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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의 뿌리 - 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ㅣ 한티재시선 6
이하석 지음 / 한티재 / 2016년 9월
평점 :
70여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1950년
여름 더위의
결빙.
대구 형무소에 갇힌 양심수들과 국민보도연맹원들은
구석 없는 광장에서
귀를 막지만,
죽음의
호명으로, 마구,
끄집어 올려집니다.
한데 엮인 채
녹색의 차에 올라,
바리바리,
경산 코발트 폐광산에 실려 옵니다.
그들을 둘러싼
군경들은 남색의 하늘 아래
천막처럼
서 있습니다.
관리와 교화로 엮인 보도연맹원들은
포승의 상처로
파랗게
멍든 채
몇 명씩 조를 이뤄
수직 갱 위에 세워집니다.
갱 구멍이 눈 흘기는
역사 같습니다.
컴컴하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습니다.
군인이
앞의 한 명을 쏘아
갱속으로 떨어뜨리자 한테
엮인 이들
줄줄이
산 채로
따라서
떨어져 내립니다.
숨 막힌 미래 속으로
셀 수 없는
몸들몸들몸들 붉게
쏟아져 내립니다.
수천 명이 쏟아져 내렸어도
한 명도 게워올려지지 않습니다.
거대한 위장의 소화력으로
1950년 한여름의 더위는 캄캄하게,
결빙되고,
그리고는 그 위에 흙을 덮어버립니다.
곧장
죽음의 정보는 봉쇄되고,
폐기됩니다.” 54-57, 컨테이너
그랬다가 여러 피눈물 넘치는 증언이 잇따르자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침묵의 구조를 발굴하기 시작합니다.‘ 수많은 뼈들이 발굴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원회는 또다시 진실 덮는 힘에 의해 이내 해체되고 발굴은 중단되고 맙니다, 갱도 안에 아직 수천의 주검들이 묻혀 있는데도 거의 드러나지 못한 채. 발굴된 유해들 역시 안치할 곳 없어 컨네이너 안에 갇힌 채 방치됩니다.‘59
끔찍하고도 추악하고 천인공노할 학살이 엄청나게 자행되었는데도, 왜 진실을 밝히는 힘은 언제나 미약하고 ‘덮는 힘’은 이다지도 여전히! 강고한 것일까. 그래서 시인은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조용히 우는 것이다.
“죽음 자리가, 저렇듯,
푸르름으로
무성할 수 있다니!” 16
“망각의 껍질을,
꺼리는 질문과 대답으로
파들어가서
어리둥절하게 만나는
역사의 민낯이여.” 77
“풍경의 헤진 언저리에 우거진
어둠을 좀 더 밝게 인화하면,
행방불명으로 도드라지는 이름들과
아버지의, 되돌아 나오지 못한
막다른 길이 보입니다.” 81
“대숲 서걱이는,
바람결 다독이는
바깥 풍경을
다 애비의 무덤이라고 말하는 건
무슨 기척에 대한 화답입니까?” 95
‘당신은 여전히 행방불명’이고, ‘뭇 삶의 뒤꼍에 숨겨진 침묵의 구조는 여전히 화강암의 속을 달이’98 고 있지만,
우리는 ‘다 기억한다. 기억해야 한다.’97
“한바탕, 새로, 저항해야,
깨어나는 것입니다.” 109, 신천
나의 아름다움 릴케의 시*를 따서
누가 우는데 저 혼자만 우는 게 아닙니다 나도 왈칵, 뜨거워집니다
누가 즐거운데 저 혼자만 즐거워하는 게 아닙니다 나도 덩달아 들썩입니다
누가 부르는데 저 혼자만 부르는 게 아닙니다 나도 가쁘게, 기척합니다
물론 당신이 벙글면, 나도 피어납니다
이런 게 나의 아름다움이죠 그 힘으로 일어납니다
* 릴케, <마음 무거울 때>.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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