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십니까 수우당 시인선 10
표성배 지음 / 수우당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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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로 살아 내고 투쟁해 온 삶이다.

“비 오고 비 그치는 사이 비 그치고 비 오는 사이 그사이 무엇이 왔다 갔는지 나는 모른다 눈 지그시 감고 비 그치는 소리 비 오는 소리 듣다 보면 (그 사이) 붉은 머리띠와 깃발과 함성과 최루탄과 군홧발이 휘리릭 휘리릭 내 이십 대가 휘리릭 삼십 대가 휘리릭 휘리릭 (나는 어디에도 없다) 비 오고 비 그치는 사이 비 그치고 비 오는 사이“ 84 휘리릭

비애가 왜 없겠는가

”수많은 발자국 사라지고 채워지는 공장, 애초 노동자와 꿈을 나란히 놓는 게 문제였다 한 밭에서 자라는 감자나 고구마도 생김새가 다른데 꿈꾸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게 노동자라면 정말, 꿈은 슬프다“ 93 꿈은 슬프다

”나는, 지금, 밥이 문제인데 별은 왜 갈수록 먼 곳에서만 빛나나“ 15
밥은 평등하며,50 가혹하다.51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79
는 ‘명징한 말’이고 ‘원초적인 말’이건만,

”노동자가 외치는 그호도 머리띠도 한 빛깔 한 목소리였으나 지금은 전설이 되었다“ 80

“참 이상도 하지 천만이 넘는 노동자가 산다는 나라, 대부분 노동자는 가족도 친구도 친척도 심지어 애인도 노동자일 확률이 99%다 참 이상도 하지 누군가 누구일까 당신과 나 사이를 바둑판처럼 갈라놓듯 갈라놓아 저 자신 어찌할 수 없는 바둑돌이라도 된 듯 (참 이상도 하지 천만이 넘는 노동자가 산다는 나라)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도지사도 시장도 군수도 노동조합 위원장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참 이상도 하지 한 번도 이상하다고 느껴보지 못한 너와 내가 노동자로 사는 나라” 90 참 이상도 하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 허망해진 세상, 복잡다단하여 싸움도 빌런도 체제도 복잡다단한 세상.
그런데, 약자는 늘 지는 세상. 노동자는 늘 약자인 세상.
시인도 노동자도 투쟁도 늙고 낡아간다.
우울하다.

“무슨 고요가 이리도 평화로운가 (봄여름가을겨울) 하늘은 구름이 있어 천둥소리로 머리띠를 매는데 바다는 바람이 있어 파도로 깃발을 흔드는데 (아- 봄여름가을겨울) 머리띠도 깃발도 빼앗기고 밥 앞에 목맨 두려운 시간만이
흐르는 변함없는 이곳엔 누가 사나?” 29

그러나, 그래도

“아직도 달리고 있는가 멈출 수 없는, 멈추는 순간 파산인 자본 (쯧쯧 불쌍한 것) 사실은 내가 더 불쌍한데 누가 내 굽은 등을 쓰다듬어 주랴 이런 생각을 하는 시간에도 내 가랑이가 한 발이나 찢어지는- 어쩌나, 이를 어쩌나, 어찌할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점점 알아버린 이런 낭패가 있나” 41

그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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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현담 주해
한용운 지음, 서준섭 옮김 / 어의운하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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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게’

“再三撈摝始應知 두 번 세 번 걸러 보아야 알게 된다“
구절에서 모르는 한자가 있어 찾아보니
‘撈’자가 건질 로이다. 물고기 잡는 것에 관련한 법률인 어로법(漁撈法)에 쓰이는 글자였다.
그런데, 撈의 세 번째 뜻이 ‘끙게’다. 끙게?
“『농업』 씨앗을 뿌린 뒤에 씨앗이 흙에 덮이게 하는 농기구. 가마니때기에 두 가닥의 줄을 매고 위에 뗏장을 놓고 끈다.”
듣도 보도 못한 말. 죽은말을 하나 만났다. 끄는 도구를 뜻하는 데서 만든 말일텐데 어쩌다 ‘끙’이 되고, ‘개’가 아니라 ‘게’가 되었을까.
그걸 알게 되고, 끙게를 만나거나 만드는 삶이 있을까. 두 번 세 번 걸러 본들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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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친근한 소용돌이 랜덤 시선 28
문성해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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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저 혼자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개미들이 부지런히 잠자리 날개를 찢어 이고 가는 곁에서
쌓아두는 일보다 제 한 몸 스러지는 일이 더 시급하였던지
뻘뻘 땀을 흘리며 녹아내리고 있다
사라져야 완성이 되는 몸도 있다
짐승의 혓바닥을 빌리지 않아도
바람과 태양의 혀를 빌려 녹아내리는 사탕
어쩌면 자신 속에 오래 감춰둔
필사의 혀를 내밀어 스스로를 녹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낮의 땡볕 아래 이게 웬 달착지근함?
끈끈이주걱처럼 묻어나는 사탕 물이 어린 풀들 머리카락을 끄집어 당기고
사탕 물에 혹한 개미들이 허우적거리다가 뻗어버린다
자기가 버린 사탕 하나가
참 기괴한 변을 낳은 줄도 모르고
그가 벤치 위에 앉아서
조금 전에 먹은 설렁탕 한 그릇을 꾸륵거리며 소화시키고 있다”. 68-69쪽

지구에 나온 인간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지구에 폐를 끼칠 뿐이다.
곱게 와 온갖 것들과 잘 어울리다가 고스란히 돌아가야 하는데
되돌리지 못할 짓, 썩지 않을 못된 짓만 잔뜩 하다가 간다.
그럴 줄도 모르고 내뱉은 ‘박하사탕’ 같은
‘참 기괴한 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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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인문명리 산책 - 하루 만에 쉽게 읽는 교양인을 위한 생활철학 시리즈 1
나나 지음 / 굿위즈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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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대중서가 아니고, 입문서로 보면 딱이다.
산책 아니고 공부다.

읽었다기보다 훑었다.

인덱스 언어라고 하던가? 어느 분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장착해야 할 용어들.
조촐한 두께에 비해 그것들이 너무 많다.

발 디딜 이들에겐 아주 좋은 입문서이고,
구경꾼에게도 아주 좋은 경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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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혹하는 것
다니구치 지로 지음, 서현아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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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이 이렇게 다채로울 수가 있을까
정말 영롱하다
막 궁금하고
더 그리지 않는다는 게 아쉽다 못해 억울하다.
다니구치의 마지막 인터뷰는 이렇게 끝난다고 한다.

“해보고 싶은 일이 아직 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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