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짓기를 무척 좋아하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낡은 자가용에게 '베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할머니가 앉아 쉬는 헌 의자에게는 '프레드'라는 이름을,

 밤마다 누워 자는 침대에게는 '로잰느'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그리고, 할머니가 오래오래 살아온 집에게는 '프랭클린'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지요.

 

 매일 아침 할머니는 로잰느에서 일어나, 프레드에 앉아 코코아를 마시고는, 베치를 몰고 우체국으로 달려갔어요.

 할머니는 늘 누군가로부터 편지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세금 고지서 밖에 날아오지 않았어요.

 

 할머니보다 더 오래 사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편지를 받을 수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는 이름 짓기를 시작한 거랍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기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들에게만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할머니의 자가용 베치는 그 어느 차보다도 힘차게 굴러갔어요.

 할머니의 의자 프레드는 한 번도 가운데가 푹 꺼지거나 한 적이 없고, 로잰느는 비록 낡은 침대지만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 적이 없었지요.

 백년이 넘도록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할머니의 집 프랭클린은 지난 이십 년 동안 하루같이 변함이 없었고요.

 할머니는 그들보다 더 오래 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무척 행복했어요.

 

 어느 날, 할머니는 베치에 묻은 진흙을 닦아 내느라 밖에 나와 있었어요.

 그런데 순해 보이는 갈색 강아지 한 마리가 출입문가로 슬금슬금 다가왔어요.

 갈색강아지는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었어요. 강아지는 배가 고파 보였어요.

 할머니는 베치 옆에 서서 한참 동안 강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끙!' 소리를 내며 숨을 내쉬었지요

.

 할머니는 프랭클린 안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햄 한덩이를 꺼내 들고는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할머니는 배고픈 강아지에게 햄을 건네 준 다음,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강아지는 가 버렸어요.

 

 하지만 강아지는 다음 날 다시 찾아왔어요.

 할머니는 치즈 한 조각과 과자 두 개를 강아지에게 주면서,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강아지는 가 버렸어요.

 

 그 날 밤, 할머니는 강아지의 모습을 떠올렸어요.

 

 그래도 강아지를 머물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강아지를 머물게 하려면 이름을 지어 주어야만 하니까요. 강아지는 프랭클린이나 프레드, 베치나 로잰느처럼 오래오래 살지 못할 게 분명했어요. 할머니는 친구들보다 더 오래 살아서 혼자 남겨진다는 게 두렵고 싫었거든요.

 

 할머니는 앞으로도 계속 강아지를 돌려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강아지는 날마다 할머니네 문가로 찾아와서 먹이를 먹고는 할머니가 집에 가라고 하면 어디론지 갔다가 다음날이면 또 어김없이 찾아오곤 했어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갔어요. 강아지는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 어엿한 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름이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 갈색 개는 할머니네 집에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에도 개는 찾아오지 않았어요. 할머니는 베치를 몰고 개를 찾아 온 동네를 한 바퀴 돌았지만, 그 개는 눈에 띄지 않았어요.

 할머니는 점점 더 슬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날에도 개가 찾아오지 않자, 할머니는 수화기를 집어 들고는 떠돌이 개를 잡아들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요 며칠 동안에 순둥이 갈색 개를 잡은 적이 있나요?"

 '갈색 개 천지인걸요. 개 목걸이에 혹시 이름표라도 달아 두셨나요?"

 "아니오."

 할머니는 슬픈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수화기를 힘없이 내려놓았습니다.

 

 할머니는 한 가지 결심을 하고 베치를 몰아 떠돌이 개들을 보호하는 사육장으로 달려갔어요.

 

 "우리 개를 찾으러 왔어요.'

 사육사가 털 색깔과 나이와 이름까지 물었어요.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렸어요.

 할머니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친구들을 떠올렸어요. 그러자 다정하게 웃는 친구들의 얼굴과 사랑스런 친구들의 이름도 모두모두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던 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할머니는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우리 개 이름은 '러키'랍니다! '행운'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죠."

 

 사육사는 개들이 가득 차 있는 마당으로 할머니를 데리고 갔어요.

 마침내 찻길에 세워져 있는 베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 개를 찾았습니다.

 

 "오, 러키야!"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순둥이 갈색 개는 단숨에 달려왔어요.

