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의 발레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김의석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품절


엄마는 바느질을 멈추고 자신의 무릎을 먼 풍경인 양 바라보았다. 그리고 계속 상갓집 같은 침묵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에게 빅토리아가 멀리 간다는 얘기는 단 하나의 의미였다. 비밀, 저항. 결국 죽음. 그러니까 혹시 재수가 좋으면 어느 날 트럭이 기관총에 맞아 참혹해진 송장이라도 싣고 와 내게 시신의 신원이나 확인하겠지. 그녀는 이렇게 속으로 말한 뒤 다시 빅토리아에게 말했다.
"얘야, 널 죽일 거다."
"엄마는 과거에서 꼼짝도 안 하고 있어. 이제 민주사회란 말이야. 싸움은 없어. 아무도 날 죽이지 못해. 아무도 어딘가에 대고 총을 쏘지 않으니까. 저항은 없어. 테러도 없고, 무기를 들고 싸우는 일도 없어. 아빠가 살던 때와는 달라."
"넌 비밀 속으로 사라질 거고, 그들은 널 죽이려고 할 거야. 네 사진이 신문에 날 거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나와 함께 울 거야. 그다음에 난 혼자가 되겠지."
엄마는 바느질하던 스웨터를 다시 들고는 황토색 방울을 마저 달고 코를 풀었다.
"엄마, 걱정 안 해도 되요. 난 다른 데서 행복하게 살 거야. 죽지 않을 거야, 춤을 추고 있을 거라고!"-4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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