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혀 죽겠거든, 철학하라 - 인생의 힘든 고비에서 나를 잡아준 책들 인문낙서 1
홍정 지음 / 인간사랑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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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자마자 몇년 있으면 마흔을 바라보는 나와 내 남편이 읽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한 지인이 떠올랐다.

혹시 그분이 쓴 글일까? 싶어서 저자의 약력도 살펴볼 정도로 닮아있었고 꼭 그 분이 필명으로 쓴 건

아닌까?하고 의심의 의심을 해본 책이다.

주변에 지인의 남편들을 보면 마흔쯤에 어떤 식으로든 삶에 대해서 깊이 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더라는 것이다. 

그런 시간을 잘 보내면 괜찮은데 잘못 보낸 사람이 있었다.

행복하게 잘 살던 사람이 갑자기 삶이 버겁고 힘들며 자신이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 같다며 이혼을

요구해서 내 지인을 힘들게 했던 사람이다.

그때 그 사람에게 내가 건내고 싶었던 책은 <세일즈맨의 죽음>이었다.

그 때까지만해도 내가 읽은 책 중에서 남자들의 그런 아픔을 다룬 책이 없어서 그 책이라고 건네고 싶었는데 이 책을 보니 다행이다싶었다.

 

쉼없이 인생의 계단을 오르다가 중간쯤에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내가 이대로 살아도 되는가?라는 그런 질문을 마구마구 할 때 이런 책들이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을 겪고 느끼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인문학이라는 밧줄을 잡고 세상에 다시 나왔다.  그런 본인의 삶을 여러 철학자들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아쉽게도 그 많은 철학자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이 책을 맛갈스럽게 읽지는 못했다.

겨우 올해 관심갖고 읽었던 니체부분만 글자가 크~게 보였다. ^^

 

앞으로 내가 만나야 할 철학자들이 참 많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래도 인문학이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했다.  적어도 저자는 인문학을 통해서 다시 세상을 살고 있지 않은가?

 

부모님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가 자식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가 아닌 삶을 중반까지 살아온 성인에게조차도 말이다.

우리가 심리적으로 약해졌을 때 특히나 영향이 큰 것 같다.  

정신이 건강한 상태였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절망을 하거나 우울할 때는 부모님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철학을 더 공부하고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저자가 한편으로는 참 부럽기도 했다.

저자가 힘들 때 믿고 힘이 되어준 부인이 있어서 마음껏(물론 고통속이었지만) 인문학책을 공부할 수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책이 나왔지 않았나.

이 시대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인문학을 마음껏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도 든다.

 

인상적인 구절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의 자유가 원하는 것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것이 내가 늘 요구하고 자주 소유했던 자유다.  본문 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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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국가 - 우리가 목도한 국가 없는 시대를 말하다
지그문트 바우만 외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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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되는 한 해였다. 

세월호 사태를 보면서 특히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국가는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줄 수 있다고 믿었고 신뢰했는데 그런 신뢰가

정치인과 기업인들을 보면서 많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다.

일반 국민은 국가(?)라는 울타리에 넣어두고 지배자들이 마음껏 조롱하고 이용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런 생각에 몰두하고 있을 때 <위기의 국가>란 책을 동녘 출판사 서평단으로 선정되면서

만나게 되었다.

 

표지는 중세봉건주의 체제가 붕괴되는 듯한 그림이었다.  여러 농민으로 구성된 사람들이 서 있고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지배자가 무너지는 모습을 표현했다. 

 

책의 형식은 지그문트 바우만과 카를로 보르도니의 담화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책의 형식을 파악하지 못해서 한참을 헤맸다.

내용이 깊이가 있었고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경제와 정치에 관심이 많고 기본적인 역사적 개념이 있는 사람들은 수월하게 읽을 것 같았다.

나는 아쉽지만 쉽게 읽지 못했다.

읽다가 잘 몰라서 헤매기를 몇번하다가 중반쯤 되니 괜찮아졌다.

