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 소설 문학동네 플레이
김사과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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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을 활용하는 기술에서 자기가 해야 하는 것,

언제 그것을 해야 하고 얼마만큼 해야 하는지를 아는 자는 행복하다.”

- 플라톤 법률에서

 

작가의 호흡에 한 순간에 사로잡혀 홀리게 되는 소설이다. 한 때 수학천재로 불렸지만 프랑스혁명사에 필이 박히면서 문과로 전향한, 그래서 불문학을 전공한 이로아는 학부 동료가 잘나가는 네덜란드계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FWIS에 지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쟁심에 허공에 펀치를 날리듯 지원했는데 합격 통지를 받는다.

 

입사 3개월 만에 한국 지사장 뤼카스 휘스먼의 개인 보조 분석가로 발탁되어 거대조직 FWIS를 위해, 휘스먼의 지도하에 수학적 재능을 유감없이 쥐어짜내며 화려하게 경력을 이어나간다. 즉 삶의 매 순간마다 진심을 다해, 허세가 극에 달한 미치광이처럼 헌신하지만 6년차에 이른 어느 날 새로운 부서로 발령이 나고, 이제 자신으로부터 더 이상 쥐어짤 것이 없어지자 버려진 것임을 깨닫는다.

 

이로아는 프로젝트에 치여 무력감이 몰려 올 때면 사내 정신과 상담의로부터 약을 처방받아 현실과 망상의 경계를 거닐며 시간을 견뎌내 오곤 했다. 그녀는 자신이 초고연봉의 글로벌 노예로 살아왔음을 감지한다. 발칙할 정도로 독아론(獨我論)적 삶을 살아온 소위 잘 나가는 삶의 본질을 알게 된 인물은 다시금 자신이 프랑스혁명사에 대한 덕질 끝에 도달한 깨달음, 자유란 없다, 원래도 없었고, 발명된 적도 없었고, ...., 자유란 완벽한 불가능성, 즉 인간은 전부 노예임을 상기한다. 그래서 독아론적인 인간, 곧 신이자 노예인 자기 삶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휘황찬란한 화려함과 고급 부대시설, 하물며 약 처방대신 대처법으로 쇼핑 중독을 처방하는 그야말로 경제 사정에서 어느 만큼 해방된 환경에 놓여있는 삶을 쫓게 된다.

 


두 백화점의 VIP고객이 된 이로아는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자 소비를 축소하는 대신 돈벌이를 확대하기로 결정하는데, 이 제약없는 사고와 행동에 미묘하게 미끄러지듯 매혹되어 코를 석자는 빠뜨리게 된다. 그녀는 세계 뉴스에 감춰진 시그널을 꿰뚫고 원유 3배 레버리지 ETF에 투자하여 자신의 증권계좌에 찍힌 102억이라는 형이상학적 숫자를 바라본다. 이미 빠져들만큼 충분히 세련된 서사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마치 이미 지나온 이야기들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 본격적 행보를 시작한다.

 

다 잊고 이젠 나도 나 만의 삶을 살아가야겠지

가족으로부터, 회사로부터도 벗어난....”

 

과연 있기는 한지 모르겠지만 자유란 걸 찾기 위해 도달 한 곳, 오직 영원한 여름의 세계”, “오직 느낄 것, 느낌만을 따르고 그것에 복종할 것을 명령하는 듯한 리조트 타운 시타 델 마레(Cita Del Mare)가 펼쳐진다. 기후변화로 열대 지역이 된 제주에 들어선 미국계 호텔 체인의 위용과 금발의 드레드 머리, 올리브 빛 상채, 오렌지색 반바지 수영복과 맨발의 백인 남자 등 과잉의 위선적 부를 전시하듯 돈(money)질을 제법 한 풍경으로 시선을 압도한다.

 

줄거리는 이쯤에서 멈추어야 할 것 같다. 충분히 넘쳐나는 부()가 그저 무심히 배경을 차지하는 가운데 빼어난 생김새와 옷차림의 남녀, 짐짓 예술가인 루마니아인, 우연인지 다시금 모여든 뤼카스와 전 정신과 담당의() 여인까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며 이 낯선 지대에서 펼쳐지는 자본의 제국을 꿈꾸는 인간들, 그리고 그 과잉의 쾌락을 향해 치닫는 군상들의 한 판 게임이 펼쳐진다. 아마 소설의 변곡점이 되는 사건이라면 사건이라 할 이로아에게 나타난 소녀의 유령, 그리고 소녀의 목맨 죽음의 발견은 이로아 주변의 인물들과 얽히고설켜 현실인지 망상인지, 펼쳐지는 몽환적 풍경과 어울려 의심의 지대로, 불편한 진실이라는 이 세계의 지저분한 방종의 현실로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한다.

 

문득 미셸 푸코의 쾌락의 도덕적 문제 설정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인간 욕망이란 본래 잠재적으로 과도한 것으로 이 힘에 어떻게 맞서고, 제어하며 적절한 관리술을 확보하느냐가 바로 도덕적 문제라 설명한 문장이다. 아마 김사과의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어떤 과잉에 대한 절제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배경들 모두, 등장인물들 모두가 그것들을 초과하여 넘치고 있다는 인상이 주는 부도덕함이 지속하여 내 마음을 자극하고 있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지역 공무원인 제주의 일개 국장이란 인물이 몰아대는 호화요트, 그가 소유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고가의 단독 콘도, 그리고 지방권력과 결탁한 거대 자본과 예술의 더러운 유착들의 이면에 가려진 악마적 욕구들이 마치 몽상처럼 흐른다. 신이 된 돈과 쾌락의 무절제함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이 소설은 지금 우리네 사회의 도덕적 문제를 보다 촉진된 지적 사고를 통해 이해할 것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작가는 추악한 인간들을 처치하는 데 보다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바캉스 소설이란 제목처럼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여름날, 아마 많은 독자들을 열광케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가의 모든 작품이 그러하지만 이 작품 또한 단연 올해의 화제작으로 추천한다.

 

자연은 인간 안에다 항시 정해진 목표를 넘어서고자 하는

초과와 과도함이라는 필연적이고 위험한 힘을 심어 놓았다.

여기서 도덕적 문제는 출발한다.”

-미셸 푸코, 성의 역사 2; 쾌락의 활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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