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그리는 무늬 - 욕망하는 인문적 통찰의 힘
최진석 지음 / 소나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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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도서관에서 마포 '한 도서관 한 책읽기'로 접하게 되었다.
평소 문학고전과 역사책을 즐겨본다.  원래 그런 것은 아니고 아이를 낳고 특히 그런 것 같다.
내가 왜 인문학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어서 기뻤다. 
뭔지 모르지만 끌리는 그 기분을 이론적으로 잘 설명해 준 느낌이라고 할까?
 
서강대 철학과 최전석 교수가 쓴 이 책은 논리적이며 매끄럽고 여러번 읽어도 건질 것이 많은 책이다.
어렵지도 않고 쉽게 쓰여있어서 공감하기도 쉬웠다.
 
우리나라에 인문학 열풍이 부는 이유가 주체적이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이나 미국에 의존해왔고 사상과 철학까지도 수입해다 쓰던 우리가 우리자신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겨서라고 설명하는데 일리가 있었다. 
내가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 '나'를 가두고 있다고, 이념과 개념을 넘어서
나의 욕망을 찾아서 살라고 조언한다. 
이런 일들이 바로 인문학책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인문학은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즐기는 여유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더듬이(통찰력)이라고 한다. 
상인들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나가야하고 더듬이가 발달해야하기에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예전에 자기개발서에서 CEO들이 논어 스터디를 한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이유가 친목도모나 취미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상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나는 왜 인문학을 공부하고 인문학 책을 읽는가?
시대를 읽고 싶어서다.  내가 보는 이 세계를 바로 보고 싶어서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나여서 다른 곳을 돌아볼 시간이 없지만
인문학책을 통해서 통찰하고 싶어서다.
 
근대는 '이성'에 촛점을 두었다면 현대는 '동물'에 촛점을 둔다고 한다.
인간이 이성적이라고 믿었지만 세계1,2차대전으로 인해서 인간의 이성에 의문을 품고 회의를 느꼈기에
패러다임이 바뀐게 아닐까?  나도 동물의 감각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이었다.
인간도 동물이고 결국 인간은 '세련된' 동물에 지나지 않을까?
인간이 욕망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나는 인간안에 내재하는 '동물'을 인정하고 동물적 감각을 키워야한다고 생각한다.
욕망은 부정적 단어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긍적적인 단어인 욕망을 만났다.
 
내 안에 욕망을 들여다보고 진정한 나를 만나고 싶다.
'바람직함'을 벗어던지고 오롯한 나를 만나고 싶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칭찬받기를 원하는 과거의 내게 작별을 고하고 싶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고관념적 사회에서 가능할까?
그래서 인문학 열풍이 부는 걸 보면 사회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 예상된다.
나도 나답게 살고 싶다.
 
자기가 자기 존엄성을 갖지 못하고, 자기가 자기를 믿지 못하고,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게 되어 버리죠. 
이건 불행입니다.  인격적 왜곡을 피할 수 없습니다.  폭력은 여기에서 나옵니다.  111쪽
 
예술은 명사적으로 굳어진 나를 동사화하도록 자극시켜 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121쪽
 
조선은 다른 토양에서 만들어진 수입품으로서의 이념을 끝까지 고수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서 우리가 변화시킬 능력이 없는 겁니다.  128쪽
 
우리 스스로의 메시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론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에서 이론을 생산하는 주도적 힘을 가져야 합니다. 130쪽
 
전문가들이 자기만의 경색된 이론 틀로 실천가와 행동가들의 발목을 잡으면 안 됩니다. 
지식으로 무장한 이론가들이 쉽게 지위가 높아져서도 안 됩니다. 
전문가들은 행동가와 실천가들에게 사용되고 이용되어야 합니다. 146쪽
 
지식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모르는 곳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까지여야 합니다.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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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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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여름 밤의 꿈>이란 제목을 많이 볼 수 있다. 

정작 셰익스피어와는 관련없는 것에도 많이 사용되는 걸 목격한다.  

셰익스피어가 책제목을 참 멋지게 지은 것 같다.

사계절과 인생을 비교했을 때 여름은 젊은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여름 밤의 꿈>은 변덕스럽고 설명하기 어려운 젊은이들의 꿈같은 사랑이라고 풀이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지만 직접 느끼고 경험하고 아파본 것은 20대였다.

나의 진심과 달리 이성대로 행동할 수 없고 어떤 마법에 걸린 것처럼 내가 내가 아닌 일들을 경험했다.

걸어다니면서 울기도했고 밤새 울어서 눈이 퉁퉁 붓기도 했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본 적도 있다.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 못한 적도 있고 자존심도 없이 매달려본 적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몰차게 헤어지자고 선포한 적도 있다.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해서 지금 잘 살고 있지만

 

내게 20대가 다시 주어진다고해도 그런 사랑을 다시할 자신이 없다고 고백한다.

그런 사랑은 에너지가 있어야가능해보인다.^^

 

그런 열정적인 사랑으로 20대를 보내고 30대후반으로 넘어가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추억을 상기하게도 한다.

 

이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책은 번역에 어색한 부분들이 많았다. 

