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의 위치 시와편견 기획시리즈 7
복효근 지음 / 실천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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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복효근은 “우리 시가 느슨해지고 산문화되어 가면서 긴장미가 떨어지고 난잡해지는 경향을 본다. 이를 경계하여 절제되고 정제된 표현 속에 서정성을 담아내자는 작은 움직임이 있다.”라고 시인의 말에서 말했다.

그래서, 다 짧다.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여운과 울림이 사뭇 깊은 시들이 많다.
짧아도 아니 짧으니
깊다.

겨울 이야기 2


마을 안쪽 골목까지 내려온 고라니
발자국 덮어주느라 한 차례 더 내린 새벽눈

그것마저 지워주느라 때마침 쏟아지는 아침 햇살 - P47

오래된 사랑


저무는 하늘을 백로 두 마리 날아간다

서로 부르면 들릴 만한 거리다 - P23

은유법


노인요양병원 바로 앞 장례식장

그 직설화법이
해도 너무했다 싶었던지

그 사이에 꽃 핀 벚나무 두어 그루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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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미터 문학과지성 시인선 478
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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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의 시집을 봤다. 시집 한 권이 전부 성욕이었다. 아! 그는 소멸해가고 있었구나.”라고 시인은 익명의 딴 시인을 평했다. 이 문장으로 이 시집을 평하자면,

시집 한 권이 전부 우울이다. 아! 그는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구나.


“밤새 눈은 연옥을 덮고 있었다 33
난 수유리 세일 극장에서 생을 포기했다 42
이별만이 번성했던 생. 나귀처럼 인내했던 생. 자살자의 마지막 짐을 실었던 생. 수몰지의 폐허를 실었던 생. 이제는 단종된 생 43
서서히 익명이 되어갔다 49
결국 가시가 나를 지탱하고 있다 65
나는 천천히 불행해졌다 93
나는 아직도 생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상처에 대해서 알 뿐 125”


온통 어둡고 우울하다. 쇼미더머니에 나와 스타가 된 래퍼로 우원재라는 이가 있다. 비니를 눌러쓰고 며칠 못 잔 듯 퀭한 눈에 “우리 엄마 말했잖아, ˝행복 딴 거 없다 아들˝
아, 엄마 지옥도 딴 거 없습니다
구태여 설명함은 다 bitch, bitch
알약 두 봉지가 전부지
알약 두 봉지가 설명해
내 삶을 내 하루는 전멸해” 하며 우울과 어둠을 컨셉으로 인기를 끌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으니 묘하게 끌린다는 점이다.
우울이라는 스타일 자체가 아니라 한 마디씩 꽂히는 문장들 탓인가.

세상에 떠나보내도 괜찮은 건 없었다. 세월도 사랑도. - P44

강물은 어떤 것과도 몸을 섞지만 어떤 것에도 지분을 주지 않는다. 고백을 듣는 대신,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강물의 그 일은 오늘도 계속된다. 강물은 상처가 많아서 아름답고, 또 강물은 고질적으로 무심해서 아름답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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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사전
타니구치 지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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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原獸’라는 말은 한국어에는 없다.
일본어에는 있으니 원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 부제처럼 ‘고생물 이야기’가 내용에 훨씬 적합한 제목이다.
책을 열어 보기 전에는 산해경처럼 상상의 괴수들을 그려 놓은 책인 줄 알았다.
개나 말, 거북이, 고래, 인간 등등의 고생물학적인 시원을 다니구치의 친절하고 따뜻한 그림과 이야기로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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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 대한 반성문 시와시학사 시인선 13
복효근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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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복효근은 참 따뜻하다.
힘없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많다.
이 시집은 그의 세 번째 시집인데, 뭔가를 깨달았을 때, 건네는 방식이 아직 노골적인 시(마침 그는 교사라고 하던데, 교훈적인 방식)가 거슬린다. 그렇지만,
숨고 포장하고 흐리는 짓 없이
자신과 삶과 주변을 잔잔히 이야기한다.

저 염소에게 가서
댁의 성씨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봐야 되겠다. - P22

상응

왕버드나무는 제 옷 다 벗어
제 그늘 아래 홑것들 죄 덮어주고
지난 봄 눈맞추던 어린 버들치 안쓰러워
물 속에도 몇 잎 뿌려주고 - P40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 같이는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그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되나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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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선생 임춘시집 - 한시총서 5
김진영 외 지음 / 민속원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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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 집권으로 대대로 누리던 특권을 잃은 문벌귀족으로서
생계를 위해 벼슬자리를 구해야 하나 차마 굽히지 못하고
평생 가난에 찌들어 살았다.
임춘은
없는 돈을 저주하고(공방전), 못 구하는 술을 비난하면서(국순전)
그의 곤궁은 운명이면서 선택이었다.


아, 나는 매달린 바가지 같이
어렵고 궁한 세상 끝에 내쳐졌네.

늘 굶주려 낯빛은 검게 변하고
마른 창자엔 천 권의 책만 쓸쓸하네.

어지러운 세상의 비루한 무리들
치질 핥고 30대의 수레 얻었다네.

나는 그 낯짝에 침 뱉어 주고
호연히 돌아가는 시를 지으리.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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