 

 그 날부터 러키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이름을 부르면 러키는 언제든지 단숨에 달려왔지요.

 

 그리고 로잰느의 따뜻한 품은, 매일 밤 러키와 그 이름을 지어 준 할머니가 함께 눕고도 남을 만큼 넓고도 넉넉했답니다.

 

 

 

 

           -신시아 라일런트 글. 캐스린 브라운 그림/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에서

 

 

 

 

 

 

       오늘, 약속된 일을 하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이름 짓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란 제목부터 마음에 다가 왔고 내용도 그림도 참 좋았던

       그림책이다.    

       나도 물고기나 나무나 달팽이에게도 이름을 지어 주곤 하는데, 이름을 부르는 일은 이미,

       나의 마음이 너와 함께해서 행복해 지는 일일 것이다.

       이 그림책의 결말은 이름과 존재와의 관계를 의미심장하게 일깨워 준다.

       어린 왕자'의 여우의 말도 떠오르고, 김춘수 詩人의 '꽃'도 생각나는 저녁이다.

       이 작가의 '살아 있는 모든 것들'과 '모두모두 잠든 밤에', '개들도 하늘나라에 가요'等

       다른 그림책들도 찾아 읽고 싶다.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이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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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9 1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0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02-19 20:18   좋아요 0 | URL
책 내용이 너무 좋아서 도서관에 찾아보았어요. 집근처 도서관에는 없어서 책배달 신청했답니다. 좋은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appletreeje 2013-02-20 18:08   좋아요 0 | URL
저도 읽으며서 너무 좋았어요~^^
저야말로 보슬비님께 늘 감사하는데요.
어제 온 '너는 늦게 핀 꽃이다' 읽다가, 오늘은 일이 있어서
방금 돌아왔어요. 보슬비님! 좋은 저녁 되세요.*^^*

후애(厚愛) 2013-02-19 20:40   좋아요 0 | URL
정말 내용이 너무 좋은 책입니다!
혹시 갈색강아지가 잘못 되지는 않았나 가슴 졸이면 다 읽었네요.
역시 해피엔딩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appletreeje 2013-02-20 18:08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갈색 강아지가 걱정되며 읽었어요.
역시 저도 해피앤딩이 좋아요~^^
감사합니다. 후애님!

수이 2013-02-19 22:48   좋아요 0 | URL
저도 모레 도서관 가야겠어요.

appletreeje 2013-02-20 17:55   좋아요 0 | URL
네~입~!! 앤님!

착한시경 2013-02-20 00:46   좋아요 0 | URL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그림책...늦은 밤 읽으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책의 배경이 되는 그림들도 너무 보고 싶네요~어쩜 님 덕분에 전 이 책을 살지도 모르겠어요^^ 저희도 강아지를 키우는데...맑음아 부르면 언제나 폭 와서 안기는데~아들은 민규야 부르면 왜~하구는 성질을 냅니다.(사춘기의 정점을 찍고 있는 중이거든요~)오랫만에 아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appletreeje 2013-02-20 19:02   좋아요 0 | URL
저희 둘째 아들도 왜~하구는 성질을 냅니다.ㅋㅋ,
착한시경님! 좋은 저녁 되세요.*^^*

프레이야 2013-02-20 08:38   좋아요 0 | URL
오래전 보았던 그림책, 반가워요.
중학생 작은딸 방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정겹고 다정한 그림책들,
하루 한 권씩 꺼내 보고 행복해지고 싶어지네요.
해봐야겠어요. ^^

appletreeje 2013-02-20 18:4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과 따님들이 정겹고 다정히 그림책을 보시는 장면이
눈에 선해요~~
저도 일때문이라도 좋은 그림책을 보는 일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프레이야님! 편안한 저녁 되십시요.^^

기억의집 2013-02-20 09:07   좋아요 0 | URL
애들 어렸을 때 많이 읽어주던 그림책인데,저도 프레이야님처럼 반갑네요. 예전에 이 그림책 읽고 어느 초등학생이 올린 리뷰중에서 그럼, 할머니 이름은 뭐예요?라고 반문했던 리뷰가 떠올랐어요. 전 애들한테 그렇게 읽어줘도 할머니 이름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거든요^^

appletreeje 2013-02-20 18:1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기억의집님!
정말, 할머니의 이름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점이
많은 생각을 또 하게 되는군요.
고맙습니다. 또 귀중한 깨달음을 주셔서요.

