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 - 좋은 카피를 쓰는 습관 좋은 습관 시리즈 5
이원흥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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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언제는 안그랬겠냐만 요새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이사와 그 뒷처리 일들, 그 가운데서도 해야 할 업무, 다른 활동들을 이리저리 우여곡적을 겪으며 완료를 시켜놓고 드디어 안정을 시키나 했는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수술, 그리고 더 예상하지 못한 수술 회복 기간. 그 가운데 꼬여버린 현금흐름과 일정과 신체리듬. 그리고 이런 것들을 복구시키기 위해 또 뭔가를 해야하는 상황들. 이런 불안정한 상황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그리 쉽게 나아지지 않을거란 걸 알고난 뒤의 탈진. 


살면서 누가 이런걸 겪지 않겠냐만 이런 게 쌓이니 부담스럽고 업무, 생활, 다른 활동들 모두 내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쌓여있는걸 처리하고 처리하다가 지쳐서 미루고 미루다보니 마음에 안들어 마음속에 쌓아놓고 부담스러워하는 그런 고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런 도중 우연히 이 영상을 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DcO6mi_xURM

잘 몰랐는데 17년에 클론은 everybody라는 앨범을 발매했고 방송활동도 했었다. 그 중 판타스틱듀오라는 프로그램에서의 장면을 편집한 유튜브영상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보다가 생각하지 못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강원래가 정말 열심히 노래하는 장면, 그리고 아이가 그런 아빠를 바라보는 장면, 강원래가 구준엽에게 파트를 넘기는 장면, '초련'에서 아이가 같이 춤추는 장면. 이 장면들을 보다보니 강원래는 아직 '가수'라는 업을 버리지 않았구나. 자기 자식에게 멋진 무대를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단순히 돈 벌이 이상으로, 몇 년뒤에 내 자식이 봤을 때에도 부끄럽지 않은 뭔가가 있어야 하는구나' 라는 걸 배웠다. 


그러면서 과연 내 업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태도로 임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직장인 말고, 데이터분석가 말고 직업으로서 분석가 라는 걸 어떻게 정의할까.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 것인가


근데 이게 혼자 고민한다고 나오는 답은 아니다. 산에서 도닦으면 내가 질문한 것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고 도인이 되는것처럼 말이다.


그 때 이 책을 읽었다.


김동조의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나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그 느낌을 이 책에서 받았다. 그냥 일반 서적 말고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지만 뭔가 압축되고 농축된 책. 강원래의 노래를 보며 느꼈던 희열감처럼 뭔가를 불러일으키는 책. 그런 책이었다. 느낌이 좋았다.


특히 광고주와의 회의에서 폭발해 회의를 엎어버린 후배가 잘못했다며 고개를 숙였을 때 "그래 틀렸어" 라며 저자가 위로 대신 해준 말은 깊이 와닿았다.


아마 너는 있는 힘을 다해 참고 있었겠지. 그렇게 묵묵히 듣다 듣다 어쩌면 앞의 얘기들에 비하면 별거 아닌 말에 폭발한 셈이겠지. 그건 진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그 말을 할 때 넌 틀림없이 광고주와 하는 논의라는 점을 고려해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말했을 거야.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느라고 말이야. 그렇지? 왜 네가 틀렸다고 하느냐면 말이야, 꼭 두 가지를 알려주고 싶어서 그래.

회의 내내 애써 참다가 마지막까지 참지 못한 게 잘못이라면, 난 그게 틀렸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했어야 했어. 최대한 앞부분에서부터 상황을 여우처럼 영리하게 통제했어야 한다는 거지. 받을 건 받아주고, 무시할 건 짐짓 지나치고 증폭시킬 만한 얘기는 좌중을 주목하게 해주고. 누가 키맨인지, 회의의 공기는 어떻게 시시각각 변해가는지, 빠르게 읽고 그에 맞는 구체적 대처를 해야 했어.

알아. 쉽지 않지. 어려운 일이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지. 사전에 만반의 준비도 필요하고 말이야. 그렇게 했어도, 물론 잘못될 수는 있지. 논리적으로 옳은 답변을 했는데 그게 오히려 회의 결과를 망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생기지. 드문 일도 아니야. 그래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야. 그게 중요해.

성경의 전도서 3장 알지? 천하만사 다 때가 있나니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거기 보면 이런 구절도 있지. 잠잠할 때가 있으며 말해야 할 때가 있다고. 회의는 카피라이터가 말해야 할 때야. 꼭 광고주와의 회의가 아니더라도 기획팀과의 회의건 제작 임원과의 리뷰건 마찬가지야.

회의실에서 카피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나면 여러 얘기들이 나오잖아. 너도 잘 알다시피 남이 써놓은 걸 보고서 하는 말들이 꼭 예리한 지적만 있는 건 아니지. 하나 마나한 소리, 원론적인 얘기, 얼토당토않은 제안, 첫 번째 제작 회의쯤에서 이미 검토가 끝난 초보 수준의 아이디어, 그런 것들이 쏟아지곤 하지 않니? 바로 그때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답변의 책임을 진 화자라고 생각해야 해. 설명하고 설득하고 감싸주고 네 열정과 확신과 태도에 흔쾌히 압도되도록 해야 된다고. 뭘 가지고? 네가 가진 지식과 언변과 센스와 표정과 성격과 몸짓, 이 프로젝트에 대한 준비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네가 배우고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서 말이야.

네가 연애를 하는데 이성에게 과묵한 스타일이라면 그건 너의 사생활이니까 우리가 같이 논의할 문제는 아니지. 그러나 카피라이터인 네가 애써서 훌륭한 카피들을 뽑아놓고는 회의실에서 '자, 봐봐, 알겠지?' 그게 끝이라면 곤란해. 기억하렴.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건 초코파이거나 어리광일 뿐이야.

회의실에서 과묵한 건 직무유기야. 도무지 쓸 데라고는 하나도 없는 얘기를 눈치도 없이 오래 늘어놓는 통에 회의 분위기까지 망쳐버리는 그런 수다쟁이가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말이야.

관망하는 프로는 없어. 흘러가는 논의를 구경만 한다는 건, 백마 탄 왕자가 홀연히 나타나 네 카피를 구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아. 재투성이가 되어버린 네 카피를 구원할 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니? 훌륭한 카피를 쓴 사람, 바로 너! 오직 너뿐임을 부디 잊지 말아 주면 좋겠다. 나보다 뛰어나게 멋진 카피를 척척 써내는, 내 사랑하는 후배 카피라이터야. 


나는 과연 프로였을까? 싸울 땐 싸울 줄도 알고 무시할 땐 무시할 줄 알며 받을 건 받아주는 그런 프로. 그저 주니어라는 이름으로 입닥치고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되겠지 라고 한건 아니었을까.


1년차건 10년차건 프로처럼 되고 싶다면 신데렐라 신드롬을 버리라는 얘기를 들으며 열심히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저 열심히 하려고 열심히 하는게 아니라 내 분석, 내가 하는 업무, 내가 하는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하려면 그게 필요하니까. 일이 되게 만드려면 그게 필요하니까. 내 모든 걸 다해서 설득하고 설득당하고 어떻게든 일이 되도록 만드는 그런 프로의식. 그런 프로의식을 바탕으로 어이없는 소리하는 상대방에게 'x이나 까세요'하며 상을 엎을 수 있는 그런 훈련된 자신감. 


그게 갖고 싶어졌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시작하라고 독려해주는 책이었다. 내가 집중해야 할 '고객', '원칙', '전략', '프로세스'가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서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힌트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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