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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 부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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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문의 경제섹션은 우리사회에서 저소득층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50%를 넘어섰다는 내용을 머릿기사로 장식했다. 급속하게 중산층 의식마저 하락하고 가난의 대중화로 치닫고 있다는 얘기다. 실로 정치 권력자에게 주어진 5년이란 시간은 무서운 것이다. 이렇게 고도로 양극화되고 빈곤을 촉진하는 탐욕스런 세력은 본 적이 없었다. 지금 한국은 빈곤의 보편화를 강력하게 추진 중인 듯하다. 극소수의 거부와 대다수의 빈민이라는 두 국민 정책이 이제 그 결실을 드러내고 있다. 현 정권은 성공했다. 아마 상위 1%만 모이는 그네들의 파티에선 연일 칭송이 잦을 것이다. 수고했습니다! 라고.

 

정권을 잡자마자 재벌 감세와 규제 완화부터 시작하고, 서민들의 소득세 감면 항목들을 삭제하거나 부과기준을 상향 조정함으로써 부자들을 위한 감세로 인해 부족해진 세수를 서민의 얄팍한 급여로 충당할 정도로 사악했다. 재벌을 살찌우면 샤워효과로 그 부의 상당부분이 아래로 흘러내려갈 것이라고 이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 이래 이런 예는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는 것은 그 뻔뻔함의 정도를 짐작케 하기에 충분하다. 부자는 더욱 부를 늘려가기만 했을 뿐, 국민 대다수는 점점 가난해졌다. 실질 소득은 급격하게 감소하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솟아올랐다.

 

땀을 뻘뻘 흘려 열심히 일해도 갈수록 먹고살기 아주 힘겨울 정도가 되고 있다. 육체와 정신적 손상으로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지는 이상한 구조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들에게“사회계약을 구성하는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말의 다름 아님이다. 사회에 대한 신뢰가 손상되기 시작했다면 과연 그 사회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할까? 잘못된 구조, 권력이 왜곡시켜버린 경제구조를 신속하게 교정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자각하고 직시하기는 하는 것일까? 나도 언젠가는 저 1%에 들어 갈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이 망상을 자극하는, 바보 상자들이 쏟아내는 미혹에 걸려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난을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 우민화를 위한 각종 미디어 정책들 역시 성공적이다. 재벌들에게 이 정권은 이처럼 정말 갚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도움을 준 것이다. 그 결과는 가난은 대중화되고 빈곤은 만성적이 되어감에도 마치 이것이 없는 것처럼 이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형태가 된다. 그렇다고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이와 같이 그 고유의 시각적 특성 때문에 경제적 우위에 있는 자들의 눈에 빈민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계층의 구별 짓기가 이젠 완전 고착되는 단계에 들어서 서로 마주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의 눈앞에 서는 빈민들의 옷차림새는 실제와는 다른 것이기에 더더욱 알 수 없는 것이다. 상상력 부족의 시대! 마치 빈민들이 사라지고 있는 듯한 이 역설적인 현상은 ‘빈곤의 발견’을 더더욱 위장한다.

그러다보니‘게으르고 의존적이며 자식만 주렁주렁한 자들이 실업급여 창구를 메운다’는 어느 시장만능의 자유주의 신봉자가 하는 돼먹지 못한 말처럼 빈곤을 터무니없이 왜곡하고 몰염치에 이르는 양태까지 보이는 것일 게다.

 

“사람이 더 열심히 일해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 가난해지고 빚만 늘어나는 구조”는 좀체 생각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저임금 노동에 참여해보라. 체험해 보라. 책은 바로 노동 현장, 만성적인 빈곤으로부터 헤어 날 수 없게 구조화된 저임금 노동 시장의 생생한 체험의 기록이다. 과연 게을러서 가난하고, 의존적이어서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는 보수 자유주의자들의 헛소리가 혹여 조금이라도 진실인지를 말이다.

아마 자유주의 신봉자가 뱉어낸 가증스런 그 말은 한 가정집에 청소용역을 할 때 주인 여자가 하는“정말 운동이 되죠?”라고 청소부에게 하는 말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 청소가 운동이겠는 말이다. “완전 비대칭적이고 무자비하게 반복적이어서 근육과 뼈를 망가뜨리는” 중노동이 어찌 운동일 수 있겠는가? 몰지각과 중산층의 이 뻔뻔한 상상력은 오늘 우리들의 도덕적 인식능력이 얼마나 마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일례일 것이다.