기억의집님! 좋은 저녁 되세요.*^^*

2013-02-20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0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1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1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상처를 꽃으로 - 유안진 산문집
유안진 지음, 김수강 사진 / 문예중앙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날렵하거나 빠른 속도의 글들 속에서, `지란지교를 꿈꾸며`시인의 산문집을 읽었다. 편안하고도 깊이있는 글들을 구들장 위에 앉아서 읽듯, 그렇게 읽었다. 이 책을 읽고 기뻐할, 친구의 마음을 생각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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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2-19 20:41   좋아요 0 | URL
예전에 산문집을 많이 읽었는데 시대물 때문에 멀리하게 되더라구요.ㅎㅎ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드는 책입니다.^^

appletreeje 2013-02-20 18:12   좋아요 0 | URL
ㅎㅎ 내용도 무척 좋았어요.
이 책도 후애님 드리고 싶었는데, 선약이 있었기에. 아쉽게도요.
후애님! 행복한 저녁 되세요.*^^*
 

 

 시간이 모여 세월이 되고, 작은 일들이 이어지고 쌓이면서 삶이 되고 인생이 된다. 소천하신 김수환 추기경님 농담처럼, 삶이란 삶은 달걀이지, 삶이라는 글자를 풀면 사람이 되지, 사람이란 살아가는 존재이지, 사람들이 사는 건 다 삶이지. 이런 가소롭고 시답잖은 글을 쓰는 나는, 가소롭고 시답잖은 시도에 대해 고백함으로써, 혹시 나처럼 가소롭고 시답잖게 살았다고 아파할 분들과 공감하고 싶다. 창밖 눈바람 속 앙상한 푸나무들이 열매 없이 살았어도 무의미하게 살았던 게 아니라고 우기면서. (P.19 )

 

 

 노장 피카소의 전시회를 본 한 기자가 "애들 낙서"같다고 남긴 촌평에 "그렇다 아이가 되는데 80년이 걸렸다."고 했다는 그의 재치가 떠올라, 종일 옛동요를 웅얼거리는 날도 있다. (P.54 )

 

 

  나는 지금도 밤이 좋다. 검은 어둠은 밝음으로 핏발 선 눈을 편안하게 해준다. 모든 색깔을 다 받아주어서 검정이다. 그 누구의 어떤 잘잘못도 다 받아주어서 검정이다. 모든 때와 얼룩을 다 받아주면서, 저 스스로 검정으로 바뀔지언정, 비난이나 비판, 평가하거나 비웃고 탓하기를 거부하면서, 뱉어내거나 배척하지 않는 어둠, 그래서 밤의 검은색은 모성이자 신성 같다.

 열정 넘치는 무한경쟁도 때로는 있어야 하지만, 검정의 어둠같이 그 어떤 실수나 실패, 잘못도 포용해주는 잊음과 용서의 밤夜같은 면도 갖춰야 하리라.  ( P.54~55 )

 

 

 추위를 몹시 타서, 겨울은 늘 힘들면서도 이상하게도 좋았지. 왠지 덤으로 받는 휴가처럼, 즐기는 일생 속에서 얻는 휴가나 여유, 유예처럼 느껴지곤 했지. 쉬어가며 살라는, 쉬면서 생각해도 된다는, 안 늦는다는, 그래야 제대로 된다는, 처음으로 돌아가 곰곰 생각하며 살펴보라는, 아무런 조건 없이 얻는 휴가가 겨울인 것만 같지. 우리 민속에도 겨울은 밤과, 비오는 날과 함께 삼여三餘 중에서도 가장 긴 여유였다지. 그래서 바쁘게 사는 이들에게 덕담으로 '잉어 세 마리'를 그린 그림을 선물하는 풍속이 있었으니, 겨울을 공짜 휴가로 느낀 것이 우리 민속의 맥락과도 통했던 게 아닐까. 잉어라는 물고기의 발음이 중국말의 '여유'의 발음과 비슷해서라는 것은 한참 후에 알았지만, 다른 물고기들과는 다르게 잉어의 우아한 기품이나 품위가 상징하는 바도 여유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라지.

