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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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들여다보는 일이 한 사람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 104, 나는 얌전히에서

 

이 책은 어두운 구멍에 던져 졌던, 아니 작은 상자에 넣어두었던 고유한 상실과 상처의 기억들 속에서 사랑을, 존재에 대한 연민을 길어 올리는 치유와 회복의 기록이라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고통을 껴안고 걷고 있는, 그것에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알기에, 없음(不在)에서 획득할 수 있었던 마음, 그 돌멩이를 움켜쥔, 불안이 끝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시인을 나는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시인의 그리움과 사랑의 간절함에 울음을 운다.

 


소금물을 끓여 절인 오이지가 맛있다는 말에 손녀를 위해 한 솥 끓는 소금물을 내리다 큰 화상을 입은 할머니, 손톱을 둥글게 잘라주던 아버지, 어린 시인을 돌보았던 두 분의 죽음을 기억하는 그 쓸쓸함이 너무 맑고 깨끗해서 아파 나도 운다.

 

다섯 살, 아홉 살, 열두 살,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외로이 성장해야했던 서러움과 가난, 비뚤어진 성정의 어설픈 어른들의 눈총을 겪어야 했던 외로운 소녀, 불안과 결핍과 부재들이 부과했던 어린 시인의 상처들에 의해 성장한 시인은 그 기억 속 어린 시인을 안아준다.  놀면서도 도망을 가고 가난하고 배고픈 이야기를 하는 기억 속 어린아이가 하던 인형 놀이가 이제 부끄럽지 않다고, 시인은 바로 그것들과 함께 했음을 다행이라 한다. 이 무수한 불안의 요인들이 자신의 성장을 만든 것들이기에 연민과 사랑을 보낼 수 있음을 시인은 알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시인을 이룬 상실과 죽음, 그녀에게서 앗아간 것들을 완전하게 버리기 위해 기억의 심연 속에 흩어진 것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아 그 지독한 슬픔과 상처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엄숙하고도 간절한 치유와 회복의 작업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은 스스로 묻는다.  이토록 지독한 여름은 다 무엇일까요라고, 그리곤 답한다. 줄 곧 그 여름을 나 혼자 묻어두고, 꺼내보고, 또 한 겹 덮어두는 동안, 이 무서운 이야기는 저에게 그냥 사랑이었습니다.“라고.

 

상처를 가득 품고 있는 존재이지만 그것은 그저 슬픔이고 아픔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랑도 있었다는 것을. 시인은 그래서 그 아픔의 모습들과 사랑의 실재들을 되돌아보며 자신을 지켜온 홀로의 힘, 스스로에 대한 사랑에 믿음을 보낸다. 그리고 상실과 죽음으로 잃은 보고 싶은 시인의 영원한 르트루바유(Retrouvailles)인 할머니와 아버지와의 재회와 사랑을 마음에 담는 일, 아마 그것이 곧 시인 자신을 지키는 것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는 일임에 대한 믿음의 기록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의 해맑은 표정을 보는 내 마음이 좋다, 출처: 최지은 시인 인스타그램


모든 고통과 불안과 슬픔으로 구성된 자신을 꼭 안아주는 이야기다. 그럼으로써 조금 더 의연하고 용감해진 사람을 향한 조심스러운 걸음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이시다 센(石田千)이라는 일본 작가는 나그네는 몸에 몇 개의 씨앗을 품은 채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그네가 여행했던 사실조차 잊어갈 무렵, 고향의 정원에서 자그마한 꽃이 핀다고. 시인의 마음 저 깊은 곳 어린이가 겪었던 구멍들과 어둠의 오고감, 그리고 바다가 출렁이고 파도가 또 오고 갈 때 시인의 이해처럼 사랑과 용기와 신뢰의 씨앗들이 지금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일 게다. 나는 이 비밀 아닌 비밀의 책을, 그리고 시인을 그냥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만의 숨을 쉬는 시의 공간을 기대하게 된다. 간절함과 절실함이 담긴 사랑과 용기의 언어들을.  많은 독자들이 시인의 상자 속 언어들과 교감을 나누었으면 정말 좋겠다.

 

어린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어린 내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서로 달라졌다. 틈이 생겨버렸다. 구멍이 생겼고 어둠이 오갔고 바다가 출렁이고 

그 위로 파도가 오고 또 갔다. (...) 나는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됐다.”

-126, 오틸라, 제가 이룬 것을 보세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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