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범우사상신서 35
E.F.슈마허 지음 / 범우사 / 198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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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40여 년 전만해도 세계 저개발국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사회가 이젠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원조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 과정에 대한 시시비비는 차치하고 근대화, 산업화라는 서구열강의 흉내를 낸 것이 지금의 외형적 성장을 이룩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결국 제한된 자원 하에서 여전히 성장을 도모 할 수 있는 지역적 환경의 덕을 보아왔으나 이젠 값싼 노동을 구하기 위한 이전의 틈새도 점진적으로 고갈되어 가고 있어 양적 성장만을 추구 하던 경제기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고려하여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할 수 있다.

한없이‘성장’을 밀고 나가기만 하려는 사고방식은 심한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그 하나는 기본적인 자원의 제약이며, 다른 하나는 경제 성장에 의해 초래된 간섭이 자연이 감내 할 수 없는 한도에 이르러 있다는 점이다. 무한한 전면적 성장을 지향해도 수용되던 과거의 환경은 지나갔다. 더구나 끝없는 팽창주의로 자원과 환경의 양면에서 자연을 폭력적으로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한편,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창조성을 억압하여 인간소외를 진행시켜온 결과는 인류 문명의 다양한 부문에서 붕괴와 몰락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저술은 바로 이와 같은 기계화, 산업화를 통한 유물주의적 철학이 판치는 경제지상주의의 세계가 야기하는 인간과 자연의 심각한 손상과 인간을 배제하고 양(量)이 지배하는 시장논리로 질(質)을 논하지 못하는 실증주의의 과학을 비롯한 19세기 대사상의 비판과 이의 대안으로서 인간중심의 기술인 중간기술과 새로운 소유의 형태 등 인류사회의 영속적 존재를 위한 제안을 품고 있다.

무엇보다 “인간을 서로 다투도록 만드는 원인인 탐욕과 질투심을 의식적으로 조장시킴으로써 성립되어 있는 자본주의경제를 기초로 하여 평화를 이룩하려는 것은 二重의 환상”이라고 오늘을 지배하고 있는 경제사상을 비판하는 저자는 수량화의 발달로 놀라운 학문적 발전을 이룩한 듯한 근대경제학이 질적인 가치를 도외시하거나 파악치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국민총생산과 같은 수치의 신장을 단순히 선(善)으로만 바라보도록 하는 왜곡된 교육이 진행되고 있어, “그 신장은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하고 질문하면” 답변을 할 수 없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즉, 무엇이 신장한 것이냐 라든지, 그 이익을 얻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냐 라는 문제 등은 간과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5파운드의 석유, 5파운드의 밀, 5파운드의 호텔비”등과 같이 총량에 한계가 있는 재생될 수 없는 재화와 반복 재생 될 수 있는 재화의 구분과 같이 본질적인 질적 차이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지 못하는 근대경제학의 무분별한 합리성의 판단이란 것이 오직 공급하여 얻어지는 이윤율뿐이라면 이는 진정 합리적 신호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질적 가치를 희생시키고 양적 가치, 다시말해 돈의 형태로 충분한 이익을 올리지 않는다면‘비경제적’이라는 기이한 사고를 정착시킨 오늘의 시장자본주의 사회의 가치이념은 오직 부를 손에 넣는 것만이 현대의 최고목표라는 물질 하나로 수렴되어가는 전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물질적인 것이 본래의 정당한 지위인 종속적인 지위로 돌아가는 생활양식을 역어내는 것, 탐욕을 무장해제하고 기술과 조직의 틀을 바꾸고 새로운 생산과 소비 생활시스템을 만들어 노동의 인간화를 꾀하며 건강하고 아름다운 영속성을 지니는 경제를 살려내는 것은 오늘의 우리들에게 최고의 과제여야 할 것이다.

인간이나 자연까지 단순한 생산도구 이상으로 고려하지 않는 현대의 대량생산, 규모의 경제와 같은 거대(巨大)신앙은 윤리를 삼켜버리고 경제이외의 가치인 인간적 관점을 봉쇄해 버렸다. 또한 논리적으로 아무리 따져 봐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확산 문제)와 해결 가능한 문제(수렴문제)에 대한 구별없이 수렴되는 문제만 상대하고, “탐욕과 고리(高利)와 경계심(경제적 안전)을 신(神)으로 삼고”있는 오늘의 경제세계는 덕(德),사랑, 절개 등의 말조차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역사가 보여주듯 문명의 숙명을 좌우했던 토지의 이용 역시 경제적 효용가치로서만 인식될 뿐 생명, 목숨이 있는 무한한 살아있는 물질로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농업과 공업에 대한 차이인식의 결여, 재생불능 천연자원에 대한 오만한 태도, 근본적으로 자동차와 동물조차도 효용의 가치로만 구분하는 중대한 형이상학적 오류로 인한 위험, 즉 존재의 차원을 간과하고 있기에 이르고 있다.

