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전사 - 여자는 왜 포르노보다 로맨스 소설에 끌리는가? 다윈의 대답 시리즈 6
도널드 시먼스.캐서린 새먼 지음, 임동근 옮김 / 이음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무언가에 어떤 기능이 있다면 그것은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지,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 비용을 낭비하면서 고안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계는 물론이고 인간의 모든 행위에서 발견되는 경험칙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 행위를 이루는 어떤 보편적 메커니즘이 있다는 것은 이 메커니즘을 생산했던 과거의 어떤 인지과정과 이 생산이 발생했던 환경들의 존재를 함축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전제하에 “인간의 심리적 적응도 일반적인 자연선택의 산물이다.”라는 진화론에 기초하여 현대사회의 논쟁적 이슈일 수 있는 ‘슬래시(slash) 소설'의 존재론을 고찰하고 있다.

 

즉 소년 또는 청년들 간의 연인관계 발전 모습을 그리는 남/남 커플의 로맨스 소설인 슬래시 소설이 왜 여성들을 위한 독자적 문학 장르로서 발생하고 확산되고 있는가에 대한 진화론적 탐색을 통해,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짝 짓기’전략을 선택 할 수밖에 없었던 자연선택의 압력과 적응주의의 현상의 한 형태임을 추론하고 있다.

짝짓기에서 남녀가 서로 다른 방식의 선택압력을 받았다는 것인데, 바로 이 다른 압력에 적응한 남녀의 성적 심리에 그 차이가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1. 남녀의 짝짓기 전략

 

짝짓기는 모든 동물의‘재생산’전략이다. 수컷은 이 재생산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면 어떤 방법을 취할까? 인간 수컷은 사실 재생산을 위해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정자를 암컷에 주입하는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 이처럼 저비용의 재생산구조를 가진 수컷은 가능한 많은 수의 암컷과 관계를 통해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채택한다.

그러나 인간 암컷이 이러한 전략을 택한다는 것은 거의 재앙에 가깝다. 임신하면 9개월 동안은 자신의 몸 안에서 태아를 키워야하며, 또한 출산하고서도 젖을 물려야 하는 등 얼마간의 양육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만일 신중하지 못하게 자신과 아이를 위해 충성하지 않는 수컷을 받아들였을 경우에는 자신의 아이의 생존은 물론 자신의 생존조차 위태롭게 되는 자멸이라는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 여성은 자원을 계속 제공할 수 있고, 자신과 자식에게 충성을 다할 남성을 선택해야 생식 성공률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성에 대한 선택압이 달랐던 것이다. 남성에 비해 고비용 구조를 지닌 여성의 성은 아주 신중하게 자신에 적합한 남성을 찾고, 그에게 마음을 얻어 완전하게 자신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비로소 짝짓기에 이르는 전략을 취하게 되었다. 반면에 남성에게 있어서 짝짓기는 되도록 많은 수의 젊은 여성과 관계를 맺는 것이 생식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다. 짝짓기는 이처럼 남녀에게 확연히 다른 압력이 주어졌고 이에 잘 적응하는 개체만이 자연에 의해 선택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한 가지 모순이 있다. 가능한 많은 수의 짝짓기를 필요로 하는 남성과 자신과 자식만을 위해 헌신할 남성이 필요한 여성의 전략은 상충한다. 만일 한 여성만을 위해 충성하게 될 경우 남성이 부담할 위험은 증가한다. 여성이 낳을 자식은 확실히 그 여성의 자식이 분명하지만 그 자식이 남성의 자식일 확률은 보장되지 않는다. 만일 자기의 자식이 아님에도 충성하게 된다면 남성의 재생산성은 제로(zero)라는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효과적인 남성의 재생산 전략은 자기 아내를 성적으로 독점하는 방식뿐이다. 오늘의 대다수 인간들이 1부1처를 유지하는 것이 근대적 이성과 법제도에 근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선택압과 이의 적응이라는 진화적 산물임을 의미한다.

 

2. 슬래시(slash) 소설, 로맨스 소설과 포로노그래피

 

 

