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에 가끔 들르는 붕어빵 수레가 있습니다. 천 원에 세 개를 주는 이 붕어빵은 단팥이 가득 든 데다 맛이 고소해 날이 추운 날엔 학생 손님들로 수레가 붐빕니다. 수레의 주인은 사십대 초반의 아낙입니다. 아낙은 좀체 말이 없습니다. 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료한 내가 장사는 좀 되나요? 물으면 그냥 픽 웃고 맙니다. 그 나이 또래의 아낙들이 흔히 지니고 있는 억척스러움이나 수다가 없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신뢰감을 주어 몇 년째 나는 그의 단골이 되었지요.

 

 지난 겨울의 일입니다. 학교로 들어가던 나는 수레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눈송이가 날리고 있었고 수레 앞엔 손님도 없었습니다. 수레로 들어서니 아낙은 열심히 붕어빵을 구워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얼핏 사 오십 개쯤의 붕어빵이 아낙 앞에 수북이 쌓여 있었지요. 나는 아낙에게 3천 원어치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온 아낙의 말이 이랬습니다.

 좀 기다리셔야 해요. 요 앞 양로원에서 할머니들이 3만 원어치를 주문했거든요.

 아이구 좋은 일이로군요, 내가 좀 바쁘니 3천 원어치만 먼저 주세요. 나는 별 생각 없이 말했지요. 꽤 오랜 단골이었고 그날 내 마음속에는 눈발도 날리고 날도 추우니 부러 붕어빵을 사야겠다는 마음도 좀 있었던지라 나는 아낙이 내 붕어빵을 먼저 싸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낙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할머니들과 2시에 약속이 돼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2시까진 10여 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고 오랜 단골에 대한 예의로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아 먼저 좀 주세요, 제가 기다릴 시간이 없네요, 하고 얘기해보았으나 아낙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돌아가는 것과 기다렸다가 붕어빵을 들고 가는 것.

 

 

그날 나는 기다리는 걸 선택했습니다. 3만 원어치의 붕어빵이 구워지는 동안 솔직히 처음엔 좀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낙이 세상을 살아온 원칙 같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고지식한 아낙의 처세가 몹시 대견스레 생각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낙이 내게 먼저 3천 원어치를 팔고 뒤에 찾아온 할머니를 조금 기다리게 했다 해도 크게 나무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3천 원의 손님이 기다리기를 거부하면 그는 자신의 고객을 영영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날 아낙도 미안했던지 내게 붕어빵을 건네줄 적 우수리로 하나를 더 봉지에 넣어주었지요. 그날 이후 나는 더 꼼짝없이 아낙의 단골이 되었지요.

 

 

 올겨울의 일입니다. 붕어빵을 사기 위해 차를 멈춰 세웠는데 문예창작과의 여학생 몇이 나를 보았습니다. 어디 가세요? 묻기에 붕어빵을 사려는 중이라 했더니 대뜸 국화빵이 더 맛있다고 내게 강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붕어빵 수레로부터 댓 걸음 떨어진 곳에 국화빵 수레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또 하루의 인연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붕어빵 아낙이 조금 걸렸지만 국화빵 한 봉지를 샀습니다. 아무래도 마음이 어두워 국화빵 아낙에게 말했습니다. 난 원래 붕어빵 단골인데 이 친구들 만나서 국화빵을 사게 되었노라고 얘기했더니 국화빵 아낙이 "붕어빵 사는 걸 자주 보았어요"라고 말하였지요. 그 순간 나는 가슴이 뜨끔하였습니다. 내가 붕어빵을 사는 것을 눈여겨보는 이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한 나는 너무 놀라고 미안해 그만 말을 삐끗하고 말았습니다.

 아줌마, 다음번엔 꼭 국화빵을 살게요.

 미안한 마음에 이렇게 말을 건넸던 것인데 아낙의 말이 또 마음을 찔렀습니다.

