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카레를 해서 식구들과 먹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엉덩이 뜨끈하게 앉아서

         새로 받은 게리 반 하스,의 <빛의 파편을 줍다, 피카소의 색色> '1925년, 파리'를

         시작하며 첫장부터 북다트를 꽂다 불쑥..이 금속책갈피를 선물로 보내주신 드림님

         이 생각났다. 그러자 또 <무제 시편>을 읽으며 한 통을 다 꽂아 놓은 '파이프를 문 셜록

         북마크'를 선물해주신 보슬비님 생각이 와락, 났다.

         원래는 포스트잇을 사용해 표시를 해 두었는데 포스트잇이 떨어지고 그후 아껴두었던

         북마크를 쓰기 시작하는데 아주 예쁘기도 하고 무엇보다 편리해서 참 좋다.

         그런데 조금 전, 펜촉 모양의 날렵한 북다트를 꽂다 보니...그리운 사람들의 모습과

         언제나 함께 나누는 즐거운 책읽기,에 대한 나눔과 공유와  따뜻하고 정다운 사랑이

         공중에서 나풀나풀 춤을 추며 내려오는 눈꽃송이처럼...마음을 설레게 했다.

         '의자는 의자가 아니다'처럼 이미 내게 사물은 사물만이 아닌 '그 무엇'이 되었다.

         책을 읽고 그 책에 메모하고 싶은 귀절을 표시하며  북마크를 꽂고 다시 빼낼 때마다

         손끝으로 진하게 묻어나오는 그 아련하고 다정한 마음을 매번 기억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며, 다시 한 번 늘 '사랑의 인사'를 나누게 될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나도 책선물과 함께, 예쁘고 반짝이는 북마크를 같이 보내야겠다.

         함께 오랫동안 사랑의 인사,를 나누고 싶기에 말이다.

         다시금 드림님과, 특히 요즘 할머님 병환으로 많이 힘든 연말을 보내실 보슬비님께

         그저 작은 수줍은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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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1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03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착한시경 2013-12-01 15:21   좋아요 0 | URL
편안한 일요일 오후 보내고 계시는구나^^ 저는 지금 예쁜 홍차 카페에 와 있답니다,,크리스마스 시즌 홍차라는데~ 너무 향이 좋아요^^

appletreeje 2013-12-03 09:03   좋아요 0 | URL
예쁜 홍차 카페에서 향긋한 시간을 보내셨군요~
크리스마스 시즌 홍차,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네요~
오늘도, 행복하고 좋은 날 되세요~*^^*

파란놀 2013-12-01 15:22   좋아요 0 | URL
새로운 한 달이자
올 한 해를 마무리짓는 섣달이에요.
날마다 새로운 웃음과 꿈 누리시기를 빌어요~

appletreeje 2013-12-03 09:07   좋아요 0 | URL
예~함께살기님, 감사합니다~
'섣달'이란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정답고
또 이렇게 정다운 마음으로 한 해를 잘 마무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3-12-01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03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3-12-02 14:41   좋아요 0 | URL
저는 카레를 싫어하는데 언니가 해 주는 카레는 잘 먹어요~ ㅎㅎ
북마크 정말 예쁘고 귀엽네요.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되세요~*^^*

appletreeje 2013-12-03 09:19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에 캠프를 갔는데 그 캠프에서 주구장창 카레밥만 나와서
카레,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었어요. ㅋㅋ
그런데 요즘은 식구들이 구운 마늘 & 양파맛 카레를 좋아해서
가끔씩 즐겨 해 먹어요~
언니가 해 주시는 카레는, 사랑이 듬뿍 담겨서 더 잘 드시겠지요.^^
북마크, 이젠 제게 따뜻한 의미가 되어서 참 좋습니다~

후애님! 오늘도 행복하고 좋은 날 되세요~*^^*

2013-12-04 17:2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행복한 오후 되시고 평안한 하루 보내세요 ^^*

후애(厚愛) 2013-12-04 17:25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오류가 생겼나봐요..^^;;;
제 닉네임과 이미지가 안 나오네요.ㅎㅎ

appletreeje 2013-12-04 23:4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후애님께서도 평안하게 잘 주무세요~*^^*
 

 

 

 

 

 

 

 

 이말이 후대의 내 말인 줄 누가 알았으랴. 나에게 시의 '때'가 곧 시의 '곳'인 것.

