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아이테토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6
플라톤 지음, 정준영 옮김 / 이제이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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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 암, 그렇게 열성적으로 말해야 하네, 테아이테토스. 처음에 했던 식으로 대답하길 주저하기보다는 말이지. 우리가 그렇게 열성적으로 하면 다음의 둘 중 한 사태가 일어나게 될 테니까. 우리가 좇는 것을 찾게 되든가, 아니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다는 생각을 덜하게 되든가 하겠지. 이 같은 것이라도 못마땅한 보상은 아닐 것이네. 187c, 166-7)

소크라테스 : 그러니까, 테아이테토스, 이후에 자네가 다른 것들을 잉태하고자 시도한다면, 그러다 실제로 잉태하게 될 경우도 속이 비어 있을 경우도 지금보다 더 낫게 될 것이네. 잉태하게 될 경우엔 지금의 탐문 덕에 자네는 더 훌륭한 것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속이 비어 있을 경우엔 분별 있게도 자네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안다고 여기지 않는 탓에 함께 하는 이들한테 덜 모질고 더 부드러운 사람이 될 것이네. 210c,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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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필레보스 헬라스 고전 출판 기획 시리즈 4
플라톤 지음, 박종현 역주 / 서광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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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 아, 필레보스! 아마도 그 여신이, 모두의 휘브리스(hybris)와 온갖 사악(sympasa ponēria)을 내려다보고서, 즐거움(쾌락)들의 경우에도 또한 욕구 충족(식욕)들의 경우에도 전혀 한도(peras)가 그들 안에 없음을 간파하고서는, 한도를 지닌 법(nomos)과 질서(taxis)를 정해 주었을 거야. 자네는 그 여신이 [사람들을] 찌들게 하는 것으로 말하지만, 나는 거꾸로 구제해 주는 것으로 말하네. 26b-c, 123-4)

소크라테스 : 여보게, 프로타르코스! 실상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은 이것, 즉 무슨 기술(technē)이나 무슨 학문(앎, 지식: epistēmē)이 가장 위대하고 가장 좋으며 또한 우리를 가장 이롭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것보다 월등한가 하는 것이 전혀 아닐세. 도대체 어느 것이, 설사 그게 사소하고 적게 이롭더라도, 명확함(명확성: to saphes)과 정확함(정확성: t'akribes) 그리고 가장 참됨(최대의 진실성: to alēthestaton)에 주목하고 있는지,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일세.
...
그리고 지금도 많이 생각도 해 보고 충분히 따져도 보되, 앎(지식)들의 어떤 이로움(이득: ōpheleia)들에도 또는 어떤 좋은 평판들에도 주목하질 말고, 만일에 우리의 혼의 어떤 능력(dynamis)이 본성상 진실을 사랑하며 진실을 위해서 모든 걸 행한다면, 이 능력을 면밀히 검토하고서 말하도록 하세. 그것이 지성(지성에 의한 이해: nous)과 지혜(사려 분별: phronēsis)의 순수함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가장 그럼직하게 우리가 주장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것과는 다른 한층 더 권위 있는 것을 우리가 찾아야만 할지 말일세. 58c-d,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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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넥세노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5
플라톤 지음, 이정호 옮김 / 이제이북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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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 음, 메넥세노스, 정말 여러 가지 점에서 전쟁에 나가 목숨을 바치는 것은 훌륭한 일인 듯하이. 왜냐하면 설령 가난한 자가 전사했을지라도 훌륭하고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또 설령 모자란 사람일지라도 지혜로운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기 때문이지. 더욱이 그들은 대충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연설을 준비해서 칭송하니까 말이야. 그들은 이런 식으로 근사하게 칭송하거든. 즉 전사자 각각에 대해 그가 세운 무공이건 아니건 다 들먹이며, 그것들을 가능한 한 온갖 미사여구로 최대한 수식해 우리들의 넋을 빼놓지. 그들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나라를 찬양하고 또 전쟁에서 죽은 자를 찬양하고 그리고 또 그 옛날 우리들의 선조 모두와 아직 살아 있는 우리들 자신들도 칭송하는데, 메넥세노스여, 그 결과 나도 그들로부터 칭송을 받아 아주 고귀해지는 것 같다네. 그래서 그럴 때마다 귀 기울여 듣다가 매료돼 딴 사람이 돼 버리곤 하네.

