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희생 - 개인의 희생 없는 국가와 사회는 존재하는가?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이목 옮김 / 책과함께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개인의 희생 없는 국가와 사회는 존재하는가?"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죽음을 '숭고한 희생'으로 찬양하는 시스템은 생사를 가르는 전쟁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이미 충분히 발달되어 있었으며, 집단의 결속력을 강력히 유지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발동되는 국가 수호 프로젝트이다.

중세 초기에는 세속 국가에서 신에게로 신성함이 이전되면서, 신의 나라를 위한 순교가 중시되고 지상의 나라에 바치는 희생의 가치가 하락했지만, 중세의 가을에 이르면 '신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은 조국'이라는 관념이 대두하면서 국가가 '숭고한 희생'이라는 제단의 주인으로 돌아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체-신비체corpus mysticum-관념을 변형하여 국가를 유기체에 비유하면서 군주가 국가의 머리이자 숭배의 대상이라고 규정한 절대왕정의 시기를 거쳐 폭력을 독점한 근대에 이르면, 이제 국민국가는 세속화된 종교의 위치에 올라선 단 하나의 상위체로 자리매김한다.

여기서 국가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공동체)를 위해서'라는 대목이다. 인간은 세계의 안위보다 자신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이다. 혈연 공동체는 '자신의 생명'에 자연스럽게 포섭되지만, 국가에 대한 충성과 자기 동일시는 타고난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후천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국가는 과거의 희생을 추도하고 미화하면서 현재화한다. 국가의 이름으로 치러진 희생은 고귀하고 영광스런 죽음으로 숭배된다. 피안의 세계로 넘어가려는 희생자들의 영령은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한 채 살아남은 자들에게 미래의 희생을 요구하는 선도자로 끊임없이 소환된다.

저자는 전쟁을 상정한 상비군의 존재가 '숭고한 희생' 논리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분석하지만, 군대는 폭력의 집행 의사를 가장 뚜렷하게 내세운 상징적인 집단이지, 유일한 수단이 아니다. 국가들처럼 대립하는 공동체가 사라지더라도 집단은 언제나 자신 안에 분열의 싹을 간직하고 있다.

국가가 없다는 상상은 더 크거나 작은 공동체로 대체될 뿐이다. 세계시민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는 선의와 공정으로 포장된 보편국가의 길이 제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경계하는 한편, 국가가 외부에서 적을 더 이상 찾지 못하는 경우 내부의 적으로 눈길을 돌린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킨다.

모든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절망 앞에서 좌절하는 것만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루쉰을 인용하면서 불가능한 것을 향한 욕망을 강조한다. 책임 있는 결정이란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추구로부터 시작된다. 이 욕망을 상실할 때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사람을 잡아먹은 적이 없는 아이들이, 혹시 아직 있을까?
아이들을 구해야 해! -루쉰, <광인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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