 

 '죽을 때도, 죽어갈 때도 시를 쓸 수 있어?라고 내가 나에게 묻는다면 즉각의 자문자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쓸 수 있다. 쓸 수 없다면 죽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정녕 이렇다면 시는 죽음 앞에서, 죽음 속에서 시이다. 궁극도 근원도 굳이 필요 없다.

 

 [서동시집]에서 괴테는 자기 자신을 '시들의 저자'라고 말한다. 그대로 본뜬다면 나 또한 이 시편들의 저자이다.

 

 이것은 베네체아에서 보낸 내 80세 절반에 걸쳐 나와버린 것이다. 시의 유성우(流星雨)가 밤낮을 모르고 퍼부어내렸다. 귀국 다음날부터 그런 노릇이 시차 따위도 없어진 채 조금 이어졌다. 이런 내 시의 행위가 어쩌면 한반도 일대의 빈약한 고대 시가에 대한 후대의 벌충일지 모른다는 것, 듬성듬성한 근대시에의 혈연적인 보강인지 모른다는 것에 어느만큼 연유할 것이다. 나 자신이 나 이전이기 때문이고 나 이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의 부록은 출국 전까지 몇군데에 발표했던 것들인데, 시집 [내 변방은 어디갔나](창비 2011) 이후에 해당한다. 따로 묶어둘까 했는데 그것들이 여기에 따라붙었다. 내 안성 시대를 마감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P.5~6 )

 

 

 생득관념은 아주 오래되었다. 동방에서는 '생이지지(生而知之)'이고 저쪽에서는 플라톤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말라르메도 어디선가 '노래는 타고난 샘으로 솟아난다'고 그답지 않게 말한 적 있다.

 그런데 이런 관념은 내 앞에서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유아성(幼兒性)으로 바뀌어버리기 때문이다. '철학적 아기'라는 것이 '예술적 아기'를 가능케 한다면 나야말로 시의 아기인 것.

 

 시와 관련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나는 거의 동시적으로 아직도 덜 자란 삶이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비역설적으로 유년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로써도 내가 누구의 예(例)로 말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껏 지니고 있던 한마디를 아껴둘 까닭도 없이 내뱉는다면 나는 시를 처음 쓰는 것처럼 쓴다. 그래서 뜨겁고 울고 싶고 밤을 몽당 토해버리고 싶은 것이다.

 만약 내가 시의 진실의 기념이라면 그 기념은 아기의 진실이기도 하고 멍텅구리의 진실이기도 해야겠다.

 

 밤도 여러개로 쪼개어졌다. 새벽도 맨숭맨숭했다. 이런 시의 철야에는 내 진부한 괴력난신(怪力亂神)이 제멋대로 출몰하기 마련이다. 시에 대한 아기의 회의도 이따금 생겨난다. 세살 적 '왜?' '왜?' '왜?'처럼 말이다.

 과연 시는 시인가, 아니 시는 시가 아니어야 하지 않는가. 시가 시에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가 그것들이다. 이럴 때 내 시의 55년은 영락없이 시의 영년(零年)에의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유아기의 세월을 회고할 지 모른다.  (P.6~7 )     /  [서문]에서

 

 

 

 

 

 

           무제 시편 231

 

 

 

 

        김수영이 죽은 다음 날

        마포구 구수동

        그 파밭이 있는 집

        빈 양계장이

        아직도 철거되지 않은 집

        그 집 대문에 들어섰다가

        물씬 죽음의 냄새가

        나에게 몰려와

        나는 흠칠 물러서고 말았다

        악취 이전

        비린 수박 냄새인지 오이 냄새인지 그런 냄새였다

 

