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
김용만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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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언어로 지은 집이라서, 본래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 글이 어떻게 손에 잡히겠는가. 그래서, 농촌을 읊고 노동을 읊는 시들에서 물론 시인은 농촌과 노동의 숭고함과 소중함을 읊겠으나 이물감을 어쩌지 못한다.

그런데.
이 시집은 물질이다. ‘달뜬 첫눈‘이 보이고, 아버지의 영어사전 뜯어 만 담배에서 침 냄새가 나고, ’늘 그렇게 가난하게 끝나곤‘ 하는 어머니의 농사 중 밭 갈며 ’밭 가상에 돌 던지던 소리‘가 ’깊고 아득‘하게 들려온다.

어린 시절의 가난이 구질구질하지 않다. 처절하게 그리지도 않고, 예쁘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담담한데 시리게 온다.

“물길을 뛰어넘고 물장구를 치며 놀다 난 그만 한쪽 고무신을 잃어버렸다 정신이 아찔했다 한쪽 남은 신발을 내려다보며 한없이 물길을 원망하며 울었다 소식을 들었는지 걸레 빨다 쫓아온 어머니에게 직사하게 맞았다 온몸에 걸레 자국 검붉게 남아 따끔거렸다
/지천의 물은 비만 멎으면 금방 줄었다 모두들 돌아갔지만 난 물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며 오래 물 앞에 앉아 있었다 어지럼증이 일었지만 행여 포기할 수 없었다 눈이 퉁퉁 부어 가물가물할 즈음 돌팍 사이에 끼어 물살에 발발 떠는 것은 것이 보였다 아, 잃어버린 한쪽 신발이었다 신발을 주워 맨가슴에 꼭 안고 혼자 한참 울었다 신발을 찾아 신고 자꾸 발등을 내려다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를 만났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 어머닌 상처 난 내 맨몸을 쓰다듬으며 미안하다며 울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마루 기둥에 새겨 쓴 숫자를 찾았다 내가 검정고무신을 산 날짜였다“ 81 고무신

그리고, 그 가난은 가지런하다.

“늦가을 햇살 같은
가지런한 이 가난
/얼마나
간결한가” 51 가을날

시인의 아버지는 논을 갈고, 먼 데까지 가 풀을 베어 짐을 져다 쌓았다. 논마다 풀더미가 쌓이며 아버지와 어머니는 퇴비를 만들려고 풀을 썰었다. “따가운 햇볕 아래 말없이 맥이고 딛는 먼 모습을 하굣길에 바라보다 말없이 돌아서곤 했다 작두날에 썰린 가지런한 풀처럼 참 아름닥고 고른 날들이었다“87

그런 시인이었으니 사람이 순하고 맑을 수밖에. 밤에 딸 마중 나가다 서행 중이었지만 고라니를 치고 드는 생각이

“다행이다
아마 많이 아팠을 것이다
/아휴, 큰일 날 뻔했네
했을 것이다” 13 고라니

한다. 자기를 위한 생각은 없다. 고라니 생각뿐이다.

시인은 전북 완주 학동마을 소양에서 산다. ‘만나는 사람 없어 산 보고 메리 크리스마스, 했어요‘18 할 정도로 외롭다. 그러나 밭이 열 군데라 할 일이 태산이고, 달팽이부터 온갖 푸나무, 숲, 산과 더불어 살다보니 심심할 틈은 없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도 시에 고스란하다. 담백하다.

위봉사 가는 길이 시인 덕에 외갓집 가는 기분이겠다.

배추밭


배추밭에 섰다
싱싱하다

—야, 이놈아
너도 속 좀 차려라

— 예
어머니

그렇게
가을이 갔다 - P43

시인


아름다운 것들은
땅에 있다

시인들이여

호박순 하나
걸 수 없는

허공을 파지 말라

땅을 파라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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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양식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10
이성부 지음 / 민음사 / 197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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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에 나온 시집을 78년 중판으로 읽는다.
모시는 마음으로
그러다 놀란다.
유신으로 독재가 극악하던 그 시절 남긴 이 두 시가
50년 지난 이 모냥을 예언한 듯하여.

