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단편 <밝아지기 전에>가 참 좋다.상처 입은 사람들이 주로 나오는 가운데작정한 것도 아닌데위로를 해 주는 느낌이 든다.“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 문장을 지우고 기다린다. 온 힘으로 기다린다. 파르스름하게 사위가 밝아지기 전에, 그녀가 회복되었다,라고 첫 문장을 쓴다.”<왼손>은 매우 기이하고 충격적이었고,<파란 돌>의 첫사랑은 참 특이했다.표제작 한 편 남았다.
3번째 단편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나 4번째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은 굉장히 소소한 이야기이다.3번째 소설의 주인공은 “문인지 우산인지 도넛인지 코끼리인지의 모양의 한 것을 찾아다니”는 남자. 공짜로 실종자를 찾아주는 일을 한다. 찾는다는 것. 그 행위. 그것이 삶을 끌고 간다. 늘 모험이다. 그 대상이 자본주의의 예속에서 멀수록 행복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유상종이라 그런 이들이 곁에 많아진다.4번째 소설에는 연애와 그 끝이 나온다. “직업이라는 것은 본래 사랑의 행위여야 해. 편의상 하는 결혼 같은 게 아니라.”는 명언이 인상 깊다. 나는 아직 실패 중이다.마지막 단편 <시나가와 원숭이>가 소설집 제목에 가장 부합한다. 기담이다. 말하는 모든 것이 스포라 여기서 멈춘다. 마지막 몇 문장만 남긴다. 하루키는 좀 매정하다. 뭐 그게 인생이다.“마침내 자신의 이름이 손 안에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다시 그 이름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일이 잘 풀릴 수도 있고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게 바로 그녀의 이름이고 그밖에 다른 이름은 없는 것이다.”
앞 두 단편을 읽었다.두 편의 주제는 위로구나.숨쉬듯 당연한 상처작정하고 다가서면 더 아프게 한다.이렇게 위안을 줄 수 있구나자연스럽다.잘 덜어내어 담백하다.“우리의 마음을 다른 장소로 띄워보낼 만한 뭔가”가 소소한 무엇이든지 우리를 잡아준다.
재즈의 신인지 게이의 신인지—혹은 다른 어떤 신이어도 상관없지만—, 어딘가에서 자상하시게도, 마치 우연인 척하며, 그 여자를 지켜주고 계시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매우 심플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