        나는 문상객 찬 그 초상집을 떠나 버렸다

        청진동으로 나와

        해장국집에서 낮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마음 다잡고

        다시 시내버스 타고

        그 집에 갔다

        정한모한테 하드롱 봉투 얻어

        거기에

        조위금 한푼 넣어 던지고

        영정 사진 앞에 앉으니

        김수영의 누이 수명이 달려나와

        멈추었던 통곡 터뜨리며 달려나와

        니가 죽였어

        니가 죽였어

        고은 씨가 죽였어 하고

        내 등짝 치며

        더 큰 통곡이다가

        그 무작정의 통곡 어느만큼 기울어지고

        나를 시신 안치된 방으로 데려가

        흰옥양목 이불 호청을 걷어내고

        눈감은 김수영을 보여주었다

        그 커다란 격정의 눈이

        그 서양눈이

        어디 가고

        석가여래 실눈같이 감겨 있었다

 

        그제야

        내 몸속에 들어와 있는 죽음의 냄새가

        그 초록빛 비린 냄새가

        아니 그 미역 냄새가

        일시에 흩어져버린 뒤

        기침 소리가 났다

        탁!

        침 뱉는 소리가 났다

        기계적인 환청

        아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닌 진실의 수순(手順)

 

        시여 침을 뱉어라

 

        김수영의 벗 유정과 더불어

        녹번동 암자 사십구재 뒤

        밤 이슥도록

        술맛 지독하게 달았다 다디달았다

 

        죽음의 냄새란

        이승이 저승으로 바뀌는

        술 냄새이기도 했을 법  (P.383~385 )

 

 

 

 

 

          무제 시편 310

 

 

 

 

        한 번쯤 섬이 되게나

 

        한밤중 동백꽃 목 떨어지는 밤

        그 섬이 되게나

 

        한 번쯤 그 섬에서 건너와보게나  (P.507 )

 

 

 

 

 

 

          무제 시편 335

 

 

 

 

         뜨거운 것이 식은

         따스함

         차가운 것이 녹은

         따스함

 

         따스한 내 마른 몸으로

         따스함의 청사(靑史)를 읽는다

 

         사마천에게는

         한족(漢族) 밖의 따스함이 전혀 없더라

         [사기열전] 읽고 나니

         세상이 다 식었더라

 

         도대체 역사란 끝내 냉혈일 터

 

         역사 없이 사는 오랜 백성

         역사 모르고 사는 오랜 백성 만세 (P.545 )

 

 

 

 

 

           무제 시편 345

 

 

 

 

          나무 있으면 된다

          내 슬픔을

          나무가 나누어 간다

 

          나무 있으면 된다

          내 괴로움을

          나무가 갈라준다

 

          누가 그랬던가

          나무가 가장 가까운 신이라고

 

          나무 밑에서 죽고 싶다  (P.560 )

 

 

 

 

 

            무제 시편 510

 

 

 

 

           사전을 펴네

 

           얼라!

           얼라!

 

           오래간만에 뵙는 낱말 있네

 

           얼라!

 

           처음으로 뵙는 낱말 있네

 

           그리움과 새로움 함께 살고 있었네

           돌이켜

           내 삶의 헌책에도

           아는 것과 많이 많이 모르는 것 저울 없이 함께 있었네  (P.831 )

 

 

 

 

 

              오늘 참 좋다

 

 

 

 

            이상한 노릇 아니라면 아니지

 

            오늘

            아내의 귀로

            새소리 몇개를 들어 마지 않는다

 

            마당 가운데

            멍멍이 에미나이와

            새끼 셋이 조붓조붓 장난치는데

            에미나이야 벙어리로

            새끼들 소리만 있다

            그 소리도 아내의 귀로 들어 마지 않는다

            또한 아내의 눈으로 본다

            여태껏 잘 못 본 것들을 새로 본다

            좋다  (P.960 )

 

 

 

 

 

                 꿈

 

 