책은 역시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었어야하나보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소설가 존 쿳시의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를 인용한 부분이었다. 

"삶이 왜 경주에 비유되어야만 하는가, 혹은 국민경제들이 건강을 위해 사이좋게 조깅하지 않고 어째서 서로 앞다투며 달려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분명 신은 시장을 만들지 않았다.  만일 우리 인간들이 시장을 만든 것이라면, 그것을 없애고 보다 친절한 형태로 다시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왜 세계는 부지런히 협력하는 벌집이나 개미집이 아니라 검투사끼리 죽고 죽이는 원형경기장이어야만 하는가?" (본문 60쪽)

 

1퍼센트의 최상위 부자들이 부의 90퍼센트 이상을 가져가 버리는 걷잡을 수 없는 불평등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과시한다는 점에서, 이 시기는 훨씬 수치스러운 시대입니다(본문 131쪽).

 

"모든 사람이 투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민의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으며

선거를 통해 만들어진 정부 형태가 진정으로

인민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 이후 지금까지 좌파는 합의를 시작하고

권력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합의를 끌고 가기 위한 많은 길과 속임수가 있다는 것을

잊은 채 과거의 역사적 실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대중의 고양, 희생의 중요성, 대규모의 구경거리와

거창한 의식 등을 토대로 성공을 거둔 파시즘과

모든 강력한 전체주의 정권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것들은 정체가 불분명한 다수의 편을 들면서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켰습니다."(본문 244쪽)

 

현대 사람들이 교육을 많이 받아 지식을 쉽게 접하게 되었고 깨어있게 되었지만 모두들 나서지 않는다.

내 삶을 지키고 꾸려나가기에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용히 분노하고 있음을 느낀다.

국가는 어처구니없는 쇼나 엉터리 통계로 대충 넘어가려고 한다면 훗날 더 큰 일들이 닥칠지 모른다.

국가는 지금 위기의 한가운데 서 있는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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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 - 욕망하는 인문적 통찰의 힘
최진석 지음 / 소나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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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서관에서 마포 '한 도서관 한 책읽기'로 접하게 되었다.
평소 문학고전과 역사책을 즐겨본다.  원래 그런 것은 아니고 아이를 낳고 특히 그런 것 같다.
내가 왜 인문학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어서 기뻤다. 
뭔지 모르지만 끌리는 그 기분을 이론적으로 잘 설명해 준 느낌이라고 할까?
 
서강대 철학과 최전석 교수가 쓴 이 책은 논리적이며 매끄럽고 여러번 읽어도 건질 것이 많은 책이다.
어렵지도 않고 쉽게 쓰여있어서 공감하기도 쉬웠다.
 
우리나라에 인문학 열풍이 부는 이유가 주체적이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이나 미국에 의존해왔고 사상과 철학까지도 수입해다 쓰던 우리가 우리자신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겨서라고 설명하는데 일리가 있었다. 
내가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 '나'를 가두고 있다고, 이념과 개념을 넘어서
나의 욕망을 찾아서 살라고 조언한다. 
이런 일들이 바로 인문학책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인문학은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즐기는 여유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더듬이(통찰력)이라고 한다. 
상인들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나가야하고 더듬이가 발달해야하기에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예전에 자기개발서에서 CEO들이 논어 스터디를 한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이유가 친목도모나 취미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상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나는 왜 인문학을 공부하고 인문학 책을 읽는가?
시대를 읽고 싶어서다.  내가 보는 이 세계를 바로 보고 싶어서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나여서 다른 곳을 돌아볼 시간이 없지만
인문학책을 통해서 통찰하고 싶어서다.
 
근대는 '이성'에 촛점을 두었다면 현대는 '동물'에 촛점을 둔다고 한다.
인간이 이성적이라고 믿었지만 세계1,2차대전으로 인해서 인간의 이성에 의문을 품고 회의를 느꼈기에
패러다임이 바뀐게 아닐까?  나도 동물의 감각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이었다.
인간도 동물이고 결국 인간은 '세련된' 동물에 지나지 않을까?
인간이 욕망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나는 인간안에 내재하는 '동물'을 인정하고 동물적 감각을 키워야한다고 생각한다.
욕망은 부정적 단어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긍적적인 단어인 욕망을 만났다.
 
