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기아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1
플라톤 지음, 김인곤 옮김 / 이제이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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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 그러면 "배워서 알고 있다"와 "확신하고 있다", 즉 "배움"과 "확신"이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어떤 점에서는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고르기아스 : 나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 옳은 생각입니다. 그 차이는 이렇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고르기아스, 거짓된 어떤 확신과 참된 어떤 확신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제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실 겁니다.
고르기아스 :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 어떻습니까? 거짓된 앎과 참된 앎이 있습니까?
고르기아스 : 없지요.
소크라테스 : 따라서 분명히 그것들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고르기아스 : 맞는 말입니다.
소크라테스 : 그렇지만 배워서 알고 있는 자들과 확신하고 있는 자들은 설득된 자들이기도 합니다.
고르기아스 : 그건 그렇지요.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우리가 설득의 종류를 둘로 놓아도 될까요? 하나는 앎 없는 확신을 가져다주는 설득이고, 다른 하나는 앎을 가져다주는 설득으로.
고르기아스 : 물론이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연설술은 법정에서나 그 밖의 군중들 앞에서 정의로운 것들과 부정의한 것들에 관해 두 가지 설득 중에서 어떤 설득을 합니까? 앎 없는 확신이 생기는 설득입니까? 아니면 앎이 생기는 설득입니까?
고르기아스 : 분명히 확신이 생기는 설득이겠지요,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연설술은 정의로운 것들과 부정의한 것들에 관해 확신을 갖게 하는 장인이지 가르칠 수 있는 설득의 장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르기아스 : 그렇지요.
소크라테스 : 따라서 연설가는 정의로운 것과 부정의한 것에 관해 법정이나 그 밖의 군중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자는 전혀 아니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자일 뿐입니다. 실로 그처럼 큰일에 관해서 그렇게 많은 군중을 짧은 시간에 가르칠 수는 없을 테니까요. 454d-455a, 7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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