 국화빵도 한 번 사주시고 붕어빵도 한 번 사주세요.

 난 이번에도 몹시 놀라고 부끄러워 그만. 예 예, 알았습니다. 하고 빵 봉지를 급히 들고 나왔습니다.

 

 다섯 걸음 간격으로 서 있는 두 대의 포장 수레에 굽고 있는 붕어빵과 국화빵. 자신의 빵만 아니라 상대방의 빵을 함께 사달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따뜻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이 아니겠는지요?

 

 

 

 남은 겨울 동안 부지런히 두 수레를 왕복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동안 두 아낙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투기와 탐욕과는 거리가 먼 참 인간의 마음. 이런 마음의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이 꼭 왔으면 싶습니다.   (P.61~65 )

 

 

 

 

                                                       -곽재구 산문집, <길귀신의 노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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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26 19:43   좋아요 0 | URL
그저 즐겁게 살아가면서 이 사람하고 저 사람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돼요.
오늘은 민들레 뜯어먹고 모레는 씀바귀 뜯어먹고 글피는 유채 뜯어먹고,
골고루 먹으면서 삶을 누리면 돼요.

날마다 고등어를 구워먹을 수도 없고,
날마다 꽁치를 구워먹을 수도 없고,
그러나, 찬찬히 돌아가면서 먹으면 즐거워요.

appletreeje 2013-11-29 06:46   좋아요 0 | URL
예~찬찬히 돌아가면서 먹으면 즐겁지요~^^

하늘바람 2013-11-26 22:31   좋아요 0 | URL
겨울에 어울리는 책이네요

appletreeje 2013-11-29 06:52   좋아요 0 | URL
따뜻한 책이에요~^^

2013-11-26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9 0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착한시경 2013-11-27 01:34   좋아요 0 | URL
늦은 밤... 너무 소박하고 예쁜 사연이네요^^ 저도 요즘 붕어빵 사먹는 재미에 빠졌는데...
가난하지만 큰 욕심없이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에 마음이 흐뭇하면서도 울컥했어요...
그리고 뭔지 모르게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건 왜 일까요 ?

appletreeje 2013-11-29 06:52   좋아요 0 | URL
저도 이 글 읽으며, 착한시경님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후애(厚愛) 2013-11-27 20:33   좋아요 0 | URL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참 좋습니다~*^^*

저희 동네에 붕어빵 하는 곳이 참 많습니다.
갑자기 배가 고플 때 나가서 사 먹지요~
슈크림빵도 무척 맛 있었습니다.*^^*
제 언니는 붕어빵이 제일 맛 있다고 하네요.ㅎㅎ

2013-11-29 0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30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림모노로그 2013-11-28 09:50   좋아요 0 | URL
곽재구님의 신간이군요...
참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정신없이 지내는 나날이지만, 책이 삶의 쉼이자 위로네요 ^^
늘 나무늘보님께 위로를 받기에 ^^
다치신 곳은 다 나으셨는지요.
눈길에 다치지 마시고, 오늘도 행복으로 꽉 채운 날 보내시길 , 기도할게요 ^^ㅎㅎ

appletreeje 2013-11-29 07:01   좋아요 0 | URL
예~드림님 염려 덕분에 이제 다 나았습니다~~
저야말로 늘 드림님 글 읽으며 위로 받는 것 잘 아시죠~?^^ㅎㅎ
서울은 눈이 잠깐 스치다 말았어요~
드림님! 오늘도 행복하고 충만한 날 되세요~*^^*
 
