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유기, 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
이병헌 지음, 김태희 외 옮김 / 빈빈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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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희한하다.
곡부, 공자의 고향에 가서 성인을 추모하고 추숭하는 모습은 퇴계는 꿈꾸지 못했으나 갔으면 그랬을 법하게 고색창연한데,
현대 직전 중국의 캉유웨이와 만나기도 하고(만남은 예스럽다)
‘앵글로색슨족’을 논평하기도 하니
20세기 초라는 시간은
참으로
기이하다.

아래의 술회는 1914년 홍콩의 일이다.

28일. 백암과 함께 화원으로 가서 나무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 더위를 식혔다. 꽃과 나무의 이름은 거의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종려나무는 수십 종이나 되었는데, 아름드리나 되는 것도 많았다. 형체가 기이하고 품종도 특이했다. 나무 모양도 제각각이었는데, 옆에 팻말을 세워 원산지를 표시했다. 영국인이 이 항구를 경영한 지 수십 년도 되지 않아 어엿한 하나의 국가를 이루었으니, 이른바 앵글로색슨민족은 어느 곳에 가든 열 사람이 하나의 나라를 만든다는 말이 어찌 허풍떠는 말이겠는가.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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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 시인선 54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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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날들은 여직
잘못 찾은 무덤 앞에서 통곡한 것이나
그 무덤 아닌 줄 알면서 엎드린
누추한 반복일 뿐” 40

“스쳐가고 오는 동안
처음이고 나중인 풍경
너, 아니었는지”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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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 시인선 54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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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소리가 없다.
담담히 일상을 응시하고 비의를 툭 던진다.
전형적인 시인이라서 tmi가 없다. 궁금한 일이 많다는 얘기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는데 얼핏 비칠 뿐 정서도 내비치지 않는다. 간이 크게 아파 서울로 1달에 한번 병원에 다니는 듯한데 역시 털어놓지 않는다.

체념보다는 달관에 가까운, 이 관찰이 눈에 들었다.

“아니라 아니라 못하고 발목이 빠져드는데도
저, 저, 하면서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016

시인이라 생긴 직업병일 수도 있겠다. 감정을 가다듬고 정서를 다듬어 말을 줄인 뒤에야 나오는 게 시이니.
흘러가는 대로 바라보는 거지.

요즘 갑자기 더운 게
사람들이 제 말만 울어대서였구나.

당신이라는 모든 매미



새벽 서너시까지 울어대는 매미
삼베 이불이 헐렁해지도록 긁어대는 소리
어쩌라고 우리 어쩌라고

과유불급,

나도 그렇게 집착한 적 있다
노래라고 보낸 게 울음이라 되돌아왔을 때
비참의 소리는 밤이 없었을 것이다

불협도 화음이라지만
의미를 거두면 그저 소음인 것을

이기적인 생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우리 안에는 당신이라는 모든 매미가 제각기 운다
어느 것이 네 것인지 종내 알 수도 없게 엉켜서

허공은 또 그렇게 무수히 덥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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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파르티잔
서정춘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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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편>과 더불어 서정춘의 진수를 보여주는 시집이다.
짧은데 깊은 여운이 인다.
낮술이라도 당장 걸치고 싶은.

사라지는 것과 힘없는 이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

“별빛은 제일 많이 어두운 어두운 오두막 지붕 위에 뜨고
/귀뚜리는 제일 많이 어두운 어두운 오두막 부엌에서 울고
/철없이 늙어버린 숯빛 두 그림자, 귤빛 봉창에 비쳐지고 있었다“ 41 성화(聖畫)

명징하고 싱그러운 묘사

“더위가 맹위를 떨친 여름 낮 한때를 소나기가 한바탕 후려치자 비를 피해 서두르는 사람들의 숨가쁜 광경을 길가의 가로수들이 바라보다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내며 싱싱하게 날비를 맞고 있는” 45 풍경(風景)

고향의 생생한 냄새, 또렷한 그리움

“나는 아버지가 이끄는 말구루마 앞자리에 쭈굴쳐 타고 앉아 아버지만큼 젊은 조랑말이 말꼬리를 쳐들고 내놓은 푸른 말똥에서 확 풍겨오는 볏집 삭은 냄새가 좀 좋았다고 말똥이 춥고 배고픈 나에게는 따뜻한 풀빵 같았다고 1951년 하필이면 어린 나의 생일날 일기장에 침발린 연필 글씨로 씌어 있었다
/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 35

자꾸 읊조리고 싶은 절창

“길고 긴 두 줄의 강철 시를 남겼으랴
기차는, 고향 역을 떠났습니다
하모니카 소리로 떠났습니다” 33 전설

“꽃 그려 새 울려 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11 봄, 파르티잔

풍경風磬


우네
물고기 처량하게
쇠 된 물고기
하릴없이 허공에다
자기 몸을 냅다 치네
저 물고기
절 집을 흔들며
맑은 물소리 쏟아 내네
문득 절 집이 물소리에 번지네

절 집을 물고
물고기 떠 있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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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손묵광.이달균 지음 / 마음서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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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가 흑백 사진을 찍고
시인이 한 편의 시, 감상과 소개를 묶은 글을 써
구성했다.

교술과 서정의 만남은 극히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다.
사진은 다채로운 구도, 특히 구름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장면이 많았다.

책이 크지 않고, 두 쪽을 채운 사진을 온전한 사진으로 보기 어려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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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09-05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너무 멋진데요.
미륵사지 석탑 복원 중일때 가본 적 있는데 지금은 이 자리에 박물관도 생겼어요.

dalgial 2023-09-05 19:36   좋아요 0 | URL
네, 멋진 사진이 많습니다. 미륵사지도 멋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