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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과 나의 사막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3
천선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0월
평점 :
“감정은 교류야, 흐르는 거야. 옮겨지는 거고, 오해하는 거야.” - 133쪽
상징과 은유와 대유(代喩)가 더욱 짙게 바로 지금 현실의 삶에 덧 씌워지는 느낌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위의 인용 문장은 살아 움직이는 존재들의 실체적 대면의 감정에 대한 것이지만, 오늘 SNS상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이 하는 행위, 실체를 은폐한 익명의 존재들이 가상공간에서 벌이는 위조된 감각과 표면적으로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지닌 의미를 착각한다. 소통과 연대감, 공감의 세계가 만개했다고.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쪽을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이 만개했다는 사회연결망은 그 위조된 형태만큼이나 쩍쩍 갈라진 메마른 감정, 공허함만이 휘몰아친다. 혐오, 갈등, 고립의 세계, 감정이 증발한 무관심과 공감 없는 세계만을 여실히 드러낼 뿐이다. 이러한 현실 세계의 대유일까? 소설의 배경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간 존재들의 막이 내리는 시대’, 자신들의 탐욕에 삼켜져 버려 미생물조차 드물어진 황폐한 사막의 행성이 된 49세기의 지구다. 여기에 29세기, 전쟁의 시대에 만들어졌으나 모래사막에 파묻힌 채 2000년의 시간이 흐른 뒤 열한 살짜리 인간 ‘랑’에 의해 발견되어 다시 깨어난 로봇 ‘고고’가 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얄궂기 그지없다. “랑의 엔진이 꺼졌다. 아니, 심장이다. 인간은 엔진을 심장이라 부른다.” 고고에게 세상을 알려준 보호자이자 스승이며 친구, 즉 유일한 목적이었던 인간의 죽음, 그 상실로부터 출발한다. 랑을 사막의 구덩이에 묻는 의식(儀式)을 행하고, 더 이상 목적을 지닐 수 없게 된 존재의 새로운 목적, 존재의 의미를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 엔진과 심장, 이 분별이 지닌 의미의 경계는 분명한 것인가? 아니 감정이라곤 스며들 여지없어 보이는 존재에게도 그리움, 사랑, 공감의 존재로 변화가 가능한 것인지를 묻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 변화가 가능한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고고는 저장되어 있던 과거의 장면을 통해 랑의 얼굴과 표정, 그와 나눈 대화들과 그 것에 어우러진 몸짓, 행위들을 만나곤 한다. 우리는 타자의 얼굴을 얼마나 가까이 응시하고 있을까? “랑의 화난 얼굴. 만지고 싶다.(13쪽)”, 일찌감치 로봇 고고의 이 감각적 표현에서 그리움을 읽게 된다. 그런데, 이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화난얼굴조차 만지고 싶은 감정, ‘사랑’을 전제로 하는 느낌이다. 느닷없이 기억 장치가 멋대로 과거를 재생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을 고고는 로봇인 자신의 어찌할 수 없는 오류로 이해하려하지만 그것이 마치 그리움 같아서 흉내 내고 싶어 한다.
아마 고고의 사막을 걷는 여정은 이 불현듯 재생되는 랑과 함께 했던 장면들이 그에게 전해진 의미의 해석이며,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존재들, 사건들과의 마주침에서 깨우치게 되는 새로운 이해, 변화의 시간이자 의미 획득의 공간일 것이다. 로봇은 랑과 나눈 대화를 복기한다. “감정에는 효율을 따질 수 없다. 따져서는 안 된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또한 “거치지 않은 감정은 지나가는 게 아니라 몸에 쌓인다.”고. 그러나 로봇은 이러한 인간의 감정을 의도이자 해석의 대상이 아닌 마음의 움직임으로 이해하는 것에 동화되지 못하고, 그런 자신에 의문을 지닌다.
이들 대화 중에서 사막에 대한 그림과 사진의 정의는 아마 이 서사의 궁극적 언어일 것이다. 감정인 그림과 의도인 사진, 불가능의 가능으로의 변화에 대한 어떤 기대, 희망, 구원을 향한 발걸음이 될 것을. 랑을 함께 묻었던 지카가 들려준 ‘과거로 가는 땅’, 멈추지 않는 돌풍의 시작점이 있는 드카르가 언덕 너머를 향한 걸음, 인간들이 만들어낸 헛된 희망 같은 곳, 인간을 이끄는 알 수 없는 희망의 길, 마음의 목적지를 향해서.
