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케인스 - 다음 세대가 누릴 경제적 가능성
존 메이너드 케인스 외 지음, 김성아 옮김, 이강국 감수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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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대중서를 쓰지 않은 경제학자분들이 다수 참여한 책이라 그런지 책이 어렵다.

아니면 원래 이 책의 타깃 독자가 일반 대중이 아닌 경제학을 전공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케인스의 에세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경제학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책인만큼 같은 글을 보고서도 이렇게 다양한 관점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로버트 솔로 교수님 같은 경우 자본을 민주화해야한다는 매우 급진적인 주장을 펼치시고, 또 한편에서는 에드먼트 펠프스 교수님이 케인스가 협동조합주의자였다며 협동조합주의는 실패한 방식이라는게 입증됐다고 하신다. 또 게리 베커 교수님은 케인스가 경제학을 너무 협소하게 봤다고 하시면서 다른 주장을 펼치신다.

이렇듯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이 책에 기고한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학파에 관계없이 케인스를 존경한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케인스는 학파를 뛰어넘어 존경받을만큼 경제학의 거대한 기초를 세웠고 뛰어난 경제학자였기 때문이다.

만약 케인스가 지금 다시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을 쓴다면 어떻게 쓸지 궁금하다.

밑줄긋기

p.21~22

많은 선진국에서 자본가와 인적 자본을 가진 숙련 노동자의 소득 비중이 커지면서 이들의 생활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하지만 그에 반해 비숙련 노동자의 생활 수준은 정체되거나 아주 천천히 개선되었다. 그 결과, 임금과 경제 성장의 관계에 흥미로운 문제가 생겼다. 케인스의 예측은 기술이 진보하고 자본-노동 비율이 상승하면 임금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하지만 그는 분배 문제와 그 결과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은 로버트 솔로에 의해 시험대에 오르는데, 그는 "케인스가 분배 문제에 전혀 주목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오류"라고 지적해왔으며, "소득 분배 및 임금과 수익의 산출 결과는 노동이 자본에 얼마나 쉽게 대체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자본으로 노동을 비교적 쉽게 대체할 수 있다면 임금 비용이 줄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의 총소득 중 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커질 것이다. 임금도 상승하겠지만 기업 이익의 상승만큼 충분히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극단적인 사례로 기계와 로봇이 생산 활동을 전담하는 사회를 들 수 있다. 이 경우에 임금이 전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0이 되므로 자본을 가진 노동자만 생존할 수 있다. 케인스는 이런 분배 시나리오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공상과학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이런 상황이 머지않아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추세는 이미 일부 데이터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는 몇 가지 복잡한 정치 이슈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불평등이 심화하면 순기능 사회에 필요한 사회적 협력이 약해질 수 있다. 이에 대한 한 가지 해법은 솔로 교수가 제안한 것처럼 민주적 자본 소유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p.37~38

마셜은 이렇게 주장했다. "화학자나 물리학자가 자신의 발명품으로 돈을 벌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돈이 그의 발명 활동의 주된 동기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기업인들의 성향도 과학자들과 상당히 비슷하다. 그들도 똑같이 탐구 본능을 갖고 있고, 그들 다수가 비열하거나 비천하지 않은 경쟁의식을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자극원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성향이 돈에 대한 욕망으로 혼란스러워지고 얼룩질 수 있다..... 그래서 최고의 경영자들은 모두 돈을 벌고자 하지만 그 중 다수는 돈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최고의 경영자들은 돈을 스스로에게, 또 남들에게 자신들이 성공했다는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로 삼으려 한다 Pigou, 1956, pp.281-282."

p.48-49

나는 근대가 16세기에 시작된 자본 축적과 함께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에 대해 서술하여 현재의 논의에 부담을 줄 생각은 없지만) 나는 이 자본 축적은 우선 스페인이 신세계로부터 구세계로 가져온 금은보화로 인한 물가 상승과 그로 인한 이윤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복리에 의해 점점 견고해진 축적의 힘은, 여러 세대 동안 휴지기를 겪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재개되고 갱신되었다. 그리고 지난 200년을 생각해보면 복리 성장에는 상상을 초월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산 하나로 이를 설명해보겠다. 현재 영국의 해외 투자 규모는 약 40억 파운드에 달한다. 이는 우리에게 약 6.5% 이율로 수익을 안겨준다. 영국은 이 중 절반을 국내로 가져와 여러 용도로 쓰고 나머지 절반인 3.25%의 수익을 복리로 해외에 축적해둔다. 이런 식의 투자가 약 250년 동안 계속돼왔다.