 

 

           신새벽 신앙 따위

           잘난 고답시편 따위

           못난 형이상학 따위 사절

 

           어디에도

           배고픈 이 없는

           밥 먹고 지고

 

           어디에도

           전셋돈 없는 이 없는

           내 집 거실에 앉아

           TV 명화극장 영화

           총 없는 영화

           새벽 두시까지 졸지 않고 쫄지 않고

           보고 지고

 

           그 새벽 세시 지난 꿈  (P.961 )

 

 

 

 

                                              -고은 詩集, <무제 시편>-에서

 

 

 

 

 

         20일에 선물 받은 책을,

         일을 하는 동안에 짬짬이 읽었다.

         책상에서도 읽고, 바닥에서도 읽고 그러다

         추우면 이불속에서 배 깔고 누워도 읽는다.

         중학교 때, 금호동 산꼭대기 친구네 집 책장에서 처음 만났던

         그 황홀했던 시인의 詩들을 따라 내내 지금까지 그렇게, 읽는다.

         창백하고 파리했던 시인은 이제 할아버지가 되고 나도 중년의 사람이 되었지만

         뭐, 어떠랴. 헛헛한 삶길에서 뜨신 곰국 안주 삼아, 오래 묵은 좋은 술 한잔 취하듯

         그렇게 그윽했으면 됐지 뭐.  오늘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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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시경 2013-11-29 13:09   좋아요 0 | URL
평화로운 금요일 오전,, 서점에서 책 몇권을 사고~혼자 커피 마시러 왔어요^^ 멋진 시와 글을 읽으며 따뜻한 시간 보낼께요~행복한 시간 되세요~

appletreeje 2013-11-30 09:58   좋아요 0 | URL
좋은 시간 보내셨군요~
행복하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2013-11-29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30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3-11-29 14:15   좋아요 0 | URL
사랑하며 살아온 이야기가
시노래 하나로 안겨
차곡차곡 모이니
시집이 되네요

appletreeje 2013-11-30 09:59   좋아요 0 | URL
그야말로 유성우(流星雨)가
내리는 듯한, 詩集이였어요. ^^

프레이야 2013-11-29 15:05   좋아요 0 | URL
아내의 눈으로 본 세상이 그렇게 또 아름답군요. 사랑은 그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페이퍼 참 좋아요. 지금처럼 따스함 스미는 하루 보내자구요^^

appletreeje 2013-11-30 10:00   좋아요 0 | URL
예~시인께 아내는 그런 분이더군요.^^ <무제 시편>, 전에 나온 詩集
<상화 시편 : 행성의 사랑>을 읽으며 마음이 참 절절했어요..
프레이야님께서도 상화 시편, 읽으시면 그러실 듯 해요.
늘 따스하고 감사한 프레이야님!~즐겁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후애(厚愛) 2013-11-30 15:37   좋아요 0 | URL
시들이 참 좋습니다!!!!*^^*
<무제 시편>은 소장용으로 참 좋은 것 같아요~
좋은 시들을 올려 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 드리고 고맙습니다~!!!*^^*

즐겁고. 알차고 행복한 주말되시고 또 감기조심하세요.~*^^*

2013-11-30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02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학교 앞에 가끔 들르는 붕어빵 수레가 있습니다. 천 원에 세 개를 주는 이 붕어빵은 단팥이 가득 든 데다 맛이 고소해 날이 추운 날엔 학생 손님들로 수레가 붐빕니다. 수레의 주인은 사십대 초반의 아낙입니다. 아낙은 좀체 말이 없습니다. 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료한 내가 장사는 좀 되나요? 물으면 그냥 픽 웃고 맙니다. 그 나이 또래의 아낙들이 흔히 지니고 있는 억척스러움이나 수다가 없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신뢰감을 주어 몇 년째 나는 그의 단골이 되었지요.