한편, 인간으로부터 창조적 일을 빼앗고 파편화된 일을 떠넘긴 현대기술, 과학이 야기한 세 가지 동시적인 위기 - 기술, 조직, 정치 등이 인간성을 거역하여 사람의 마음을 침식하고, 생물계라는 환경 손상과 부분적 붕괴의 징후,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낭비 극도화로 인한 고갈 가능성 - 의 지적과 함께 인간중심의 기술로서 거대기술보다는 소박하고 값이 싸며, 제약이 적은 자립, 자주, 민중의 기술로서 중간(中間)기술에 대한 피력은 오늘의 남반구에 집중되어 있는 저개발국 및 농촌지역의 발전을 위한 대안으로 示唆하는 바가 높다하겠다.

그러나 이 저술의 꽃은 단연 3부 5장의‘새로운 소유 형태’라 할 수 있다. 사유와 공유,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자유와 전체주의를 매트릭스화 하여 오늘의 우리가 궁극으로 지향하여 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장으로서 사기업의 국영화에 대한 치밀한 제언들, 사적소유에 대한 마르크시즘의 경제적 교조주의를 비판하고 그만의 새로운 견해의 피력은 매혹적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적정규모의 소비로 인간으로서의 만족을 극대화하려는 간소와 비폭력, 모순되어 보이는 자유와 질서의 조화, 인간에게 주의를 돌리는 사고체계에 근간하는 대중생산체제에서 중간기술까지, 그리고 새로운 형이상학체제의 구축에 이르는 슈마허의 제안들은 오늘을 걱정하는 인류 모든 이들에게 중대한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다.

“생명이 없는 물질은 우아한 것으로 만들어져 공장을 나오지만,
인간은 거기서 부패하고 타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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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마술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5 링컨 라임 시리즈 5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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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과 과학의 대결이라 해야 할까?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마술사의 현란한 손동작에 기만당하는 느낌이란 참담함이라기보다는 경외가 맞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사람이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 몸을 두 동강냈는데 어찌 다시 살아난단 말인가, 찰나에 불과한 시간에 계속 새 옷으로 변신하는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등등, 그러나 마술사들의 노력이 빚어낸 그 신비로움이 매혹의 즐거움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향한 사악한 도구로 바뀌었을 경우, 그대로 꽁꽁 묶여 물탱크를 탈출하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몸을 자르는 것이 실제라면 그 참혹함을 우린 감당할 수 있을까? 

음침한 음악학교에서의 살인, 경찰관을 버젓이 마주한 범인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펑~ 섬광과 함께. 그리곤 작가는 범인의 이름 '말레릭(Malerick)'을 소개한다. 탈출마술의 거장 후디니의 본명 에리히 바이스(Erich Weize)와 세계적 마술사 말리니(malini)를 합성한 이름. 더구나 어두운 자기 마술의 본질인‘악(惡)’을 뜻하는 어근에서 따온 것이라는 심상치 않은 설명을 곁들이면서.

결국 독자는 선(善)을 대표하는 과학수사의 대명사‘링컨 라임’과 악의 화신인 마술사의 자존심을 건 한 판 대결에 동참하여야 하지만 작가는 그리 단순한 구도만으로는 만족치 못했던 모양이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비밀집단인 애국단이라는 극우범죄자들의 검사 살해 음모와 결합되고, 유명 서커스단과의 과거원한까지 가세하여 사건을 혼미에 빠뜨린다.
스릴로는 모자라 무수한 복선이 깔리고, 이로 인해 독자의 감각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서스펜스에는 그만 작가‘제프리 디버’의 명성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기 영혼을 기만이라는 예술에 바친”사람, 라임의 손발이 되어주는 현장 감식의 베테랑 경관 ‘아멜리아 색스’의 코앞에서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범인을 과연 잡을 수 있을까하는 무력감이 엄습할라치면 평온과 행복 그리고 매혹을 표현하는 선의 마술사‘카라’의 등장으로 활기를 채운다. 기막히게 적절한 인물들의 배합과 그들이 발산하는 매력으로 작품은 의기양양해진다.