슬래시 소설이란 스타트렉(star trek)의 커크/스포크나 셜록홈즈의 홈즈/왓슨처럼 이름 사이에 사선을 그어 그들의 관계를 나타내는 관습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남/남 커플의 로맨스를 다룬 소설을 일컫는다. 왜 뜬금없이 슬래시 소설인가?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이들 남자들의 동성애적 이야기가 여성들을 위한 고유의 장르로 부상하고 있는 것을 과연 진화론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가 하는 도발 때문이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문학인 로맨스 소설부터 그 특징을 알아봐야 하는데, 그래서 이 책은 여성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로맨스 소설들에 나타난 남성상과 여성의 심리를 통계학적 자료들을 통해 정리하고 있다. 그 결과는 우리의 상식을 전복시킨다. 자상하고 감수성 높은 남자? 아니다! 더구나 돈과 사회경제적 지위보다는 근육질의, 잘생긴, 힘센, 키가 큰, 햇볕에 그을린, 강하고 뻔뻔한 남자를 그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또한 여성 독자들은 성적으로 대담하고 자신만만하며 추진력이 있는 남자로서 여자 주인공의 사랑에 의해서만 길들여지는‘위험한 남자’(한국식으로 말하자면‘나쁜 남자’쯤 될까?)에 대한 판타지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로맨스 소설과 슬래시 소설이 어떤 관계에 있기에 여성들이 이 낯선 남/남 커플의 연애담에 빠지게 된다는 것일까? 남/남 커플 중 한 남자는 여성적 역할을 수행 한다. 그러나 우리도 알고 있듯이 스타트렉의 커크와 스포크는 물론 홈즈와 왓슨은 이성애자다. 그런데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슬래시 소설은 이들을 다중적 정체성(남성와 여성의 정체성을 모두 인식하는)이 가능한 이성애자로 그리며, 세상의 험난한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 인생의 동반자라는 강한 우정으로 시작하여 서서히 미몽에서 깨어나 서로의 사랑을 깨닫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바로 이 점이 여성들을 매료시키는 요인이라고 한다. 여성 독자는 여성성을 보이는 남성 인물에 동질감을 느껴 자신과 동일시하며, 이성애자인 그 남성을 가질 수 있는 대상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로맨스 소설은 남성을 자기의 헌신자로 만들긴 하였지만 그 남성은 언제라도 타 여성과 관계를 가질 수 있으나 슬래시 소설의 남성은 서로 사랑을 깨닫기 전부터 이미 동지였으며, 바위 같은 토대로 영원히 이어지리라는 기대 때문에 더욱 안전한 낭만을 느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슬래시 소설은“여성의 기준에 맞게 남성성을 가상적으로 변형 시킨” 소설이라는 것이다.

 

점점 전통적 여성의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남성적 역할까지 함께하려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상이다. 다른 여성의 유혹을 극복하리라는 믿음을 가진‘짝 가치’가 높은 전사를 선택하는 오랜 짝짓기의 적응주의 산물은 이제 전사(warrior;戰士)의 부인보다는 동료 전사(co-warrior)라는 판타지를 선호하는 것이다. 이것이 슬래시 소설이 지니는 진화론적 유익성이다.

 

그렇다면 포르노그래피라는 스토리도 없고, 실제적 주인공의 시점도 없으며, 어떠한 감정적 교감도 없이 단지 성관계에만 몰두하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물이 남성에게 선호되는 이유를 이것이 남성성의 진화론적 적응의 산물임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진다. 즉 가능한 많은 여성과의 성관계가 유익한 전략이었으므로 남성이 “저비용에 감정 없이”성교하는 것은 매우 적응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극단적인 남녀의 차이를 독해 해낼 수 있게 된다. 짝 짓기 행위가 여성에게는 신체적 반응이나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며, 감정의 교환이라는 것임에 비해, 남성에게는 신체적 흥분이라는 성적 자극이라는 것이다. 결국 포르노토피아가 남성의 성적 환상이라면 “남성의 육체 위에서 남성 육체에 의해 행해지는 섹슈얼리티의 여성적 버전(version)”인 슬래시 소설은 이에 대한‘대응-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자연 선택이 짝짓기 선택의 맥락에서 짝 가치와 관련된 신뢰할만한 정보를 찾아내고 활용하기 위해 특화된 심리적 적응을 생산”했음을 새롭게 여성 독자층을 확산시키며 부상하는 슬래시 소설의 특징을 통해 주장하고 있는 이 다윈주의자들의 도발적 저술은 생명을 구성하는 문제해결의 진화론의 장치인 적응주의의 해석을 통해 인간 행위의 보편적 메커니즘을 흥미롭고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사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이들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나 입증이 흐지부지 사라지는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가설과 추정을 견고하게 해줄 연구가 완성되지 못한 미완성작이라는 느낌 말이다. 다만 이러한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남녀의 성(性) 선호와 행위의 차이에 대한 사회문화적(문학) 소재와 과학적 접근이라는 측면에서 새롭고 유익한 정보로서 유의미한 저술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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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01-24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리아님의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슬래시 소설'이라는 문학장르도 있었군요. '성선택'을 풀어내는 진화심리학은 언제나 흥미로운데, 찰스 다윈의『종의 기원』이라는 책 속에서도 (동물 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식물들까지 포함하여) 온갖 생명들이 '자손의 번식'을 위해 펼쳐내는 온갖 오묘한 장관들이 정말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는데 생명의 신비로움에 경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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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차이가 성차이의 원인