세 개의 그림자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시릴 페드로사 지음, 배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때가 되면 그것이 아무리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존재라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치 않으려 하는 자는 불멸의 고통을 당하리니. 일어서서 버텨라. 그리고 삶이 있는 곳에 머물러라. 매순간의 삶을 행복하고 소중하게 함께 누려라, 매우 아름답고 혼곤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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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6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9 0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11-26 16:22   좋아요 0 | URL
날마다 즐겁게 받아들이며 누릴 때에 아름다운 삶 되겠지요

appletreeje 2013-11-29 07:03   좋아요 0 | URL
그러리라 생각 들어요~^^
 
- 그리고 거기에 곰이 있었다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뱅상 소렐 글 그림, 김희진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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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곰의 표정처럼, 무심함을 가장하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박한 소시민들의 삶과 보편적인 갈등의 모습들이 그림자,처럼 넘실거린다. 곰은 결국 죽고, 모험을 떠난 자들만이 저 건너 숲에서 그 곳을 바라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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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6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9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11-26 16:04   좋아요 0 | URL
<곰>이라는 이름만 붙은 책이 더 있네요.
저는 다른 그림책을 떠올렸어요~

appletreeje 2013-11-29 07:08   좋아요 0 | URL
레이먼드 브릭스의 <곰>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이젠 <눈사람 아저씨>를...ㅎㅎ
 

 

 

 

 

 

 

 

 신기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외모가 풍기는 분위기와 식성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 개량한옥에 살 때였다. 잠깐 우리 집에 들어와 있던 또또가 내 다리에 매달리며 강한 의사 표시를 했다. 나는 그때 원두커피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또또가 커피를 원한다곤 상상도 못했다. 그날 또또는 커피를 얻어 먹지 못했다. 그뒤에도 가끔 그런 일이 있었고, 드디어 나는 알아차렸고, 또또는 커피를 마셨다. 그뒤부터 또또는 내가 커피를 마시면 '조금은 남겨주겠지'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반드시 남겨 주려고 했음에도 개가 워낙 조용히 있는 바람에 깜박 잊고 다 마셔 버렸다간 실망해서 폭폭 내쉬는 녀석의 한숨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녀석이 밤새도록 그렇게 한숨을 쉬며 안 잘 것 같아 다시 커피를 끓인 적도 있었다.

 또또가 아파 잘 걸을 수 없을 때면 우리는 산책하다 쉴 겸 가끔 밖에서 커피를 마셨다. 날씨가 좋으면 카페 밖에 내놓은 자리에 앉아 한잔의 커피를 나눠 마시기도 했다. 녀석이 카페라떼를 좋아했기 때문에 또또와 같이 커피를 마실 때면 나는 늘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우리

 

 

를 기억하는 종업원도 가끔 있어서 손님이 없으면 안으로 들어와 편히 앉아 마시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또는 그들에게 답례하듯 늘 얌전했다.

그처럼 다른 개에 비해 월등히 얌전했지만, 또또도 남의 공간에서 활개를 칠 때가 있었다. 가난한 나를 만나 평생 좁은 공간에서 답답하게 살았기 때문인지 또또는 늘 넓은 곳에 가면 편안해 보였다. 특히 그 집에 사는 사람이 개를 좋아할 때 또또는 한층 생기를 띠었다. 현관 앞에서 내 배낭을 보고 "어머, 개도 왔네!"라고 반기는 사람이 있으면 녀석은 재깍 고개를 쑥 내밀며 눈을 반짝거렸다. 집에 들어가선 방과 화장실까지 둘러보며 자박자박 걸어 다녔다. 반대로 주인이 반기지 않는 눈치면 그 집에서 나올 때까지 배낭 밖으로 고개 한 번 내밀지 않았다. 녀석은 몸을 잔뜩 웅크린 그 상태로 버둥거리지도 않고 몇 시간이든 있었다. 놀랍게도 또또는 내게 약간 저자세인 사람도 금세 알아봤다. 정말로 신통한 동물적 본능이었다.

