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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종말, 그 너머의 세계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미즈노 가즈오 지음, 김정연 옮김 / 테이크원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1. 며칠 전 인터넷에서 「한은 기준금리 동결... 」이라는 기사를 봤다. 신정부 출범 이후로 주가 및 부동산 가격도 상승세를 타고 있고,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도 높은 편이지만, 여전히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낙관하긴 이르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유럽중앙은행, 연준, 일본은행 등도 최근까지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을 보면 - 심지어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다 - 여전히 전 세계는 저금리/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참고로 신문기사의 마지막에는 선진국 주도의 글로벌 긴축(양적완화 축소)과 미국 기준금리와의 역전을 통한 자금 유출을 고려한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가계 부채 부담 및 성장세 등을 고려해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기준 금리 동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 지난 주말에는 일본의 경제전문가 두 분이 지은 <자본주의의 종말, 그 너머의 세계>라는 책을 읽었다. 둘 다 국제금융계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고, 대장성, 내각부 등에서 일했다고 한다. (참고로 일본 대장성은 재무 관련 총괄부서로 현재는 재무성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일본 내각부는 경제 기획청 및 북방영토 + 오키나와 개발 + 황실 + 영전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들은 자본주의의 역사, 특히 서구가 중심이 된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를 살펴보고,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며, 앞으로 일본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3.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는 수집의 역사이며, 이제는 저성장 + 저금리가 일반화된 포스트모던 시기에 접근했다고 보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먼저, 현대 자본주의사부터 간단히 정리해 보자. 1,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했지만 1971년 8월 1일,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 정지 선언을 통해 첫 번째 위기를 맞게 된다. 그 이후, 오일 쇼크와 베트남전 패배 등으로 굳건했던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에 균열이 생기게 되고, 결국 1985년 9월 22일 플라자 합의에 이르게 된다. 이때가 바로 일본이 겪게 되는 잃어버린 20년의 시발점이 되고.
4. 그 이후의 사건들은 1991년 소련의 해체, 1994년 멕시코 통화위기,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 1998년 러시아 위기, 그리고 2001년 9.11테러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등이 있다, 이처럼 세계 경제와 금융에 지속적인 타격을 주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게 되는데, 저자들은 이를 예상외 시대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이는 서구의 수집의 역사가 식민지 개척을 지나 실물 투자 공간이 모두 사라지자, 전자 + 금융 공간을 개척(?) 해 보다 높은 레버리지를 추구한 결과라고 말한다.
5. 과거 비잔틴 제국과 로마 제국에 위기가 온 다음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바로 초저금리였다고 한다. 더 이상 투자 수단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만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지속적으로 식민지를 만들면서, 공간 혁명(그들이 주장하는 신대륙 발견)을 이룩했고, 이제는 전자+금융공간으로 눈을 돌려 새로운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매매회전율을 높이는 등의 과거 전략 답습을 아직까지도 계속하고 있다는 게 바로 저자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건 이제 한계점에 다다랐고.
6. 수집하는 사람(중심)이 만든 시스템에는 반드시 수집되는 사람(주변)이 있다고 한다. 문득 영화 <주피터 어센딩>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는 서구 중심의 기술 만능주의를 떠오르게 하는 개념이다. 저자들은 이 같은 기술진보와 규제 개혁만을 외치는 ONLY 성장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저성장이라는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중산층의 붕괴와 자본주의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수많은 비인간적인 사건들도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7. 재미있는 분석도 하나 있다. 바로, 자본 스톡이 과잉/포만/과다 상태에 있고, 더 이상의 신규 투자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어쩌면 현재 우리가 바람직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라고 말이다. 저자들은 일본은 이미 투자할 필요가 없는 사회라고 말하며, 이 경우 기업이 낳는 부가가치는 자본 유지비인 고정자본 감모와 고용자에게 지불하는 임금으로만 분배되면 된다고 말한다. (GDP 상승에만 목숨을 걸고 있는 성장주의자가 들으면 깜짝 놀랄 주장이겠지만) 어쩌면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기본 소득에 대한 논쟁, 이전에 있었던 무상급식에 대한 논쟁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배경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어서가 아닐까란 생각도 했다.
8. 전 세계가 프런티어를 상실한 이때, 더 이상 고속 성장 만능주의는 정답이 아니다. 관용성과 슬로 라이프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지역 중심 경제가 필요하며, 고용자 소득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 일부 사람들이 정신 승리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는 현재에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다만, 취업을 위한 인문학 1주일 코스.. 뭐 이런 걸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저자들이 주장하는 솔루션들이다.
9. 피케티는 20세기 최대 발명이 중산층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적으로 중산층은 사라지고, 극소수의 부자(일반적인 통계에서는 보이지조차 않는...)와 나머지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저자 중의 한 사람인 미즈노 가즈오는 정신적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21세기의 셰익스피어나 홉스가 될 수 있는 기회의 시기라고 말한다. 저성장 패러다임은 단순히 신문의 경제성장률 곡선 그 이상의 사회적 현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