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와 한국의 문화유적 - 도표.그림.사진으로 풀이한
이범교 지음 / 민족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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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 교리와 역사 설명이 9할이 넘는다. 관련 문화 유적은 쥐꼬리만큼 살짝 언급할 뿐이다. 후자에 대한 조예는 전혀 없는데, 다만 목록을 정리해 사진과 함께 짧은, 현지 안내문보다 소략한 내용을 수록했고, 제목에 미끼로 던져 둔 책이다.
불교 교리니 어렵다는 말씀.
도서관에 볕은 잘 들고 아주 푹 잘 뻔했다.
그래도 146쪽까지 읽다니.

일본에 가면 구카이가 아주 석가모니보다 더 귀하게 흔히 숭앙되는데 그가 밀교승이다. 라이벌 사이초 역시. 의례가 중심인 밀교와 일본이 잘 맞았단 얘기
반면, 중국은 당나라 때 잠깐, 우리는 고려대 성행. 그리고 사라짐. 어디로? 만다라 등의 주문과 의례로. 언제? 조선 태종과 세종 때 교파 통합 당하면서.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문두루비법이 밀교인데, 일본에 흔한 명왕 등의 밀교 도상이 우리에겐 단 한 점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장기 미완독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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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
무라까미 하루끼 지음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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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둘째 중학교 졸업여행차 다녀온 교토
숙소를 교토역보다도 남쪽 10조에 잡았는데
가모강까지 걸어가는 길에 보이는
허름하고 땅콩집처럼 올망졸망 붙은 집들을 보면서
모녀는 저게 딱 하루키의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에 나오는 삼각형 집 같다며 즐거이 재잘댔다.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 둘째의
평소엔 닫혀 있던 방에 청소기를 돌리러 들어갔다가
책상에 놓인 것을 보고 덥석 집어 읽는다.

파피루스라는 생소한 출판사에서 낸, 1993년 초판.
아내가 처음 산, 하루키 책이라고 한다.
파스타 면의 원료인 듀럼을 ‘듀라므’라고 번역해 놓기도 해 구수하다.

오뉴월 바람처럼
끈적이며 시원하게
지나간다.
낯익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설이고 있’는
다양한 고독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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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났다 황금알 시인선 256
허형만 지음 / 황금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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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삽한 언어보다는 평이한 언어를 좋아한다.
그러나, 시가 평이한 언어라는 형식에 지나치게 심상한 내용을 담을 때

“안식년 때 잠시 노모와 누이가 있는
지리산 속에서 지내며 산시를 쓴 적은 있지만
나는 숲해설가도 아니고
초목의 종류나 쓰임이나 생태도 모르지만
내가 이렇게 숲을 좋아할 줄 몰랐다.“ 91

당황스럽다. 이것이 시인가? 행갈이만 한 일상어. 그것도 시겠지.
그러나, 단 한 구석의 감탄과 감동과 놀람과 설렘, 격정과 슬픔 등의 온갖 정서가 없다면
굳이 시를 왜 읽겠는가. 재미있는 쇼츠나 보지.
놀랍게도 이 시집엔 눈길이 머무는 구석이 단 한 곳도 없다.

의아한 몇 구절이 있을 뿐이다.

”평소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꿈에도 그리던 바다의 품을 향해
혼신을 다해 내달린 흙더미가
아름다운 해안도로 위로 질주할 때의
활시위 같은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도로와 함께
온몸을 던져 바다로 향할 때
그 절벽의 높이만큼 치솟았을 짜릿한 전율
/도로와 바다의 경계를 짓는
높은 절벽의 교만함도 허물어버린
치열한 흙의 정신이 내 시의 정신을 닮았다.“ 13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 팽팽하고 짜릿하고 치열한 정신이?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담백하다 못해 아예 맹물 한 사발 내놓고 치열한 요리혼이 담긴 요리라고 우기는 꼴이다.