 

 

 그런 또또를 데리고 마지막으로 여행을 간 곳은 선암사였다. 늙은 또또를 데리고 먼 그곳으로 여행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여행을 한 적이 있고, 일찍 그보다 더 먼 곳도 가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네 명이 함께하는 여행이라 차를 가지고 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또또가 편히 앉을 자리쯤은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그것이 또또와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임을 알았다. 그 무렵 늙은 또또는 혼이 빠진 듯 잠을 잘 때가 많았고, 비명을 지르거나 가위에 눌려 허덕거리다가도 체력이 바닥난 것처럼 곧 다시 곯아떨어지곤 했다. 여전히 밖에 데리고 나가면 제 힘으로 걸었지만, 이미 또또에게 예전의 생기란 없었다. 그래서 선암사에서 비로암으로 가는 길을 걸을 때는 그 여행이 우리에게 마지막 여행일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 또또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나와 보조를 맞춰 나란히 걸었다. 가끔은 나보다 앞에서 생기있게 걷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길은 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개를 데리고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자주 또또를 안거나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만큼 내려다보이는 또또의 등이 슬프고 애틋해 보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 길을 걸어 비로암에 도착했을 때 마애불 앞에는 엄청나게 큰 개가 턱하니 앉아 있었다. 썰매를 끄는 시베리안허스키보다 큰 책에서도 본 적 없는 그 개의 품종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개 주인의 권력이 개를 통해 그대로 느껴졌다. 그곳까지 개를 데리고 온 사람도 개도 너무나 당당했고, 나처럼 법을 따져 가며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영향력깨나 행사하고 있을 그 절의 신도가 데리고 왔을지도 모를 개는 심지어 오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늘 좁은 집에서 내 발에 밟히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쓰며 산 또또에게선 한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개의 유골을 지고 다니던 이웃은 가여운 개를 끝까지 돌보느라 힘들었겠지만,그들이 그 개를 통해 얻었을 위안은 그 녀석을 잃은 슬픔을 상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개들은 정말이지 인간의 속된 감정을 정화시키는 데 더없이 좋은 존재다. 인간에게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그들의 순정과 순수함이 주는 위로에 매혹되면, 개와 살면 일생이 평화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혼자 사는 젊은이가 개와 너무 밀착되어 생활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세상을 알 만큼 아는 나이 든 독신들이 그렇게 지내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같이 살고 있는 개에게서 얻는 정서적 위안과 평화를 변덕스런 인간관계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어 그들에게 다시는 이성을 만날 기회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P.161~164 )

 

 

 

 

                                                                  -조은 산문집, <또또>-에서

 

 

 

 

 

 

 

    2001년 조은 시인의 <벼랑에서 살다>,를 읽다가 처음 만났던 '또또'가 죽은 후 1년이 지나고

    17년을 함께 살았던 '또또'에 대해 시인이 담담하게 애정으로 써 내려간 <또또>를 읽었다.

    광화문 근처에 있는 주택가 사직동에서 시인은 22년을 살았다. 한 곳에 눌러앉아 살기엔 만만

    찮은 세월이다. 사직동에서 살았던 세 집 중, 또또는 두 번째 셋집 개량한옥에서 만나게 되었던

    개다. 개를 키우는 모습을 빼면 인정 많고 다정다감한 그 집주인에게서 끔찍한 폭행을 당하며

    인간에 대한 공포와 상처로 평생을 아팠고 예민했던 또또를, 처음에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꽤 오랫동안 안간힘을 썼으나..결국은 집주인의 학대와 폭행에서 더는 그 개를 놔둘 수

    없어 세 번째로 이사한 한옥으로 데리고 나온 후, 또또가 죽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상처투성이로 왔지만, 또또는 시인에게 어떤 마음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한다. 사람으로 받은

    공포감을 다스리지 못해 저도 모르게 시인을 물기도 했지만, 물고 나선 곧바로 신음하고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면 그 녀석을 미워할 수 없었다고 했다.  상처 받은 채 왔지만, 사람들과 나누는

    마음은 여러 이유로 변덕이 잦았지만, 한결같이 고른 마음으로 곁에 있었던 작은 잡종견 또또.

