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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날아가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6
랠프 엘리슨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24년 10월
평점 :
"그들이 우리를 날지 못하게 하는데 내가 어쩔 수 있습니까? 우리는 죽은 말 고기를 먹는 대머리수리들인지 모르지만, 독수리가 되는 희망을 가질 수는 있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250쪽
요즘 "집"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린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우리 집이 따뜻하고 휴식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윤아의 "Going Home"을 좋아하는 이유도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이 책은 제목이 <<집으로 날아가다>>였기 때문이다.
나름 "집"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것이다.
흑인이자 미국인인 작가, 랠프 엘리슨의 단편집이다.
첫 단편부터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백인 어린아이 눈으로 백인들이 흑인을 묶어 불태우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책을 잘못 골랐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 편부터는 다른 성격의 글들이었다.
단편들마다 흑인소년들이 등장한다.
아버지를 잃어 엄마와 남부에서 북부 도시로 이동하는 과정에 엄마의 결의를 다지는 기도에 눈물이 났다.
주여, 이 낯선 도시에서 우리 세 사람이 같이 있게 해 주소서. 길은 어둡고 길며, 제 슬픔은 무겁습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의 뜻이라면 제가 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해 주소서. 제가 이 아이들을 키워 그들이 이 삶을 더 잘 살 수 있게 해주소서. 저는 제가 아니라 이 아이들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주님, 그들이 강하고 바른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설. 그들이 투사가 되게 해 주소서. 주님, 지상에서 제가 할 일이 끝나면 저를 당신의 왕국에 데려가서 예수님의 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하소서. 66쪽
'내 자식을 노예처럼 취급하지 말아요. 당신 어머니는 당신을 노예처럼 키웠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 아이를 그렇게 키우지 않을 거예요. 이 아이의 머리칼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하는 게 좋을 거예요!' 94쪽
이런 엄마를 만난 소년은 참 좋았겠다는 생각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이를 보호하고 기도하는 엄마들이 있어 저 소년은 잘 자랐을 거다. 내가 엄마여서 그런지 그런 대사나 기도가 참 좋았다.
라일리와 버스터라는 흑인 소년들이 "날개가 있다면~"이라는 상상을 하며 주고 받는 대화가 정겨우면서 마음이 아렸다. 아프리카 흑인들은 너무 게으른 사람이라고 지리책에 쓰여있다는 대화 속에서 백인들 입장에서 작성된 지리책이 이들에게 상처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년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이자 뿌리라고 생각한 듯하다.
흑인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은 누구인가를 고민하는 책이라고 느꼈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서 노예로 팔려왔고 결국 노예해방이 되었지만 미국이라는 땅에서 아직까지도 차별받고 살아가는 그들의 고뇌가 담담하게 과격하지 않게(첫 단편을 제외) 조용히 그려낸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에는 악기, 연주곡, 노래, 등 음악에 대한 언급이 많다.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연습하는 피아노 소리도 들리고, 소년들이 부르는 노래, 교회에서 성가대를 하시는 엄마, 꼰대인 아빠가 흥얼거리는 노래, "비둘기의 날개가 있다면...."하는 옛날 노래, 트럼펫 소리, 어메이징 그레이스, 튜바, 클라리넷, 음악가 롤런드 헤이스, 굿 나이트 레이디스, 영가, 차가운 마조히즘 속의 마사, 국왕 폐하를 도우소서, "루이 암스트롱의 "Hold That Tiger", 동요까지... 그래서 흑인들의 슬픔이 예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차별의 고발성 같은 작품이 아니라 슬픔을 음악으로 표현해 낸 예술작품 같은 이상한 책이다.
작가가 음악을 하다가 소설가로 전향해서 음악에 대한 이해가 풍부해서 이런 책으로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는 책읽는 흑인 엄마나 아빠가 등장한다. 흑인은 늘 마약과 문제를 일으키고 교육을 받지도 않는다는 편견이 있던 내게 이 책은 그런 의미로 한방을 먹였다.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책을 읽는 흑인을 고깝게 보는 백인의 시선도 느껴지지만 그런 차별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흑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나는 백인의 시선이 담긴 흑인을 많이 보았나보다. 이 책은 흑인의 다큐멘터리같기도 하다. 흑인이 주인공인...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은 지적인 흑인인 버락 오바마와 미셀 오바마의 출현에 깜짝 놀랐던 기억과 닮아있다. 나는 흑인을 아직 많이 모르는구나.
<검은 공> 단편에서의 아빠가 가장 인상 깊었다. 아들이 백인을 미워하면서 살지 않고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길 바라는 아빠의 지혜가 담겼다. 나는 나와 내 아이를 차별하는 사람들과 화합하라고 교육할 수 있을까? 저 아버지가 대단하다.
"아빠, 갈색이 흰색보다 훨씬 더 좋은 거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그러나 미국인이라는 것이 둘보다 더 좋은 거란다, 아들아" 177쪽
<집으로 날아가다>편은 흑인 파일럿이 비행하다가 추락해서 흑인 노인을 만났고 그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 본인의 정체성을 깨닭는다는 이야기다. 집은 모든 이들에게 뿌리 같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