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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파시즘 -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 전쟁 철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가타야마 모리히데 지음, 김석근 옮김 / 가람기획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일본 정신주의의 논리적 귀결을 제1차 세계대전과 결부시켜 재구성한 텍스트"
사상은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 정신', 특히 '언어로 만들어낸 정신'이다. '언어'는 현실에 바탕을 두지만, 현실에 앞선 것처럼 자신을 꾸미며, 대개 그럴 듯한 얼굴을 지닌다. 언어는 빈약한 조건을 딛고 일어서는 정신 승리도, 체계적인 물질적 지원에 힘입은 성취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능숙하다.
주체와 객체의 배치와 구도라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언어'만 강조하면 모든 사상이 실현 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현실화 할 수 있는 사상'을 '현실화된 세계'에 투영하는 일에 매진하면서, 그 실현을 최대한 빨리 이루고자 한다. 자신의 한정된 수명 동안에 어떤 방식으로든 '실현'의 단초를 만들고 싶어한다.
지름길은 낙오자와 반대자라는 불순물을 모두 제거한 길이며, 그만큼 빨리 광신과 아집으로 달려가는 길이다. 광신도들은 자신을 희생으로 내몰지 않는다. '패배'라는 비참한 최후가 결정나기 전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방법만 있다면 '옥쇄'와 '가미카제'는 다수의 몫이다. 그들은 다수의 피땀으로 불가능에 도전한다.
그들은 기꺼이 다수의 발을 늪에 밀어넣지만 자신의 헌신은 오직 '정신'으로 무장한 '언어'이며, '의지'만을 허락한다. 그는 몸부림칠수록 늪에 빠진 자의 죽음이 빨리 다가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부림을 요구한다. 그가 자발적으로 돌아나오는 길은 인민의 시체로 막혀 있다. 전쟁은 가장 매혹적인 역사의 비극이 된다.
일본 기업의 불입(拂入) 자본 총계는 1913년에는 20억 엔이었는데, 1차대전 시기 일본 기업의 신규투자액 총계는 무려 143억 엔에 이르고 있다. 경제 규모가 가파르게 수직상승해버린 것이다. ... 일본의 주식시장은 언제나 강화(講和)를 싫어했으며 그런 소문이 나돌 때마다 주가는 내려갔다. 군수 경기가 언제 중지될지 전전긍긍하다가 전쟁이 계속될 것 같으면 다시 올라가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32-3)
(러일전쟁 당시) 메이지 후반 일본의 공업생산력이나 자금력으로는 러시아의 대군, 뤼순의 요새를 상대로 탄환을 마구 퍼부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요새 공략전에서도 직접 전투에서도 인명을 경시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맹목적인 돌격에 의존했던 것이다. ... 거기서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몸을 아끼지 않는 정신주의, 혼(魂)의 돌격, 육탄(肉彈)이었다. 78)
(1926년의 <통수강령> 개정안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속전속결의 섬멸전으로 단숨에 결정한다. 천우신조로 갑자기 찾아올지도 모르는 승기를 절대 놓치지 않고 적을 궤멸시킨다. 그런 전쟁 지휘를 하고 싶을 때 외교 따위를 고려해서는 안 된다. 장수의 독단전행을 인정하지 않으면 적의 의표도 찌를 수 없다. 정치를 무시하고 군대가 마음대로 하게 해달라는 식의 바람을 읽어낼 수 있다. 135-6)
오바타는 1931년 만주사변에서의 이시와라의 근사한 작전 지도에 의한 속전속결을 `갖지 못한 나라`의 이상적인 전쟁으로 극찬했다. 그러면 이시와라는 왜 만주사변을 일으켰는가. 만주를 하나의 큰 산업기지로 삼아서, 가능한 한 빨리 `갖지 못한 나라`를 `가진 나라`로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160)
옥쇄(玉碎, 쿄쿠사이)는 섬멸을 뒤집은 개념, 말하자면 섬멸당하는 것이다. 섬멸전에 실패해서 불리하고 열세의 입장에 내몰리더라도 `필승의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면, 퇴각이나 항복이라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옥쇄뿐이다. ... 상대의 강약 정도에 따라서 섬멸 정신이 쉽게 옥쇄 정신으로 뒤집혀버리는 것이다. 171)
일본 국민이라는 `다`에게 천황이 `일`이라면, 천황이 자신의 본질이므로, 천황만 살아 있으면 개개의 일본인이 아무리 죽더라도 자신의 본질이 살아남는 것으로 되므로, 자신이 죽을 것인지 살 것인지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된다. 천황이 죽으라고 말하면, 자신의 의사(意思)로 죽는 것이다.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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