 

 지난 겨울의 일입니다. 학교로 들어가던 나는 수레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눈송이가 날리고 있었고 수레 앞엔 손님도 없었습니다. 수레로 들어서니 아낙은 열심히 붕어빵을 구워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얼핏 사 오십 개쯤의 붕어빵이 아낙 앞에 수북이 쌓여 있었지요. 나는 아낙에게 3천 원어치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온 아낙의 말이 이랬습니다.

 좀 기다리셔야 해요. 요 앞 양로원에서 할머니들이 3만 원어치를 주문했거든요.

 아이구 좋은 일이로군요, 내가 좀 바쁘니 3천 원어치만 먼저 주세요. 나는 별 생각 없이 말했지요. 꽤 오랜 단골이었고 그날 내 마음속에는 눈발도 날리고 날도 추우니 부러 붕어빵을 사야겠다는 마음도 좀 있었던지라 나는 아낙이 내 붕어빵을 먼저 싸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낙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할머니들과 2시에 약속이 돼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2시까진 10여 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고 오랜 단골에 대한 예의로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아 먼저 좀 주세요, 제가 기다릴 시간이 없네요, 하고 얘기해보았으나 아낙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돌아가는 것과 기다렸다가 붕어빵을 들고 가는 것.

 

 

그날 나는 기다리는 걸 선택했습니다. 3만 원어치의 붕어빵이 구워지는 동안 솔직히 처음엔 좀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낙이 세상을 살아온 원칙 같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고지식한 아낙의 처세가 몹시 대견스레 생각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낙이 내게 먼저 3천 원어치를 팔고 뒤에 찾아온 할머니를 조금 기다리게 했다 해도 크게 나무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3천 원의 손님이 기다리기를 거부하면 그는 자신의 고객을 영영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날 아낙도 미안했던지 내게 붕어빵을 건네줄 적 우수리로 하나를 더 봉지에 넣어주었지요. 그날 이후 나는 더 꼼짝없이 아낙의 단골이 되었지요.

 

 

 올겨울의 일입니다. 붕어빵을 사기 위해 차를 멈춰 세웠는데 문예창작과의 여학생 몇이 나를 보았습니다. 어디 가세요? 묻기에 붕어빵을 사려는 중이라 했더니 대뜸 국화빵이 더 맛있다고 내게 강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붕어빵 수레로부터 댓 걸음 떨어진 곳에 국화빵 수레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또 하루의 인연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붕어빵 아낙이 조금 걸렸지만 국화빵 한 봉지를 샀습니다. 아무래도 마음이 어두워 국화빵 아낙에게 말했습니다. 난 원래 붕어빵 단골인데 이 친구들 만나서 국화빵을 사게 되었노라고 얘기했더니 국화빵 아낙이 "붕어빵 사는 걸 자주 보았어요"라고 말하였지요. 그 순간 나는 가슴이 뜨끔하였습니다. 내가 붕어빵을 사는 것을 눈여겨보는 이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한 나는 너무 놀라고 미안해 그만 말을 삐끗하고 말았습니다.

 아줌마, 다음번엔 꼭 국화빵을 살게요.

 미안한 마음에 이렇게 말을 건넸던 것인데 아낙의 말이 또 마음을 찔렀습니다.

 국화빵도 한 번 사주시고 붕어빵도 한 번 사주세요.

 난 이번에도 몹시 놀라고 부끄러워 그만. 예 예, 알았습니다. 하고 빵 봉지를 급히 들고 나왔습니다.

 

 다섯 걸음 간격으로 서 있는 두 대의 포장 수레에 굽고 있는 붕어빵과 국화빵. 자신의 빵만 아니라 상대방의 빵을 함께 사달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따뜻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이 아니겠는지요?

 

 

 

 남은 겨울 동안 부지런히 두 수레를 왕복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동안 두 아낙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투기와 탐욕과는 거리가 먼 참 인간의 마음. 이런 마음의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이 꼭 왔으면 싶습니다.   (P.61~65 )

 

 

 

 

                                                       -곽재구 산문집, <길귀신의 노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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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1-26 19:43   좋아요 0 | URL
그저 즐겁게 살아가면서 이 사람하고 저 사람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돼요.
오늘은 민들레 뜯어먹고 모레는 씀바귀 뜯어먹고 글피는 유채 뜯어먹고,
골고루 먹으면서 삶을 누리면 돼요.