여기에 색스의 승진시험까지 더해지면 사람 사는 세상냄새로 이야기는 그야말로 풍요로워진다. 연쇄적 살인이 이어지고 과거의 화재로 인해 아내를 잃고 자신의 페르소나(persona)까지 상실당한 범인의 과거가 하나씩 밝혀진다. 그 분노와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사람을 살해함으로써 보상받는 신출귀몰 하는 환상 마술로 무장된 살인마의 실체는 좀체 드러나지 않는다. 작품의 재미는 바로 이러한 환상마술이 다양하게 변주되어 살인행위에 이용되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살인자의 범위가 축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외려 확장되고 있다 할 정도로 스토리는 더욱 풍성해지기만 하여, 단 한 순간도 지루함을 느낄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이 작품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마술에서 일종의 트릭행위라 할 수 있는 '미스디렉션(misdirection)'은 수사팀과 범인의 치열한 두뇌싸움의 중심에 서서 그 예측으로 독자를 몸살 나게 한다.

아마도 이처럼 많은 반전을 지닌 작품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정교하고 속도감 넘치는 플롯으로 무장되어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다름 아닌 이 소설자체가 이미 마술의 한 자락이라 하여야 할 것이다. 경애하는 독자 여러분! 500쪽까지 읽으시고 범인을 밝혀내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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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던져라 책이 답한다
김은섭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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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을 부추기고, 소비를 촉진하며, 타인과 끝없는 비교를 통해 보이는 모습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 그래서 그 가치들을 쫓아‘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게 하는 사회를 조성하기 위한 무수한 비즈니스 실용도서들이 서점을 현란하게 장식하고 있다.
부단히 학습하고 자신의 역량을 계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조직과 사회는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한다. 잠시라도 정체되어 있으면 남보다 뒤지고 생존경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 할 것만 같아 조바심치게 하는 시대에 몇 권의 관련 도서라도 읽어볼라치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는 책들이 그만 질리게 만들고 어렵게 선택한 책은 허황되기만 하다.

이러한 비즈니스 실용도서의 광대한 시장에서 먼저 그러한 책들을 읽어보고 세월의 흐름에도 풍화되지 않고 독자들에게 주요한 지혜와 실천지식을 풍부하게 전달해 줄 수 있는 나름 고전적 지위를 획득한 책들을 선정하여 바쁘고 심적 여유를 훼손당한 오늘의 생활인들에게 시행착오라는 낭비를 제어하게 해준 이 저술은 아마 지극히 반갑고 고마운 노고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대략 비즈니스 실용도서 중 70여권의 엄선한 부문별 저작들이 저자의 세심하고 친절한 소개글과 함께 설명되고 있다. 노동(일)의 의미와 그 가치에 대한 사유의 저작들에서부터 트렌드와 미래의 세상에 대한 분야, 기업 경영의 현장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실무지식들과 관리자, 경영자로서의 갖추어야 할 미덕, 그리고 전형적인 자기계발분야, 기획에서 마케팅, 회계, 인간관계, 협상과 설득의 기법에 이르는 실용적 삶의 기술, 끝으로 부자학과 창업에 이르는 분야까지 각 분야마다 5~6책의 주옥같은 저술들이 풍부한 독해력을 기반으로 한 저자의 완벽한 주제와 핵심내용의 정리로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추구하고 요구하는 지식을 품고 있는 저작을 수월하게 고를 수 있게 해준다.

특히 독서와 독서법을 위해 추천된 저술들은 광의의 독서에 대한 매혹적 글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비즈니스 실무자들에게 필요한 독서기술로 전문화되고 심화된 저술의 소개로 이어져 책과 친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책 읽는 재미와 흥미로 인도하기도 한다. “책 읽기와 비즈니스의 성공적인 결합을 위해서 글을 읽는 사람과 책의 내용이 이가 맞아야”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저자의 세심한 배려가 도처에서 돋보인다.

책을 읽는 이들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정서적 위안을 구하거나, 정체성을 확인하는 도구로서, 또는 삶의 희로애락을 폭넓게 느끼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저술은 사회적 신분상승이나 존재론적 변신에 목적을 가지고 지식습득과 인격형성에 관심을 가지는 사회인들 모두를 위한 진정 엑기스 같은 훌륭한 비즈니스 실용 독서 안내서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매 저술들의 소개글 자체가 이미 탁월한 비즈니스 실용 지혜를 담고 있기도 하여 이 저술 한 권이 지속적인 독서의 욕구를 자극하는 멋진 수단이 되어주기도 할 것 같다.

