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사회 - 현대사회의 감정에 관한 철학에세이
정지우 지음 / 이경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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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생각과 경험, 환경이 다 다르다.

이것은 또다시 생각과 경험과 환경을 또 다르게 변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현상에 대해서 똑같은 생각을 가질수도 없고

그렇기에 관용은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전제하고 서평을 써보려 한다.

 

우리사회의 화두는 언젠가부터 '분노'가 되었다.

화병이라는것을 넘어 제목대로 분노사회가 된것이다.

  

저자는 분노에 대해 이렇게 분석한다.

p.13 사회적 믿음을 기반으로 한 자기정체성이 흔들릴때 사람들은 분노를 내보인다.

 

-> 사람들은 교육받으면서 경험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면서 자신이 

사회적믿음을 형성하게 된다. 그것이 흔들릴때 분노한다는 얘기다.

 

p.21 어느시대에 태어난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사람은 자신이 속한 세계와 자기 자신의 관계가 자기 자신의 관계가 조화로운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옛날에 세계란 주로 자연이었고 현대에서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영역 등이 복합된 사회가 되었다.

 

-> 정확한 지적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조화롭게 사는것을 추구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뒤에 나온다,

 

p.22 인간은 세계에 자기 자신을 맞추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세계를 맞추려고 하며 그것이 달성되지 않을때 분노하거나 종교에 빠진다.

 

-> 이것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세계사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개척해왔다.

그것이 석기에서 청동기 철기로 발전하는 원동력이었고,

저자 말대로 자기자신에게 맞추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개개인들도 세계를 자기자신에게 맞추기 위하여 노력해왔다. 예를들어 미국 흑인같은 경우 차별을 받다가, 그런 세계를

자기자신에게 맞추려고 하였다. 차별없는 세계를 꿈꾸며 말이다.

그것이 달성되지 않을때 사람들은 분노하거나,

그걸 회피하기 위해 종교에 빠진다는 논리다.

 

p.27 고유한 개인이 된 현대인에게 '나'란 모호하면서도 특별하고 잘 잡히지 않는 어떤 것이다. 그런 현대인에게 이 세계, 이 사회란 조화롭게 지향되어야 할 대상이면서도, 나의 고유함을 위해 어느정도는 부정되어야 하는 역설적인 것이다.

 

-> 위에 예로든 미국흑인은 미국사회를 붕괴시키려한게 아니다.

위에 적힌 말 그대로 조화롭게 되야 하면서도, 자신의 고유함을 위해 부정되어야 했던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자유를 꿈꾸면서도 세상에 속해있어야 하는

긴장관계에 있다. 우리가 삶에 있는 이상 그 긴장에서 벗어날순 없다.

 

p.29 모든 시대의 모든 인간은 그 나름대로 세계와 자신의 조화를 찾는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 여담이지만,

저자는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문구를 많이 쓰는듯 보인다.

각설하고, 그렇다 이 긴장관계를 배워야한다.

삶을 배운다는건 이 긴장관계를 배운다는 것이다.

 

p.34 우리의 분노가 대체로 타인과의 비교, 그로인한 열등의식이나 피해의식 나아가 자기이익에 대한 집착에서 근원한다면, 그 분노가 귀결하는 지점 또한 같다. 이기심으로 생겨난 분노는 사회적 저항이라는 정당한 분노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 동일해 보이는 감정 사이에는 건널수 없는 간극이 있다. 사회에 대한 정당한 관념을 요구하는 분노가 합리적인 저항으로 이어지는 반면, 삶의 실패나 열등감에서 생겨난 분노는 무차별적 대상을 향한 증오로 이어진다.

 

->이 문장 자체는 옳다고 생각한다.

이기심 보다는 탐욕이라고 하는게 좋을듯 하다. 바꿔서 얘기해보면

탐욕에 의한 분노는 정당하지 않기때문에 제대로 된 분노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저자는 '지금' 왜 '분노사회'인지

사람들의 마음에 벗어나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조금 더 저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p.42 결국 분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자기 삶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p.44 우리 사회의 분노는 그 뿌리로 보든 발전 양태로 보든 대체로 정당한 관념보다는 부당한 관념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분노는 거의 반드시 증오로 발전하며 맹목적 집단주의나 집단 이기주의를 조장하게 된다.

