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외모가 풍기는 분위기와 식성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 개량한옥에 살 때였다. 잠깐 우리 집에 들어와 있던 또또가 내 다리에 매달리며 강한 의사 표시를 했다. 나는 그때 원두커피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또또가 커피를 원한다곤 상상도 못했다. 그날 또또는 커피를 얻어 먹지 못했다. 그뒤에도 가끔 그런 일이 있었고, 드디어 나는 알아차렸고, 또또는 커피를 마셨다. 그뒤부터 또또는 내가 커피를 마시면 '조금은 남겨주겠지'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반드시 남겨 주려고 했음에도 개가 워낙 조용히 있는 바람에 깜박 잊고 다 마셔 버렸다간 실망해서 폭폭 내쉬는 녀석의 한숨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녀석이 밤새도록 그렇게 한숨을 쉬며 안 잘 것 같아 다시 커피를 끓인 적도 있었다.
또또가 아파 잘 걸을 수 없을 때면 우리는 산책하다 쉴 겸 가끔 밖에서 커피를 마셨다. 날씨가 좋으면 카페 밖에 내놓은 자리에 앉아 한잔의 커피를 나눠 마시기도 했다. 녀석이 카페라떼를 좋아했기 때문에 또또와 같이 커피를 마실 때면 나는 늘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우리
를 기억하는 종업원도 가끔 있어서 손님이 없으면 안으로 들어와 편히 앉아 마시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또는 그들에게 답례하듯 늘 얌전했다.
그처럼 다른 개에 비해 월등히 얌전했지만, 또또도 남의 공간에서 활개를 칠 때가 있었다. 가난한 나를 만나 평생 좁은 공간에서 답답하게 살았기 때문인지 또또는 늘 넓은 곳에 가면 편안해 보였다. 특히 그 집에 사는 사람이 개를 좋아할 때 또또는 한층 생기를 띠었다. 현관 앞에서 내 배낭을 보고 "어머, 개도 왔네!"라고 반기는 사람이 있으면 녀석은 재깍 고개를 쑥 내밀며 눈을 반짝거렸다. 집에 들어가선 방과 화장실까지 둘러보며 자박자박 걸어 다녔다. 반대로 주인이 반기지 않는 눈치면 그 집에서 나올 때까지 배낭 밖으로 고개 한 번 내밀지 않았다. 녀석은 몸을 잔뜩 웅크린 그 상태로 버둥거리지도 않고 몇 시간이든 있었다. 놀랍게도 또또는 내게 약간 저자세인 사람도 금세 알아봤다. 정말로 신통한 동물적 본능이었다.
그런 또또를 데리고 마지막으로 여행을 간 곳은 선암사였다. 늙은 또또를 데리고 먼 그곳으로 여행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여행을 한 적이 있고, 일찍 그보다 더 먼 곳도 가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네 명이 함께하는 여행이라 차를 가지고 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또또가 편히 앉을 자리쯤은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그것이 또또와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임을 알았다. 그 무렵 늙은 또또는 혼이 빠진 듯 잠을 잘 때가 많았고, 비명을 지르거나 가위에 눌려 허덕거리다가도 체력이 바닥난 것처럼 곧 다시 곯아떨어지곤 했다. 여전히 밖에 데리고 나가면 제 힘으로 걸었지만, 이미 또또에게 예전의 생기란 없었다. 그래서 선암사에서 비로암으로 가는 길을 걸을 때는 그 여행이 우리에게 마지막 여행일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 또또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나와 보조를 맞춰 나란히 걸었다. 가끔은 나보다 앞에서 생기있게 걷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길은 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개를 데리고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자주 또또를 안거나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만큼 내려다보이는 또또의 등이 슬프고 애틋해 보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 길을 걸어 비로암에 도착했을 때 마애불 앞에는 엄청나게 큰 개가 턱하니 앉아 있었다. 썰매를 끄는 시베리안허스키보다 큰 책에서도 본 적 없는 그 개의 품종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개 주인의 권력이 개를 통해 그대로 느껴졌다. 