책 읽기를 말하는 책이며 엄선된 비즈니스 실용도서의 안내서이기도 한 이 저술이 소개하는 71권의 저작들에 대한 단상들은 독자들의 다음의 독서를 위한 멋진 생각의 촉진제가 될 것이다. 아직도 책을 집어 들기를 주저하는 비즈니스맨들에게 우선 이 한 권의 비즈니스 핵심 메시지를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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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일깨우는 글쓰기>를 읽고 리뷰해주세요.
나를 일깨우는 글쓰기
로제마리 마이어 델 올리보 지음, 박여명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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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글쓰기 어렵고 힘겨워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글 쓰는 비법 좀 가르쳐줘요...비장의 방법이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 저술은 글 쓰는 방법을 알려준다. 아니 생각하고 세상을 들여다보고, 나 자신을 보는 방법, 내 삶을 요기조기, 이렇게 저렇게, 그려내는 무수한 길이 있음과 그 한걸음 한걸음을 안내한다.

지금 이렇게 책을 읽고 그 감상을 적고 있는 나의 행위도 역시 글쓰기인데, 나는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사실 꽤나 오래전에 스스로 확인 한 것은 삶의 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어디 내려다 놓을 곳을 찾던 중 발견한 나만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수년 전부터는 ‘삶의 무게를 가벼이 하기 위해’라는 타이틀을 걸어놓은 내 블로그가 다 있기도 하다. 이처럼 글쓰는 행위에 저마다의 사연들과 부여된 의미가 있겠지만, 이 저술은 자신을 향한 관심과 사랑을 일깨우는 방안의 일환으로 내면의 치유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하겠다. 그래 글쓰기란 본질적으로 우리를 어루만져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무미건조한 삶인데 무어 새삼스레 글 소재가 될 만한 것들이 있겠는가. ‘내 삶에는 쓸 만한 내용이란 없어!’그러나, 이 똑 같이 반복되는 것 같고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우리들의 일상에는 사소하지만 거대한 사건들이 있음을 의외로 확인 할 수 있게 된다. 그 사소한 일상의 시간 중 창밖을 그저 바라보는 순간에 스쳤던 생각들도 있고, 무심히 걸려온 전화 속 누군가의 목소리를 떠 올릴 수도 있으며, 출퇴근길에 비친 사람들의 무표정한 발걸음을 바라보았던 그 정경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내 삶의 시계 속에서 나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내 인생을 주도하기도 하고 스쳐지나가는 것들이 꽤나 무수함을 발견 할 수 있다.

이 저술은 바로 이러한 우리들 일상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상상력의 불꽃을 당기는 화두, 글 쓸 때 도움이 되는 핵심적이고 긴요한 요소들, 글 쓰는 시도, 즉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다양한 도구와 방법론들, 개인적인 인생철학 속에 숨어 있는 삶의 원칙들을 통해 무궁무진한 글을 쓰기위한 소재의 착상과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격려와 친절한 조언이 배열되어 있다.

“나에게 쓴 편지, 나의 손이 하는 일, 앞으로 일 년밖에 살지 못한다면, 나를 위로하는 주문, 게으른 하루...”등과 같은 일상의 모습이나 오늘의 기록, 되돌아보는 인간관계, 호기심이 만들어내는 대단한 사건들이 우리가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하던 삶 속에 묻어 있음을 발견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압축형 글쓰기, 클러스터(생각의 사슬), 콜라주, 두 단락의 기술 같은‘글쓰기 시도’에 대한 소개는 전혀 자신감을 갖지 못하던 누구에게도 글 쓰는 것의 두려움을 해소시키고, 선뜻 시도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내킬 정도로 매력적인 도구들로 인상 깊게 다가온다.

“글쓰기는 스스로와 세계를 끊임없이 알아가는 과정이다.”“글을 쓰는 순간 일상의 짐을 내려놓게 되고, 글을 멈추는 순간 다가올 미래 앞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이것이 글쓰기의 진정한 묘미”라는 저자의 말 그대로 우리와 우리들의 힘의 원천으로서 글쓰기의 본질을 이해케 된다.
아마 이 한 권의 글쓰기 책을 읽고 나면 진정 글쓰기가 삶의 유용한 도구이자 친구임을 확인하게 되고,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열망 좌절”을 그려낸 우리 자신들의 위대한 작품노트를 한 권씩 만들어낼 수 있다는 뿌듯한 자신감으로 충만한 자신을 발견 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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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그 사랑을
카챠 랑게-뮐러 지음, 배정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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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연하게 풀어나가는 비릿한 회상의 연속 된 이미지들이 잿빛으로 묵직이 가라앉은 안개를 떠도는 느낌이다. *정키‘해리’가 ‘조야’를 안듯이 “심드렁하게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정적이지도 않게”담담한 목소리가 안타까운 비애를 가득 머금고 사랑, 아니 그 이상을 들려준다.
작품의 문장은 ‘W.G.제발트’의 호흡이 긴 그 장문(長文)과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느낌이 닮아 있기도 하고, 손이 닿지 않는 더욱 아득한 간절함의 기운으로 빠져들게도 한다.

