 툰드라 습지와 초원이 그 환경에 적응한 종들이 행복하게 번성할 특별한 조건을 제공했다. 따라서 빙하기는 온대생물들이 편안히 지낼 만한 더 남쪽으로 그들을 내몰았을 뿐 아니라, 일부 생물들에게는 기회를 준 시기였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물이 빙상에 갇혔기 때문에 세계의 해수면은 대폭 낮아졌다. 그 결과, 마지막 최대 빙하기는 인도네시아 군도와 아시아 사이에 육지 다리가 형성되어 인류가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이주할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아마도 키가 약 1미터에 불과한 플로레스 섬의 작은 인류는 이때 처음으로 먹성 좋은 커다란 뇌를 가진 친척들과 맞닥뜨렸을 것이다."(325)


10 역경에 맞서는 생존자들


"나는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생명의 역사를 드러내는 이 모든 원핵생물, 동물 식물을 〈그저 운이 좋았다〉라고 뭉뚱그려 말하고 넘어가기에는 뭔가 부족하다고 본다. 그들을 전적으로 적응력이 뛰어난 우수한 존재라고 묘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실수일 것이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사실 결코 찰스 다윈의 것이 아니며, 1864년 다윈주의 경제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만든 것이다." "이와 정반대로, 우리는 거의 모든 곳에서 생명의 나무의 낮은 가지에서 살아남은 생물들로부터 과거의 각인을 볼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했듯이, 설령 화석 같은 것이 전혀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진화의 결정적인 증거를 추적할 수 있다. 그것은 유전체에, 그리고 비교해부학과 현생 생물의 발달 과정에 적혀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사실이지만, 한 가지 핵심을 놓치고 있기도 하다. 화석은 언제, 어떻게, 왜 어떤 역사가 일어났는지를 말해주는 증거를 제공한다."(347-9)


"나는 역사의 조류에 따라 이리저리 오가면서 생존자들이 모이게 된 곳을 시간 피난처(time haven)라고 이름 붙이련다. 시간 피난처는 개별 종의 '레퓨지아(refugia)'의 집합이다. 수백만 년이 흐르는 동안 이 종들은 진화적으로 더 젊은 종들과 뒤섞이고 이웃이 되어 함께 살게 되었다. 시간 피난처는 서로 다른 생태계들이 다소 한정된 공간에 꾸려넣어질 수 있는 육지에서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해양세계에서는 플랑크톤 유생을 통해서 새로운 곳으로 퍼지는 종이 많아서 분포영역이 불분명하다." "시간 피난처에 보전된 종들의 역사는 화석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그곳의 종들은 대부분 생명의 나무의 꼭대기에 난 잔가지이다. 시간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에 놓인 시간 피난처에는 옛 사건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줄 종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특히 진정한 영속성에 비추어보면, 인류의 역사가 대단히 짧다는 것을 알려주는 비유로서 말이다."(369-72)


# 레퓨지아(refugia) : 대륙 전체의 기후가 변할 때 비교적 변화가 적어 다른 곳에서는 멸종된 종이 살아 있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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