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지성, 홍루몽과 만나다 - 무한한 정과 무상한 생의 이야기 감성(감이당 대중지성) 시리즈 2
김희진 지음 / 북드라망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 사대명저중 하나인 홍루몽(紅樓夢)은 그 양적 방대함이 독자에게 부담스런 장벽이기도 하지만 책장을 줄기차게 넘겨도 어떤 변화를 체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세밀하고 시시콜콜한 일상의 반복이 주는 지루함을 견뎌내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결국 손에 들었다가 놓기를 반복하지만 이내 책장에 다시 밀어넣고 존재를 잊기 일쑤다.  그럼에도 많은 인문학 저술들과 에세이 이곳저곳에서 홍루몽의 한 구절이나 등장인물의 인용을 발견하면 다시금 아쉬움이 마음을 어지럽히곤 했다.

 

궁여지책 끝에 이 작품이 대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읽어내야 할 지에 대한 일종의 조언을 우선 참고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전업주부인 저자 김희진의 3년여에 걸친 지난한 공부 결실인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바로 읽기를 포기하게 했던 그 지나치게 반복적이어서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하였던 일상의 묘사들이 그려내는 10 여년의 시간, 그 축적된 세월을 감지하는 것이 곧 이 작품의 읽기라는 지적에 내 어두운 인지능력이 깨어났다고 해야겠다.

 

홍루몽(紅樓夢)의 원저자인 조설근(趙雪芹)’은 증조부 부터 3대에 걸쳐 청()조 강남의 경제를 주름잡는 관직(강녕직조)을 세습하던 명문가의 자손이다.  달이 차면 이울 듯이 가문의 몰락과 함께 조설근은 빈한한 삶을 살았던 모양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소설은 다분히 자전적 작품이라는 추정을 빗겨갈 수 없다. 그러나 조설근은 이 작품은 가짜(假語) 이야기, 즉 허구라 말했다. 저자 김희진이 설명하듯 조설근의 진심은 가짜 이야기를 통해서만 전달 될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납득할만한 서사를 구성하고자 하는 욕망으로서의 글쓰기였다고 독해한다. 허구의 의미에 대한 현학적인 썰까지 푸는 것은 여기서 멈추는 것이 온당할 것 같다.

 

대중지성, 홍루몽과 만나다120회 차에 걸친 장편소설 홍루몽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어떻게 읽어야 할 지에 대한 충분한 동기를 유발할 만큼 원작에 포진한 무진장한 의미들의 세계를 발굴해내어 생각의 길을 보여준다. 아마 이 책을 읽다 보면 절로 홍루몽원작 독서의 욕망이 부푸는 설렘을 물리치기 어려워질 것이라 단언하게 된다.  사랑, 무상성, 시작과 끝을 가진 삶의 필연성, 부귀영화와 몰락, 일상에 드리워진 삶의 그림자, 그리고 세상의 이해를 향한 새로운 삶의 형태의 모색, 인연과 우정에 이르기까지 소설에 박혀있는 그 다채로운 주제들을 꼼꼼하게 읽어내어 안내해주는 까닭이다.

 

소설은 보옥(寶玉)이라는 10대 소년의 성장기를 축으로 그의 성년기까지 10 여년의 시간으로 펼쳐진 일상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의 섬세한 기억의 기술이며, 원저자 조설근 자신의 경험처럼 '가부'라는 명문거족(名門巨族)의 흥망성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가부 집안에는 하나의 마을이라 할 만큼 거대한 정원인 대관원이 있으며, 이 정원은 평등한 자매의 공간이며, 남성들의 출입이 제한되어 오직 여자들만이 어울리는,  그 어떠한 가부의 위계질서도 미치지 않는 독립된 장소라는 것이다.  아마 원작자의 여성에 대한 연민, 그 고통에 대한 공감의 정밀성을 위한 필수적인 배경이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유일한 청일점인 이 가문의 장손인 보옥이 있다.  보옥이란 아이는 인간 세상의 즐거움을 맛보고 싶어 조르고 졸라 이 세상에 태어난 신선계를 노닐던 신영지사라는 존재다. 그러하니 이 아이에게 매일의 어떤 일상도 똑같게 느껴질 수 없다.  모든 하루가 그에게는 선물이다.  그런데 주인공인 보옥이는 대관원을 비롯한 무수히 등장하는 여인들의 중심이 결코 아니다.  소녀들 사이를 유영하며 그녀들의 면면을 관찰하는 움직이는 관찰자라는 점이다.