날마다 고등어를 구워먹을 수도 없고,
날마다 꽁치를 구워먹을 수도 없고,
그러나, 찬찬히 돌아가면서 먹으면 즐거워요.

appletreeje 2013-11-29 06:46   좋아요 0 | URL
예~찬찬히 돌아가면서 먹으면 즐겁지요~^^

하늘바람 2013-11-26 22:31   좋아요 0 | URL
겨울에 어울리는 책이네요

appletreeje 2013-11-29 06:52   좋아요 0 | URL
따뜻한 책이에요~^^

2013-11-26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9 0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착한시경 2013-11-27 01:34   좋아요 0 | URL
늦은 밤... 너무 소박하고 예쁜 사연이네요^^ 저도 요즘 붕어빵 사먹는 재미에 빠졌는데...
가난하지만 큰 욕심없이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에 마음이 흐뭇하면서도 울컥했어요...
그리고 뭔지 모르게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건 왜 일까요 ?

appletreeje 2013-11-29 06:52   좋아요 0 | URL
저도 이 글 읽으며, 착한시경님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후애(厚愛) 2013-11-27 20:33   좋아요 0 | URL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참 좋습니다~*^^*

저희 동네에 붕어빵 하는 곳이 참 많습니다.
갑자기 배가 고플 때 나가서 사 먹지요~
슈크림빵도 무척 맛 있었습니다.*^^*
제 언니는 붕어빵이 제일 맛 있다고 하네요.ㅎㅎ

2013-11-29 0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30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림모노로그 2013-11-28 09:50   좋아요 0 | URL
곽재구님의 신간이군요...
참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정신없이 지내는 나날이지만, 책이 삶의 쉼이자 위로네요 ^^
늘 나무늘보님께 위로를 받기에 ^^
다치신 곳은 다 나으셨는지요.
눈길에 다치지 마시고, 오늘도 행복으로 꽉 채운 날 보내시길 , 기도할게요 ^^ㅎㅎ

appletreeje 2013-11-29 07:01   좋아요 0 | URL
예~드림님 염려 덕분에 이제 다 나았습니다~~
저야말로 늘 드림님 글 읽으며 위로 받는 것 잘 아시죠~?^^ㅎㅎ
서울은 눈이 잠깐 스치다 말았어요~
드림님! 오늘도 행복하고 충만한 날 되세요~*^^*
 
세 개의 그림자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시릴 페드로사 지음, 배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때가 되면 그것이 아무리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존재라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치 않으려 하는 자는 불멸의 고통을 당하리니. 일어서서 버텨라. 그리고 삶이 있는 곳에 머물러라. 매순간의 삶을 행복하고 소중하게 함께 누려라, 매우 아름답고 혼곤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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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6 15: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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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0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3-11-26 16:22   좋아요 0 | URL
날마다 즐겁게 받아들이며 누릴 때에 아름다운 삶 되겠지요

appletreeje 2013-11-29 07:03   좋아요 0 | URL
그러리라 생각 들어요~^^
 
- 그리고 거기에 곰이 있었다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뱅상 소렐 글 그림, 김희진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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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곰의 표정처럼, 무심함을 가장하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박한 소시민들의 삶과 보편적인 갈등의 모습들이 그림자,처럼 넘실거린다. 곰은 결국 죽고, 모험을 떠난 자들만이 저 건너 숲에서 그 곳을 바라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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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6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9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3-11-26 16:04   좋아요 0 | URL
<곰>이라는 이름만 붙은 책이 더 있네요.
저는 다른 그림책을 떠올렸어요~

appletreeje 2013-11-29 07:08   좋아요 0 | URL
레이먼드 브릭스의 <곰>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이젠 <눈사람 아저씨>를...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