그것은 내가 영국의 해외 투자는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1580년에 스페인에서 보물을 훔쳤을 때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해 드레이크는 골든 하인드호에 막대한 전리품을 싣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의 탐험 비용을 대준 조합의 대주주였다. 그녀는 투자 수익금으로 영국의 해외 부채를 전부 갚았을 뿐만 아니라, 왕실 예산의 부족분을 채울 수 있었다. 그러고도 4만 파운드가 남았다. 여왕은 그 돈을 레반트 컴퍼니에 투자했고 이 회사 또한 번창했다. 그 회사에서 나온 수익으로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고, 이 거대한 사업체의 수익은 이후 영국이 추진한 해외 투자의 밑천이 되었다. 4만 파운드를 3.25% 복리로 저축하면 시기별 영국의 실제 해외 투자금과 비슷해지는데, 현재의 경우에는 앞서 말한 영국의 해외 투자 금액인 40억 파운드(약 6조 원)가 된다. 즉 드레이크가 1580년에 고국에 가져온 1파운드가 오늘날에는 10만 파운드가 됐다는 뜻이다. 이것이 복리의 힘이다!

p.54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가 창조된 이래로 처음으로 실질적이고 영구적인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나 얻은 자유를 어떻게 누릴 것이고, 과학과 복리가 안겨줄 여가를 어떻게 채울 것이며, 어떻게 하면 인생을 더 현명하고 알차게 잘 살 수 있을까? 지치지 않고 돈을 추구한 사람들 덕분에 모두가 경제적 풍족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도래했을 때 진짜 삶의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는 이들은 삶의 활력을 잘 느끼고, 삶 자체의 기예를 더 완벽하게 육성하고, 생계 수단을 위해 자신을 팔지 않는 사람들이다.

p.61

"변화에서 가장 힘든 것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가지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

p.72-73

인류는 평균적으로 봤을 때 20세기 후반 50년 동안 케인스의 낙관적인 기대보다 경제적으로 더 많이 발전했다. 하지만 경제 문제의 해결은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여전히 요원한 일로 보인다. 2000년에도 세계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비OECD국의 1인당 평균 GDP는 100년 전 미국의 1인당 GDP보다 더 작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비극은 6억 명 주민 대부분이 에이즈, 내전, 불안한 정국으로 고통받는 가운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보다 한층 더 불편한 발전이 존재한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 내 불평등 수준이 높아지면서 성장률이 낮은 지역에서 극빈층이 극적으로 증가했던 것이다.

왜 생활 수준의 편차가 아직도 이렇게 큰 걸까? 자본 축적도 그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 다수의 연구가 입증하듯이 더 큰 원인은 기술의 차이(또는 '총요소 생산성'의 차이)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기술들을 활용할 수 없거나 부유한 나라보다 훨씬 뒤늦게 채택한다. 아이디어의 확산이나 기술적 향상이 전 세계 수준에서 왜 아직 이렇게 느린지는 오랜 논쟁거리이다. 기술 채택에 장벽이 되는 제도적, 정치적 문제들은 분명 중요한 요인이다.

대런 아제모글루와 질리보티가 2001년에 발표한 글을 보면, 그런 장벽이 없다고 해도 신기술과 인간의 능력은 상호 보완 관계에 있다. 때문에 산업화 국가에는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할지라도 개발도상국에는 '적절하지 않은' 기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선진국에서 이뤄지는 혁신은 숙련 노동자가 필요한 신기술을 진화시키는 경향이 있다(1990년대 IT 혁명을 생각해보라). 고학력 노동자가 부족한 가난한 나라들은 이런 기술적 혜택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으므로 선진국에서 개발된 기술을 채택하는 데 제동이 걸린다. 결국 성장을 촉진하는 기관들과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야말로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성공의 핵심이 될 수 있다.

p.76-77

인간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삶을 즐기는 데 소비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면 인간이 활용 가능한 모든 시간에서 노동시간뿐 아니라 가사 활동에 쓰는 시간도 제외해야 한다.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집안일에 대한 장기 추세를 다룬 신뢰할 만한 통계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그린우드와 동료 학자들이 보고한 2005년 수치에 따르면 1930년에 미국에서는 가구당 주 평균 40시간을 집안일로 소비했다. 아헨과 스태퍼드는 2005년에 소득동학패널을 바탕으로 수행한 연구에서 2001년 기준 미국 기혼 부부가 집안일에 쓰는 시간이 주당 25시간 정도인 것으로 결론지었다. 두 데이터가 상응한다고 가정하면 모든 개인은 하루 1시간 이상 가사 활동의 속박에서 벗어난 셈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기본 인프라 및 가전 제품(수돗물, 냉장고, 세탁기, 진공청소기 등)에서 노동력을 아껴주는 기술 발전이 이뤄졌기에 가능했다. 그렇다고 이렇게해서 남은 시간 전체가 여가에 투입된 것은 아니었다. 그린우드의 2005년 연구는 19000년부터 1980년까지 80년간 여성 노동력이 약 28%p 증가한 것은 가정용 기술의 혁신 덕분이었다고 설명한다.

