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에 가끔 들르는 붕어빵 수레가 있습니다. 천 원에 세 개를 주는 이 붕어빵은 단팥이 가득 든 데다 맛이 고소해 날이 추운 날엔 학생 손님들로 수레가 붐빕니다. 수레의 주인은 사십대 초반의 아낙입니다. 아낙은 좀체 말이 없습니다. 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료한 내가 장사는 좀 되나요? 물으면 그냥 픽 웃고 맙니다. 그 나이 또래의 아낙들이 흔히 지니고 있는 억척스러움이나 수다가 없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신뢰감을 주어 몇 년째 나는 그의 단골이 되었지요.
지난 겨울의 일입니다. 학교로 들어가던 나는 수레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눈송이가 날리고 있었고 수레 앞엔 손님도 없었습니다. 수레로 들어서니 아낙은 열심히 붕어빵을 구워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얼핏 사 오십 개쯤의 붕어빵이 아낙 앞에 수북이 쌓여 있었지요. 나는 아낙에게 3천 원어치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온 아낙의 말이 이랬습니다.
좀 기다리셔야 해요. 요 앞 양로원에서 할머니들이 3만 원어치를 주문했거든요.
아이구 좋은 일이로군요, 내가 좀 바쁘니 3천 원어치만 먼저 주세요. 나는 별 생각 없이 말했지요. 꽤 오랜 단골이었고 그날 내 마음속에는 눈발도 날리고 날도 추우니 부러 붕어빵을 사야겠다는 마음도 좀 있었던지라 나는 아낙이 내 붕어빵을 먼저 싸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낙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할머니들과 2시에 약속이 돼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2시까진 10여 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고 오랜 단골에 대한 예의로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아 먼저 좀 주세요, 제가 기다릴 시간이 없네요, 하고 얘기해보았으나 아낙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돌아가는 것과 기다렸다가 붕어빵을 들고 가는 것.
그날 나는 기다리는 걸 선택했습니다. 3만 원어치의 붕어빵이 구워지는 동안 솔직히 처음엔 좀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낙이 세상을 살아온 원칙 같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고지식한 아낙의 처세가 몹시 대견스레 생각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낙이 내게 먼저 3천 원어치를 팔고 뒤에 찾아온 할머니를 조금 기다리게 했다 해도 크게 나무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3천 원의 손님이 기다리기를 거부하면 그는 자신의 고객을 영영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날 아낙도 미안했던지 내게 붕어빵을 건네줄 적 우수리로 하나를 더 봉지에 넣어주었지요. 그날 이후 나는 더 꼼짝없이 아낙의 단골이 되었지요.
올겨울의 일입니다. 붕어빵을 사기 위해 차를 멈춰 세웠는데 문예창작과의 여학생 몇이 나를 보았습니다. 어디 가세요? 묻기에 붕어빵을 사려는 중이라 했더니 대뜸 국화빵이 더 맛있다고 내게 강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붕어빵 수레로부터 댓 걸음 떨어진 곳에 국화빵 수레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또 하루의 인연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붕어빵 아낙이 조금 걸렸지만 국화빵 한 봉지를 샀습니다. 아무래도 마음이 어두워 국화빵 아낙에게 말했습니다. 난 원래 붕어빵 단골인데 이 친구들 만나서 국화빵을 사게 되었노라고 얘기했더니 국화빵 아낙이 "붕어빵 사는 걸 자주 보았어요"라고 말하였지요. 그 순간 나는 가슴이 뜨끔하였습니다. 내가 붕어빵을 사는 것을 눈여겨보는 이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한 나는 너무 놀라고 미안해 그만 말을 삐끗하고 말았습니다.
아줌마, 다음번엔 꼭 국화빵을 살게요.
미안한 마음에 이렇게 말을 건넸던 것인데 아낙의 말이 또 마음을 찔렀습니다.
국화빵도 한 번 사주시고 붕어빵도 한 번 사주세요.
난 이번에도 몹시 놀라고 부끄러워 그만. 예 예, 알았습니다. 하고 빵 봉지를 급히 들고 나왔습니다.
다섯 걸음 간격으로 서 있는 두 대의 포장 수레에 굽고 있는 붕어빵과 국화빵. 자신의 빵만 아니라 상대방의 빵을 함께 사달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따뜻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이 아니겠는지요?
남은 겨울 동안 부지런히 두 수레를 왕복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동안 두 아낙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투기와 탐욕과는 거리가 먼 참 인간의 마음. 이런 마음의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이 꼭 왔으면 싶습니다. (P.61~65 )
-곽재구 산문집, <길귀신의 노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