    또또,는 시인에게 인간인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오만방자한 관념의 틀을 깰수 있게 하였고, 또한

    군더더기 없고 가식없는 삶과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 준 고귀한 존재였다고 시인은 말한다.

    또또가 떠난 지 1년이 넘었고, 재개발로 인해 이제 조은 시인도 사직동을 떠날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팔고 가야 할 한 평 땅도, 캡슐만 한 집도 없는 곳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사직동

    에서 또또를 먼저 떠나 보내고 시인은 말한다.

    '내 뿌리의 본질이 무엇이든 이젠 어디로 옮겨 가도 삶을 향유할 수 있다. 그걸 인식하자 미래가

    너무도 명쾌하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있다!'라고.

    참 다행이고 좋다,

    어느 사람의 글이나 생각을 오랫동안 읽거나 지켜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소중한 무엇이 내게

    도 익숙하고 친밀하게 된다.  내게 또또,도 그랬다.

    "또또야, 우리 오늘 씩씩하게 잘하자."

    " 언니와 나는 처음 가는 길을 달려갔다. 한 줌도 안되는 또또의 뼛가루를 가지고 돌아왔다.

    또또와 나, 우리는 정말로 잘했다."

    언제나 또또언니에게 조용한 열정이었고,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의 제목이기도 했던

    예쁘고 포근하고 상냥하고 사랑스럽던, 또또!

    그 곳에서도 언제나 편안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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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24 13:51   좋아요 0 | URL
꽃도 나무도
또 아이들도
모두 우리 모습을 닮겠지요.
우리 곁에 있는 책들까지도요..

appletreeje 2013-11-25 10:24   좋아요 0 | URL
예~함께 곁에서 가까이 지내다 보니
서로서로 같은 마음이 되어, 닮는 듯 싶어요~^^

2013-11-24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5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11-24 15:09   좋아요 0 | URL
썰매 끄는 견종 중에서 허스키는 그리 큰 개가 아닌데, 아마 알래스카 말라뮤트와 혼동한 것 같아요.허스키보다 두 배는 크죠.

appletreeje 2013-11-25 10:30   좋아요 0 | URL
저도 말라뮤트,를 떠올렸어요.^^
노이에자이트님께선 동물을 참 좋아하시는
따뜻한 분이시지요~!*^^*

2013-11-24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5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3-11-24 17:31   좋아요 0 | URL
선암사에 다녀왔었는데 다시 가고싶은 곳이랍니다~
다음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또또가 갔던 비로암을 다시 찾아가봐야겠어요..
참 슬픈 글이지만 참 좋은 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좋은 글을 읽게 해 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appletreeje 2013-11-25 10:42   좋아요 0 | URL
선암사는 엄마가 전에, 승선교에서 찍으신 사진이 있는데..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곳이에요.^^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서 '내세에는 선암사 화장실에서 만나자.'
했지요..ㅎㅎㅎ
후애님! 비가 오는 날, 따뜻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2013-11-25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5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01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03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P.11 )

 

 

 

 

 

 

                           휄체어 댄스

 

 

 

 

 

                               눈물은

                               이제 습관이 되었어요

                               가닥가닥 온몸의 혈관으로

                               타들어오는 불면의 밤도

                               나를 먹어치울 순 없어요

 

                              보세요

                              나는 춤을 춘답니다

                              타오르는 휄체어 위에서

                              어깨를 흔들어요

                              오, 격렬히

 

                              어떤 마술도

                              마법도 없어요

                              단지 어떤 것도 날

                              다 파괴하지 못한 것뿐

 

                              어떤 지옥도

                              욕설과

                              무덤 저 더럽게 차가운

                              진눈깨비도, 칼날 같은

                              우박 조각도

                              최후의 나를 짓부수지 못한 것뿐

 

