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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를 생각한다 - 도쿠가와 3백 년의 유산 ㅣ 일본사 연구총서 2
쓰지 다쓰야 지음, 김선희 옮김 / 빈서재 / 2023년 1월
평점 :
결론.
일본에서는 유학도 주자학의 명분과 한당의 주를 절충하여 고증에 가까워져 유학이라기보다는 한학이라고 하는 것이 어울린다.
성리학의 격물에서 물은 인간이 관계를 맺는 대상으로 철학에 해당했으나, 일본에서는 물질적인 물로 봐 서구의 과학기술 성과를 받아들이는 데 용이했다.
결국 일본적이라는 것은 당연히 에도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
이국적 취향에서 시작해 외래 문화를 받아들이고, 서민이 부상하고, 과학기술을 빨리 받아들인 점이 동양 3국 중 근대화에 가장 먼저 성공한 이유라고.
일본의 독자성을 가진 배경으로 나는 우선 근세라는 시대가 근대로 이어지는 통일 국가 권력의 형성기였다는 것, 동시에 중화 문명의 커다란 우산에서 독립하는 시기였음 을 지적하고 싶다. 그리하여 새로운 통일 국가 안에서 일본의 전통문화도 외래의 이국 문화도 널리 민중 계층에 침투하여 정착하고, 마치 이 풍토에 토착하고 있는 듯한 ‘일본적‘ 문화를 형성했다. 시각을 달리하면 지식 교양에 대한 민중의 강한 의욕이 하층 저변까지 광범위하게 도달했고 봉건적 신분 계층을 뛰어넘은 지식 시민층이 형성되어 갔다. 일본 근세의 문화는 결코 왕후귀족의 주도• 보호에 의하지 않았고, 단순히 도시의 호상의 문화도 아니었다. 서민층의 저변 확산을 무시하고는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화혼양재‘는 하루아침에 나온 것 아니다. 17세기 후반 주자학이 정통파의 입지를 확립하는 무렵부터 이미 주자학과 아울러 한당의 훈고학을 취하는 절충주의가 나타났다. 이윽고 그것이 주류가 되어 관념적인 도덕 철학보다는 경험적 • 실증적 학문의 풍조가 높아졌다. 그러고서야 비로소 저들의 장점을 취하여 이쪽의 단점을 보완하는 동양 도덕 • 서양 기술, 표리겸해表裏兼該도 가능했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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