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이름들 - 제3회 박상륭상 수상작
안윤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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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탸의 몸,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카탸의 육체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해묵은 슬픔은 거기에서부터 온다, 희망이 기댈 곳 없는 아름다움....” -46

 

발표되고 조금은 늦게 책으로 출간된 안윤 작가의 이 소설에 앞서 세 편의 단편을 모아 펴낸 방어가 제철을 읽고, 나는 애틋한 그리움의 언어, 왠지 정화된 느낌을 준다고 썼었다. 그리고 가을 잎이 쓸쓸히 나뒹구는 어느 고적한 길을 홀로 거닐 다 저 먼 하늘을 올려다보는 상념이라고 감상을 맺었었다. 이 소설을 2021년 제3회 박상륭상 수상작으로 선정한 심사평에 담긴 웅대한 고독 속에서 우주와 내통하는 듯한 내밀한 결기”, 그것에서 연원하는 내성 깊은 묵묵한 성찰 그것과 유사한 경외감이었을 것이다.


 



소설은 자기 삶의 익숙한 거추장스러운 일부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로 유학했던 의 짧은 기억으로 시작한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의 문학을 사랑하는 할머니 라리사 니칼라예브나의 집에 하숙하며 그의 도움과 배려의 추억들이 흐르고, 2년간의 유학 생활을 접고 귀국한 지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라리사의 영면 소식과 함께 그에 앞서 세상을 떠난 딸의 공책 세 권과 공책에 써진 이야기에 무언가를 해 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가 배달된다. 소설은 그 공책에 써진 글의 형식을 가진다.

 

윤은 낯선 이의 공책에 매달려 한국어로 옮기려 한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반드시 이야기되어야만 하고, 끝내 그것을 둘러싼 비밀을 깨뜨려야만 이야기가 계속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계속된다면 언젠가, 어딘가에, 누군가에 가 닿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고. 그리고 윤은 모든 결핍은 아름다울 자격이 있다.”고 쓴다. 소설은 바로 이 결핍의 아름다움, 살아있는 시간을 성실하게 지워나간 한 인간, ‘나지마 하미롭나 유수포바의 내밀한 심연의 기록이지만, 나는 이 나지마의 자기 응시의 쓰기를 윤의 한국어로의 처절한 옮김, 감응의 기록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읽는다.

 

이야기는 자동차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채 오직 눈만 깜빡거릴 수 있는 카탸라는 여성의 입주 간병인으로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인 쿠르만의 관계를 한 축으로 하면서 나지마자신의 그리움과 고통, 사랑, 그리고 추억, 살아있음을 증명해 줄 절실한 무엇, 온전한 나에 가 닿기 위한 치열한 자기 물음들과 내적 응시로 이루어져 있다.

 

스스로 말 할 수 없으며, 움직일 수 없는 카탸의 몸에 대해 모두에 인용한  희망이 기댈 곳 없는 아름다움은 카탸라는 한 인간에 대한 순수한 감응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지마 자신에게 하는 언어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육체, 그래서 삶의 신비는 우리가 결코 엄밀하고 어긋남 없는 수준의 객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라 그녀는 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나지마는   얼굴도 이름도 없는 그리움, 그 고통의 근원을 찾는다. 이름도 없이 알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버려진 빈칸, 이것은 아이의 유산이 남긴 상실의 고통과 같이하는   끝내 손잡을 수 없을 나의 바깥이며, 내 살아 있음의 유일하고 불온한 증인으로서 도망칠 수 없는 자신의 일부로서의 그리움이다. 존재의 의미와 맥락을 파악치 못하게 하는 채워 넣고 싶은 빈칸, 양성 종양 같은 생명의 지장을 초래하지도 못하는 딱히 쓸모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는 몸의 일부이다.

 

우리는 참 교묘한 존재이다. 우리는 우리의 주변을 에워싸고 끊임없이 맴도는 결코 의식하지 않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존재임을 문득 깨닫곤 한다.  카탸와 그녀의 살아있음에 헌신적인 보살핌을 쏟는 남편 쿠르만을 지키는 나지마는 어쩌면 삶에 대한 가장 깊은 이해를 나누는, 아니 그들은 하나의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는 카탸의 죽음을 보내는 쿠르만의 장례식 준비에 대해 나지마가 쓴 문장에서 조금 오래 시선을 멈추었었다.

 

한 사람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마련된 이 모든 아름다운 것은 생의 편에서,

숨소리라는 배음 위에서 5월의 햇빛을 받으며 한층 더 빛났다.” -158

 

200쪽 남짓을 가득 채운 삶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살아있음의 자각에 이르는 이 증언들은 나지마가 만드는   슬퍼질 정도로 완벽한 사과파이의 냄새처럼, 공기라는 행간과 기억이라는 운율이 만나는 살아감, 그것에서 한 편의 시를 맡듯, 시적 향기가 그득하다. 내 어수룩한 언어로 섬세하고 밀도 높은 이 생의 기록들을 더 이상 쓴다는 것은 아마 어쭙잖은 일이 되기 십상일 것만 같다. 나지마는 체념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희망,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건 체념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일상에 푸른 잎을 내보이는 희망이라고 쓴다.

 

현재야말로 지난날의 암시라는 것을, 바로 지금의 내가 삶의 증거임을 깨닫는 나지마의 내적 외침은 그야말로 인간 생에 대한 지극한 헌사일 것이다.   나는 나를 다시 체험하고 싶다. 나를 줍고 싶다.”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삶의 흐름을 앗아가 버리는, 수시로 내습하는 시간의 단절을 느끼는 고독의 세계로 내던져질 때 아마 떠올려질 신비의 문장이 될 것만 같다.  작가 안윤은 은둔해있는 존재의 비밀을 드러내어 그 자체의 빛을 가리킨다. 슬프지만, 원망스럽지만, 사과파이 냄새처럼 현재하는 생의 의미에 대해서


여기에 사족을 덧붙인다면 철학자 '페터 비에리'의 삶의 격 첫 문장을 인용하련다.  이 소설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중요한 여러 경험의 결함과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이해 가능한 빛을 비추려는 시도, 즉 인간 삶에 관한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물음에 대한 한 인간의 치열한 답변의 시도라 해도 결코 과장된 수사가 아닐 것이다. 오랜 만에 접하는 한국 문학의 수작(秀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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