내 안에 욕망을 들여다보고 진정한 나를 만나고 싶다.
'바람직함'을 벗어던지고 오롯한 나를 만나고 싶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칭찬받기를 원하는 과거의 내게 작별을 고하고 싶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고관념적 사회에서 가능할까?
그래서 인문학 열풍이 부는 걸 보면 사회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 예상된다.
나도 나답게 살고 싶다.
 
자기가 자기 존엄성을 갖지 못하고, 자기가 자기를 믿지 못하고,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게 되어 버리죠. 
이건 불행입니다.  인격적 왜곡을 피할 수 없습니다.  폭력은 여기에서 나옵니다.  111쪽
 
예술은 명사적으로 굳어진 나를 동사화하도록 자극시켜 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121쪽
 
조선은 다른 토양에서 만들어진 수입품으로서의 이념을 끝까지 고수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서 우리가 변화시킬 능력이 없는 겁니다.  128쪽
 
우리 스스로의 메시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론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에서 이론을 생산하는 주도적 힘을 가져야 합니다. 130쪽
 
전문가들이 자기만의 경색된 이론 틀로 실천가와 행동가들의 발목을 잡으면 안 됩니다. 
지식으로 무장한 이론가들이 쉽게 지위가 높아져서도 안 됩니다. 
전문가들은 행동가와 실천가들에게 사용되고 이용되어야 합니다. 146쪽
 
지식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모르는 곳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까지여야 합니다.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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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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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여름 밤의 꿈>이란 제목을 많이 볼 수 있다. 

정작 셰익스피어와는 관련없는 것에도 많이 사용되는 걸 목격한다.  

셰익스피어가 책제목을 참 멋지게 지은 것 같다.

사계절과 인생을 비교했을 때 여름은 젊은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여름 밤의 꿈>은 변덕스럽고 설명하기 어려운 젊은이들의 꿈같은 사랑이라고 풀이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지만 직접 느끼고 경험하고 아파본 것은 20대였다.

나의 진심과 달리 이성대로 행동할 수 없고 어떤 마법에 걸린 것처럼 내가 내가 아닌 일들을 경험했다.

걸어다니면서 울기도했고 밤새 울어서 눈이 퉁퉁 붓기도 했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본 적도 있다.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 못한 적도 있고 자존심도 없이 매달려본 적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몰차게 헤어지자고 선포한 적도 있다.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해서 지금 잘 살고 있지만

 

내게 20대가 다시 주어진다고해도 그런 사랑을 다시할 자신이 없다고 고백한다.

그런 사랑은 에너지가 있어야가능해보인다.^^

 

그런 열정적인 사랑으로 20대를 보내고 30대후반으로 넘어가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추억을 상기하게도 한다.

 

이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책은 번역에 어색한 부분들이 많았다. 

무슨말인지 잘 모르겠는 부분도 눈에 띄었다.

 

허미아: 오, 훼방이다! 낮은 남자 노예 되긴 너무 높아. <본문 17쪽>

 

아테네가 배경이고 극중극 형태를 띄고 있다.

요정들의 세계, 연극을 준비하는 장인들, 사각관계의 연인들로 구성되어있어서

처음 읽으면 복잡해보일 수 있을 것 같다.

 

희곡의 매력은 공연을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희곡을 처음 접했을 때 읽기 불편했는데 낭독을 해보니 정말 재미있었다.

이 책도 아이들과 낭독을 하며 읽었는데 개구장이 퍽이 나오는 부분들이 아이들은 재미있나보다.