 



그가 바라보는  매일의 작은 차이가 쌓이며 삶의 숫한 굴곡들과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 미세한 시간의 흐름 속에 수많은 사건들이 교차하며 모순같은 삶의 사건들이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급작스레 현재로 드러나는 모습에 독자들은 현기증나는 삶의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그 지루한 반복의 시간 속에서 문득 새로운 안목이 선사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고전 중에서 가장 여성성이 넘치는 텍스트라고 한다. 하여, 보옥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여인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등장한다. 보옥을 따라 이생에 환생한 대옥의 사랑에서부터 기울어가는 가문의 틀을 다시 새우려는 보옥의 아내가 된 보차, 주종(主從)의 위계가 존재치 않는 보옥과 시녀들의 천진난만한 사랑의 이야기 등이 규중 여성들의 일상적 리듬과 함께 그 동선과 시선을 따라가며 섬세한 시간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한다.  그리곤 독자들에게 그 리듬 속에서 하나의 선명한 사건이 뚜렷이 솟아 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바로 시간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끝난 다음 돌아보니 그것은 한 가문의 흥망성쇠이고, 생명 존재의 무상성이기도하며, 우주와 연결된 생명의 기운에 대한 알아차림이고,  터럭 한 올의 인연이 맺어 준 우정이라는 값진 보배이다. 또한 움직이는 관찰자의 시선에 포착되는 것들은 닫힌 경계의 삶에서는 알아보지 못하던 것들이 바깥에서는 얼마나 쉬운 해결이 존재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새로운 삶의 탈주라는 단순한 진리의 깨우침이며, 삶이란 어떻게 인식되고 살아야 하는 것인 지에 대한 각성이기도 하다.

 

가부의 딸인 보옥의 누이가 황제의 첩이되어 원춘 귀비라는 귀인으로 친가 방문이 예정되자 꾸며진 것이 대관원이다.  그 화려함과 크기는 황족의 일원을 맞이하기 위한 가부의 기쁨이다.  그런데 저자는 부귀영화가 극대화된 가부의 영예의 장면에서 역전을 읽는다.  밤에 도착한 귀비의 행차를 밝히는 드넓은 대관원 조명의 화려함과 밤이라는 어둠의 대비이다.  화려함은 어둠으로 완성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번영하는 것은 언제나 폭력을 수반하고 그 사이에서 불만이 싹트며, 그 순간에 균열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고.  성대해질 때 쇠락을 염려하여 가득 차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마음을 우리들은 항상 잊어버린다. 그리곤 결코 역전이란 자신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듯 거들먹거리는 우매한 교만이 세상을 고통에 빠뜨리곤 한다.

 

저자가 알려주는 이 소설의 구조가 지닌 치밀성은 원저자 조설근이 이 작품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즉 총 120회 차로 구성된 소설은 어느 기점부터 접혀서 되돌아오는 대칭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5회 차에 미망(迷妄)이 서술되면 115회 차에는 깨달음의 이야기가 나오고,  101~102회 차에 귀신 쫓는 굿이 등장하면,  17~18회 차에 환희에 찬 대관원 낙성의 성대함이 나오는 것처럼 흥과 망, 모임과 흩어짐, 생과 멸이 순환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소설은 서사의 내용 뿐 아니라 구조적 배치까지, 그리고 현실과 그 경계를 오가며 한낱 꿈같기만 한 인생을 되살피게 한다.

 

소설 한 편에 세상을 다 담을 수 없다는 말이 있지만, 어쩌면 조설근은 한 줌 먼지에 불과한 세계를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모두 담아내려 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 세계의 모순과 다양성을 무수히 그려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엄청난 인간들이 등장하고 저마다의 인간을 연기한다. 이 책을 읽고나면, 끝이라는 것, 무상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삶의 소중함과 즐거움과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깊은 깨달음으로 침잠하게 한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끝과 함께 시작된다는 소설이 관통하는 역설적 통찰,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그 소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조설근이 살려낸 그녀들의 세계로, 소설 홍루몽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등대지기 2022-07-16 2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홍루몽! 고등학교 때 공부하기 싫어서 읽었었는데 ㅋㅋㅋ 반갑네요
홍루몽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

필리아 2022-07-16 23:30   좋아요 1 | URL
천천히 저자의 독해를 음미하면서 원작을 읽어 나가야겠어요. 지루함을 견디는 도움이 되어줄 것 같네요. 댓글 고맙습니다.~~

꼬마요정 2022-07-16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옥은 사실 물의 성질이라 여성성의 구현으로 보고 읽어야 한다고 들었어요. 필리아님 글 읽으니 과연 그렇군요. 저는 완역본은 못 읽고 축약본만 봤는데 무척이나 허무했어요. 지금 읽으면 또 다를 수도 있겠네요. 리뷰 기대할게요^^

필리아 2022-07-17 10:05   좋아요 1 | URL
네, 보옥에게는 권위주의적 남성적 신체가 없다고 합니다. 보옥은 권위와 폭력의 세계를 싫어하지요. 그래서 그는 깊은 사랑을 하지만 소유와 지배를 알지 못합니다. 당대의 여성성에 코드가 맞추어진 존재랍니다. 이제 1권을 펼치려고 합니다. 전권을 모두 읽게 될지는 알 수가 없네요. 꼬마요정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휴일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