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의 심리학 - 그들은 어떻게 친구가 되고 왜 등을 돌리는가
레이철 시먼스 지음, 정연희 옮김 / 양철북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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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시소의 타고난 운명은 평형과의 어긋남.
혼자일때도 그러하니, 다시금
운명이리라

 

너와 내가 만난다는 건,
눈을 마주친다는 건,
미소짓는다는 건,
대화한다는 건,

 

함께 시소에 올라타는 일

 

내가 올라가면 네가 내려가고,
내가 내려가면 네가 올라가고,

 

서로 다름을 각인하는 일

 

우리에게 평형이란 헤어짐의 다른 이름.
둘이어서 더욱 그러하니, 이제는
삶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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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종교 - 유럽 정신사에서의 로마서 13장
미야타 미쓰오 지음, 양현혜 옮김 / 삼인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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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3장은 얼핏 보면 신을 세속 권력의 제일근거로 규정하고, 군주들에게는 신의 나라의 일꾼으로서의 소명을, 신민들에게는 권위에 대한 복종의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인 사도 바울이 처한 정치적 맥락과 신앙인으로서의 자세가 해석자인 후대인들의 정치적, 신학적 입장과 맞물리면서 두 개의 대립항을 산출해내는데, 하나는 국가 (권력)이 신성한가 아닌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 (권력)이 복종의 대상인가, 구성의 대상인가의 문제이다.

신이 세속 권력의 근거라는 명제는 곧바로 국가의 신성함을 정당화하는 해석으로 전용된다. 이러한 입장은 비잔틴 제국의 황제-교황주의와 중세의 왕권신수설로 정식화되는데, 이는 당대가 굳이 변론을 해야 할 정도로 국가의 신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는 역설적인 상황의 반증이기도 하다. 구약성서의 히브리 민족의 경우처럼 신이 국가 권력의 행사에 긴밀히 관여하는지의 여부를 놓고 따져보면, 신이 침묵하는 세계는 신이 창조하였으나 더이상 주관하지 않는 세계로 전락한다. 신의 외면은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한 것처럼 국가에게서 신성함의 빛을 박탈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가 권력의 신성함 여부는 복종의 수위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이 지상을 떠나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신앙의 '양심'에 의지하게 되자, 로마제국기에는 '박해의 종말론'이라는 수동적 저항권이 등장하였고, 중세에는 주군과 신하의 쌍무 계약이 주군의 신의 상실로 파기될 때 복종의 의무도 사라진다는 소극적 저항권이 성립하였다. 교회 권력과 세속 권력의 결별을 천명한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로는 국가를 구성하는 핵심 요인이, 신이 떠나버린 지상 세계의 자유로운 개인들간의 계약으로 대체되면서 국가의 정당성은 '공공 복리'에 헌신하는 선한 통치와 결부된다.

법률, 군사력과 함께 종교를 진리성과 관계 없이 유용한 지배도구의 하나로 파악한 마키아벨리나 법률에 구속되지 않는 절대적 공권력으로서의 '주권' 개념을 확립한 보댕에 이르면 로마서 13장을 둘러싼 논의의 위력이 점차 쇠퇴한다. 이제 인민의 의지와 결정이 '천부의 권리'로 옹호되거나 국가 권력이란 이의 위임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대세를 이루면서 인간 제도로서의 '국가' 개념이 확고히 자리를 잡는다. 국가를 유기체에 비유한 홉스나 독일 관념론자들처럼 국가 권력의 절대성을 옹호하는 논의도 이어졌지만, 이 역시 일방적인 복종을 당연시했던 신정국가 체제의 확고함과는 다른 것이다.

로마서 13장이 주로 지배 권력의 이데올로기 역할을 담당한 것은, 예수가 혁명보다는 죽음을 택했듯이 '복종'이라는 말의 표면적 압력을 살리고 '양심'의 논거를 부식시키는 권력의 의지가 더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의미는 해석의 양식에 따라 사상의 양지와 음지를 얼마든지 오간다. <맹자>를 절문하여 누더기만 남기거나, <노자>를 제황학의 교범으로 추앙하는 일을 경계하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니라, 국가 권력과 부대끼는 우리의 의지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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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희생 - 개인의 희생 없는 국가와 사회는 존재하는가?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이목 옮김 / 책과함께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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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희생 없는 국가와 사회는 존재하는가?"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죽음을 '숭고한 희생'으로 찬양하는 시스템은 생사를 가르는 전쟁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이미 충분히 발달되어 있었으며, 집단의 결속력을 강력히 유지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발동되는 국가 수호 프로젝트이다.

중세 초기에는 세속 국가에서 신에게로 신성함이 이전되면서, 신의 나라를 위한 순교가 중시되고 지상의 나라에 바치는 희생의 가치가 하락했지만, 중세의 가을에 이르면 '신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은 조국'이라는 관념이 대두하면서 국가가 '숭고한 희생'이라는 제단의 주인으로 돌아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체-신비체corpus mysticum-관념을 변형하여 국가를 유기체에 비유하면서 군주가 국가의 머리이자 숭배의 대상이라고 규정한 절대왕정의 시기를 거쳐 폭력을 독점한 근대에 이르면, 이제 국민국가는 세속화된 종교의 위치에 올라선 단 하나의 상위체로 자리매김한다.

