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치기縣 日光(닛꼬으)市에 있는 세계유산 日光東照宮(닛꼬으토으쇼으구으).
(http://blog.aladin.co.kr/731626123/3930143  참조)
이는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장령(將領) 明智光秀(아케치 미스히데)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明智光秀(아케치 미스히데)라 하면 군주인 織田信長(오다 노브나가)에 반역하여 그를 살해한 "반역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아케치는 반역 후, 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과의 싸움에 패망하여 도망 가는 도중의 깊은 산속에서 이름없는 백성에 살해 당하였다고 전해진다.
아케치가 죽은 건 1582년
日光東照宮가 세워진 건 1617년, 이 둘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日光東照宮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神으로 모신 神社다.
이에야스 만년(晩年)기 가장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참모장 南光坊 天海(난코으보으 텡카이)라는 승려가 있다.
이 텡카이가 바로 아케치 미스히데 본인이다는 의견이 파다하다.
그 "증거"를 여러가지 제시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1.  텡카이는 도쿠가와의 신하로서 도요토미를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해 인정 사정 없는 시책을 취했다.
(이건 도요토미에 대한 복수)

2.  텡카이는 오다 노브나가의 명령에 의해 파괴된 天台宗(뎅다이소으)의 比叡山 延曆寺(히에이산 엔랴쿠지)와 미스히데의 지배 영역이었던 오으미(近江=현 시가현) 사카모토(坂本)의 부흥에 충력하였다.
(아케치 종족의 무덤은 천대종 서교사(西敎寺)에 모셔져 있는데, 이 절은 사카모토(坂本)에 있다)

3.  히에이산(比叡山)의 산골짜기 不動堂(후도도)의 정원에 "奉寄進 願主光秀(미스히데) 慶長二十年二月十七日"라고 새겨져 있는 장명등이 있다.
(慶長(케이쵸)二十年는 서기 1615년,즉 아케치가 죽어 33년이 지나고 있다)

4.  텡카이는 日光東照宮에 가까운, 華嚴之瀧(케공 폭포)를 바라 불 수 있는 절경의 지역을 "明智平(아케치 다이라) "라고 이름 지었다.

5.  텡카이는 사망후, 시호를 慈眼大師(지겡 타이시)라고 불리우게 되었는데, 같은 호를 가진 교토의
慈眼寺(지겡사)에는 미스히데(光秀)의 좌상과 함께 미스히데(光秀)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慈眼寺(지겡사)의 明智光秀(아케치 미스히데) 좌상


6.  텡카이는 아케치 미스히데의 충실한 신하 齋藤利三(사이토 도시미스)의 딸 於福(오후쿠)를 이에야스의 손자(훗날의 도쿠가와 이에미스)의 보모로 중용하였다. 훗날 이 오후쿠는 春日乃局(가스가노 쯔보네)라고 불리우게 되어 江戶城 大奧(오오오쿠)에서 쇼군(將軍) 다음가는 권력자로 되었다.

7.  이에야스의 손자 德川家(도쿠가와 이에미스)의 光(미스)는 明智秀(아케치 미스히데)의 光(미스)라고 볼 수도 있다.

8.  日光東照宮에는, 아케치의 가문(家紋)인 桔梗(키쿄으 = 도라지 꽃)무늬가 붙은 옷을 입은 인물(인형)이 신사전체를 지키도록 배치되어 있다.




위와 같은 "증거"가 있기는 하나, 텡카이 = 아케치 미스히데라는 학설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고, 모순되는 점도 많다고 완전히 부정하는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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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7-20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나모토 요시츠네와 징기츠칸이 동일인물이라는 설에 기초한 추리소설도 있잖아요.우리나라에선 김홍도가 일본에 건너가 화가가 되었다는 설이 있어요.

ChinPei 2010-07-20 17:56   좋아요 0 | URL
미나모토 요시츠네에 관한 전설은 많아요.
요시츠네는 아니지만 혹시 이런 설은 아시나요?
8세기 일본 지배 계급은 모두 다 한반도 출신 사람들이었다는 설.
귀족들은 물론이고 천황도 다 고구려, 신라, 백제출신자들이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자기 "모국"의 세력의 강약에 따라 일본에서의 지위도 높아졌다가 낮아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특히 한때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蘇我(소가)씨는 일본 역사학계에서도 분명 한반도 출신자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이 시대 천황을 들러싼 귀족들의 궈력다툼은 모두 모국(고구려,신라,백제)의 다툼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백제가 멸망할 때 일본이 지원군을 보낸, 일본에서 흔히 말하는 "白村江의 전투"는 "동맹국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모국을 구원하려는 전투"였다고 합니다.
그런 소설을 내가 읽어 봤던데, 진실인지 어떤지 알 수가 없어요. ^^
그러나 일본의 천황의 조상에 한반도 출신자가 있는건 현재 천황이 공식으로 인정하는 사실이지요.

노이에자이트 2010-07-21 16:52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진 책에도 나옵니다.특히 백촌강 전투는 한일관계사에서 우호적인 시기도 있었음을 강조하는 취지로 자주 거론되지요.한국에서도 많이 거론됩니다.

ChinPei 2010-07-21 20:54   좋아요 0 | URL
점차 우리나라와 일본이 그 시기처럼 진짜 우호국이 되면 좋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10-07-22 15:51   좋아요 0 | URL
동감입니다.

ChinPei 2010-07-22 17:55   좋아요 0 | URL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우리나라가 통일되어야지요.
그래서 남부럽지 않은 나라가 된 후 몇십년(혹시 몇백년?)이 지나서야 일제36년이 진짜 역사의 일부분이 될 수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야 우리나라와 일본이 진짜 우호국이 될 수있는거죠.
억울하지만 나와 같은 세대들은 그 장면을 아마 못 볼 것이지요...
내 생각이 좀 딱딱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