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온 달빛 b판시선 55
윤재철 지음 / 비(도서출판b)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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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에서 시인이 말한 대로 특별히 ‘꽃이나 나무, 풀을 제재로 한 시들이 많’다. 최근 10년간 <우리말 땅이름> 4권을 펴내면서 이 땅의 이름과 이 땅에 난 것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와 그렇다고 한다. 지명 얘기는 4부에 있다.

이미 사라진 옛 풍경에 대한 그리움과 쓸쓸함을 자주 드러낸다.

조가비같이
작고 아름다운 마음
소소한 감정은 얼마나 먼 거리냐
소소한 풍경은 얼마나 먼 거리냐 78

그러나 닳고 찢어져
굵은 실로 꿰맨
검정 고무신은 없다
감쪽같이 땜빵한
양은 냄비는 없다 68

그 속에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추억하는 것은 단지 연민만이 아니다. 그것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늘 바탕에 놓여 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노년의 저무는 편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창때의 갈 바 없음을 보여주는 것. 53년생이신데 활발발하신 듯.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가을로 가야 할까
여름으로 가야 할까 80

그리고, 마치 자연주의처럼, 염상섭같이 현실을 관찰해 고스란히 담기도 한다.

그러나 풍경은 거기까지

어느 날은 누렁소 아침밥 먹고 도축장으로 트럭 타고 떠나고
참새는
소 사료 축낸 죄로
파리 잡는 찐득이에 걸려 죽는다

파란 축사 지붕 위로
하얀 구름은 떠가고 89

시인이야 살펴보고 느끼고 드러내는 것이다. 그 관찰 중 아랫 시가 가장 좋았다.

세월 건너는 섬


겁나게 맛나유, 자연산이라
보이는 게 모두 자연산인
팔십 과부 할머니들
세 집이 번갈아 가며
밥해 먹고 산다네

보령 녹도 방파제 내다보이는
돌담 곁 화덕
양은솥에 미역 넣고 국 끓이다가
깐 굴 한주먹 던져 넣고
수제비 뚝뚝 끊어 넣고

불 가에 모여 앉아
미역굴수제빗국 한 대접씩
손에 들고 떠먹으며
어허 속 풀어지네
욕심 낸다구 되간디

오늘 하루 또 한 끼 여의며
세월을 건너는 섬이 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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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23-02-17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윤재철 시인을 처음 만난 건 2000년 <오래된 집>인 듯 합니다.
오랫동안 신뢰하고 좋아하는 시인인데,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를
종종 생각하며 혼자 좋아합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dalgial 2023-02-17 20:37   좋아요 1 | URL

저는 <능소화>로 몇 년 전에 처음 접했어요^^
하찮은 독후감에 말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게 경쟁과 속도의 시간은 관념이었다
내가 하찮거나 사소한 만큼의 내 크기로
숲길에서 개암나무 열매 몇 개를 주우며 듣는
경이의 전언이란

특별하고 참된 삶에 대하여 따지지 않는
휘파람새 소리는
다만 청량하다는 것

말할 수 없어 말하지 않는 사랑과
외롭고 쓸쓸한 숲길은 여기 있어 고요다 - P43

풍경의 말


마을 표지석과 솟대가 서로 눈짓을 하는 사이
기러기는 가고 동부새는 불어오는
길목에서 풍경이 말을 하네요

돌담 옆에서 산수유가 펑펑 튀어서
산수유가지 사이 직박구리가 쌩쌩하게 울어서

삶은 이미 해방되었다고, 다만 모를 뿐이라고 - P40

우듬지로 솟구치는 신의 푸른 분수
우듬지 위로 흐르는 구름의 자유 항로
저녁이면 반짝이는 별들의 노래와 함께
기적이 오는 것을 보라고
기적은 이미 네 곁에 머물러 있음을 보라고
나무는 감히 쓰러질 줄을 모르는
고요하고 찬란한 대지의 초록기둥이다 - P47

나의 원음(原音)


저녁바람 일렁이는 대숲에
서걱서걱
별빛 듣는 소리,
대숲 밑 샘가에
들에서 늦게 돌아온 어머니
싹싹싹싹 쌀 씻는 소리,
고단한 하루를 마친 까마귀 떼도
까악까악
대숲에 깃드는 소리,
어두운 부엌
아궁이에서는
활활활활 잉걸불 타오르는 소리.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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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천 풀다발
전소영 지음 / 달그림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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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삶을 잘 보여주는 그림
위로가 되는 통찰이 담긴 글
들이 잘 어우러진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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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각 문학연대 시선 5
고재종 지음 / 문학연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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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를 아껴 읽었습니다.

[시인의 말]

너무 늦은 질문이어도 좋은가. 이만큼에 서서 저만큼의 강을 물으며, 묵묵히 바라보는 경우가 잦다. 예전 어디선가 보았던 시간이 묵어 목전의 강물로 오는 것 같다.


저렇게 강물은 하냥 출렁거리고 또 시간은 조각조각 깨져 일렁거리는 목전. 이것은, 이 아닌 것은 대체 무엇인가 또 묻는다. - P5

혼자 있는 시간, 해거름의 방죽은 고요를 미는 바람과 떨리는 물결의 한량없는 조화 속이다. - P13

바깥을 닫아건 고요와 나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침묵이, 마주 앉은 시간의 창에 어른거린다. - P16

나는 나를 알고자 책을 읽고 나를 찾고자 시 몇 줄을 썼으나 이쯤 해서는 낙과의 청시 한 톨만 하겠는가. - P25

이때쯤 때도 아닌데 멧비둘기 구욱국 울어댄다면 때로 적막보다는 그리움의 몽리면적을 넓혀 본들 어떠랴. 판독하다 놓친 사랑과 같은 저 마애불 위로 나는 날다람쥐여, 내가 삶에서 유일하게 배운 것은 고독이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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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 모비 딕 - 허먼 멜빌
크리스토프 샤부테 각색.그림, 이현희 옮김, 허먼 멜빌 원작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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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소하고
모비딕은 자연이다.
소설이냐 만화냐 그것이 문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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