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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9
피천득 지음 / 민음사 / 2025년 12월
평점 :
주로 해외 작가의 책을 읽어왔다. 세상은 넓고 여러 나라의 문학을 접하는 즐거움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번에는 피천득의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를 읽게 되었다.
출근 길에 읽는 첫 장에 쓰인 수필의 정의가 이렇게 새롭게 다가올 줄이야.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 중략 -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서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 중략 -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나는 수필의 정의를 이렇게 섬세하게 하는 글을 본 적이 없어 매우 신선했다.
나에게 수필은 매우 어려운 장르?의 글이었다.
피천득이란 작가의 힘이 첫 장부터 기대됐다.
책을 다 읽고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지 고민했는데 역시 춘원에 대해 쓴 글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춘원 이광수의 문학을 읽었고 감동한 적도 있었지만 친일파작가였다는 이력에 한 걸음 물러나 그의 작품을 대해왔다.
이 책에서는 이광수는 참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서술하는 이광수는 좋은 사람이었다.
이광수의 선택에 있어서 마음은 아프지만 말이다. 이 시간 이후로 춘원의 작품이 달리 읽힌다면 아마 피천득 작가 때문일지 모르겠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을 나도 한번 써 보고 싶을만큼 읽으면서 참 잔잔하고 소소한 작가의 행복이 느껴졌다.
나도 그런 소소한 행복과 사랑을 갖고 싶다.
올해 안에 꼭 그 주제로 글을 써보련다.
작가는 봄을 참 좋아하나보다. 나도 나이가 드는지 지금 작가가 그리는 봄의 아름다움이 내내 내 마음과 같다고 느끼고 있어 다른 책과 달리 속도를 내지 못하고 더디게 소중히 한 문장씩 읽어나가고 있다.
'봄이 오면 비둘기 목털에 윤이 나고'
봄이 오면 젊은이는 가난을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스물여섯 된 무급조교는 약혼을 한다.
종달새는 조금 먹고도 창공을 솟하오르리니,
모두들 햇빛 속에 고생을 잊어보자.
말아 두었던 화폭을 펴 나가듯이 하루하루가 봄을 전개시키려는 이때 - 24 -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 35 -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 훨씬 감정이 깊게 느껴진다. 그건 같은 문자를 쓰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만 공유되는 걸까?
"너의 슬픔 그 무엇이든지 잠 속에 스러질 거라." -207 -
그는 사랑이 가장 귀한 것이나,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지 아니합니다.
그는 마음의 허공을 그대로 둘지언정 아무것으로나 채우지는 아니합니다. - 210 -
비원을 가야겠다. 이미 몇차례를 가봤지만 내겐 그저 아름다운 연못이라는 기억이 전부인데 작가가 남긴 말을 보니 나도 꼭 비원에 가서 작가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나도 한번 느껴보련다.
나는 오월이면 꾀꼬리 소리를 들으러 비원에 가겠다 - 231 -
미는 그 진가를 감상하는 사람이 소유한다. - 231 -
이 책에서 딸 서영이에 대해서도 작가의 엄마에 대해서도 아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그의 수려하고 섬세한 글쓰기에 감탄하여 다른 내용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한 줄 한 줄 고운 글을 읽어내느라 감탄하고 감탄했다.
수필의 기본을 제대로 보여준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 시간 이후로 나도 수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게 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