 나는 잠자기를 좋아하고 게을러서 그런지, 밤이 대낮보다 더 좋고, 밝고 맑아서 눈이 부시고 어지럼증이 이는 갠 날 보다는, 시선이 아래로 휘어지고 살갗이 촉촉해지는 비 오는 날이 더 좋고, 겉치레나 바깥으로 확산되기에 바쁜 듯한 봄 여름 가을에는 정신도 산만해지고 헷갈리곤 하여, 한갓지고 호젓한 실내생활을 하는 겨울이 더 좋아졌지. (P. 62~63 )

 

 

 슬리퍼를 끌고 나가서 동네 한 바퀴를 휙 돌다가, 문득 서점이 눈에 들어오면, 동네를 읽고 책을 읽는 이중 즐거움을 누린다. 30년을 한 동네에 눌러 살면서 늘 같은 동네 길을 걷는 것인데도 왜 그런지 늘 좋다. 며칠 사이 헌 주택이 사라지고 새 건물이 고층으로 들어서고 있는데 상가 모양새를 하고 있다. 사유지인지 공유지인지 모를 자리에는 잡풀이 우거져 철마다 시골을 느끼게 하고, 무허가 건물들 옆의 감나무의 감도 붉었고, 텃밭에서 자라는 제철 푸성귀를 보면 쌈밥이 먹고 싶어지기도 하고, 무허가 건물들이 연출하는 짙은 삶의 냄새가 아파오기도 한다. 나물 캐던 어린 시절의 바로 그 나물들이 연두 울타리 너머에서 잘도 자라서 한참 서서 보곤 한다.

 그리고 언제나 마지막 코스로 큰 길로 나가면,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동네 서점이 눈길을 끈다. 들어가 서가를 훑어보다가 생각나는 책을 주문하기도 한다. 그렇게 수십 년이 되었는데도 모르는 척하는 게 서로 편해서 좋다. 주문한 책이 도착하면 전화해줘서 고맙고 편하다.

 이번에는 전화도 못 받았지만, 주문한 책이 왔느냐고 물어보니 마침 왔다고 해서 [램브란트, 성서를 그리다]를 사 들고 오다가, 개점 이래 한번도 들르지 못한 커피집에 들어가서 커피를 한 잔 주문한다. 나이 들고 홀로 되고 가난해지면서, 세상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는지, 렘브란트는 신구약 성경의 사건들을 많이 그렸단다. 성경 공부와 그림 공부와 한 예술가의 삶이 한꺼번에 읽히고, 거기에 나 자신의 인생과 예술까지 포개어지기도 한다. 이유 없이 목이 메고, 눈쿨겨워지기도 한다. 특별한 취미나 특기도 없이 살아와서, 책밖에는 동무 되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아직도 사람보다 책이 더 좋다. (P. 124~125 )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에서 아들을 껴안은 아버지의 한 손은 크고 굵은 손가락의 남자 손이고, 다른 한 손은 여자의 자그마한 손이다. 그것은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하느님의 자애를 절묘하게 그린 걸작이다. 우리 엄마도 늘 아버지이자 어머니였다. (P.206 )

 

 

                                                         / 유안진 산문집, <상처는 꽃으로>에서

 

 

 

 

 

 

 

 

 

        책을 보내야 함으로,

        마음에 들어 왔던 문장들을 노트에 메모 대신

        이 공간에 빠르게 자판으로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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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9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9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주 작은 시골학교에서 전교생이 출연하는 성탄절 행사를 치르게 된다. 어느 학교에나 지적으로 약간의 발달지체나 장애를 가진 아이는 있게 마련이어서, 그 작은 학교에서도 그런 아이 윌리에게 어떤 역할 하나는 맡겨야 했다. 조금은 모자라는 이 윌리를 두고 선생님은 궁리를 하다가, 가장 간단해서 아주 쉬운 딱 한 마디 대사만 외워서 하면 되는, 여관 주인 역이 적절하다고 판단하고 맡겨 연습시켰다. 무대 위에서 윌리는, 만삭의 성모 마리아를 데리고 여관을구하러 온 성요셉이, "빈방 있습니까?" 하면 "없어요 no room" 딱 한마디만 하면 되는 역할이다. 

