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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과학자들 - 과학, 전쟁 그리고 악마의 계약
존 콘웰 지음, 김형근 옮김 / 크리에디트(Creedit)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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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과학과 윤리의 문제를 4가지 태도로 분류해보자.
1) 과학은 상급단체(국가, 기업)의 지원 의도가 연구의 본질과 무관할 때, 그들과 결별을 단행해야 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하인리히 빌란트)
2) 과학은 상급 단체의 압력에 취약하며, 과학자는 그 부작용을 교정할만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오토 한, 닐스 보어)
3) 과학은 도덕 중립적인 기술이므로 과학자들은 외부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의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베르너 폰 브라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4) 과학은 자신의 연구를 지원하는 상급단체의 이해에 충실히 복무해야 한다. (프리츠 하버, 에드워드 텔러)
굳이 '과학'의 범주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권력이 압력을 가할 때, 우리는 실천 저항형, 내면 갈등형, 세속 도피형, 적극 협조형으로 나뉜다. 1번이 가장 윤리적이며, 권장할만한 태도라면, 4번은 가장 비도덕적이며, 불길한 파우스트적 태도이다. 2번과 3번은 색깔이 분명하지 않으며, 둘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겉보기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최종적으로 2번에 정착하는가, 3번에 정착하는가는 천양지차다.
둘의 차이는 외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무엇이 발생하며, 누구의 처지가 위협받는가와 같은 문제들이 주변에서 혹은 자신의 업무와 관련하여 벌어질 때 눈과 귀를 여는가에 있다. 한 인간의 나약함을 탈피하지 못하는 것이 대다수의 속내이지만,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사소한 불편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처할 때, 그 사태를 직시하는 자는 체제에 균열을 내는 반면, 그 사태를 외면하는 자는 체제의 의도를 완벽하게 수행한다.
타락한 체제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좁다. 나치 독일의 과학자들은 악마의 수행원 노릇을 자처했지만, 그런 행태가 나치 독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히틀러에 맞선 빌란트의 용기와 스탈린에게 굴복하지 않은 사하로프의 지조는 아름답지만, 그들의 동료 대부분은 탄압받거나 수용소 신세로 전락했다. 민주 체제는 로트블라트가 결연한 태도로 텔러를 비판할 수 있는 광장을 제공해주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프리츠 하버는 20세기 초의 전쟁 규칙을 가차없이 어겼다. 하버뿐만이 아니다. 하버의 무기 개발을 재빨리 답습한 영국의 J. B. S. 홀데인 같은 독가스 과학자들은 새로운 무기를 사용하면 전쟁에서 순식간에 승리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하버는 가스 전쟁을 가리켜 "고차원적 형태의 살인"이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가스에 의해 다치는 것이 재래식 폭탄에 의해 다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믿었다. 80)
하버는 또한 시안화수소산 개발을 부추겼다. 당시 시안화수소산은 두 가지 용도로 쓰였다. 살충제로도 쓰였지만, 밀폐된 공간에서는 치명적인 독가스가 되기도 했다. 이 독극물은 후일 `자이클론 B`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유태인을 죽이는 강력한 무기로 등장한다. 87)
노이만은 나치 독일을 독재자의 엄격한 통치 아래서 운영되는 정권으로, 지도자(Führer)가 아니라 권력의 블록들이 담합하는 베헤못(Behemoth) 혹은 비국가로 묘사했다. 다시 말해 군대와 대기업, 정부와 당의 과두 정치적 연합으로 보았다. 이 담합의 멤버들은 어떤 때는 서로 협력했지만 대개의 경우 충돌했다. 결국 권력의 블록들은 히틀러의 인기를 등에 업고 권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마치 "바퀴통 주변의 살과 같았다". 300)
(IBM 설립자) 허먼 홀러리스는 곧 자신이 만든 기계가 인간보다 수천 배나 빨리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기계는 미국 정부의 인구 통계 조사 비용을 500만 달러나 줄여주었으며 오늘날에도 회계, 엔지니어링, 과학적인 보험 통계 분석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IBM이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홀러리스 기계는 암호 해독과 같은 작전상의 전쟁 준비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집단 처형장으로 데려갈 예정인 유태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관한 정보를 구별하는 작업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될 것이었다. 358-9)
나치 과학자로서 전후 자신들의 운명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영국 및 미국의 민주주의와 소련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 판단하는 기준이 절대로 양 진영 간의 도덕적 우위 비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또한 그들은 어느 편이 더욱 자신들의 자유로운 과학 활동을 보장해주어, 정직한 사회 기반 위에서 자신들의 연구 업적을 쌓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별로 중요시하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 과연 어느 편이 자신들의 연구 프로그램에 더 많은 돈을 대주고, 과학자로서 신분과 지위를 보장해줄 것인가였다. 504)
1946년 3월, `페이퍼클립 프로젝트`가 오버캐스트 프로젝트를 대체했다. 새 프로젝트는 적국 독일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장기적으로 활용하고, 나치 전범 처리에 관한 트루먼 대통령의 원칙을 강화하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독일 과학자들은 나치와의 협력이나 동조 여부와 관계없이 선량한 이민자로서 대우받아야 하며, 미국 입국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527)
많은 과학자가 로스앨러모스에 모인 공식적인 동기는 무엇보다도 히틀러의 핵무기 사용을 막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종전을 불과 몇 개월 앞둔 12월, 히틀러가 이런 폭탄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로스앨러모스 그룹에서 탈퇴한 과학자는 오직 한 사람, 바로 요제프 로트블라트 뿐이었다. 그는 핵무기 개발의 유일한 도덕적 근거는 전쟁 억지력에 있으며, 이 목적이 달성되면 핵 프로젝트는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538)
요제프 로트블라트는 텔러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론적으로 반박했다. "지식 획득이 다른 모든 고려 사항을 압도한다는 근본적인 생각은 결코 지지받을 수 없다. 요제프 멩겔레도 자신이 추진한 각종 연구가 새로운 지식을 제공한다는 구실로 아우슈비츠에서의 `실험`을 정당화했다." ... "지식 획득보다 우위에 선 다른 원칙이 있다. 바로 인도주의적 원칙이다. 과학자들은 항상 자신이 우선 인간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하며 과학자라는 직업은 두 번째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윤리적 원칙은 때때로 지식 획득에 제한을 가할수도 있다."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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