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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국가 - 나치 정치혁명의 이념과 현실 ㅣ 현대의 지성 137
마르틴 브로샤트 지음, 김학이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5월
평점 :
마르틴 브로샤트가 해부한 나치즘은 모순 개념의 향연이다. "히틀러 국가"라는 명명부터가 그렇다. 나치 독일은 지도자의 카리스마 위에 건설된 국가였으며, 그는 선동의 언어를 진리의 왕국으로 곧장 연결시키려는 맹목적 의지와 광적인 신념의 결정체였다. 지도자는 국가 권력의 정점이자 국가 체제로부터 분리(absolvere)되어 있는 진공의 지배자이며, 혁명의 선두에 선 돌격대와 혁명을 쓰러뜨린 친위대를 낳은 원초적 대지였다. 지도자의 말에 기댄 모방자들은 제각기 유사 지도자의 외양을 걸치고 국가 내부에 세운 자신의 봉토 위에서 분열하고 증식하면서 국가를 '지속과 붕괴'의 진자 위에 올려놓았다.
결과적으로 "히틀러 국가"는 내부의 일체화와 외부의 파멸이라는 예견된 결과를 향해 질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의 투쟁"이 '포그롬의 폭주를 홀로코스트의 번제'로 변태시킨 유일하고 근본적인 요인은 아니다. 미래의 의도는 현실의 처방을 압도하지 못하며, 선동의 언어에는 뿌리가 없다. 이론의 정합성은 실천의 부정합성이라는 시련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히틀러 국가"는 즉흥 조치를 남발하는 특별 행정 기구들이 서로 질시하고 경쟁하는 중첩된 구조물이었다. 그들은 근대의 물질성을 무기 삼아 근대의 정신을 파훼했으며, 모든 가치를 파괴했다. 폐허에 남은 것은 자궁으로의 회귀뿐이었다.
부분적으로는 위로부터, 부분적으로는 아래로부터 추동된 예외법적 상황하에서 나치 지구당과 다양한 나치 지역 기구들은 기존의 행정적•헌정적 관계들을 파괴하고 경제•직업•문화 기구들을 일체화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권력기관이 `창궐`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정당권력, 국가권력, 사회권력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결합된 다양한 중간형태들과 인물들이 나타났다. 195)
사회적 상승이란 측면에서 나치당이 수행한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하던 그 조직들은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과 사무직 근로자들에게 정치적 경력의 통로였다. 그들은 바로 그 길을 통하여 (히틀러청소년단, 친위대 장교, 노동전선 대표위원, 나치당 지역 지도자가 됨으로써) 사회적 상승에 일반적으로 필요한 고단한 단계들을 우회할 수 있었다. ... 나치즘은 과거의 계급장벽에 구멍을 내고 사회적 이동성을 높였던 것이다. 232)
일체화는 국가와 당에 대한 이익집단들의 예속을 강화시켰을 뿐이다. 또한 겉으로는 이해 갈등의 완화로 보였고, 나치 또한 그렇다고 선전했던 현상들이 실제로는 이익단체들을 정치의 종속된 일부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이해 갈등을 정치에 묶어버린 것에 불과했다. 사회경제적 이익 갈등은 일체화에 의해 해소된 것이 아니라 변속 장치를 통하여 정치체제 내부로 이전되었던 것이다. 269-70)
무장 친위대는 나치당과 국가에 기반하면서도 양자로부터 벗어나 있는 특수 권력의 특징적인 예다. 무장 친위대는 당의 행정 및 재정 감독권(재무국장)에 종속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기관이 국가 경찰의 일부였던 것도 아니고, 중앙과 주의 내무부에 종속되었던 것도 아니다. 무장 친위대는 오직 친위대장에 종속되었다. 따라서 무장 친위대는 직접적인 지도자권력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381)
나치의 지도자-추종자 구조는 자체적으로 세포분열을 하는 경향을 지녔다. 다시 말해서 지도자 직속 기구의 한 내부 요소가 독립하여 그 스스로 히틀러에게 직속된 기관으로 독립하려는 경향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관할권이 갈수록 늘어난 친위대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친위대는 "국가 안의 국가"로서 국가행정의 통일성을 파괴하였으나, 그들에게는 고정된 법인체적•관료제적 완결성과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388)
제국내무부가 1935년 11월에 작성한 문건은, 법인으로서의 국가의 자리에 "여러 개의 의지"가 아닌 "오직 하나의 의지", 즉 "지도자"가 들어섰다고 해설했다. 396)
일반 행정과 그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특정 목표를 강력하게 추진하려 할 때, 나치 지도부는 그 국가 업무를 독특한 지도자구조에 따라 작동하는 나치당 특수 조직이나 나치당 특무전권위원들에게 맡겼다. 그런 인물들은 단기적인 생산 효율성을 위하여 민간경제의 경영기구를 거리낌없이 투입했고, 그 와중에 통일적인 관료제적 국가행정이 손상되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420-1)
우리는 나치 체제를 배후에서 추동하는 힘이 히틀러 개인에게 구현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였고, 그것은 시종일관 변하지 않은 채 동일하게 머물러 있었으며, 변한 것은 전술과 겉모습뿐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때그때의 국가 현실에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그 전술과 겉모습이라는 점을 간과한다. 국가 현실은 우선 당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와 정부와 입법의 그때그때의 구체적인 대상에 의해 규정된다. 장기 목표들과 비밀스런 미래의 의도는 국가 현실을 규정하지 못하거나, 규정하더라도 이차적으로만 규정한다. 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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