  온 마을 학부모들이 다 모인 가운데 어린이 연극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지적발달 지체아 윌리는 남산만 한 만삭의 배를 안은 마리아를 데리고 찾아온 남편 요셉이 방이 있느냐고 묻자, "없어요"라고 대답해야 하는 장면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주민들은 모두 윌리를 잘 알기 때문에, 역시 모자라서 대답을 까먹은 걸로 생각하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없어요"라고 귀뜀해주어도, 윌리는 연습 때와는 달리, 만삭으로 배부른 마리아와 요셉을 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참다못한 선생님도 커튼 뒤에서 "윌리! '없어요'라고 해야지"하고 속삭였지만, 윌리는 한참을 그대로 말없이 선 채 생각하다가는, 깊고 따뜻한 목소리로 만삭의 마리아와 남편 요셉에게 "내 방 써요"라고 말했다.  (P.83~84 )

 

 

 

                   멘토스(들) 

 

 

                     짐 값 안 받으니 내려놓고 편히 가세요

                     보따리를 이고 앉은 할머니에게 버스기사가 말했다 

                     공짜로 탔는디 보따리까정이라 안되제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까지 돌려 대라 하셨잖아

                     엉망으로 얻어터진 아이를 엄마가 나무랐다

                     그 형은 왼팔이 짧아 늘 왼뺨부터 때린단 말예요

 

                     정화수는 한 대접만 올리는 거다

                     장독대에 대접 두 개를 본 시어머니가 베트남 자부에게 일러줬다

                     내일밤은 비 온대서 내일 몫까지예요

                     아서라, 하룻밤에 두 번 목욕하시면 달님도 감기 드신다.  (P.114 )

 

 

 

 

                   계란을 생각하며

 

 

                       밤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다

 

                       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

 

                       남이 터뜨려 주면 프라이감이 되지만

                       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되지

 

                       환골탈태換骨奪胎란 그런 거겠지.  (P.118 )

 

 

 

                                                   -유안진 산문집, <상처를 꽃으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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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8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9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02-18 20:59   좋아요 0 | URL
만삭의 마리아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방을 내어주려는 윌리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서 울컥하게 하네요.

나무늘보님 덕분에 항상 좋은글로 좋은마음을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게됩니다.
좋은밤 보내세요~~ 나무늘보님... ^^

appletreeje 2013-02-19 01:3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읽다가, 윌리에게 마음이 뭉클 했어요.
신이 보시기에는 모두가 발달지체아가 아닐까요?
저도 약간 모자라도 윌리같이 깊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보슬비님! 좋은 밤 되세요.*^^*

수이 2013-02-19 22:49   좋아요 0 | URL
한없이 모자른 사람으로 살아가고싶어요.
화내지 말고, 이득 볼 생각 따위 버리면서- 그렇게.

appletreeje 2013-02-20 18:13   좋아요 0 | URL
앤님은 충분히 그러실 분이예요.^^
너무나 지혜로운 분이니까요.
 

 

 

                   신혼 첫날,

 

 

 

                        오지 않은 한 명의 하객을 찾아갔다

                        서운한 마음도 마음이거니와

                        몰래 왔다가 그냥 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행기표를 놓았다

                        돌연 신혼여행도 안 가고 그를 찾아나서는

                        나와 새색시를 의아하게 보던 형이

                        이내 못이기는척 우리의 뒤를 따랐다

                        그냥 제발 신혼여행이나 가라는 형,

                        형만 아니었으면 하면서

                        늘 내 원망의 대상이었던 형이어서

                        따라오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구월의 밤은 아직 뜨거웠고

                        새 색시는 어질어질 걸음을 떼었다

                        쑥대머리로 앉아 있는 그를 만났다

                        하객을 맞아야 할 사람이

                        하객으로도 오지 않은 미운 아버지

                        형은 그의 검푸른 머릴 자르고

                        나와 새색시는 나란히 절을 올렸다

                        밉기만 하던 형이 산처럼 든든해져 왔던가

                        형과 나와 며느리가 안 보일 때까지

                        아버지는 산 아랫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월의 볕만 뜨거웠던 것은 아니어서

                        신혼 첫날밤도 네 번이나 속옷을 벗어 던졌다  (P.82 )

 

 

 

 

                         삼학년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P.10 )

 

 

 

                                                          -박성우 詩集, <가뜬한 잠>-

 

 

 

     늘 가뜬한 잠,을 자지 못했던 내게 여전히 약속한 일의 시간을 따라 끄급했던 내게

     오늘 어디선가 온, '가뜬한 잠'을 읽고  安心을 한다.

