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첫날,

 

 

 

                        오지 않은 한 명의 하객을 찾아갔다

                        서운한 마음도 마음이거니와

                        몰래 왔다가 그냥 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행기표를 놓았다

                        돌연 신혼여행도 안 가고 그를 찾아나서는

                        나와 새색시를 의아하게 보던 형이

                        이내 못이기는척 우리의 뒤를 따랐다

                        그냥 제발 신혼여행이나 가라는 형,

                        형만 아니었으면 하면서

                        늘 내 원망의 대상이었던 형이어서

                        따라오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구월의 밤은 아직 뜨거웠고

                        새 색시는 어질어질 걸음을 떼었다

                        쑥대머리로 앉아 있는 그를 만났다

                        하객을 맞아야 할 사람이

                        하객으로도 오지 않은 미운 아버지

                        형은 그의 검푸른 머릴 자르고

                        나와 새색시는 나란히 절을 올렸다

                        밉기만 하던 형이 산처럼 든든해져 왔던가

                        형과 나와 며느리가 안 보일 때까지

                        아버지는 산 아랫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월의 볕만 뜨거웠던 것은 아니어서

                        신혼 첫날밤도 네 번이나 속옷을 벗어 던졌다  (P.82 )

 

 

 

 

                         삼학년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P.10 )

 

 

 

                                                          -박성우 詩集, <가뜬한 잠>-

 

 

 

     늘 가뜬한 잠,을 자지 못했던 내게 여전히 약속한 일의 시간을 따라 끄급했던 내게

     오늘 어디선가 온, '가뜬한 잠'을 읽고  安心을 한다.

     오늘밤, 우리는 속옷을 네 번이나 벗어 던지지는 못하더라도 가뜬한 잠을 잘 듯하다.

     미숫가루를 우물에 사카린이랑 슈거를 넣고 몽땅 털어넣지는 못하더라도,

     미숫가루 아이스크림이라도

     내일은 먹자 생각하여도..오늘은 왠지 가뜬한 잠을 잘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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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6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6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6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6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3-02-16 21:05   좋아요 0 | URL
와, 왠지 눈익은 표지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박성우였군요.
전에 제가 쉬운 시집을 누군가에게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그분께서 페이퍼까지 써가며 여러 권 추천해 주신 목록에 박성우 시인이 있었어요. 지금 시집을 한장 한장 넘기며 시를 읽고 있노라면 서정시, 향토시의 시대는 갔어! 하는 문창과 선배 누나의 새된 꾸지람이 귀에 박히는 듯하지만 그래도 좋은 걸요. 특히 '삼학년'이라는 시는 짧으면서도 강렬한, 소박한 웃음이 걸리는 좋은 글이지요.

저는 이제 시를 난이도 순으로 읽어보려고 해요. 먼저 손택수와 유홍준, 그리고 시의 기본이라는 김기택과 이윤학... 극난이도에는 김경주와 황병승이 있습죠.
어제 글을 몰아서 쓴 탓인지 오늘은 책을 읽고 싶네요. 정미경의 <내 아들의 연인>을 꺼내두었어요.

트리제님, 굳밤, 아직 저녁인가요? 굳 저녁-밤 :D

appletreeje 2013-02-17 00:08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이 오셨군요.^^ 반가워요~~!
저도 어젯밤 이 시집을 읽으며 마음이 순해지고 참 좋았어요.
'삼학년'은 정말 저절로 웃음이 피어났어요.

저에게 처음 시를 알게 해 준 시인은, 고은 선생님이시고
그때는 조태일이나 황명걸,신경림,김명인..김영태, 마종기,황동규 시인 등..
너무나 많은 시인들이 계셨지요.

늘 문학에 대한 빛나는 열정으로 건필하시는 이진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정미경님의 <내 아들의 연인>도 언젠가 읽긴 했는데..가물가물하네요.^^;;
소이진님! 굳밤,

수이 2013-02-16 22:30   좋아요 0 | URL
나무늘보님 덕분에 좋은 시 자주 알게 되어 행복해요. 진정.
앞으로는 미숫가루 타먹을 적마다 생각나겠는걸요. 삼학년. ^^

appletreeje 2013-02-17 00:14   좋아요 0 | URL
저도 앤님덕분에 너무나 행복하고 좋아요~~^^
진정으로요~! 미숫가루를 타먹으며 삼학년을 생각하는 우리.^^
앤님! 행복한 밤 되세요.*^^*

후애(厚愛) 2013-02-17 17:35   좋아요 0 | URL
미숫가루 먹고싶네요.ㅎㅎ
미숫가루 무척 좋아하는데...^^

appletreeje 2013-02-18 12:53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미숫가루 무척 좋아해요~~
후애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착한시경 2013-02-17 19:02   좋아요 0 | URL
좋은 시인과 시를 알게 되었네요... 삼학년이라는 시는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어쩜 저런 생각을 해낼 수 있을까 ? 지금처럼 음료수가 흔하지 않았던 어린시절..여름이 되면 늘 엄마가 타 주시던 시원한 미숫가루가 생각이 나네요..그때는 학교 끝나면 학원다닐 일도 많지 않아 여유있게 미숫가루 먹구...마룻바닥에 뒹글뒹글하며 쉴 수 있었는데~ 왜 지금은 그 때 맛이 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appletreeje 2013-02-18 12:58   좋아요 0 | URL
앗, 착한시경님이 오셨네요~?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쵸? 삼학년을 읽으면 절로 미소가 ㅎㅎ
저도 마룻바닥에 누워 뒹굴뒹굴 하던때가 그리워요~
착한시경님! 오늘도 행복한 날 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