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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시대의 일상사 - 순응, 저항, 인종주의, 개마고원신서 33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 / 개마고원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저자는 사회적 관계에서 지배받는 이들을 "작은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면서, 그들의 일상에서 체제와 연관되는 지점의 다양한 면모를 통해 나치 시대를 살펴보고 있다. 가령, 전사자의 죽음을 "국가에 바치는 숭고한 희생"으로 치환할 때 일상은 체제와 연관되며 "정치적" 의미가 부여된다. 사회적 관계속에 놓인 개인의 입장, 발언, 행위 혹은 부작위는 체제를 수호하거나 균열시킬 수 있는 잠재적 요소들인 셈이다.
바이마르공화국의 무기력에 지친 "작은 사람들"은 "정상성(Nomalität)"의 회복을 갈망했으며, 폭력과 테러를 수단으로 삼아 그 길을 놓는 나치의 저돌성에 매혹되었다. 19세기 말 서구 부르주아 사회의 구조적 변동에서 유래한 사회의 극심한 혼란상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수단이 가열찬 폭력이라는 사실에 모두 동의한 셈이다. 역설적인 것은 파괴를 원천으로 삼는 체제는 "정상성"에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치가 구현한 "정상성"은 자신을 위협하는 '불멸'의 적에게 맞서기 위해 가혹한 규율과 촘촘한 억압의 그물이 작동하는 체제였다. 이 '숨막히는 평화'는 전근대적 광신(狂信)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근대성의 이면에 잠재한 통제 성향에 기인한다. 우리 시대가 근대의 자장 안에 속한다는 말은 과학의 한정적인 진리값과 자의적인 사회 규율의 만남을 절대화하는 태도가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켜준다.
우리가 문제 삼으려는 일상은 가능한 최대 의미의 일상이 아니라 제3제국에서의 일상이다. 따라서 우리가 제기해야 하는 질문은, 나치즘의 일상에서 무엇이 정치적이었는가, 혹은 비정치적인 일상에 끈질기게 매달리던 당대인들의 태도는 그들의 나치즘 경험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28)
그들(나치당원) 중에 소위 "좌절한 중간세대"에 속하는 사람에 많았던 사정으로 인해 더욱 첨예화되었다. ... 실업자나 실패한 자영업자 혹은 보다 나은 교육과 사회적 상승의 기대를 접어야 했던 청년들이 위기의 일상에서 잃어버린 전망과 나치 운동에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객관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한 참여는 삶을 보다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45)
나치 체제에 대한 합의는 종종 언급되는 대로 나치의 테러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니라, 테러가 "공동체의 적들"을 겨냥하는 한 그리고 그로써 소위 "질서"의 재건에 기여하는 한 테러에 정서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었다고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109)
전쟁은 "정상"이고, 폭력도 "정당"하다. 성공하면 특히 그렇다. 1936년부터 1939년에 이르는 시기에 히틀러가 거둔 외교적 성공으로 말미암아 독일인들은 "베르사유의 치욕"을 씻는다는 "정당한 관점"을 폭력적으로 주장하면서 한 판에 모든 것을 거는 모험적 행위야말로 성공에 이르는 확실한 비법이라고 생각하는 데 이미 익숙해져 갔다. 219)
나치는 그들이 목표로 하던 민족공동체를 문화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정치의 미학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공적인 연출의 결과, 공적인 삶은 동공화(洞空化)되었고 비정치적이고 사적인 영역으로의 도피는 심화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는 체제에 대한 수동적인 합의, 즉 그렇게 도달된 소위 "정상 상태"에 대한 사람들의 동의를 확보하고 공고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300)
제3제국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노인들의 기억 속에 두 가지 업적으로 기억된다. 당시에는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문 앞에 세워 둘 수 있었다는 것과, 당시에는 장발과 싸움패는 제국노동봉사단에 끌려갔다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그러한 생각이 당시 유행하던 사형 혹은 가스실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특수한 형태의 테러, 즉 일탈적인 입장 혹은 일탈적인 존재를 수용소에 집어넣고, 죽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곳에 격리시키고 훈련시키는 테러 방식에 동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303-4)
나치가 내세우던 유전학 기준이 모호했기 때문에 인종적 특징을 규정하던 핵심적 요소는 오히려 인간의 사회적 태도였다. ... 요컨대 나치 인종주의의 양대 요소는 생물학적인 심증을 일탈적 사회적 태도의 징후를 통해 확인하는 것과, 특정 소집단의 행동 방식을 규범으로 확대시켜 거의 모든 인간에게 적용시키는 경향이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요소는 집시 문제에서뿐만 아니라 나치가 인종 개념의 "긍정적" "건설적" 측면으로 선전한 영역, 예컨대 "여성"을 "독일적 어머니"로 규정할 때에도 발견된다. 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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