무슨말인지 잘 모르겠는 부분도 눈에 띄었다.

 

허미아: 오, 훼방이다! 낮은 남자 노예 되긴 너무 높아. <본문 17쪽>

 

아테네가 배경이고 극중극 형태를 띄고 있다.

요정들의 세계, 연극을 준비하는 장인들, 사각관계의 연인들로 구성되어있어서

처음 읽으면 복잡해보일 수 있을 것 같다.

 

희곡의 매력은 공연을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희곡을 처음 접했을 때 읽기 불편했는데 낭독을 해보니 정말 재미있었다.

이 책도 아이들과 낭독을 하며 읽었는데 개구장이 퍽이 나오는 부분들이 아이들은 재미있나보다.

시적 표현 때문에 매끄럽지않게 읽히기는 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낭독했을 때처럼 몰입이 잘 되지는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초기작품으로 그리스 로마신화를 잘 모르면 읽다가 신화를 찾아야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테세우스와 히폴리타조차도 여기서는 아테네의 공작부부로 나온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인이면서 자국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않고

이탈리아의 아테네를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주인공도 많이 언급된 걸보면 아테네에 대한 동경이 있었나 생각해본다. 

 

헬레나의 대사가 마음을 아프게했다.  자기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비하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헬레나의 대사중 명대사가 있는 것은 사랑의 아픔을 느끼는 주인공이라서 그럴까?

 

헬레나: 사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거야.

           그래서 날개 달린 큐핏을 장님으로 그려 놨지. 

 

헬레나: 내 보기엔 당신이 온 세상이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나 혼자라 할 수 있죠,

           온 세상이 여기서 나를 보고 있는데?   <본문 37쪽>

 

젊은 시절의 열정적이고 폭풍같은 사랑을 뭐라고 정의해야할까?

운명의 장난??? 과 같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신의 영역이 있다고 가정해야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인간의 이성과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것.

그것이 젊은이들의 사랑이라고 셰익스피어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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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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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본문 17 페이지>
 
이 문장은 내게 아빠의 사고를 떠올리게 했다. 
진짜 윗 문장처럼 준비도 없이 일순간 내게 닥쳐서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 내게도 있었다. 
이 책은 니체의 영원회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연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아빠의 사고를 다시 겪어야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겨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밀란 쿤데라가 가벼움과 무거움이란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논한 책이란 걸 알았다.
 
파르메니데스는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은 부정적이라고 했다. <본문 13 페이지>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움 짐이라고 말했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본문 12-13 페이지>
 
베토벤은 무거움은 뭔가 긍정적인 것이라고 간주했던 것 같다. <본문 60 페이지>
 
체코의 프라하가 장소적 배경이며 이 곳에서 <프라하의 봄>이라는 민주자유화 운동이 벌어지고
이를 제지하는 소련의 무력공습이 시대적 배경이다.   
 
프라하의 젊은 의사 토마시는 상류층의 사람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가졌다.  
그의 애인인 화가인 사비나역시 상류층 사람으로 분류가 된다. 
술집 웨이트리스였던 테레자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책을 들고 토마스가 속한 상류층으로 들어온다. 
 
연애시기는 사비나 캐릭터와 비슷한 것 같은데 결혼초기는 테레자 캐릭터와 비슷한 것 같다.  
의지하고 집착하는 모습이 꼭 테레자를 닮은 것 같았다.  토마스와 테레자 그리고 사비나라는 캐릭터 중심으로
 책을 읽어나갔을 때는 이 책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느꼈다.  그런데 뭔가 후련하지 않아
다시 읽어보니 참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체코의 아픈 역사, 둡체크, 브레즈네프, 파르메니데스, 키치까지....
 
하나하나 공부해가며 읽은 문학책은 드물었다.  내게...
이 책은 나를 공부하게 만든다. 
철학책을 들추게 하고 <프라하의 봄>영화를 보게하고, 체코의 역사를 뒤적이게 한다.
 
지금까지 나열한 것들만 본다면 이 책은 무거움에 가깝다고 해야할 것이지만 내가 처음 읽고 난 느낌은 가볍다였다. 
참 신기하다.  밀란 쿤데라는 무거운 체코의 역사를 가볍게 조명하려했던 것 같다. 
무거운 주제를 무겁게 다뤘다면 사람들은 이 책을 다시는 읽지 않으려하지 않았을까? 
무거움을 가볍게 조명했기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제목을 붙였나? 
확실하지 않지만 나는 그리 본다.
 
인간에게 아니 체코인에게 그런 아픔이 없었더라면, 세상의 짐이 무겁지 않았더라면
날아가버리지 않았을까?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지...
 
독자들에게 세상의 짐이 무거운 건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니 그 무거움을 나쁘게만 보지 말라라고 말하는 듯하다.    
무거움은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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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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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입김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멀리 있어야한다.  <본문에서>

 

이 책은 요리와 티타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내 마음에 닿는 메세지는

바로 저 글귀였다.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하고 성냥불을 일으켜 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중략>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본문 124~125>

 

 

 

책표지는 폴 고갱이 그린 타히티 여인들과 닮아있다.

원시적, 원초적 느낌이 물씬 나는...