수컷의 경쟁과 암컷의 선택은 동물계 전체에 보편적이다. 다윈은 이 두 장관을 지적하고 성선택이란 명칭을 붙였지만, 왜 경쟁이 수컷의 몫이고 선택이 암컷의 몫인지에 대해서는 당혹스러워했다. 그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부모 투자 이론이다. 많이 투자하는 성이 선택을 하고 적게 투자하는 성이 경쟁을 한다. 결국 투자의 차이가 성차이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의 모든 것-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 음경, 질, Y염색체, X염색체-은 부차적이다. 수컷들이 경쟁을 하고 암컷들이 선택을 하는 것은, 암컷임을 규정하는 난자에 아주 조금 더 투자한 분량이 그 동물의 나머지 번식 습관들과 곱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몇몇 동물종은 난자와 정자의 초기 투자분의 차이가 역전되어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암컷들이 경쟁을 하고 수컷들이 선택을 한다. 물론 이런 예외들도 투자 이론의 법칙을 입증한다. 몇몇 물고기들은 수컷이 육아낭 속에 새끼를 품는다. 몇몇 새들도 수컷이 알을 품고 새끼를 먹인다. 그런 종들의 경우에는 암컷이 공격적이고 수컷에게 구애를 하며, 수컷이 파트너를 신중하게 고른다.(7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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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리지 효과

새 파트너를 만나면 남성의 성적 욕구가 깨어나는 현상은 유명한 일화 덕분에 쿨리지 효과라고 불린다. 미국의 30대 대통령이었던 캘빈 쿨리지와 그의 아내가 한 농장을 방문하던 중 따로 시찰을 하게 되었다. 닭장을 둘러보던 쿨리지 여사는 수탉이 하루에 몇 번이나 암탉과 관계를 하는지 물었다. "몇 십 번 합니다"라고 안내원이 대답했다. 이번엔 대통령이 닭장을 보고 수탉에 관해 물었다. "매번 같은 암탉과 합니까?" "아닙니다. 각하. 매번 다른 암탉과 합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영부인에게도 그 말을 해주세요"라고 당부했다. 많은 수컷 포유동물들이 교미를 할 때마다 암컷이 바뀌면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과시한다. 실험자가 이전 파트너에게 가면을 씌우거나 냄새를 없애도 속지 않는다. 바꿔 말하자면 이것은 수컷의 욕망이 '무차별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수컷들은 어떤 부류의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가에는 신경 쓰지 않지만, 어느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가에는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다. 이것은 내가 2장에서 관념연합론을 비판할 때 중요하다고 주장했던, 개인과 범주 간의 논리적 구별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예다.

남자들은 수탉 같은 정력을 갖고 있진 않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들의 욕망에서도 쿨리지효과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문화를 포함하여 많은 문화에서 남자들은 아내에 대한 성적 열망이 결혼 후 몇 년 내에 시든다고 보고한다. 남성의 성욕 감퇴를 촉발하는 것은 아내의 외모나 그 밖의 특징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개념이다. 새 파트너에 구미가 당기는 것은, 딸기에 질리면 초콜릿 케이크에 끌리는 경우처럼 다양성이 인생의 양념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예가 아니다.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의 소설〈불운한 녀석 먼저〉에서, 첼름이라는 가상의 마을 출신인 한 숙맥이 여행을 떠나지만 길을 잘못 들어 뜻하지 않게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우연의 일치로 고향 마을과 똑같이 생긴 다른 마을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겹기만 했던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자를 만나 매력을 느끼고 황홀해한다.(723쪽)

-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中에서

필리아 2012-01-24 09:38   좋아요 0 | URL
네, 남성의 포르노그래프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슬래시소설을 여성의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인간의 짝짓기에 내재한 심리적 동기를 진화론으로 풀어낸 책이지요. 친절한 참고문헌과 보충적 인용글들 감사합니다.~~

휘오름 2012-03-09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잘못 아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영화에서 슬래셔 무비 이러면 좀비물같은 잔인하고 파괴성향의 영화를 지칭하는걸로 아는데요 소설에서는 또 다르게 쓰는 모양이군요. 리뷰 잘읽고 또 하나 배워갑니다..^^

필리아 2012-03-09 12:13   좋아요 0 | URL
슬래시 란 문자그대로 ' / ' (slash)를 말하는 것이고요, 이는 커플들을 쓸때 '아무개/아무개'로 표현하는 미국의 관용적인 표기에서 비롯된 것이랍니다. 그래서 연인사이임을 뜻하게 되는데, 이것이 남남커플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기초로해서 연애소설로 변용한 것을 슬래시소설로 부르게 된 계기라 하네요. 미국을 비롯한 유럽사회및 일본에서는 슬래시소설이 나름 정착하고 여성들의 주요 문학장르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