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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조킹의 드로잉노트
민조킹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1. 후배가 공연 표가 있다고 같이 가보자고 했다. 나도 좋다고 했다. 공연 제목은
<지휘자 금난새의 베토벤 심포니 사이클 -
운명>. 덕분에 오랜만에 부산문화회관에 갔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거의 십여 년 만이다. 유엔묘지 근처, 대연역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건 알겠는데, 정확한 길은 기억나질 않는다. 네이버 지도, 아니
카카오 맵으로 검색해보니 다행히도 버스 한 대가 간다. 대학교 다닐 때 자주 타던 버스다. 그 버스가 여기도 왔다 갔구나란 생각을 잠시 했다.
석포 초등학교 앞에서 내려서 골목길을 올라갔다. 근처의 풍경이 익숙하다. 가게들은 좀 더 세련되게, 요즘 스타일로 바뀐 것 같기도 하다.
모퉁이를 돌아, 바로 앞의 언덕에 문화회관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2. 잠들기 전에
<민조킹의 드로잉 노트>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인 민조킹은 '취미로 그리던 때의 그림들은 정돈되어 있지는 않지만, 날 것의 느낌이
난다.'라고 말하며 책의 서문을 여는데, 이 문구가 참 와닿았다.
그녀는 무작정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드로잉 클래스를 찾아가, 그곳에서 그림을 배웠고, 팔 개월이 지난 뒤부터는 퇴근 후, 혼자서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려 그림을 공유했고, 독립 출판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3. 그녀는 야그림, 야한 것을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조금 낯설 수도 있지만, 실제로 작품을
찾아보면 야하다기보다는 기발하고, 재미있는 작품들로 넘쳐난다.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적정 수위를 지키면서도, 남녀의 성생활을 재미있고
솔직하게 표현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4. 책의 앞부분에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초보자들에게 필요한 기초 지식이 가득 담겨 있다.
100그램 이상의 도톰한 종이, 밑그림을 그린 후 위에다 따라 그릴 때 필요한 워터프루프 펜, 라인 드로잉에 필요한 크레타 칼라 연필 콩테,
그리고 미술용품점 추천까지...
5. 그다음부터는 본격적인 그림 그리기 시간이다. 왼쪽의 그림을 따라 그릴 수 있도록, 오른쪽
페이지는 비워져 있는데, 고민하지 말고 과감하게 그리면 된다. 아, 물론 뒤쪽으로 가면 약간 수위가 있는 그림들도 있으니 조심(?) 해야 한다.
멋모르고 - 카페나 광장과 같은 - 밖에서 따라 그리다가는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
6.
나이브 미술(naive art)이란 게 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화단과도 별 관계없이 이른바 문명적인 세련된 기교와도 담을 쌓은
채, 기교 이전의 순수한 즐거움과 충동적 본능으로, 자연발생적인 소박함과 치졸함, 특이한 시각, 그리고 양식화의 특징을 보이는
예술을 의미하는데, 프랑스의 중견 작가인 알랭 토마나 미국의 모지스
할머니를 대표적인 작가로 들 수 있다. 문득 든 생각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민조킹의 그림 역시 이런 범주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또 기존의 엘리트주의가 아닌, 솔직하면서도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나이브 아트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어렵고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미술관의
그림들이 조금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