     오늘밤, 우리는 속옷을 네 번이나 벗어 던지지는 못하더라도 가뜬한 잠을 잘 듯하다.

     미숫가루를 우물에 사카린이랑 슈거를 넣고 몽땅 털어넣지는 못하더라도,

     미숫가루 아이스크림이라도

     내일은 먹자 생각하여도..오늘은 왠지 가뜬한 잠을 잘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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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6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6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6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6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3-02-16 21:05   좋아요 0 | URL
와, 왠지 눈익은 표지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박성우였군요.
전에 제가 쉬운 시집을 누군가에게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그분께서 페이퍼까지 써가며 여러 권 추천해 주신 목록에 박성우 시인이 있었어요. 지금 시집을 한장 한장 넘기며 시를 읽고 있노라면 서정시, 향토시의 시대는 갔어! 하는 문창과 선배 누나의 새된 꾸지람이 귀에 박히는 듯하지만 그래도 좋은 걸요. 특히 '삼학년'이라는 시는 짧으면서도 강렬한, 소박한 웃음이 걸리는 좋은 글이지요.

저는 이제 시를 난이도 순으로 읽어보려고 해요. 먼저 손택수와 유홍준, 그리고 시의 기본이라는 김기택과 이윤학... 극난이도에는 김경주와 황병승이 있습죠.
어제 글을 몰아서 쓴 탓인지 오늘은 책을 읽고 싶네요. 정미경의 <내 아들의 연인>을 꺼내두었어요.

트리제님, 굳밤, 아직 저녁인가요? 굳 저녁-밤 :D

appletreeje 2013-02-17 00:08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이 오셨군요.^^ 반가워요~~!
저도 어젯밤 이 시집을 읽으며 마음이 순해지고 참 좋았어요.
'삼학년'은 정말 저절로 웃음이 피어났어요.

저에게 처음 시를 알게 해 준 시인은, 고은 선생님이시고
그때는 조태일이나 황명걸,신경림,김명인..김영태, 마종기,황동규 시인 등..
너무나 많은 시인들이 계셨지요.

늘 문학에 대한 빛나는 열정으로 건필하시는 이진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정미경님의 <내 아들의 연인>도 언젠가 읽긴 했는데..가물가물하네요.^^;;
소이진님! 굳밤,

수이 2013-02-16 22:30   좋아요 0 | URL
나무늘보님 덕분에 좋은 시 자주 알게 되어 행복해요. 진정.
앞으로는 미숫가루 타먹을 적마다 생각나겠는걸요. 삼학년. ^^

appletreeje 2013-02-17 00:14   좋아요 0 | URL
저도 앤님덕분에 너무나 행복하고 좋아요~~^^
진정으로요~! 미숫가루를 타먹으며 삼학년을 생각하는 우리.^^
앤님! 행복한 밤 되세요.*^^*

후애(厚愛) 2013-02-17 17:35   좋아요 0 | URL
미숫가루 먹고싶네요.ㅎㅎ
미숫가루 무척 좋아하는데...^^

appletreeje 2013-02-18 12:53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미숫가루 무척 좋아해요~~
후애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착한시경 2013-02-17 19:02   좋아요 0 | URL
좋은 시인과 시를 알게 되었네요... 삼학년이라는 시는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어쩜 저런 생각을 해낼 수 있을까 ? 지금처럼 음료수가 흔하지 않았던 어린시절..여름이 되면 늘 엄마가 타 주시던 시원한 미숫가루가 생각이 나네요..그때는 학교 끝나면 학원다닐 일도 많지 않아 여유있게 미숫가루 먹구...마룻바닥에 뒹글뒹글하며 쉴 수 있었는데~ 왜 지금은 그 때 맛이 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appletreeje 2013-02-18 12:58   좋아요 0 | URL
앗, 착한시경님이 오셨네요~?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쵸? 삼학년을 읽으면 절로 미소가 ㅎㅎ
저도 마룻바닥에 누워 뒹굴뒹굴 하던때가 그리워요~
착한시경님! 오늘도 행복한 날 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