 

지금 사람들은 예전처럼 진보-보수, 영남-호남 등을 가지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그런것이 없어지지 않고 주요한 갈등으로 남아있다. )

 

세월호, 땅콩회항, 세 모녀사건, 청년 실업률 증가, 백화점 모녀 등

이런 삶에 밀착된 것들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다.

 

결국 이 지점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떨어진 저자의 문제의식은

해결책 또한 저멀리 떨어지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집단 이기주의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진보 보수갈등이나 영호남 갈등 등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왜 사람들이 분노하는 사회가 되었는지에 대한

본질이 아니라는것이다)

 

p.46 우리 시대를 장악하고 있는 이기주의는 결코 혼자만의 이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타자가 개입하여 면죄부의 형태를 띄는 집단적 관념에 기초하고 있다.

 

-> 이 앞부분에 저자는 고소득자의 탈루를 예로 들면서 스스로 '시민의식'을 되찾아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고 의식을 바꿔서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당위적으로 옳은 주장이다. 우리 모두는 시민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그렇지만, 왜 법이 존재하고 강제력이 있는가? 라는 질문앞에 이러한 생각은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된다.

 

p.47 한국의 왜곡된 평등주의는 나의 위치를 끌어올리고,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의 위치를 끌어내리는 것을 원하는 욕망으로 존재한다.

 

-> 처음엔 의아해하다가도 뒤의 예를 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말이다. 다같이 평등이 아닌 나만의 평등을 비판하고자 하는 말인데,

여기서도 의식의 개선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사실 이 책 전체의 주제다)

나는 이것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 앞의 해결책과 똑같은 해결책인데 그러냐고 묻는다면,

정신과 물질의 차이라고 대답할수밖에 없을것이다.

 

관념마저 강제력으로 바꿀수는 없다.

"당신은 '왜곡된 평등주의'를 가지고 있으니 '제대로 된'평등주의를 가지시오!"라고 강제하는건 폭력이고 전체주의 국가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고소득 탈루는 다르지 않나. 일반 시민들이 탈세하거나 불법적일 일을 저지르면 엄청난 곤혹을 당하는 것에 비해 그들은 덜 당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것은 '법'이라는 사회적약속에 기반한 강제력을 동원할수 있는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평등'이든 '공평'이든 '합법'이든 어떤 덕목을 들이밀어도

그들에겐 그렇게 할 수 있는것이 아닌가.

 

p.60 한 시대 한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관념은 그곳만의 고유한 문화적 의식적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만 비교적 정확하게 이유를 찾을수 있다. 단순히 경제 체제의 문제나 심리학적 일반론으로 한 사회의 관념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 인문학 열풍이 부는데 인문학을 왜 배우는가? 간단히 생각하면

자기 자신과 사회를 더 깊이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저자 말대로 그저 인간을 경제나 심리만을 통해 보려는 것은

어느정도는 가능하나, 인문적인것도 필요하다.

 

p.81 집단의 문제는 언제나 개인을 통해 실현된다. 우리가 이 사회의 문제에 공감한다면 다름아닌 이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 자신에게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한다.

-> 2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의 전반적인 주제는

개인의 회복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다.

 

그렇다. 저자 말대로 올바른 '개인'이 많이 나와서 거대한 흐름을

바꿔야 하는것은 옳다.

그렇지만, '지금' 왜 분노 하는가. 에 대한 생각을 해봐야 한다.

'개인'을 압살할수 있는 어떤것 때문이지 않은가?

나는 그렇기 때문에 저자와 문제의식이 다르고,

이 책의 해결책에 대해 생각이 같진 않다.

 

하지만, 나는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할수는 있다.

저자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는 건강한'개인'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 점엔 공감한다.

그렇지만, '현재'라는 시점에 대해선 아쉬울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142쪽을 인용하고 마치려 한다.

p.142 과거에서부터 이미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살아온 이들은 애써 과거로 돌아가볼 필요가 없다. 늘 과거와 내면의 '순수한' 자기를 요청하는 이들은 한번도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는 현재까지도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는 이들 뿐이다. 과거와 내면의 중요성은 자기가 만들어진 존재, 수많은 영향과 관계속에서 구성되어 온 존재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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