시적 표현 때문에 매끄럽지않게 읽히기는 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낭독했을 때처럼 몰입이 잘 되지는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초기작품으로 그리스 로마신화를 잘 모르면 읽다가 신화를 찾아야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테세우스와 히폴리타조차도 여기서는 아테네의 공작부부로 나온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인이면서 자국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않고

이탈리아의 아테네를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주인공도 많이 언급된 걸보면 아테네에 대한 동경이 있었나 생각해본다. 

 

헬레나의 대사가 마음을 아프게했다.  자기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비하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헬레나의 대사중 명대사가 있는 것은 사랑의 아픔을 느끼는 주인공이라서 그럴까?

 

헬레나: 사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거야.

           그래서 날개 달린 큐핏을 장님으로 그려 놨지. 

 

헬레나: 내 보기엔 당신이 온 세상이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나 혼자라 할 수 있죠,

           온 세상이 여기서 나를 보고 있는데?   <본문 37쪽>

 

젊은 시절의 열정적이고 폭풍같은 사랑을 뭐라고 정의해야할까?

운명의 장난??? 과 같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신의 영역이 있다고 가정해야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인간의 이성과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것.

그것이 젊은이들의 사랑이라고 셰익스피어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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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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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본문 17 페이지>
 
이 문장은 내게 아빠의 사고를 떠올리게 했다. 
진짜 윗 문장처럼 준비도 없이 일순간 내게 닥쳐서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 내게도 있었다. 
이 책은 니체의 영원회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연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아빠의 사고를 다시 겪어야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겨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밀란 쿤데라가 가벼움과 무거움이란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논한 책이란 걸 알았다.
 
파르메니데스는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은 부정적이라고 했다. <본문 13 페이지>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움 짐이라고 말했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본문 12-13 페이지>
 
베토벤은 무거움은 뭔가 긍정적인 것이라고 간주했던 것 같다. <본문 60 페이지>
 
체코의 프라하가 장소적 배경이며 이 곳에서 <프라하의 봄>이라는 민주자유화 운동이 벌어지고
이를 제지하는 소련의 무력공습이 시대적 배경이다.   
 
프라하의 젊은 의사 토마시는 상류층의 사람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가졌다.  
그의 애인인 화가인 사비나역시 상류층 사람으로 분류가 된다. 
술집 웨이트리스였던 테레자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책을 들고 토마스가 속한 상류층으로 들어온다. 
 
연애시기는 사비나 캐릭터와 비슷한 것 같은데 결혼초기는 테레자 캐릭터와 비슷한 것 같다.  
의지하고 집착하는 모습이 꼭 테레자를 닮은 것 같았다.  토마스와 테레자 그리고 사비나라는 캐릭터 중심으로
 책을 읽어나갔을 때는 이 책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느꼈다.  그런데 뭔가 후련하지 않아
다시 읽어보니 참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체코의 아픈 역사, 둡체크, 브레즈네프, 파르메니데스, 키치까지....
 
하나하나 공부해가며 읽은 문학책은 드물었다.  내게...
이 책은 나를 공부하게 만든다. 
철학책을 들추게 하고 <프라하의 봄>영화를 보게하고, 체코의 역사를 뒤적이게 한다.
 
지금까지 나열한 것들만 본다면 이 책은 무거움에 가깝다고 해야할 것이지만 내가 처음 읽고 난 느낌은 가볍다였다. 
참 신기하다.  밀란 쿤데라는 무거운 체코의 역사를 가볍게 조명하려했던 것 같다. 
무거운 주제를 무겁게 다뤘다면 사람들은 이 책을 다시는 읽지 않으려하지 않았을까? 
무거움을 가볍게 조명했기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제목을 붙였나? 
확실하지 않지만 나는 그리 본다.
 
인간에게 아니 체코인에게 그런 아픔이 없었더라면, 세상의 짐이 무겁지 않았더라면
날아가버리지 않았을까?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지...
 
독자들에게 세상의 짐이 무거운 건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니 그 무거움을 나쁘게만 보지 말라라고 말하는 듯하다.    
무거움은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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