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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예쁜 말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9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신께서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시작할 때 삶의 진실을 모르게 하신 것은 정말 옮은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젊은이들은 아예 인생을 시작할 엄두도 못 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411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어린 소년들이 강도높은 일들을 겪는 것이 마음이 불편해서 아름다운 문체를 음미하며 책을 읽지 못했다. 두번째 다시 읽어보니 멕시코의 자연 풍광이 눈에 그려졌다.
미국 텍사스 한 마을에서 16, 17살의 존 그래디와 롤린스가 멕시코로 가출 후 범죄에 휘말리는 등 다양한 에피소드와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으로 잔잔히 느껴지는 존 그래디는 참 좋은 사람이다. 어리지만 반듯하고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끈기도 있고 강인한 소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존 그래디와 롤린스의 우정도 부러웠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만한 친구가 있는가? 우리나라는 친구라는 존재를 너무 하찮게 생각하는 듯해서 아쉬웠는데... 이 둘의 우정은 책 한권 가득 담겼다.
롤린스와 존 그래디의 대화에서 데스페라도(desperado)라는 단어가 나온다. 서부시대 때 무법자. 악당이라는 뜻으로 쓰인 단어인데 멕시코인들이 이들을 데스페라도로 바라보고 있다.
이 둘을 따라다니는 어린 블레빈스라는 아이가 있다. 좋은 말을 가졌고 번개를 무서워하며 통제 불가능한 아이지만 섬세해보인다. 존 그래디가 블레벳(blibet)이라는 뜻이 2킬로그램짜리 주머니에 든 4킬로그램의 똥무더기라고 알려줄 때 블레빈스가 먹던 것을 멈추는 부분이 마음이 아팠다. 본인이 그런 존재로 불렸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리라. 작가는 블레벳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육군에서 사용한 은어로, 황당하거나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나 인물 들을 뜻한다고 각주를 달았다. 블레빈스가 이 책에서 그런 인물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리는 것 같았다.
형들이 좋아하지 않아도 자꾸 따라다니는 블레빈스가 안타까우면서 아직 어린 아이가 총살로 생을 마감하는 부분도 너무 마음이 아팠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겪는 아픔과는 다른 종류다. 이 지구가 이렇게나 크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책의 뒷면 추천서에 "카우보이 소년의 피비린내 나는 모험과 생존 게임"이라는 표현이 딱 적절했다.
미국인인 존 그래디는 모국어 영어와 더불어 스페인어 구사한다. 멕시코로 넘어가면서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부분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스페인어 발음을 조용히 따라해보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한다는 건 참 매력있다. 내가 암기하고 싶은 스페인어 문장을 아래의 문장으로 뽑았다.
우나 야베 데 오로 아브레 쿠알키에르 푸에르타.(좋은 열쇠는 어느 문이든 여는 법이지.)
말을 좋아하는 존 그래디는 1000마리의 소를 기르는 목장에 도착한다. 그에게는 이 곳이 천국이었을 거다. 말 조련사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며 목장주의 신임을 받기 시작하는데 목장주의 딸 알레한드라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대로 멈춰버렸으면 좋으련만... 함께 말을 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녀는 그를 너무나도 드물고 소장한 존재인 "모하도 레베르소(방항아)"라고 불렀다.
존 그래디는 연극을 하는 엄마를 떠나서 텍사스로 왔는데 이 때 만난 여자친구가 대도시에서 교육 받았다. 그녀의 엄마는 도시에서 연극을 보면서 함께 지내기를 원하지만 그녀는 아빠가 있는 목장에서 말을 타는 걸 더 좋아한다. 존 그래디처럼... 연극이 이 책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걸까?
연극을 통해 현재 세상이나 앞으로의 세상에 대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헛된 기대였다. 얻은 것은 전혀 없었다. 35
4부로 이뤄진 이 책에서 가장 힘들게 읽은 건 바로 3부였다. 존 그래디와 롤린스가 멕시코 감옥에서 겪는 일들이 너무나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렸기 때문에 상상이 너무 잘되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 <모두 다 예쁜 말들>인 이유를 한참 생각했다. 예쁜 말은 블레빈스의 말 밖에 없었는데... 롤린스의 말에 의하면 예쁜 말은 예쁜 여자와 같아서 골치아픈 일들을 동반한다고 했다. 그럼 왜 이 책 제목은 모두 다 예쁜 말들일까? 아직 더 고민해봐야겠다.
오랜만에 읽은 긴 책이었는데 지루하지 않고 잘 읽었다. 작가인 코맥 매카시가 궁금해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또,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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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부분
흉터에는 신기한 힘이 있지. 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거든. 흉터를 얻게된 사연은 결코 잊을 수 없지. 안 그런가? 199
그들은 프랑스에서 공부했지. 프란시스코나 구스타보 같은 당시 젊은 세대들 말일세. 그들은 모두 민주주의 사상을 머리에 가득 넣어 왔지. 어찌나 사상으로 가득 찼는지 서로 동의하는 법이 없었어. 그들은 유럽에서 민주주의 사상을 받아들였지. 그리고 돌아와서 여행 가방을 풀어 헤쳤지만 그 내용물은 저마다 제각각이었어. 214
우리들은 사람이 이성만으로 품성을 개선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아. 그건 아주 프랑스적이 생각이지. 214
온화한 기사를 조심하게. 이성보다 더한 괴물은 없거든. 214
어차피 그 애는 알아서 갈 걸세. 내가 누군가? 난 그냥 아버지야. 아버지는 아무것도 아니지. 215
사람이 다른 나라가 아닌 그 나라에 태어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날씨와 계절이 땅을 형성하는 만큼이나 사람의 내적인 운명 역시도 형성하여 대를 이어 자식들에게 물려주게 하기 때문에 그 운명을 쉽게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