이런 시집이 스무 번째라고 한다.
세상은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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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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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을 지나고 있다. 전철 첫차를 타고 광명역에서 출발해 진주로 가는 ktx를 타고.
지금 이 동선 어디에도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애써도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오산의 진외가. 바람부는 율포. 겨울날 무슨 일로 단둘이 간 백양사.
하루키도 부친 당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에게 투사해 겪은 갈등을 얘기한다. 비슷한 경우로 다른 내용을 나도 겪었다.
화해랄 것도 없는 시간마저 지나가고
남은 것은, 아버지의 그 수많은 우연이 아니었으면 내가 없다는 것. 그것마저 다 아득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이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가능한 한 방울이다.“ 93

그리움을 직설하지 않는 담담함.
궁금함을 자아내는 전개.
반전(反戰)이라는 당연한 올바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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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3-04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 다시 읽었는데 리뷰가 정말 와닿네요. 하루키의 그 담백하고 ‘척‘하지 않는 화법이 여전히 참 좋았어요.

dalgial 2024-03-04 15:28   좋아요 0 | URL
네, 참 담백해서 좋았습니다.
 
꽃피는 처녀들의 그늘 아래서 열린시학 시인선 72
오세영 지음 / 고요아침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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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꽃이다.
시집에 실린 모든 시의 제목과 그 대상 다.
그런데, 주로 시집 제목처럼 ’처녀들‘로 대상화했다.
화자는 ’따알리아‘를 보며 ’둔부가 아름다운 여인이여‘를 읊조리며 ’내 몸에서 자꾸만 자꾸만 솟구치는 그 피가‘ 무섭다고 하는 남근.
그래서, 칸나에서 ‘初潮’(초조:첫 월경)를 보거나, 튤립을 보고는
“어젯밤의 믿을 수 없는 그
황홀함으로
그대 항상 곁에 있음을
내 이제 확인하거니
눈부시게 하얀 시트 위에 선연히 남겨준
그대 한 방울의 순결한
핏자국.“66
이라 하니 좀 징그럽다.
아마 남성 넘어 생명을 그린 것이겠지만.

그리고, 갖가지 찬탄의 정서로 다가가는 꽃들에 비해 두 꽃이 너무 억울하다.
“지난밤의 쾌락이 얼마나 달콤했기에 이처럼 기진했단 말이냐.
그래도 해가 저물면
다시 밤거리에서 배회하는 메살리네*
그대는 알리라.
밤에만 피는 꽃 월견초가
왜 푸른 초원을 버리고 이렇게 음습한
황지에 깊이
뿌리 내리는지를••••••” 38 달맞이꽃

“땅에 뿌리를 내린 것들은 결코
이 지상을 벗어날 수 없는데
너는 악착같이
위로 위로 기어오르려고만 하는구나.
상대를 제끼고, 붙들고,
올라타서 옥죄고, 딛고 일어서 마침내
높은 곳에 다다라 피워 올린
그 꽃.
사회주의 국가 영웅의 가슴에서 빛나는
훈장 같다.
아름다움이란
높은 곳에 자리한다 해서 더하지는 않는 법,
권력은 언제나 위에서 군림하지만
아름다움은 항상
낮은 곳에 선다.“ 74 등꽃

기획은 좋았으나
꽃보다 예쁜 구절도
생명만큼 감동적인 말도
없다.

해설을 쓴
정끝별은 이렇게 말했다.
“시인은 꽃을 보면서 아름다움으로서의 앎을 얻곤 한다. 안다는, 알려준다라는 술어와 현상학적으로 대립한다. 꽃들은 어떻게 자기들이 꿈꾸는 혹은 잃어버린 세계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일까? 시인이 안다라는 술어를 빈번하게 쓸수록, 꽃에 대해 잠언화된 아름다움을 명명하면 할수록, 시인의 나르시시즘은 모든 꽃을 자신의 꽃으로 변형시키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모든 꽃의 아름다움에 투사시킨다. 하여 꽃은 마치 물처럼, 시인의 나르시시즘의 훌륭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시인은 꽃을 인간으로서 본다. 아름다움의 대상으로서 본다. 꽃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꽃은 일방적이다. 타자적이다. 시집을 덮으면서 나는 꽃에 대한 새로운 몽상을 시작한다. 온전히 꽃이 ‘되었을‘ 때, 꽃의 아니마를 향한 몽상은 어떠할 것인가.”

우아하고 현학적이면서 우회적으로다 깠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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