내가 갑자기 더 커지고 더 고귀해지고 훌륭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야. 그리고 대개의 경우 외국인 몇 사람과 같이 가 함께 연설을 듣는데 나는 그때마다 그들 앞에서 갑자기 한층 위엄이 서는 기분이 들더군. 왜냐하면 내 생각에, 그들도 나와 그 밖의 다른 시민들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느낌과 똑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네. 즉 그들은 연설자에게 설복되어 이 나라가 자기들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놀랄 만한 나라가 되었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거든. 그리고 위엄이 서는 이런 기분이 나에게는 사흘 이상 계속되네. 그 정도로 연설자의 말과 소리가 쟁쟁하게 내 귓속에 울려 들어와 나흘이나 닷새째가 되어서야 겨우 나 자신으로 돌아와 내가 어떤 세상에 있는지 알게 되는데, 그러기까지는 나는 그저 내가 축복 받은 사람들의 섬에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젖어 있네. 그 정도로 우리의 연설가들은 수완이 대단한 사람들이야. 234c-235c, 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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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드로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4
플라톤 지음, 김주일 옮김 / 이제이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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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도 형체도 없으며 만져지지도 않는, 있는 것답게 있는 실재가, 즉 혼의 키잡이인 지성에만 관조되고, 참된 앎의 부류가 관계하는 실재가 이 자리(천계 바깥)를 차지하고 있지. 그리하여 순수한 지성과 앎에 의해 양육되는 신의 생각, 그리고 자신에게 적합한 양식을 섭취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는 모든 혼의 생각은 때가 돌아오면 회전운동이 빙 둘러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시간 간격을 두고 실재를 보고 반기며, 참된 것을 관조하여 양식을 얻고 즐거워하지. 그 궤도에서 그것은 정의 자체를 목격하고, 절제를 목격하며, 앎을 목격하지. 그런데 그 앎은 생성이 곁들여지지 않은 앎이요, 오늘날 우리가 있는 것들이라 부르는 것들 중 어떤 다른 것과 관련될 때마다 달라지는 앎이 아니라, 있는 것답게 있는 실재인 것에 관계하는 앎이지. 247d, 84)

하지만 지혜는 시각에 의해 보이지 않아. 만약 지혜가 자신에 대한 그런 식의 영상을 시각으로 들어오게 했다면 무서운 사랑을 불러일으켰을 테지만 말이야. 250d,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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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기아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1
플라톤 지음, 김인곤 옮김 / 이제이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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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 그러면 "배워서 알고 있다"와 "확신하고 있다", 즉 "배움"과 "확신"이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어떤 점에서는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고르기아스 : 나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 옳은 생각입니다. 그 차이는 이렇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고르기아스, 거짓된 어떤 확신과 참된 어떤 확신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제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실 겁니다.
고르기아스 :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 어떻습니까? 거짓된 앎과 참된 앎이 있습니까?
고르기아스 : 없지요.
소크라테스 : 따라서 분명히 그것들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고르기아스 : 맞는 말입니다.
소크라테스 : 그렇지만 배워서 알고 있는 자들과 확신하고 있는 자들은 설득된 자들이기도 합니다.
고르기아스 : 그건 그렇지요.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우리가 설득의 종류를 둘로 놓아도 될까요? 하나는 앎 없는 확신을 가져다주는 설득이고, 다른 하나는 앎을 가져다주는 설득으로.
고르기아스 : 물론이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연설술은 법정에서나 그 밖의 군중들 앞에서 정의로운 것들과 부정의한 것들에 관해 두 가지 설득 중에서 어떤 설득을 합니까? 앎 없는 확신이 생기는 설득입니까? 아니면 앎이 생기는 설득입니까?
고르기아스 : 분명히 확신이 생기는 설득이겠지요,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연설술은 정의로운 것들과 부정의한 것들에 관해 확신을 갖게 하는 장인이지 가르칠 수 있는 설득의 장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르기아스 : 그렇지요.
소크라테스 : 따라서 연설가는 정의로운 것과 부정의한 것에 관해 법정이나 그 밖의 군중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자는 전혀 아니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자일 뿐입니다. 실로 그처럼 큰일에 관해서 그렇게 많은 군중을 짧은 시간에 가르칠 수는 없을 테니까요. 454d-455a, 7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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