                              보세요

                              나는 노래한답니다

                              오, 격렬히

                              불을 뿜는 휄체어

                              휄체어 댄스   (P.22 )

 

 

                              * 강원래의 공연에 부쳐

 

 

 

 

 

 

                              파란 돌

 

 

 

 

 

                                십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을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러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 빛나는 내(川)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P.33 )

 

 

 

 

 

 

                             해부극장*

 

 

 

 

 

                                한 해골이

                                비스듬히 비석에 기대어 서서

                                비석 위에 놓인 다른 해골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다

 

                                섬세한

                                잔뼈들로 이루어진 손

                                그토록 조심스럽게

                                가지런히 펼쳐진 손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이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을 들여다본다

 

 

                                              (우린 마주 볼 눈이 없는걸.)

                                             ( 괜찮아, 이렇게 좀더 있자.)   (P.44 )

 

 

 

                               * 17세기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안드레아 베살리우스의 책. 수년

                                  간의 급진적 해부 연구 끝에 인간의 뼈와 장기, 근육 들 정교한

                                  세부를 목판에 새겨 제작했다. 독특한 구도의 해골 그림들이 실

                                  려 있다

 

 

 

 

 

 

                                저녁의 소묘 3

                                                -유리창

 

 

 

 

 

                                    유리창,

                                    얼음의 종이를 통과해

                                    조용한 저녁이 흘러든다

 

                                    붉은 것 없이 저무는 저녁

 

                                    앞집 마당

                                    나목에 매놓은 빨랫줄에서

                                    감색 학생코트가 이따금 펄럭인다

 

                                   (이런 저녁

                                    내 심장은 서랍 속에 있고)

 

                                    유리창,

                                    침묵하는 얼음의 백지

 

                                    입술을 열었다가 나는 

                                    단단한 밀봉을 배운다  (P.65 )

 

 

 

 

 

 

                                  괜찮아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P.76 )

 

 

 

 

 

 

 

                                저녁의 소묘 5

 

 

 

 

 

                                      죽은 나무라고 의심했던

                                      검은 나무가 무성해지는 걸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동안 저녁이 오고

 

                                      연둣빛 눈들에서 피가 흐르고

                                      어둠에 혀가 잠기고

 

                                      지워지던 빛이

                                      투명한 칼집들을 그었다

 

                                     ( 살아 있으므로)

                                      그 밑둥에 손을 뻗었다   (P.137 )

 

 

 

 

 

                                                -한 강 詩集,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권. 한강의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는 침묵의 그림에 육박하기 위해 피 흘리는 언어들이 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언어의 심장을 뜨겁게 응시하며 영혼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확인하려는 시인이 있다. 그는 침묵과 암흑의 세계로부터 빛나는 진실을 건져 올렸던 최초의 언어로 가닿고자 한다. 뜨겁고도 차가운 한강의 첫 시집은 오로지 인간만이 지닌 '언어-영혼'의 소생 가능성을 점검해보는 고통의 시금석인 셈이다.

 

 

 

 

 

          저녁에 선물 받은 한강의 첫 詩集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는다.

          여전히 불 속에서 끓고 있는 심장, 얼음 속에서 타고 있는 불, 투명하게 스스로

          숨결마저..숨 죽이며 듣는 고요한 침묵과, 반짝이는 '빛'으로 나가고 있는 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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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11-20 23:37   좋아요 0 | URL
세상에, 트리제님 벌써 읽으신 거예요? 부러워요.
저는 이 글 안 읽고 아껴둘 거예요.
나중에 책으로 한 자 한 자 새겨가면서 읽을 거예요!