 

전체적으로 환타지나 만화같다.  쉽게 사람이 죽는다.  그런 죽음에 세밀한 심리묘사는 없다.

그저 스토리가 전개된다.  슬픔도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티타가 만들어 준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슬픔을 느끼다가 토하기도 하고

갑자기 사랑을 느껴 최음제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고

 

음식을 먹고 사람들이 만들에 내는 리액션이

일본만화에서 보는 리액션과 닮아있다.

최근 심각한 책들만 읽다가 이 책을 읽으니 웃음이 막 터져나온다.

가볍다라고 느낄 수 있으나 이런 책 또한 필요한 것 같다.

 

먹는것과 사랑에 대해서 쓴 글이어서 그럴까? 

표지에서 느꼈던 것처럼 원초적인 느낌이 들었다.

사랑도 이성적인 현대적인 사랑이 아니라 육감적이고 충동적인 것 같다.

티타가 페드로를 사랑하게 된 것도 좀 충동적이지 않은가?

뭐 하나하나 따지고 들자면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이 책은 그런 점이 장점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티타가 존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지 못한게 아쉬웠다.

부드러운 햇살같은 존의 사랑을 티타가 받아들였다면 이 책이 싱겁게 끝났을까?

아 페드로는 티타를 사랑하기는 한걸까?

티타를 사랑했다면 티타가 존과 결혼할 수 있도록 허락해줬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티타를 사랑한다고 그녀를 독점할 권리가 그에게 없고

그녀를 사랑하는 댓가를 그가 아닌 그녀가 치르지 않았는가?

책의 마지막부분을 읽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되돌아가서 읽기를 반복한 끝에

결말이 이해가 되었다.

 

티타는 전통을 부정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날 수 있는 강인한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페드로와의 사랑을 선택함으로 떳떳하지 않고 비밀스러운 사랑으로 평생 지속한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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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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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소설이다. 

그래서 연애소설만큼 재미있지 않다.

하지만 책속 주인공들의 고통이 단지 그들만의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인 것 같아서 두려웠다.

 

소설은 미국의 대공항 시기의 농민들이 겪은 배고픔, 절망, 분노, 슬픔을 담고 있다.

두꺼운 책으로 두권이나 되는 분량으로 그들의 힘겨움을 아주 세세히 담고 있었다.

작가가 이렇게까지 세세히 잘 알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서민의 배고픔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농민들이 은행에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 농사를 지었는데 그마져도 모래바람으로 날아가버린다.  저당잡혔던 땅이 모두 은행으로 넘어가게 되자 오갈데 없어진 농민들이 대거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한다.  희망을 안고서 고장난 차를 고쳐가면서 캘리포니아주로 가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농장주들은 일당을 점점 낮춰간다.  평범하게 성실하게 살아온 농민들이 하루아침에 거지처럼 이주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도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 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 나는 느낀다.

대기업에서 마트와 빵집까지 점령하고 있는 것이 단지 그 사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가능한 서민이 운영하는 상점을 이용한다.

서민들이 협동해서 만드는 공동체가 해답인것 같다.

요즘 협동조합, 생협이 많아지고 있다.

작은 힘을 모아 우리것을 지키면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하나 고용자인 신분에서 벗어나 내 창작물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기계부품이 아닌 나만의 색깔을 가진 일을 하고 싶다.

 

이 책에서 어머니의 위대함을 보았다. 

미국의 어머니인데도 책을 읽는 내내 한국의 어머니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남자들보다 더 의연하게 가족을 지키려 온 힘을 다해 노력하는 굳센 어머니상.

어머니는 그래야만 하는 가보다.

 

여자들은 몰래 남자들의 얼굴을 살폈다. <중략>남자들의 얼굴에서 망연한 표정이 사라지고 강인함과 분노와 저항이 나타났다.  여자들은 이제 남자들이 주저앉지 않으리라는 것, 위험이 지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략> 남자들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그 어떤 불행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다. <본문 13~14페이지>

 

어머니가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아야만 가족들이 어머니에게 의지할 수 있으니까.  위대하면서도 하찮아 보이는 가족 내의 그 위치에서 어머니는 깨끗하고 차분한 아름다움과 위엄을 얻었다.  <중략> 어머니는 자신이 흔들리면 가족도 흔들리고, 자신이 심하게 동요하거나 절망에 빠지면 가족도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본문 153~154 페이지>

 

 

여자들은 남자들을 지켜보았다.  결국 파국이 왔는지 보려고, 여자들은 말없이 서서 지켜보았다.  모여 있는 남자들의 얼굴에서 공포가 사라지고 대신 분노가 나타났다.  여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아직 파국은 오지 않았다.  두려움이 분노로 변할 수 있는 한, 파국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2권 본문 432 페이지>

 

분노의 포도라는 제목은 절망적인 메세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책을 다 읽고나니 희망의 메세지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화내고 분노하는 건 아직은 완전히 끝난게 아니라 일말의 희망도 있다는 뜻이 아닐까? 

 

"믿음을 새처럼 높이 끌어올리지 말라.  그러면 벌레들과 함께 땅을 기는 일도 없으리라."

<본문 18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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