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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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거지!"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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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생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이레 / 2006년 9월
절판


그는 부자가 될까 높은 사람이 될까, 두 가지 중 어느 한 쪽도 잡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듯한 자기자신을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부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물정에 어두운 그에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높은 사람이 된다는 것 또한 힘겨운 세상살이에 부대껴 자신이 없었다. 그 힘겨운 세상살이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역시 돈이 없다는 게 제일 큰 원인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그는, 그저 끝없이 초조함에 시달렸다. 돈의 힘으로 지배하지 못하는, 참으로 위대한 그 무엇이 그의 시야를 밝히기에는 아직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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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절판


하루의 첫 결심은 이랬다. 꿋꿋이 버티리라, 오늘은 아침에 양배추 수프와 빵을 다 먹어버리지 않으리라. 당장은 배가 고파도 저녁으로 조금은 남겨둬야지. 점심은 없었다. 그러니 일을 할 뿐 결심할 것이 없었다. 아침식사 때 꿋꿋이 버텼다면 저녁에 작업을 마치고 돌아와 두 번째 결심을 하게 된다. 꿋꿋이 버티리라, 아껴둔 빵이 잘 있는지 베개 밑에 손만 넣어보리라. 참고 기다리면 점호가 끝나고 구내식당에서 빵을 먹을 수 있다. 그때까지 두 시간도 더 걸리거나, 점호가 길어지면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꿋꿋하게 버티지 못하면 저녁에는 남은 빵은 물론 결심할 거리도 없었다. 나는 수프를 반 숟가락만 떠서 천천히 들이마신다. 한 숟가락씩 마실 때마다 침을 삼키며 천천히 먹는 법을 터득했다. 배고픈 천사가 말했다. 침을 삼키면 수프를 더 오래 먹을 수 있어. 또 일찍 잠자리에 들면 배고픈 시간이 줄어.-124쪽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목이 붓고 간질거려서 자꾸만 잠이 깼다. 눈을 감거나 떠도, 몸을 뒤척이거나 조명등을 노려보아도, 누군가 물에 빠진 듯 코를 골아도, 뻐꾸기 시계의 고무 벌레가 진동해도 밤은 축량할 길 없이 거대했다. 그 안에서 펜야의 하얀 아마포가 끝없이 펼쳐졌고, 그 아래 손에 닿지 않는 빵들이 가득했다.-125쪽

수용소를 나온 지 육십 년이 지나도 음식을 먹을 때면 너무나 흥분된다. 나는 온몸의 구멍을 모두 열어젖히고 먹는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은 불편하다. 먹을 때 나는 독재자다. 입의 행복을 모르는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예의를 차리며 먹는다. 그러나 먹을 때 내 머릿속에는 여기 앉아 있는 우리처럼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찾아올 한방울 넘치는 행복이 스쳐간다. 머릿속의 새도우지, 숨결 속의 그네, 가슴 속의 펌프, 배 속의 대기실을 내주어야 할 그 순간.-276쪽

먹는 게 너무 좋아서 죽고 싶지 않다. 죽으면 먹을 수 없으니까. 나는 지난 육십 년 동안 나의 귀향이 수용소의 행복을 누그러뜨리지 못했음을 안다. 수용소의 행복은 그의 배고픈 입으로 오늘도 내 모든 감정의 한복판을 베어 문다. 내 한 가운데는 텅 비어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매일같이 다른 허기가 생겨나 채워지기를 기다리지만 나는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나는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줄 수 없다. 나는 배고픔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자부심이 아니라 겸허 때문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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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의 발레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김의석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품절


엄마는 바느질을 멈추고 자신의 무릎을 먼 풍경인 양 바라보았다. 그리고 계속 상갓집 같은 침묵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에게 빅토리아가 멀리 간다는 얘기는 단 하나의 의미였다. 비밀, 저항. 결국 죽음. 그러니까 혹시 재수가 좋으면 어느 날 트럭이 기관총에 맞아 참혹해진 송장이라도 싣고 와 내게 시신의 신원이나 확인하겠지. 그녀는 이렇게 속으로 말한 뒤 다시 빅토리아에게 말했다.
"얘야, 널 죽일 거다."
"엄마는 과거에서 꼼짝도 안 하고 있어. 이제 민주사회란 말이야. 싸움은 없어. 아무도 날 죽이지 못해. 아무도 어딘가에 대고 총을 쏘지 않으니까. 저항은 없어. 테러도 없고, 무기를 들고 싸우는 일도 없어. 아빠가 살던 때와는 달라."
"넌 비밀 속으로 사라질 거고, 그들은 널 죽이려고 할 거야. 네 사진이 신문에 날 거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나와 함께 울 거야. 그다음에 난 혼자가 되겠지."
엄마는 바느질하던 스웨터를 다시 들고는 황토색 방울을 마저 달고 코를 풀었다.
"엄마, 걱정 안 해도 되요. 난 다른 데서 행복하게 살 거야. 죽지 않을 거야, 춤을 추고 있을 거라고!"-4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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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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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녀의 오두막으로 가야겠지. 그리고 아기한테 물을 뿌리면서 말하겠소. '안녕, 아가들아. 지구에 온 걸 환영한다. 여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단다. 그리고 둥글고 축축하고 붐비는 곳이지. 여기선 고작해야 백 년 정도밖에 못 산단다. 아가들아, 내가 아는 단 하나의 규칙을 말해줄까? 제기랄, 착하게 살아야 한다.'"

-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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