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저녁이 왔다 오후시선 1
복효근 지음, 유운선 사진 / 역락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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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가 시인의 집에 둥지를 틀었다. 담벼락 앞에 나무를 심으려 구덩이 파려는데 박새 부부가 달겨든다. “네 집이기도 하지만 내 집이기도 하다 점유권을 주장한다” 그러자 시인은 ”나무 심기를 포기하고 이 봄을 저 박새부부에게 맡기기로 하는데“, 그러고는 ”어라, 그래 그으래! 이 어처구니없는 침탈로 내 것이라고 부를 게 아무것도 없는, 빼앗겨서 즐거운“ 마음이 된다.
우기지 않고 깃드는 마음. 그것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말에 탄환을 얹으면
누군가 어딘가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질 수도 있다” 101
사랑도 당연히 사랑하는 나만큼 받을 그도 생각해야지.

그렇게 잔잔히 흘러가는 것이다. 사랑도 삶도.

“아니 그냥….
그래, 지금 그냥이라는 말보다 적절한 말은 지상에 없을 것 같다
열 손톱에 물든 봉숭아꽃물처럼
희망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절망도 좌절도 이 즈음에는 서로 같은 표정 같은 빛깔
왜 사느냐 물어도
당신 나 사랑해 물어도 그냥” 85

야생


설악산 여행 기념으로 다들 하나씩 사들고 오던
천연기념물 에델바이스 압화
몽골 초원엔 에델바이스 널려있다

뿐이랴 온갖 야생화가 융단이다
염소가 뜯거나
말똥에 깔려 피기도 한다

간절한 것들이 염소똥처럼 널려있을 때
세상이 갑자기 맹물처럼 싱거워지기도 한다

마유주를 따라주는 여자에게
야생화 지천으로 피어있어 행복하겠어요 했더니
관광용으로 말하면, 행복해요
솔직하게 말하면, 피는지 지는지도 몰라요 한다

행복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산단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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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유기, 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
이병헌 지음, 김태희 외 옮김 / 빈빈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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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다.
1914년에 망국 조선의 유학자가 중국 여행을 하고 남긴 글이다.
여행의 시작은

“아, 나는 풍파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집에 있으면 근심만 깊어지니 어떻게 하면 마음을 가눌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루아침에 몸을 떨치고 일어나 중국으로 유람을 떠났다. 다녀온 여정이 수만 리에 이른다. <시경>에는 ”말에 멍에 씌우고 길을 떠나 나의 근심 풀어보리라“라는 시가 있다. 이 시를 지은 사람에게 유람이란 고작 집을 나서 교외에 가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쌓인 근심은 교외에 이르면 다 털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근심은 집을 떠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내 나라를 벗어나 다른 나라에 갈 정도는 되어야 했으니, <시경>의 시인과 비교해도 고생이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1

수많은 선인들이 직면한 망국과 그 답답함 때문이다.
그 활로가 중국 ‘여행’인 경우는 처음 보는 듯하다. 여러 가지 길의 항일 독립 투쟁이거나 관망, 아랑곳없는 일신 영달의 길은 보았지만.

자못 궁금한 사람의 궁금한 여행이다.
아주 꽉 막힌 중화주의자는 아니었다.

“명나라가 조선을 구원해 준 의리는 비록 잊을 수 없지만,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우대해 준 것이 과연 명나라에 미치지 못한 것인가? 더구나 지난날 명나라를 숭상하고 청나라를 배척한 사람들은 오만하게도 존화양이를 구실로 삼아 거만하게 도포를 휘날리고 상투를 틀고서 ”천하에 나 같은 사람이 아니면 모두가 금수다“ 라고 말했다. 가령 도포를 입고 상투를 튼 것이 백성들의 삶을 위한 가장 큰 의리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복식을 보존하고 우리의 상투를 지켜왔던 것은 청나라가 그것을 관용해서 그런 것이지, 우리가 스스로 보존하고 지켜온 것은 아니었다.
남한산성에서 항복하던 날에 청나라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변발을 강요하고 복식을 바꾸게 하려고 했다면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청나라가 중국 민족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었고 우리나라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었겠는가.“ 38-39

여정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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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서정시학 시인선 146
오인태 지음 / 서정시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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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들을 모았다.
복효근의 찬사는 좀 과하고,
“이번 시집의 시는 과감한 생략과 고밀도의 압축으로 더욱 짧아졌다. 일체의 췌언을 걷어내니 ˝심장을 꿰뚫는˝ 언어의 사리만 남았다. 촌철살인이다. 침 몇 개로 경혈을 짚어 통점을 다스리는 명의처럼, 절제된 언어로 진정성을 소환해내는 시인의 통찰이 빛을 발한다.“

대체로 재기발랄하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실은 또, 살아지는 것“ 95. 일몰

“그, 달동네 공동화장실 앞에서 꼬며, 타며, 줄서 본 사 람은 알리” 70. 똥줄이 탄다는 말

“워따메 요거시 먼나무간디 엄동시한에 요로코롬 허벌나게 붉어터져부렀당가?” 43. 먼나무

“뜨다가,
/뜨겠지.” 33. 한 술의 생애

맘에 드는 구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 말대로

“맨날 주둥아리로 시를 나불대니
/심장을 뚫는 시 한 편 못 쏘지” 40. 시발시발

전율하고 탄식하지는 못했다.




그 많은 탱자나무 가시가 그 많은 탱자를 상처 하나 내지 않고 품고 있다니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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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저녁이 왔다 오후시선 1
복효근 지음, 유운선 사진 / 역락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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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은 없어도 좋았다

“논에 물 가두자 깜깜한 어둠 속에 개구리 떼로 운다
짝을 부르는 소리일 텐데
운다고 한다

맞다
울음으로 부르지 않는다면 어찌 사랑이랴

나 여기 있다고 운다
천 년 뒤에도 너랑 나 여기 있고 싶다고
천 년 전에도 울었던 울음

이 세상에서 너와 내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이따금 울었다는 것뿐*이라고

개구리 운다
개구리이어서 개구리는 개구리로 울음 운다

한 철 울다 가는 것이 어디 개구리뿐이랴
풀잎에 맺힌 달의 눈물로도
오늘밤 논물은 더욱 불었겠다”
27 - 울음에 대하여 *알프레드 드 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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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샘 -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며 벗이다
황운연 지음 / 흔들의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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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들꽃 따라 인문 기행’이라 씌어 있는데,
인문은 거의 없다. 식생 중심이다.

저자가 2년간 480km 걸으며 만나고 기록한 375종의 식물을 담았다. 제주도, 울릉도, 곰배령 등의 야생이나 도시 속 풀꽃도 아울러 담았다.
잔잔히 따라 읽는 즐거움이 있다.

옥에 티
아래 이미지에 있는 꽃은 나팔꽃이 아니다. 둥근잎미국나팔꽃이거나 둥근잎나팔꽃이다. 꽃 빛깔과 잎과 꽃의 크기를 보면 전자일 가능성이 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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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08-30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팔꽃이라고 알고 있는 꽃들 종류가 정말 많더라고요.
찾아보기 전엔 잘 모르겠어요.
이책은 저도 탐 나는걸요.

dalgial 2023-08-30 19:14   좋아요 0 | URL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함 훑어 보셔요~~
나팔꽃은 우선 잎을 유심히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