이 여정은 상실한 이들이 밟는 애도의 통과 의례를 닮아있다. 고고는 한 걸음 씩 사막의 존재자들, 그리고 사태를 만나면서 그 어떤 호소력도 무력화시키는 인간의 믿음을 지켜보고,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닌 행위’라며 자신의 조물주를 기다리는 존재에게 절망의 실체를 은닉하며, 낭설의 땅, 인간의 헛된 희망으로 만들어졌을 확률이 더 높은 땅, 랑이 기다리고 있을 과거의 땅으로 향한 걸음을 지속한다. 어쩌면 합리성을 거부하며 0.01퍼센트의 확률을 따르는 고고의 이 여정에서 이미 그가 자신의 판단 오류라 여기는 그것이 마음이고 감정임을, 자신이 바로 감정을 지닌 존재임을 부정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가 죽은 이후 평온하던 랑을 갑자기 펑펑 울게 만드는 버튼이 내게도 있을까 봐 ...내가 무서웠고 두려웠다.(105쪽)”는 문장에서부터 “기다려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이 이상함을 계속 이상한 채로 품어야 한다는 것까지 전부 끈적하게 등에 달라붙는다. 낯선 감각이 든다.... 형용할 수 없는 응어리가 오색 빛깔로 내 속을 휘젓고 다니는 것만 같다.(111쪽)”는 문장처럼 고고는 이 감정을 자기의 것으로 인정하는 데 주춤거린다.
이윽고 한 팔이 없어 거대한 폭풍이 머금은 물기가 스며들어 자신이 파괴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드카르가의 검은 벽’, 커다란 절벽처럼 서있는 폭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 그리고 그 두려움 속에서 “눈을 감고 걸어봐. 고고, 나처럼. ... 춤추면서 간다고 생각하자.”는 랑과의 대화를 되새기는 장면은 이어질 최후의 장면과 함께 메마른 내 마음에 깊은 파문을 일으킨다.
고고가 밟는 통과의례의 마지막 시공(時空)인 사막에 있을 수 없는 흔들리는 잎사귀가 있는 거대한 나무가 있는 곳, 수천 년간 인간의 행위를 지켜봐 온 외계행성으로부터 온 살리와의 만남으로부터, 부정하던 자신의 오류, 그것은 감정 중 가장 시효가 긴 그리움이란 것을, 느끼고 공감하는 자연스러운 그것이 바로 감정임을 받아들인다. 고고는 살리의 도움으로 망가지는 자신의 몸을 지니고 그 “망가짐이 끝내는 시간이 붙잡을 수 없는 영역으로 갈 것”임을 알면서도 랑을 만나기 위해, 그에게 자신이 걸어 온 사막에 대해 말하기 위해 ‘과거로 가는 홀‘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은 속울음이 터져 나오는 감동으로 새겨진다.
한 존재의 떨쳐지지 않는 상실에 대한 애도의 지난한 통과의례이자, 자기감정에 대한 진솔한 승인에 이르는 성장의 이야기이도 하며, 인간을 철저하게 배제시키는 오늘의 삭막하게 메마른 인간 감정에 대한 환기의 각성이기도 하다. 또한 로봇을 비롯한 타자에 대한 구별, 그 범주화의 경계란 것이 얼마나 인간적인, 자의적인 것인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이기도 한 이 작품은 이처럼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시각에서 읽도록 하는 소설이다.
작가의 말처럼 삶의 목적을 잃었을 때 우리들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게 하는 힘은 무엇인지를 생각게 하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오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실행케 하는 일견 무모해 보이는 행위일 수도 있으며, 고집스런 믿음이기도 할 것이고, 고고의 여정처럼 사랑과 그리움, 공감이라는 감정의 발견이기도 할 것이다. 어둠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과거로 가는 홀에 발을 딛을 때 “고고, 너는 랑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거야! 네 마음은 진짜야!”라는 살리의 목소리는 아마 그가 선택한 소멸,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를 향한 최고의 찬미였을 것이다. 거센 사막 폭풍조차 적막한 소리로, 그리고 잔잔하게 들려지는 랑과의 추억 속의 대화들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게 전해져오는 그리움의 간절함은 작품 속으로 독자를 깊고 한없이 빨려 들어가게 한다. 잠시 이 사랑의 이야기에 멈추어 있으련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 현대문학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