그래도 자기 전에 한 편만 읽고 자야지... ㅎ_ㅎ

appletreeje 2013-11-20 23:59   좋아요 0 | URL
앗, 소이진님이시네요~!^^ 너무 너무 반가워요...흑흑..
아까 저녁에..어느 자리에 갔다가 선물로 받아서 지금 읽고 있어요.
그러지 않아도 이 시집 읽으며 소이진님 생각이 났어요.
이 시집을 읽으며 또 얼마나 아름다운 단상들을 펼치실까,하고..^^
아...한강님은 모습도, 소설도, 시도, 자작곡의 노래들도 다 한결같이
'한강'의 모습이어서 참 좋아요~~

소이진님! 이제 공부하시느라 더 힘드시겠지만, 더욱 기쁜 시간들을 위한
'파종'으로 여기시며..몸도 마음도 늘 건강하고 좋으시길 기도해요.
좋은 밤 되세요~*^^*

2013-11-21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3-11-20 23:49   좋아요 0 | URL
오늘도 즐겁게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다 좋은 시들인데 저는 시 중에 <파란 돌>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좋은 시들을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꿈 꾸셔요~ *^^*

appletreeje 2013-11-20 23:59   좋아요 0 | URL
후애님~~우리 이 시간, 함께 시를 읽네요~
詩들이 다 참 좋아요! 참으로 좋아서 마음이 뻐근해요...
후애님께서도 조금 있다 이 詩集, 반갑게 읽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후애님께서도, 환하고 좋은 꿈 꾸세요~*^^*

프레이야 2013-11-21 00:12   좋아요 0 | URL
육년전 엄마 수술 전야에 한강의 가만가만부르는노래,를 읽으며 뜬눈으로 보내며 두렵던 마음을 토닥였던 기억이 나요. ^^ 조근조근 토닥여주는 힘이 있는 한강의 시집, 들려주신 시 이외에도 궁금해집니다.

appletreeje 2013-11-21 01:15   좋아요 0 | URL
가만가만부르는노래,를 읽으시며 그런 시간이 있으셨군요...
올린 시외에도 너무 마음에 들어 오는 시들이 많았는데 간단히 올렸습니다.
1993년에 시인으로 등단한 한강이 거의 20년 만에 묶는 첫 시집이라 이모저모
천천히... 가만가만 읽으실 시들이 참 많으실 듯 해요.
프레이야님께서도 읽어 보시면, 마음에 드는 시집이라 생각되구요~

프레이야님! 하얀 평화,같은 좋은 밤 되세요~*^^*

숲노래 2013-11-21 03:16   좋아요 0 | URL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빛을 느낄 수 있으면
언제나 즐겁게 노래도 시도 되리라 생각해요.
가을달 밝은 밤입니다.

appletreeje 2013-11-23 22:59   좋아요 0 | URL
예~그렇습니다~
함께살기님! 좋은 밤 되셔요~*^^*

하늘바람 2013-11-21 12:59   좋아요 0 | URL
참 좋네요

appletreeje 2013-11-23 23:03   좋아요 0 | URL
예~저도 이 詩集의 시들 읽으며
참, 좋았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하늘바람님! 편안하고 좋은 주말밤 되시길요~*^^*

착한시경 2013-11-22 00:38   좋아요 0 | URL
정말 오랫만에 서재에 다시 왔어요...여전히 좋은 시를 올려 주시는 트리제님^^ 깊은 밤...잘 읽고 갑니다....

appletreeje 2013-11-23 23:07   좋아요 0 | URL
정말 오랫만이시네요~!^^ 그러지 않아도
요 며칠 착한시경님 생각이 많이 났는데요~*^^*
무지무지 반갑고 참 좋습니다!
착한시경님! 포근하고 좋은 밤 되세요~*^^*

후애(厚愛) 2013-11-22 18:13   좋아요 0 | URL
편안한 금요일 오후 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appletreeje 2013-11-23 23:11   좋아요 0 | URL
ㅎㅎ 벌써 토요일 밤이 되었습니다~
후애님께서도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셨겠지요~?^^
저도 후애님 덕분에 편안한 주말 보내고 있습니다~
후애님께서도, 즐겁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