그곳까지 개를 데리고 온 사람도 개도 너무나 당당했고, 나처럼 법을 따져 가며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영향력깨나 행사하고 있을 그 절의 신도가 데리고 왔을지도 모를 개는 심지어 오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늘 좁은 집에서 내 발에 밟히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쓰며 산 또또에게선 한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개의 유골을 지고 다니던 이웃은 가여운 개를 끝까지 돌보느라 힘들었겠지만,그들이 그 개를 통해 얻었을 위안은 그 녀석을 잃은 슬픔을 상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개들은 정말이지 인간의 속된 감정을 정화시키는 데 더없이 좋은 존재다. 인간에게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그들의 순정과 순수함이 주는 위로에 매혹되면, 개와 살면 일생이 평화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혼자 사는 젊은이가 개와 너무 밀착되어 생활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세상을 알 만큼 아는 나이 든 독신들이 그렇게 지내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같이 살고 있는 개에게서 얻는 정서적 위안과 평화를 변덕스런 인간관계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어 그들에게 다시는 이성을 만날 기회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P.161~164 )
-조은 산문집, <또또>-에서
2001년 조은 시인의 <벼랑에서 살다>,를 읽다가 처음 만났던 '또또'가 죽은 후 1년이 지나고
17년을 함께 살았던 '또또'에 대해 시인이 담담하게 애정으로 써 내려간 <또또>를 읽었다.
광화문 근처에 있는 주택가 사직동에서 시인은 22년을 살았다. 한 곳에 눌러앉아 살기엔 만만
찮은 세월이다. 사직동에서 살았던 세 집 중, 또또는 두 번째 셋집 개량한옥에서 만나게 되었던
개다. 개를 키우는 모습을 빼면 인정 많고 다정다감한 그 집주인에게서 끔찍한 폭행을 당하며
인간에 대한 공포와 상처로 평생을 아팠고 예민했던 또또를, 처음에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꽤 오랫동안 안간힘을 썼으나..결국은 집주인의 학대와 폭행에서 더는 그 개를 놔둘 수
없어 세 번째로 이사한 한옥으로 데리고 나온 후, 또또가 죽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상처투성이로 왔지만, 또또는 시인에게 어떤 마음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한다. 사람으로 받은
공포감을 다스리지 못해 저도 모르게 시인을 물기도 했지만, 물고 나선 곧바로 신음하고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면 그 녀석을 미워할 수 없었다고 했다. 상처 받은 채 왔지만, 사람들과 나누는
마음은 여러 이유로 변덕이 잦았지만, 한결같이 고른 마음으로 곁에 있었던 작은 잡종견 또또.
또또,는 시인에게 인간인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오만방자한 관념의 틀을 깰수 있게 하였고, 또한
군더더기 없고 가식없는 삶과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 준 고귀한 존재였다고 시인은 말한다.
또또가 떠난 지 1년이 넘었고, 재개발로 인해 이제 조은 시인도 사직동을 떠날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팔고 가야 할 한 평 땅도, 캡슐만 한 집도 없는 곳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사직동
에서 또또를 먼저 떠나 보내고 시인은 말한다.
'내 뿌리의 본질이 무엇이든 이젠 어디로 옮겨 가도 삶을 향유할 수 있다. 그걸 인식하자 미래가
너무도 명쾌하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있다!'라고.
참 다행이고 좋다,
어느 사람의 글이나 생각을 오랫동안 읽거나 지켜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소중한 무엇이 내게
도 익숙하고 친밀하게 된다. 내게 또또,도 그랬다.
"또또야, 우리 오늘 씩씩하게 잘하자."
" 언니와 나는 처음 가는 길을 달려갔다. 한 줌도 안되는 또또의 뼛가루를 가지고 돌아왔다.
또또와 나, 우리는 정말로 잘했다."
언제나 또또언니에게 조용한 열정이었고,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의 제목이기도 했던
예쁘고 포근하고 상냥하고 사랑스럽던, 또또!
그 곳에서도 언제나 편안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