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효율과 수익을 기반으로 한 용어,‘비즈니스’, 순수한 인간의 이기심이외의 모든 동기는 고려할 가치도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시장을 대표할 만한 상징으로 가히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이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오늘, 우리들 사회의 자기이해에 대한 진술인 이 작품의 도덕적 냉소는 반복되는 통증임에도 좀처럼 치유되지가 않는다.
매춘(賣春), 그러니까 봄(몸)을 팔아 돈을 버는 행위이니 분명 비즈니스다. 그러니 봄을 파는 여성은‘비즈니스 우먼’인 게고, 이런 비즈니스 세계에 감상이나 연민과 같은 감각이란 필요 없는 것인데, 상대의 섬세한 동작에 몸이 가늘게 떨려오는 감각은 정말 위험한 신호라 할 것이다. 게다가 신도시 개발에 발군의 능력을 자랑하는‘비즈니스 맨’을 자처하는 국제적 감각의 수완 좋은 시장(市長), 이에 한 몫 하는 교활한 권력자와 자본가인 비즈니스맨들의 부정한 재산을 훔쳐내는 도둑님이라는 비즈니스맨까지 모두 “삶의 유일한 전략”은 비즈니스라고 외친다.

소설은 이처럼 비즈니스 맨, 비즈니스 우먼들만이 가득한 오늘의 세상을 전형적인 천민자본주의의 집약지로 21세기형 꿈의 도시,‘ㅁ市’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민활하고 유능한 사냥꾼들이 모여 사는 신도시와 사냥꾼의 대열에서 추방당하여 인간-쓰레기가 되도록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구도시가 부정적인 신자유주의 소비지향의 시장경제 사회인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식재하고 있다. 폴란드의 저명한 사회학자‘바우만’은 이러한 사회, 즉 작금의 인간사회를「유동하는 세계의 지옥」이라 하였던가! 사냥꾼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사냥감이 되거나 아니면 추방당하거나, 그래서 대열을 이탈하지 않으려고 죽도록 뛰어다니는 경계에 놓인 우리들은 오직 약육강식의 정글 속을 헤쳐 나가는 전사로 양육되고 이 장엄한 비즈니스전략을 세습시키려고 모두들 안달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식의 과외비를 벌기위해 오욕이 가득한 화류항(花柳港)으로 나가는 어미”가 되어야 하는 비열한 세계가 여기 있다. 사법고시에 실패하고 사회의 밑바닥을 욕망이 해제된 채 무기력한 노인처럼 살아가는 남편과 같은 세상을 자신의 아이만큼은 세습시키고 싶지 않다는 열망, 고작 세습되는 천박한 자본 귀족들이 던져주는 조악한 권력과 부를 움켜쥐는 것일 뿐인 그러한 세계를 주겠다고. 너도나도 꿈 같은 소비의 자유를 누리겠다고, 비즈니스의 세계가 마치 유토피아를 담보해주는 양, 사랑도, 연민도, 아니 사람 그 자체까지 상품, 비즈니스 거래의 대상으로 내어주는 모멸과 수치만이 깊은 세상에 몸이 부르르 떨린다.

사랑과 결혼까지 비즈니스인 사회를 당연이라 하는 불온한 세계, 세상의 모든 가치가 오직“자본의 요람에 들어간 세계”, 세상이 이쯤 하니“윤리도 효율성의 보장을 받아야”한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것이다. 돈 많은 속물들, 그리고 부조리한 세상의 덕택으로 권력을 차지한 어설픈 오늘의 귀족들이 짧은 시간에 내면화하지 못한 문화예술이란 것만큼 계급을 구별짓는 수단은 없을 게다. 사진작가라는 그럴듯한 예술의 포장은 천박한 부자와의 원활한 비즈니스, 결혼을 위한 훌륭한 수단이 되어주지만, 결국 비즈니스의 속성이란 그렇듯이 수익과 효율성이 상실되면 버려지는 것 아닌가. 아이의 외국어고 진학을 위한 고액의 과외비를 위해 몸을 파는‘나’의 대학동창인‘주리’의 자기파멸은 비즈니스의 네거티브(negative)한 순환을 그대로 보여준다.

끝 간 데 없는 이 세계에서 화대(花代)로 열악한 가계를 채우는 여인이 있는가하면, 비즈니스 세계의 논리를 수용치 못해 그 사냥꾼의 대열을 이탈한 남자, 신도시의 부자들을 터는 도둑인‘타잔’이 비즈니스세계를 맘껏 유린하며 소설의 축을 구성한다. 게다가 신시가지가 번성할수록 쓰레기 하치와 소각장이 있는 구시가지의 쓰레기는 늘어나는 이 기이한 균형(?)의 현상, 인간쓰레기(잉여인간)가 되었든, 오물이 되었든 21세기형 꿈의 도시라는 ㅁ시(市)의 구시가지는 퇴락한 짐승의 마을로 변해간다. 비즈니스의 세계에 뛰어들지 못하는 순간 더 이상 사냥꾼일 수 없다. 짐승의 마을로 들어가 사냥꾼들의 먹이가 되거나 세상에서 사라지는 길 뿐. 그러나 수완 좋다던 비즈니스맨 시장도, 도둑님 타잔도, 사랑도 비즈니스라는 여인도, 봄을 파는 유부녀인 비즈니스우먼도 결국 이 자기파멸의 욕망을 은폐한 자학과 자조의 언어가 내재한 자기모멸과 자기파괴를 피하지 못한다. 그래 우리들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깊고 깊은 물신적인 시장(市場;market)이란 수렁 속에 빠져 허우적대면서도 비즈니스 순환의 종착이 올 때까지 어리석게도 자각하지 못한다. “여기서 도망쳐야 해!”이 역설적인 비즈니스의 사슬을 끊어내고서야 우리는 모처럼의 평온을 누릴 수 있을 게다. 우리 사회의 낯부끄러운 자괴감, 우매함, 이에 더해 도덕적 불쾌감까지 명민하게 그려낸 역작이다. 자본의 폭력이 난무하는 이 왜곡되고 부정적인 사회의 구조적인 오류는 거듭 반복되어 진술되어야 할 것이다. 자기 꼬리를 잘라먹고 사는 뱀과 같은 사회, 자신이 뜯어먹던 타자성의 마지막 풀까지 먹어치우고는 굶어죽는 이 자본만능의 치명적 결과를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냉정하고 섬세하게 들여다보게 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