p.88~89

케인스 경제학은 그 자체로 거시경제 정책을 이행하는 방식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하지만 이런 발전적 변화는 경제 문제 '해결'과는 관련이 없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상품을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전달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근본적인 경제 '모델'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p.157

자본주의란 인간의 가장 악한 특성이 모두가 최대의 이익을 얻도록 하기 위해 가장 악한 일을 할 것이라는 놀라운 믿음이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

p.171-173

소득 분배와 임금, 이익의 조정은 자본이 노동을 얼마나 쉽게 대체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 대체 작업이 생산 중에 바로 일어나든, 아니면 소비가 노동 집약적인 상품에서 자본 집약적인 상품으로 옮겨가는 중에 일어나든 마찬가지다. 노동이 자본으로 비교적 쉽게 대체될 수 있으면 (전문 용어로 경제 전반의 대체 탄력성이 1보다 크면) 시간이 지날수록 총소득에서 이윤이 차지하는 몫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임금도 상승하겠지만 이윤이 증가하는 속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케인스가 상상했던 기술 진보와 자본 축적으로 '경제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던 세상에서 벌어질 그럴듯한 결과로 보인다. (이에 대한 극단적인 예로 로봇이 보편화되면서 인간의 노동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일반적인 두려움을 들 수 있다. 그런 세상이 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답은 꽤 명확해 보인다. 우리의 손자, 손녀, 혹은 그들의 손자 손녀들이 진정으로 생존 가능한 세상에서 살려면 자본의 소유가 민주화되어야 한다. 만약 자본이 주된 수입의 유일한 원천이 된다면 이들 모두가, 즉 모두가 자본 소득에 대한 적절한 청구권을 가져야 한다. 자본의 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많다. 그 장치가 강제적 저축이든, 보편적 배당이든, 연기금의 확대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독창성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별로 생각이 진전되지 않았다. 다행히 케인스와 반대로 우리에게는 아직 그런 제도를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윈체스터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에도 희망을 걸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세상이 돈을 긁어모으는 다른 백만장자보다 더 앞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백만장자들로 가득하다면, 케인스는 여전히 불행할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사회가 끔찍하기는 마찬가지다. 또 케인스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모두가 케임브리지 사도처럼 사는 세상도 달갑지 않다. 경제적으로 행복한 사회에서도 다양성은 삶에 흥취를 더하는 향신료와 같다. 나의 화두인 형평성 구현의 문제가 수정된 경제 체제의 첫 번째 목표가 되어야 하고, 이를 달성하려면 적어도 처음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분명 재분배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케인스의 화두인 삶을 어떤 내용물로 채우느냐의 문제가 여전히 남을 것이다. 긴급히 채울 욕구가 사라진다면, 새로운 의미의 '직업'교육을 통해 베블런의 장인 본능을 발화할 여지가 훨씬 커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혹은 레드삭스와 양키스 사이에 존재하는 그런 시샘을 느끼는 경쟁심과 더불어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살아야만 할지도 모른다.

이런 사회가 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기억하라. "경제적 축복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속도는 인구 통제 능력, 전쟁 및 시민 분쟁을 피하려는 결의, 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과학에 위임하려는 의지, 그리고 생산과 소비의 차이로 결정되는 축적 비율의 네 가지로 결정될 것이다." 다시 말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p.182

케인스의 미시경제학이 마셜의 미시경제학보다 신고전파 경제학에 더 가깝다고 여겼던 미국인들의 생각과 달리, 케인스는 효율적인 시장 형태로서 원자적 경쟁, 즉 완전 경쟁을 거부했다. 그는 카르텔, 지주회사, 무역협회, 공동출자같이 독점 권력의 지속적인 성장을 보조하는 정부 정책을 옹호했다. 그래야만 정부가 관련 산업을 규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임스 크로티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적어도 1920년대의 케인스는 국가가 거시경제뿐 아니라 미시경제를 위해서도 강력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당당한 협동조합주의자였다."

강력한 기업 통합과 노조 조직화의 물결이 1930년대에 영국 뿐 아니라 유럽 대륙과 미국에서 다양한 수준으로 발생했다. 미국의 경우 1920년대 초에는 자동차 회사가 수십 개나 됐지만 1930년대 말이 되자 거대 기업 세 곳만 남았다. 1938년에는 미국 산업의 대부분을 지배하던 과점 조직들이 제기한 기업규제 및 해산 문제를 자문하기 위해 의회가 임시국가경제위원회(TNEC)를 설립했다. TNEC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시절부터 리처드 닉슨 임기 때까지 미국을 지배했던 협동조합주의적 색채를 가진 조직으로서 닉슨 시기부터 반독점 해체와 규제 완화 정책, 글로벌 경쟁을 배경으로 조금씩 약화되었다가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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