 

책을 빌려 무지하고 탐욕으로 그득한 신자유주의 신봉자의 악질적 발언의 진위를 들여다보자. 한 몸을 의탁할 싸구려 주택의 보증금, 월세를 내기에도 빠듯한 시간당 임금으로 교통비, 공과금, 식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육신이 부서지고 골병이 들 정도로 노동을 해내도 가능할까 말까이다. 청소부로 웨이트리스로, 대형 할인점의 의류 점원으로, 노인병원의 조무사로 종횡하고, 이 하찮은 저임금 직업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모욕과 수모를 견뎌내야 하는가를 목격하는 것은 고통이란 단어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빈곤 속의 삶의 시작 조건은 모든 것을 결정” 할 정도로 그것을 탈피하는 것은 가능치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왜 그럴까? 먹고 살기 위한 기초 생활자금에도 모자라는 것이기에 그렇다. 저축? 웃기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을 자식만 주렁주렁 낳는 무책임한 사람들로 묘사한 신자유주의 꼴통의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지쳐 쓰러진 노동자가 무슨 재주로 자식들을 갖는다는 말인가? 자기 몸 하나도 간수하기 힘든데 말이다. 오히려 부자, 중산층들의 여유있는 삶에서나 가능한 얘기이다. 세 자녀에 대한 각종 정부 지원금과 육아 지원제도는 서민의 복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빈민들은 아이를 낳을 기력도, 낳아 기를 능력도, 더구나 세 자녀씩이나 낳는다는 것은 그들 삶의 현실에서는 요원한 사치일 뿐일테니 말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가난한 여성들은‘번식녀 계급’에 포함되지 못하는 것이다. 빈민은 더 이상 자녀를 생산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경제적 장막이 쳐져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일까?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게으른 것도 아니요, 자녀를 무책임하게 생산하는 자들도 아니며, 의존과는 멀어도 한참이나 먼 사람들이다. 그들의 세계는 통증이 지배하고 정말의 피땀으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다. 대체 알량한 실업급여를 기다리는 서민들과 실직자, 저임금 노동자를 무엇으로 여기고 있다는 말인가!

신자유주의 찬사로 가득한 보수주의자의 황당한 서적들과 마주칠 때면 화장실 변기를 닦아 “대장균이 듬뿍 묻어있는 헝겊으로 부엌 싱크대를 그냥 한 번 쓱 닦아주기만” 하면 되는데 하고 소심한 생각에 머무는 청소부‘바버라’의 상상을 그대로 이 승냥이들의 낯짝에 문질러 주고 싶은 심정이 든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이란 생활임금에 턱없이 모자란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항변에 “아니오, 임금은 계속 오르고 있다”고 반론한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 탁상공론은 최하위층 임금이 얼마나 하찮게 오르고 있는지를 보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더구나 서민들의 실제 경험과 공식적 지표로 정의되는 빈곤이 불일치하는 것은 가계경비를 산출하는 부적절한 방식에 있음에 주의를 가지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식비를 근거로 산출하는 구시대적 집계 방식 같은 것들...

부서져라 일하고 끊임없이 직업을 찾아 헤매며, 파김치가 된 몸으로 하루 두 개의 직업을 오가도 살기 힘든 임금 구조는 노동의 가치 운운하는 세력들의 허위만을 입증 할 뿐이다. ‘노동의 배신’을 만들어내는 이 같은 사회가 지속 가능한 세상이 될 수 있겠는가?

워킹푸어가 사라지는 세상, 진정 노동이 사람들을 배신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이상주의자의 헛된 꿈에 불과 한 것일까? 저임금 노동현장에 뛰어 들어 그 배신의 속살을 비로소 발견하고 분개한 여성 저널리스트의 이 고발은 보이지 않는 가난, 빈곤을 명료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저자의 비장한 마지막 문구, “넘어진 사람을 발로 차지 않겠다”는 다짐은 그 어떤 너절한 언어보다 엄중하게 우리들의 사회에 각성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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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미 2012-08-27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변을 토하셨네요. 그리고 동감합니다. 저도 이 책 보면서 완전 분노했었는데, 정말 변해야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필리아 2012-08-27 14:52   좋아요 0 | URL
비판정신이 마비된 젊은이들을 양산하는 교육구조이다보니 보수 시장지상주의자의 노동자 모욕의 논리에도 아랑곳 없이 열광하는 한국의 주류 의식이 안타까워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