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경쟁과 속도의 시간은 관념이었다
내가 하찮거나 사소한 만큼의 내 크기로
숲길에서 개암나무 열매 몇 개를 주우며 듣는
경이의 전언이란

특별하고 참된 삶에 대하여 따지지 않는
휘파람새 소리는
다만 청량하다는 것

말할 수 없어 말하지 않는 사랑과
외롭고 쓸쓸한 숲길은 여기 있어 고요다 - P43

풍경의 말


마을 표지석과 솟대가 서로 눈짓을 하는 사이
기러기는 가고 동부새는 불어오는
길목에서 풍경이 말을 하네요

돌담 옆에서 산수유가 펑펑 튀어서
산수유가지 사이 직박구리가 쌩쌩하게 울어서

삶은 이미 해방되었다고, 다만 모를 뿐이라고 - P40

우듬지로 솟구치는 신의 푸른 분수
우듬지 위로 흐르는 구름의 자유 항로
저녁이면 반짝이는 별들의 노래와 함께
기적이 오는 것을 보라고
기적은 이미 네 곁에 머물러 있음을 보라고
나무는 감히 쓰러질 줄을 모르는
고요하고 찬란한 대지의 초록기둥이다 - P47

나의 원음(原音)


저녁바람 일렁이는 대숲에
서걱서걱
별빛 듣는 소리,
대숲 밑 샘가에
들에서 늦게 돌아온 어머니
싹싹싹싹 쌀 씻는 소리,
고단한 하루를 마친 까마귀 떼도
까악까악
대숲에 깃드는 소리,
어두운 부엌
아궁이에서는
활활활활 잉걸불 타오르는 소리.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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