아직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전인 1987년 서베를린으로 탈주한 동독출신의 ‘조야’, 숙련식자공으로 그리고 꽃 가판대 아르바이트로 여전히 타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에게 말을 걸어온 멋진 서베를린 남자‘해리’는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연인이 아니었을까? 하고, 이미 눈 을 감고 세상을 떠난 연인의 노트를 몇 해가 지나고서야 비로소 읽어내는 한 여성의 절절한 추억의 회상들에서 그래야만 했다고 괜스레 그녀의 사랑을 초월적인 무엇으로 이해하고 싶게 된다.

마약과 절도로 11년간 수감생활을 하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해리, “단 한 번도 그런 키스를 받을 거라곤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우스꽝스럽고도 보드라운 애기키스”의 기억을 준 남자, 섹스에서는 “그야말로 의학적 의미로” 다뤘고, “ 힘차고 따뜻했고, 결코 과민하지 않았”던 남자, “자칭 민주적이라고 하는 국가는 어떠한 폭력도 행사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던 좌익무정부주의자, “사이비 프롤레타리아에게‘68소동(68혁명의 해리식 표현)’이 남긴 건 몇 마디 문구와 주삿바늘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그래서 마약으로 “의식 확장 작업인지 의식 파괴 작업인지를 철저하게 해낼 수 있었던”남자에 대한 기억은 그녀의 온 마음과 육체에 깊이 각인되어있다.

이 연인의 시련을 담아내는 작품 속 베를린은 왠지 뜨내기들의 집합장소이고, 뿌리 없이 바람에 이리저리 뒹구는 나뭇가지 같은, 이념의 공황상태, 신념을 상실한 황폐한 공간이란 분위기로 다가와 ‘반파시즘 보호 장벽’이 무너지는 통독(統一獨逸)의 전후 시대상과 결합하여 더욱 을씨년스러움을 더한다.
이러한 혼란스런 시대의 정황이 어찌되었건 이 작품은 분명 사랑의 이야기다. 그러나 화려한 낭만과 통속적 쾌락의 추구와 같이 삶과 괴리된 부르주아적 연애담은 결코 아니다.

“다시 사랑이라는 병에 걸렸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난 나이가 많았으면 좋겠다 싶었어. 나의 성(性)이 나에게나 다른 누구에게나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 나이 ~ 中略 ~ 부작용이 있는 권력이나 탐욕도 아무 소용없는 그런 나이 말이야.”처럼 조야의 사랑은 무념의 평온과 상반되는 두려움이기조차 하지만, “운명이 내 손안에 있는 그 사람을 위한 투쟁이었어!”라는 말처럼 그녀의 일상은 온통 해리에 대한 보살핌과 연민, 나아가 “더 이상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같아지고 또 같아지고...”하는 타자 없는 동일화, 일체화로 보여 진다.
지독한 사랑을 하면 아마 다른 어떠한 이미지에 의해서도 지워지거나 밀려나지 않는 고정된 자신의 마음속에 끈끈하게 침착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해리가 HIV양성반응자임을 알았을 때 숨고 싶고, 자신의 심장이 뛰는 걸 듣고 싶고, 울고 싶고, 매 순간 림프절 하나하나를 만져보고 싶었던 그 처절한 갈등의 고통이 엄습하는 시간을 무어라 표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자신에게만 폭력을 가하는”착한악인을 향한 안타까움과 애틋한 연민으로 그를 더욱 갈구하는 조야를 이해하게 된다.

“미래의 씨앗이 움트는 베를린 이라는 배아세포 한가운데 누워 있긴 하지만, 나의 동베를린, 우리의 서베를린이 모두 해체된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아” 떠나야만 했던 그 떨칠 수 없었던 업보 같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연인의 이 사랑이야기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매트리스에 누워 가는 호흡만 들려오던 작고 궁박한 방을 자꾸만 선연하게 그리게 한다. 죽은 연인이 남긴 유품 속 바닥에 놓여있던 노트, 그 노트를 읽고서야 죽은 자에게 써내려가는 이 위대한 서간문은 사랑의 진실이란 진정 무엇인지 슬프도록 적나라하게 들려준다. 작품을 더욱 진솔하게 만들어 낸 작가 ‘카챠 랑게-뮐러’의 파란만장한 삶의 경험들에 애착과 숭고한 정신을 읽게 된다. 부럽고 존경스런 작가이고 더할 수 없는 경외의 작품이다. 뒤늦은 감 없지 않으나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지속적으로 소개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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