여기서 국가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공동체)를 위해서'라는 대목이다. 인간은 세계의 안위보다 자신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이다. 혈연 공동체는 '자신의 생명'에 자연스럽게 포섭되지만, 국가에 대한 충성과 자기 동일시는 타고난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후천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국가는 과거의 희생을 추도하고 미화하면서 현재화한다. 국가의 이름으로 치러진 희생은 고귀하고 영광스런 죽음으로 숭배된다. 피안의 세계로 넘어가려는 희생자들의 영령은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한 채 살아남은 자들에게 미래의 희생을 요구하는 선도자로 끊임없이 소환된다.

저자는 전쟁을 상정한 상비군의 존재가 '숭고한 희생' 논리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분석하지만, 군대는 폭력의 집행 의사를 가장 뚜렷하게 내세운 상징적인 집단이지, 유일한 수단이 아니다. 국가들처럼 대립하는 공동체가 사라지더라도 집단은 언제나 자신 안에 분열의 싹을 간직하고 있다.

국가가 없다는 상상은 더 크거나 작은 공동체로 대체될 뿐이다. 세계시민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는 선의와 공정으로 포장된 보편국가의 길이 제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경계하는 한편, 국가가 외부에서 적을 더 이상 찾지 못하는 경우 내부의 적으로 눈길을 돌린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킨다.

모든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절망 앞에서 좌절하는 것만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루쉰을 인용하면서 불가능한 것을 향한 욕망을 강조한다. 책임 있는 결정이란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추구로부터 시작된다. 이 욕망을 상실할 때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사람을 잡아먹은 적이 없는 아이들이, 혹시 아직 있을까?
아이들을 구해야 해! -루쉰, <광인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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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는 수단 - 정치에 관한 11개의 노트
조르조 아감벤 지음, 김상운.양창렬 옮김 / 난장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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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역사, 문학, 세 가지 학문의 초석(礎石)을 단순화해서 표현하면, 철학은 사유를 구축하고, 역사는 사실을 배열하며, 문학은 언어를 자유롭게 한다. 이것들은 각각 인간의 정신 자체와 정신의 표상물, 그리고 이 둘을 이어주는 매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작업이다. 본래 하나의 학문이었으므로 굳이 '통섭'이란 이름으로 재규정할 필요가 없으며, 끊임없이 상호 교차를 시도하는 것이 낯설거나 부자연스러운 일도 아니다.

문제는 자신의 심장부를 개방하면서까지 다른 분야에 기대거나 영합하려는 태도이다. 정신에 대한 탐구를 특정한 사태와 합치시켜 설명하거나, 언어의 직조를 통해 멋들어지게 포장하는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공존'과 '혼합'이 혼재된 곳에서는 영역을 구분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낡고 진부한 것으로 간주되기 마련이다. 선언이 사유를, 염원이 사실을, 수사가 논증을 대체한 자리에 쓰여진 글은 잊혀질 구호들로 가득하다.

~에서만 / 유일하게 / 전지구적 내전 / 역사의 종언 / 가로지르기 / 생명정치 / 구멍 / 진동 / 변형 / 분열 / 전복 / 저항 / 도래...

이 비장한 어휘들은 기성의 권위에 가려져 있던 소외 지대를 비춘다. 그들이 발견[발굴]한 현상들은 엄숙한 정의定義의 망토를 걸치고 과過대표된다. 복잡다단하게 얽힌 인과의 고리가 하나로 정리되면서 해석의 위력이 상상 속에서 증폭된다. 본래 있던 자리를 파국으로 내몰고, 균열된 틈에서 교배하며, 새로운 세계를 여는 이 어휘의 성찬은 사유를 앞질러서 성대한 축제를 연다. 그리고 사유가 도착하기 전에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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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나남신서 201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강명구 옮김 / 나남출판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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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가 발생하는 인간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느슨함(slack)'이라는 엔트로피가 생겨난다. '느슨함'은 시장 혹은 조직의 지속적이고 임의적인 쇠퇴를 유발하는데 여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이탈'과 '항의'이다.

'이탈(exit)'은 대체제를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는 시장에서 주로 구사되는 전략이다. 소비자는 상품의 질이 저하되거나 서비스가 불만족스러울 경우 다른 상품으로 '이탈'한다. '이탈'의 실행은 곧장 상대방과의 교류 중단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급격하게 진행되는 경우에는 쇠퇴를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가속화하기도 한다.

'항의(voice)'는 대안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선택에 많은 절차가 소요되어 결단이 요구되는 조직에서 구사되는 전략이다. 가족이나 국가, 종교처럼 상당한 수준의 불편도 감수해야 하는 집단이 여기에 해당한다. 회원들은 쉽사리 '이탈'을 감행하지 못하는 대신 조직의 쇠락을 방지하고자 다양한 '항의' 전략을 동원한다.

두 전략의 실행을 늦추고 구성원의 자기 만족도를 높이는 요소가 바로 '충성심(loyalty)'이다. 충성파들은 조직의 '느슨함'이 한계점에 도달하여 도덕적, 물질적 고통을 받아도 자신들의 '이탈'과 '항의'가 조직에 악영향을 끼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충성심'은 감성에 기반하지만 비합리적이지만은 않은 유용한 반대전략이다.

'항의'는 '이탈'의 보완재이고, '충성심'은 예방약이다. 충성과 저항 모두 회원이 조직에 참여한 시간의 총량에 비례하여 강화된다. 순교는 최후의 수단이지만, 발생횟수와 주기에 따라 그저 지나가는 일상의 하나로 전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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