“밤이 한가지 키워주는 것은 불빛이다.
우리도 아직은 잠이 들면 안 된다.
거대한 어둠으로부터 비롯되는 싸움, 떨어진 살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아직은 똑똑히 보고 있어야 한다.
쓰러져 죽음을 토해내는 사람들의 아픈 얼굴,
승리에 굶주린 그 고운 얼굴을
아직은 남아서 똑똑히 보아야 한다.” 54 밤

“바다는 죽는다.
무덤으로 가는 것이 더 아름다워
바다는 그 가슴에
서슬 푸른 칼을 꽂는다.” 55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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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9-27 0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 생각이 나 이 양반의 <백제행>을 사놓고 1년이 다 되는데 아직도 읽지 않았군요. 강건하고, 만나면 진짜로 강건한 상남자 같던, 절대로 창백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요. 시인으로도 산꾼으로도 멋있었는데....

dalgial 2023-09-27 10:05   좋아요 0 | URL
강건. 딱 시인과 어울립니다. 그래서 별로 안 좋아했는데, 요즘 보기 드문 모습이라 그런지 싱그럽고 좋았습니다. 다시 읽어 보려고 합니다.
 
극에 달하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192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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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생 시인이 96년에 냈다.
20대의 첫 시집답다.
어수선하고 거칠다. 들쭉날쭉하다.

세상을 냉소하고

“세상은
힐난받을 가치도 없고
멱살 잡고 싸움 걸 적당한 상대도
아닌 듯하다“ 103

자기 삶이 불만족스러우며, 작위로 치장한다.

“요점 없이 지리하기만 한
내 추억은 냉동 심장을 제조중” 83

“나는 온 청춘을 저속하고 불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거적 같은 몸뚱이를 아무데나 두고 자버렸고 내키는 대로 아무 꿈이나 불러들여 가위눌렸었고 바퀴벌레 우글거리는 헌 집처럼 오래오래 나를 비워두웠었다.“ 49

실패한 연애도 잦았고, 쌍욕을 서슴지 않는다.

“한 남자가 잠깐 동안 임대한 세계가 나라는 사실에
만족하기 위해 많은 세월을 썼지만
헛수고임을, 나 여기 묘비에 적듯 적어두노라 가거라
멀리 가거라 머뭇거리지 마라
뒤도 돌아보지 마라 씹새끼” 45

그래서 글을 썼겠지만, 그래서 순하지 않은 글을 선택한다.

“거울 안에 한 사람에 대한 고통이라든지
한 시대에 대한 추억을
담아놓았는데,
그걸 알아채는
사람들은 하나 없다” 105

“나는 난해한 말들을
창가에 심어두었고
가끔
물을 주었고 그 뿌리는
그리하여 썩었다“ 56

그 눈이 화자 밖을 향하면서 냉소가 드러날 때가 좋았다.

“나는 청춘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청춘으로 살아야 한다고 애쓰는 너희를 보았다 그런 너희가 지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33

“덩달아 화를 내는 일 잦아도 덩달아
기뻐하는 일이 드문 나는 말한다
거리의 화환이 즐비한 어떤 양화점 지나며

당신들은 좋겠어요
짧은 희망들마저도 내다놓고 장식할 줄 아시니” 32

21년 <i에게>를 끝으로 읽지 않다가 중3 딸이 푹 빠져 이 달에 나온 <촉진하는 밤>까지 집에 있는 김소연을 다 읽고 하는 말이 “첫 시집이 제일 좋다”. 그래서 간만에 읽었다.
나는 아직 모르겠다.

행복하여

허전하여 경망스러워진 청춘을
일회용 용기에 남은 짜장면처럼
대문 바깥에 내다놓고 돌아서니,
행복해서 눈물이 쏟아진다 행복하여
어쩔 줄을 모르던 골목길에선
껌을 뱉듯 나를 뱉고 돌아서다가,
철 지난 외투의 구멍 난 주머니에서 도르르르
떨어져 구르는 토큰 같은
옛사람도 만났다 오늘은
행복하여 밥이 먹고 싶어진다
인간은 정말 밥만으로 살 수 있다는 게
하도 감격스러워 밥그릇을 모시고 콸콸
눈물을 쏟는다 - P89

바로 그때입니다


지프가 한 대 지나가면
비켜서서 가장자리 쑥풀들을
밟겠습니다 몇 대 더 그런 차가 지나가면
호박잎이 뽀얀 흙먼지를 입겠고 힘겹게
늘어져 있을 테지만,
한차례
짧은 비로
그 잎은 푸른 제 빛을 찾을 겁니다 그때가

반짝이며 빛나던 호박잎이 너덜대며 찢겨지는
바로 그때입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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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의 뿌리 - 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한티재시선 6
이하석 지음 / 한티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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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1950년
여름 더위의
결빙.

대구 형무소에 갇힌 양심수들과 국민보도연맹원들은
구석 없는 광장에서
귀를 막지만,
죽음의
호명으로, 마구,

끄집어 올려집니다.
한데 엮인 채
녹색의 차에 올라,
바리바리,
경산 코발트 폐광산에 실려 옵니다.

그들을 둘러싼
군경들은 남색의 하늘 아래
천막처럼
서 있습니다.

관리와 교화로 엮인 보도연맹원들은
포승의 상처로
파랗게
멍든 채
몇 명씩 조를 이뤄
수직 갱 위에 세워집니다.

갱 구멍이 눈 흘기는
역사 같습니다.
컴컴하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습니다.

군인이
앞의 한 명을 쏘아
갱속으로 떨어뜨리자 한테
엮인 이들
줄줄이
산 채로
따라서
떨어져 내립니다.
숨 막힌 미래 속으로
셀 수 없는
몸들몸들몸들 붉게
쏟아져 내립니다.

수천 명이 쏟아져 내렸어도
한 명도 게워올려지지 않습니다.
거대한 위장의 소화력으로
1950년 한여름의 더위는 캄캄하게,
결빙되고,

그리고는 그 위에 흙을 덮어버립니다.

곧장
죽음의 정보는 봉쇄되고,
폐기됩니다.” 54-57, 컨테이너

그랬다가 여러 피눈물 넘치는 증언이 잇따르자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침묵의 구조를 발굴하기 시작합니다.‘ 수많은 뼈들이 발굴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원회는 또다시 진실 덮는 힘에 의해 이내 해체되고 발굴은 중단되고 맙니다, 갱도 안에 아직 수천의 주검들이 묻혀 있는데도 거의 드러나지 못한 채. 발굴된 유해들 역시 안치할 곳 없어 컨네이너 안에 갇힌 채 방치됩니다.‘59

끔찍하고도 추악하고 천인공노할 학살이 엄청나게 자행되었는데도, 왜 진실을 밝히는 힘은 언제나 미약하고 ‘덮는 힘’은 이다지도 여전히! 강고한 것일까. 그래서 시인은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조용히 우는 것이다.

“죽음 자리가, 저렇듯,
푸르름으로
무성할 수 있다니!” 16

“망각의 껍질을,
꺼리는 질문과 대답으로
파들어가서
어리둥절하게 만나는
역사의 민낯이여.” 77

“풍경의 헤진 언저리에 우거진
어둠을 좀 더 밝게 인화하면,
행방불명으로 도드라지는 이름들과
아버지의, 되돌아 나오지 못한
막다른 길이 보입니다.” 81

“대숲 서걱이는,
바람결 다독이는
바깥 풍경을
다 애비의 무덤이라고 말하는 건
무슨 기척에 대한 화답입니까?” 95

‘당신은 여전히 행방불명’이고, ‘뭇 삶의 뒤꼍에 숨겨진 침묵의 구조는 여전히 화강암의 속을 달이’98 고 있지만,
우리는 ‘다 기억한다. 기억해야 한다.’97

“한바탕, 새로, 저항해야,
깨어나는 것입니다.” 109, 신천

나의 아름다움
릴케의 시*를 따서


누가 우는데
저 혼자만 우는 게 아닙니다
나도 왈칵, 뜨거워집니다

누가 즐거운데
저 혼자만 즐거워하는 게 아닙니다
나도 덩달아 들썩입니다

누가 부르는데
저 혼자만 부르는 게 아닙니다
나도 가쁘게, 기척합니다

물론 당신이 벙글면,
나도 피어납니다

이런 게 나의 아름다움이죠
그 힘으로 일어납니다

* 릴케, <마음 무거울 때>.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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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의 뿌리 - 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한티재시선 6
이하석 지음 / 한티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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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생 시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시마다 결기가 서려 있다
홍어 거시기처럼 흐물흐물해질 나이
그가 돌연한 까닭은?

대놓고 묻어버린 국가폭력
과 싸우고 있으니

부끄럽다
아직도 실종인, 그 청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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